-
-
나는 홍범도 - 송은일 장편소설
송은일 지음 / 바틀비 / 2020년 8월
평점 :
《나는 홍범도》
송은일 지음 | [바틀비]
‘우리는 누구인가’를 자문하게 해준 독서
‘저 산 아래에는 나의 목숨을 노리는 수많은 적이 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어떻게 싸워야할 것인가?’ 지난여름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머나먼 카자흐스탄에서 날아와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유해가 봉인되는 모습을 보면서 나라를 잃고 타국의 숲 속에서 싸워야 했을 그의 고뇌와 결의를 막연히 상상해보았다. 그가 아내와 큰 아들을 적으로부터 구하지 못한 단장의 슬픔을 삼키고 국경을 넘은지 113년 만에 귀환하는 장면에서 나는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제작년의 3·1절 기념사에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모셔오기로 했다는 대통령의 발표를 들었을 때만해도, 나는 장군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소설가 송은일의 《나는 홍범도》를 읽고서야 장군의 업적만이 아니라 역사 속의 개인으로서 그의 삶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소년 홍범도는 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다.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청년 홍범도는 분명한 의식을 지니고 생각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는 점을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나라와 백성을 보호하지 못하는 군대와 일본에 부역하는 상관의 명을 거부할 줄 알았던 까닭이다. 바람에 휘지 않으면 부러진다고 했던가. 그는 부당하게 참수형을 받았다. 하지만 의식 있는 다른 인물의 도움으로 청년 홍범도는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았다. 그는 자신이 어느 자리에 서야할지 분명히 깨닫고 행동에 옮긴 인물이었다.
홍범도의 연보를 보면서 그가 한일합방이 이루어지기 십 수 년 전에 이미 국내에 들어온 일본군과 대적하기 시작했음을 알았다.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여러 계층에서 저항 운동을 일으켰다. 하지만 정치인들을 비롯한 많은 기득권자들과 엘리트 계층은 자신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했던 이들도 생겨났다. 오히려 더 이상 기댈 데 없는 사람들, 기득권 계층으로부터 극심한 고통을 받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싸웠다. 특히 포수가 많았던 함경도에서의 저항이 거셌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하지만 봉오동을 품은 산 속에서 나날이 강해지고 거대해지던 적군을 보고 홍범도 장군은 수없이 회의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기어코 시작하고 이어나간 사람’은 위태로운 나라와 가족의 운명 속에서도 떳떳한 한 사람이 되고자 했던 전우들의 신뢰와 결의로 ‘끝끝내 이긴다’는 말을 할 수 있었을 테다.
소설을 읽으며 홍범도와 나의 시공간에 가로 놓인 무한히 많은 평행우주를 상상해보았다. 그의 결단은 개인의 삶이 아니라 나라와 수많은 이들의 운명이 걸린 문제였기에 그만큼 더 고독하지 않았을까 싶다. ‘날으는 홍범도’라는 별명을 얻은 무적의 장군이었지만, 그 역시 거대한 세계사의 물결과 국제 정치의 역학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러시아에서 무장해제 요구에 불응하여 많은 동지들이 전사하고 러시아군에 강제 편입되었던 ‘자유시 참변’을 비롯하여,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정책으로 수송열차를 타야 했을 장군과 고려인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홍범도는 머나먼 타지에서 고국의 해방을 눈앞에 두고 서거했다. 만약 그의 부대가 무장해제 당하지 않고 싸울 수 있었다면 해방을 맞지 않았을까? 질 수밖에 없었던 싸움을 시작했지만 자신의 운명과 역할을 받아들이고 실행하기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밤을 고뇌했을까.
