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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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한 균열'

 

작품들으르 읽으며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이미지는 작은 실금들이 이어진 균열이었다.

 

<길들여 지지  않은 딷>의 루마와 아버지

<지옥-천국>의 엄마의 Ekef ghr은 엄마와 흐라납 삼촌 그리고 데보라

<머물지 않은 땅>의 매건과 아밋 부부

<그저 좋은 사람>의 수드하와 라훌 남매

<아무도 모르는 일>에서의 폴과 생과 파룩 그리고 그들의 내면에서

<헤마와 코쉭>에서의 두 사람 그리고 두 사람과 그들의 가족에서

그들은 조금씩 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그동안 믿어왔던  익숙한 내 면에서 균열을 느낀다.

알이 깨어져야 그 속에서 나올 수 있다

알 속이 마냥 따뜻하고 안락해서 그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균열은 무언가를 깨는 것인 동시에 다시 무언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신호이다.

분열된 세포들이 성장을 이룬다.

부모의 손을 놓는 순간의 불안고 공포를 이겨내야만 내 세상을 만들수 있고

내 아이는 성장할 수 있다

균열은 그런 것이다.

모든 것을 뒤흔들어 놓는 동시에 모든 것이 시작할 수 밖에 없는 토양이 된다.

 

 

아버지는 나이를 먹고 은퇴를 했고 이제 더이상 돌봐야 할 가족이 없다. 동시에 자신을 돌봐야 할 가족도 없다. 그건 자유롭고 동시에 고독하다.

그리고 이전 가족에 둘러 쌓여 있을 일도 없지만 내가 무엇을 하든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잔소리를 들을 이유도 없다.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그렇게 분리되어 이제 어쩌면 행복하다.

루마는 여느 자녀처럼 부모에게 반항하고 거부하는 성장기를 지났고 이제 그 부모의 나이가 되어 부모의 입장에서 그리고 부모 부양이 의무인 민족적인 정서에서 많이 갈등한다.

아버지를 모셔야 하는게 아닐까. 저렇게 홀로 두어도 될까?

아버지  생각이 맞다.

이제 루마가 아버지가 필요하다. 어른에게도 어느 순간 나를 끌어주고 기댈 수 있는 다른 어른이 필요할 때가 있다. 지금 루마가 그렇다. 너의 선택이 옳다고 말해주고 옆에서 거들어주고 조금 대신 해줄 수도 있는 사람이 어쩌면 아이들보다 어른이 더 필요하다.

균열을 가지고 분리되었으나 아직 분리되지 못한 루마가 오히려 더 불안하다.

아버지는 이제 충분히 혼자서 하나로 완성되었다.

 

낯선 땅에서 아무도 없는 상황

그 곳에서 자기와 같은 고향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는 것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고 나의 습관을 잘 알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것도 일종의 연애감정이 아닐까.나에게 의지하는 프라납이 어쩌면 엄마에게는 존재의 의미를 되찾아주는 사람이고 희망이고 사랑이다.

책임은 있지만 애정이 없는 아버지보다 옆에서 칭얼거리며 말을 들어주고 눈을 맞추어주고 함께 시간을 시시껄렁하게 보내는 사람이 더 소중하다.

엄마의 마음이 그렇게 프라납에게 기울어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할 수 밖에 없다는 걸 어린 딸이 이해하긴 힘들다. 촌스럽고 부끄럽고 남에게 내어보이고 싶지 않은 엄마의 투박하고 낯선 x통제는 벗어나고 싶은 게 당연하다. 삼촌의 연인 데보라에게 더 끌리는 게 당연하다.

엄마와의 인연은 그렇게 끊어버리고 싶고 데보라와는 무엇이든 연결되고 싶은 마음

엄마에 대햔 배신은 아닌데 엄마는 늘 그 자리에 있을테니 하는 마음도 있을테고

나는 엄마와 다른 사람이고 싶다는 딸에게 데보라는 참 매력적일 것이다.

그리고 엄마는 데보라의 등장으로 프라납도 잃고 딸도 잃게 생겼다.

균열은 그렇게 내 모든 것을 가져가버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삶은 지속된다.

어느 가을 석양앞에 바바리 코트를 걸치고 오래오래 서 있던 엄마의 마음은 그 지속되는 삶이 지긋지긋하면서 동시에 다행이지 않았을까

그런 모순된 마음이 드는 때도 있는 법이니까

 

장녀들은 다 그럴까

부모에게 순종하고 동시에 동생들에게 책임을 느끼는 존재일까

나는 장녀가 아니어서 첫째가 아니어서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언제나 옳은 행동만 선택하는 언니가 가끔은 답답하기도 했다. 저러지 않아도 되는데... 저러지 않아도 엄마나 아빠가 기절하진 않는데...

동시에 미움도 가지고 있었다. 늘 자기가 옳은 역할을 해버려서 나는 자연스럽게 나쁜 동생이 되어버리게 만드는 일이 왕왕 있었다. 그렇게 착한 언니인데 그렇게 책임감있는 누나인데 왜 그 누나를 언니를 속상하게 만드냐고 누군가에게 야단을 맞을 때 난 늘 억울했었다.

누가 그렇게 착하게 굴라고 한 적도 없고 우리 때문에 걱정하고 전전긍긍하라고 한 적도 없고

엄마대신이라고 한 적도 없는데 왜 혼자 안달하고 혼자 애태우면서 나만 나쁜 사람을 만들까?

다 자기 만족일 뿐인데 나는 하나도 고맙지 않은데 왜 저러고 살까?

그 마음을 나이 먹어 이해가 되지만 반갑지 않은 건 여전하다.

착하기만 한 사람. 뭔가 책임을 느끼고 하려는 사람들이 고맙지만 동시에 참 버겁다.

수르하의 마음도 알지만 어쩐면 라훌의 마음을 더 알거 같다.

물론 수드라 때문에 라훌이 알콜 중독이 된 것도 아니고 대학을 그만 둔것도 아니다.

그건 라훌의 선택이고 그의 책임이다.

조금 이기적으로 말하자면 수드라보다는 차라리 부모의 어정쩡한 자존심과 자식에 대한 두려움이 더컸을 것이다. 자꾸 수드하가 자기랑 몰래 술을 마셨던 그 순간을 후회할때 그때를 되돌리고 싶어할때 그건 아니라고 그런 마음이 라훌을 더 외롭게 하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잘 하고 싶어 애쓰는 순간 관게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국적이 조금안 방만한 생의 연애를 지켜보는 폴은 어떤 마음일까?

폴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금이 가는게 아니라 그읜  내부에서 균열을 느낀다.

생을 알게 되고 룸메이트로 지내면서 그의 연애에 조금씩 개입하고 관심을 가지면서 그의 속에서 조금씩 균열이 일어난다. 이전의 폴이라면 전혀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하고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낀다.

 

헤마와 코왹의 이야기는 어쩌면 참 상투적이고 어딘가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거 같지만 그래서 통속적으로 마음을 흔든다.

어릴 적 첫사랑. 두근 거리는 감정 숭상하는 마음

멋진 타인에게 끌리면서 내 가족이 구질구질하고 촌스럽게 느껴지는 마음

붏편하고 속상하면서 동시에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

사춘기 소녀의 복잡한 심경을 이야기하고  이어

어머니를 잃고 제대로 애도의 기간을 보내지 못하고 그대로 눌러 놓은 채 나이 먹은 소년의 이야기. 아버지와는 멀어지고 그 아버지의 재혼이 낯설고 싫지만 그걸 싫어한다고 표현하기엔 이제 성장했고 아버지가 이해되어버리는 묘한 감정들

소년의 애도는 그리고 죽음에 대한 집착은 아버지와의 관계가 아니라 이젠 스스로 풀어내야 할 숙제가 된다.

그리고 다시 만난 두 사람 , 짧은 시간 불같은 연애 그리고 각자 제자리로

그러나 이전과는 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

 

딴 이야기지만 어릴적 전학을 5번을 했다.

익숙할만하면 떠나야 했던 경험들이 어쩌면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는 쪽이 내가 보호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일찍 알게 해줬다. 그냥 친절하고 상냥할 수 있는 무심함 그게 나와 타인의 관계였다.

시시콜콜 집안 일을 나누고 비밀을 나누며 단짝을 만드는 일은 영 서툴렀다.