지난여름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 소식을 접하고 소설을 읽으며 새삼 우리 근대사에 대한 무지를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의 역사에 대한 안타까움과 패배의식과도 같은 잔재를 내 안에서 발견하기도 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작가의 말을 통해 그의 고민이 나의 고민과 같았다는 점을 발견하고 용기를 조금 얻을 수 있었다. 작가의 고백은 현재의 의식에 머물러 있지 말고, 우리 역사에 대해 앞으로 더욱 알아가자고 격려하는 말로 들렸다. 의연하게 싸웠던 조상의 후손으로서 우리가 절실히 잡아야할 호시기는 어쩌면 그릇된 역사관의 영향을 받은 패배의식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보이지 않는 호시기’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던 셈이다. 우리 후손에게는 나라를 침탈한 적들과 떳떳하고 용감하게 싸운 선조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다. 이는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는 근간을 다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책을 덮으면서 나는 총을 들고 싸운 이들을 도왔던 이름 없는 사람들 또한 기억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일본군은 의병들을 도왔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양민을 학살했다. 소설을 읽기 전에는 이 부분을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 일군에 대항하여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과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 연합군은 청산리 일대에서 대승을 거두었지만 일본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한인 5천 여 명을 학살했다. 이 사건은 이후에 벌어질 일본군의 대량학살과 비인간적인 만행을 예비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의병을 도왔다는 이유로 희생당한 양민들로부터 우리 조상들이 무기력하게 나라를 빼앗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기억해야겠다.
마지막으로 해방을 2년 남기고 서거했던 장군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기까지 장군의 묘역을 지켜온 고려인들에게도 생각이 미쳤다. 그들은 세대를 이어 장군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이들이다. 지난여름, 장군의 유해가 국내로 귀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서거 이후 유해 발굴 작업 시까지 정성을 다해 묘역을 관리해왔던 고려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갈대가 우거진 척박한 타지에서 땅을 일구고 벼농사를 개척하여 삶의 터전을 일구어낸 자랑스러운 동포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국내에 장군의 유해를 모시고 묘역을 잘 관리하는 것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고려인들에 대한 역사도 후손에게 전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의 역사엔 고난과 애환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문화를 간직해온 자랑스러운 이야기가 있었다.
이번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과 독서를 계기로 그와 의병들의 업적뿐만 아니라 이들을 도왔던 많은 양민들의 희생,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온 고려인들을 생각해보았다. 이 모든 이야기들을 모아 새로운 세대에게 전달하는 일은 후손인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일테다. 우리의 과거를 새로운 눈으로 되돌아보고, 올바른 길을 한 발씩 내딛는 일이 오늘 우리가 할 일이 아닐까. 이는 ‘우리는 누구였고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의 답을 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1] "내가 잡아볼까 하는 호시기는 조선을 향해 총질 해댄다는 왜국 종자들입니다." (34)
[2] "우리는 각자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껏 최선을 다해 우리를 지키면서 일본을 몰아내야 합니다." (109)
[3] "모든 전투는 적의 공격을 능히 막을 수 있는 방어로써 나아가, 적을 이길 수 있는 공격으로써 승리하는 것이다." (151)
[4] "눈 내린 벌판을 갈 때, 모름지기 어지러이 걷지 말 일이다. 오늘 네가 간 자취를 따라 뒷사람들 발길이 이어지리니." (242) - 여천이 신계사를 떠날 때 의성 대사가 건네준 족자의 글
[5] "같은 상황에서 누구는 적진에 가서 빌붙는데 누구는 무기를 치켜들고 적진으로 돌진한다. 그 차이는 어디서 생기는가." (284)
[6] "구국일념 의병 전사 어디 있나. 어디에 있나. 하느님도 임금 영웅도 우리를 구제치 못하리. 우리는 다만 우리 손으로 해방을 이루리. 자유를 누리리. 춥고 덥고 배고프고 헐벗고 고될지라도 일제강도 무찌르고 우리나라 되찾으리. 꼭 찾으리. 간절한 의지 불굴의 용기로 싸우리. 빛나리. 끝내 끝끝내 이기리. 끝내 끝끝내 이기리." (303) - 홍범도의 풍산 의병대가 붙인 의병 모집 격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