내가 누군가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도 어색하고 누군가가 내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도 불편했다.쿨하다고 스스로 믿었지만 그건 쿨 한것이 아니라 상처받지 않겠다는 비겁함이고 나를 지키려는 방어였다. 늘 좋은 사람이었고 언제나 감정의 기복없이 이성적이고 잔잔한 사람이지만 참 알 수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누구랑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그냥 배경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계속 내가 어디론가 이동하고 어디서든 타인이어야 한다는 게 외롭고 슬펐지만 그걸 누구에게 말 할 수 없었다. 남들이 보기엔 늘 잘 적응하고 아무일도 없는 그래서 조금은 무심해져도 괜찮은 아이였으니까

 

아이를 키우며 왠만해선 전학이나 이사는 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새로운 곳에서 이미 형성된 관계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걸 지켜보면서 어쩌면 아이가 힘들었을 것보다 내가 더 힘들어서 혼자 끙끙댔던 거 같다.

길게 이어진 아이의 친구문제와 왕따문제를 겪으며 그게 아닐 지 모르는데 나는 나의 이사결정을 원망했고 모든게 거기서 비롯되었다고 혼자 전전긍긍했다.

다행히 요즘 아이들은 굳이 뿌리를 이식한 경험이 없이도 조금씩 혼자가 익숙하고 개인적인 경향이 강해서인지 우리 아이들도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걸 배워가는 중이다.

이게 좋은 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줌파 라히리의 작품은 문화와 터전을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그 낯선 곳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노력하는 사람들 그렇게 미세하게 균열되는 관계를 그린다. 가족끼리 형제끼리 부부끼리 그리고 내 속의 나에게 미세하게 실금들이 생기고 그 실금들이 서로 만나 더 길어지고 깊어지며 흔들리고 갈라지지만 결국을 그렇게 계속 삶을 이어가는 이야기들이다.

내 감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이 오고

남이 나같지 않다는 외로움을 느끼며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나도 그 균열을 받아들이고 기다리기도 하지만 상처를 입는다.

관계란 유기적이어서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지속적으로 영원히 이어지는 관계는 매말라서 박제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건 관계가 아니다.

만남이 있고 헤어짐이 있고 언젠가 누구든 잊혀지고 잊고 그렇게 산다.

관계의 균열이 불행만은 아니다.

균열과 절망 그리고 세상의 끝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그리고 균열을 통해 성장하고 더 단단해진다.

 

 

예전 영화 <말아톤>을 보고 누군가가 말했다.

이 영화는 내가 내 아이의 손을 언제 놓아야 하는가 에 대한 영화라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비단 내 아이만이 아니다.내가 누군가의 손을 잡았던 순간이 있고 그 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동시에 그 잡았던 손을 놓아야 하는 순간도 있다.

계속 손을 잡고 있다면 든든하고 불안하지 않겠지만 한 손이 잡힌 상태 혹은 누군가를 잡은 상태로는 무엇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살아가는데는 자유로운 두 손이 필요하다.

그리고 땀에 끈적이는 손이 불쾌할 수도 있고 서로 잡은 손을 언제 놓아야 할지 서로 타이밍을 만주지 못해 눈치만 보고 있는 경우도 있다.

잡은 손은 언젠가 놓아야 한다.

초원이가 걱정하는 엄마의 손을 놓고 혼자 달리는 순간

엄마가 결승점에서 혼자 달려올 초원이를 믿고 기다리는 순간

이런 균열이 관계를 더 단단히 만들고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그리고 이 소설집은 꽤 좋은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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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9-07-22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초등학교 때 전학을 한 다섯 번은 한 것 같습니다..ㅎㅎ

푸른희망 2019-07-23 07:02   좋아요 0 | URL
님도 옮겨심기가 많았었군요~~
 
[eBook] 레몬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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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월드컵이 한창이던 그 해 소녀가 살해되었다.

흉기로 인한 두부 손상

소녀와 같은 학교를 다녔던 두 소년이 용의자로 좁혀졌다.

한 소년은 차에 소녀를 태우고 갔다는 것이 목격되었지만 알리바이가 충분했고

다른 소년은 배달 스쿠터를 타고 가다가 차에 탄 소녀를 보았다고 했는데 그 증언이 어딘가 삐걱거리서 계속 용의자로 의심받고 또 의심받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유야무야되었다.

그리고 사건은 해결되지 않고 미궁에 빠졌고

두 소년의 인생은 조금 뒤틀렸고 죽은 소녀의 가족은 멀리 신도시로 이사했다.

소녀의 동생은 상상하지 못한 다른 삶을 살아야 했고

그저 옆에서 사건을 지켜보기만 했던 소녀의 동창은 또 다른 이유로 예상밖의 삶을 산다

 

누구나 그렇다.

삶은 예상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어린 시절 철없이 꿈꾸었거나 단언했던 일들이 내 삶에서 일어나기도 하지만

전혀 상사할 수 없던 일들이 자꾸 생기고 예외들이 자꾸 쌓이면서 그것이 마치 내가 계획했던 일처럼 내 운명처럼 내 삶을 직조하며 나를 앞으로 밀어낸다.

죽음이란 삶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님에도 늘 죽음은 삶에서 의외의 사건이다

누구나 죽는다는 명제를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군가의 죽음은 늘 낯설고 의외다.

그 죽음을 납득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다 되었을때 우리는 비로소 그 죽음을 인정하고 애도하며 그를 보낼 수 있다.

어느 한 순간 이해되지 않고  도무지 알 수 없는 앙금이 남게 되면 좀처럼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타인이 나에게 이해시키거나 내가 타인을 이해시킬 수 없는 유일한 대목이 죽음이 아닐까  어떤 방식이 되었건 어떤 경로를 통했건 설령 그것이 오롯이 나만의 아집이거나 망상이라 할지라도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절대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는 것

그것이 죽음이다.

 

삶도 다르지 않았다.

거리에서 꽃망울을 보면서 우리는 겨울이 다 갔음을 안다.

그 나무들이 연두연두하게 변하는 걸 보며 우리는 봄이 이미 갔음을 알게 되고

비가 내리고 낮과 밤의 온도차를 느끼며 이미 여름이 다 갔구나 하고 쓸쓸해진다.

그렇게 살아있는 시간 역시 지나고 난 뒤 그것이었구나 하고 알아간다.

어쩌면 사람은 지금 이순간을 살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지금이 봄인지 여름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기도 하고 지금 이 순간 내가 사랑을 하는 것인지 증오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습관처럼 정에 끌려 어쩌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알 지 못한다.

화를 내고 미련을 털어내고 한바탕 퍼부은 후에 우리는 사랑이 끝났음을 알게 되면서 동시에

내가 그동안 그를 많이 사랑했음을 혹은 사랑을 재고 있었음을 안다.

단칼에 무를 베어내고서야 우리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다언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상희는 어떻게 그리고 한만우를 잃은 선우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태람은 이제 좀 덜 혼란스러울까?

이미 죽어버린 소녀는 그 죽음에서 이제 평안해졌을까?

 

가끔 생각했다.

사람이 가진 끔찍한 능력중 하나가 어쩌면 공감과 이해가 아닐까

사람은 누구든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사람은 단한가지 면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악함에서 선함에 이러는 수백수만수천 수억개의 스펙트럼을 가진 것이 사람이기에 우리는 어떤 상황의 어떤 행동의 사람도 그 전후맥락과 환경과 그때의 마음을 알게 되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만인이 만인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세상 어느 귀퉁이 누군가는 나를 이해하고 공감해줄  사람이 분명이 있고 감정없고 건조한 인간도 어디 누군가를 이해하고 함꼐 눈물을 흘려줄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고통스럽다.

이해하고 싶지 않은 그 사람이 어느 순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마음에서 스르르 녹아버리면 어쩌지 못한다. 이러면 안되는데 그 사람의 그 맥락을 알아버리는 건 두렵다.

다언이 누군가를 이해하고 누군가에게 복수하며 평생 죄책감으로 살아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아프다. 굳이 이해할 필요도 없었고  가장 큰 복수는 잊고 내가 행복한 것이라는 말을 들어도 그것조차 개소리가 되어버린 상황이 애처롭다.

 

소설이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가 되어 누가 범인이며 그의 트릭이 무엇이었는지 화끈하게 밝혔다면 차라라 아무것도 남지 않을지언정 시원하고 통쾌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죽음이 남기는 것은 그렇게 개운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아무것도 해결된 것도 없고 아무것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죽음앞에서 우리는 언제나 진행형이다

아프고 화가 나고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개운할 수 없다.

시간이 해결해주는 건 아무것도 없다.

시간이 해결한다는 경험을 했다면 그건 그 아픔의 당사자가 아닌 타인이었음을 증명하는 것뿐이다,

소설 표지의 레몬이 선명하고 상큼하지 않다.

뿌옇고 흐릿해져서 입에 침이 고이지도 않는다.

세상엔 이런 레몬도 있다.

보고 있어도 신맛이 느껴지지 않고 입안이 자꾸 말라가는 레몬들

그게 죽음이든 지나간 사랑이든 상처이든 선명하지 못한 것들은 늘 남아서 발목을 잡는다.

그럼에도 산 것들은 살아야 한다.

 

 

사족1  한만우의 이야기를 선우의 입장에서 한 번 듣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쩌면 많은 이야기가 없을 것이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와 함께 그를 기억하는 선우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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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보다 더 큰 감정은 수치심이 아니었을까?

안나가 가진 큰 비밀은 글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비밀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글을 읽고 쓸 줄 모른다는 건 그녀에게 큰 비밀이며 동시에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수치심이다. 글을 모르는 그는 글을 아는 이가 읽어주는 이야기에 푹 빠진다.

마이클과 사랑을 나누기 전에 책을 읽는 행위는 그녀의 수치심을 감출 수 있고 스스로 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 중간중간 마이클이 책이야기를 해 줄 때  그리고 사랑에 들떠서 안나를 바라볼 때 자기의 비밀을 말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안나는 그렇지 않았을것이다.

수용소에서도 어린 소녀들을 불러 다정하게 대하며 책을 읽어주게 했고 마이클도 그녀에게는 어린 아이였다. 그녀는 자기보다 어리고 약한 존재들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했다. 절대 자신의 문맹을 들키지 않을 상대들에게 말이다. 그렇게 안나는 자기의 비밀을 꼭꼭 숨기길 원했다.

글을 읽지 못해 사무직으로 승진도 하지 않았다. 수용소로 가기전 지멘스에서도 아마 승진이 두려워 이직을 했을 것이다.글을 읽지 못해 자기가 서명한 서류가 무엇인지 알 지못하면서도  문맹임을 밝혀서 스스로의 범죄를 낮출 생각보다 차라리 죄를 모두 자기가 뒤집어쓰는 쪽을 택한다. 문맹이라는 사실은 그녀에게 죽음과도 기꺼이 바꿀 수 있는 수치였다.

그리고 그녀의 비밀을 뒤늦게 법정참관을 한 마이클 외에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안나는 글은 알지 못하지만 참 완벽한 감시원이었다.

수용자를 감시해야한다는 자신의 업무를 고지식하게 철저하게 지킨다.

자기의 신념이 타인에게 어떤 폭력으로 가해지는지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수감자를 감시해야하고 그들이 절대 소용시설 밖으로 나가 무질서와 혼란을 야기하면 안되는 것이 그녀가 해야할 모든 것이다. 가스실로 가야할 사람을 골라내라고 하면 스스로의 기준으로 아무런 감정없이 사람들을 골라냈고 새로 오는 수용자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누군가는 가스실로 가야한다는 당위성에 철저하게 복종한다.

그녀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

명령받은 것을 그대로 행하는 것 그것이 그녀에겐 전부였고 그건 잘못이 아니었다.

그녀는 문맹이어서였을까 스스로 생각하거나 느끼지 않았다.

내가 글을 알지 못한다는 수치심이 그녀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통제했고 그렇게 할 수도 없었고 그렇게 할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걸까?

법정에서의 모습은 너무나 태연하고 당당하게 자기의 행동을 구술한다. 어떤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치장도 없이 말이다.

굳이 악의 보편성까지 말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생각하지 않은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안나가 잘 보여줬다.

오랜 감옥생활에서도 안나는 스스로의 죄를 잘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키는대로 했다는 것 그들의 명령이 당위성만을 생각하며 그냥 그 속에서 견디고만 살았을 것이다.그런 안나에게 마이클의 녹음이 도착하고 책을 읽고 글을 읽게 되면서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마이클을 만나면서 그녀는 자기의 진짜 수치심과 마주하지 않았을까?

글을 모른다는 건 수치감이 될 수 없다.

자기가 아무 생각없이 아무 감정없이 명령에 복종하고 그 명령에 당위성을 주며 따랐다는  사실이 더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별 거 아닌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 더 큰 죄를 만들고 죄책감을 알게 된 안나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안나는 그렇게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마이클에게 들키지 말아야 할 것은 자기가 읽고 쓰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사실 더 큰 다른 것이었다는 것 그것을 마주 하고서 말이다.

 

마이클은 ...

열다섯살 소년에게 안나의 존재와 안나와의 관계는 큰 충격이고 영향을 준다.

내가 사랑한다고 순진하게 믿었던 상대가 말도 없이 떠나고 그리고 훗날 우연히 만난 그녀의 더 큰 비밀을 알게 되면서 마이클은 누구도 믿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누구든 내 곁을 쉽게 떠날 수 있을 것이고 크다란 비밀을 나몰래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면. 나는 누구를 믿어야 할까?

믿음에 대한 배신과 함께  마이클과 그가 속한 사회가 가진 신념에 전혀 맞지 않는 안나를 보며 또 다시 실망을 했을 것이고 거기에 더해져 혼자만 알게 된 안나의 비밀을 안나를 위해서? 아니면 안나에게 복수하기 위해? 결국 혼자 안고 입을 다물어버린 행동까지 더해지면서 그 역시 수치심과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을까?

 

두 사람은 한 때 사랑했던  시간과 기억으로 각각 죄책감을 안고 간다.

사랑이 죄책감을 붚풀린다.

마이클은 죄책감이 책을 녹음해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책을 읽고 글을 알게 된 안나는 자기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안나가 조금 더 일찍 자기의 진짜 수치와 죄를 알았더라면 그렇게 생을 허비하며 마감했을까?

사랑에 대한 배신이 죄책감을 만들과 그리고 삶을 다른 방향으로 쿨꼬를 돌리기도 한다.

 

그저 19금의 격정적인 사랑의 기억이라고만 보기엔 뭐랄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내가 가진 신념이 신념인지 모른다.

그저 타인이 가진 신념을 비판하고 틀렸다고 지적할 수 있다.

혹은 신념과 현실은 다르다며 나의 타협을 인정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무 생각이 없다고 그저 현실에 맞춘다고 믿었던 나의 말과 행동도 결국은 내가 가진 신념이고 틀이라는 걸 나만 모른다.

 

다시 책을 읽어 봐야 겠다.

 

 

 

사랑이 끝나고 한참이 지난 뒤 그 시간을 되돌아 볼 때 왠지 뭉클해진다.

그 사람도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고 다시 볼 일이 없게 되어 그때의 열정은 이제 두 사람의 기억 어딘가에 쓸쓸하게 남겨져 있거나 그마저 없거나 할테지만

가끔 아주 오랜 후에 되돌아 보는 미쳤거나  격정적이었을 그 때의 감정을 생각하면

왜 그렇게 안달하고 애태웠나 알 수 없으면서도 그 감정이 슬프다.

그렇게 매달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그렇게 미치지 않아도 괜찮았을 텐데

경주마처럼 오직 눈앞에 그 사람만 보였던 그 시간이 부질없다 싶게 쓸쓸하면서도

그것 마저 없었다면 나는 얼마나 더 외롭고 슬프고 삭막할까 생각한다.

엣사랑은 그것이 무엇이건 다 조금씩 상투적이며 유치하고 속물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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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ulp 2019-06-27 2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영화이자 책이었습니다. 나치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나치나 친일은 단죄되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푸른희망 2019-06-27 22:31   좋아요 1 | URL
맞는 말씀입니다~^^
 
내 어머니 이야기 세트 - 전4권
김은성 지음 / 애니북스 / 201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인의 경험과 정서도 역사가 된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이라는건 어쩌면 허깨비일게다.살아 숨쉬고 웃고 울고 안타깝고 비통하고 발랄하고 여한없는 필부필부의 이야기들..기록된 나의 시간이 역사다. 어제 보고 왔는데 엄마가 보고싶고 엄마맛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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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서린 말 욜로욜로 시리즈
마이테 카란사 지음, 권미선 옮김 / 사계절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가정폭력이 어떻게 이뤄지고 받아들여지는지 잘 알 수 있다. 제삼자는 말한다. 어떻게 그런 일이.. 왜 말하지 않았는지 신고하지 않았는지. 왜 보고만있었는지.. 독이 서린 말은 가해자만의 말은 아니다. 무심하게 혹은 걱정해서 내뱉는 우리의 말이다. 설마설마 했던 범인의 정체에 또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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