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 심윤경 장편소설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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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그냥 새해 첫날 아기들을 보러 간 거였어 네가 그냥 조용히 왔다면 나는 어쩌다 가끔씩 주말에 너를 보러 가다 그냥저냥 끝났을 거야 나는 먹고 살 일을 찾아야 했을 테니까. 네가 그 방송에 나갔기 때문에 갑자기 기부금이 쏟아져 들어왔고 풀잎 보육원은 큰 보육원이 되었어.그리고 나는 아기들을 돌보고 부엌일을 하면서 작은 월급을 받을 수 있게 된 거야. 설아, 네가 입양 가서 없을 때도 나는 풀잎 보육원에 있었어 그냥 그 곳이 내 일터였으니까 그래서 네가 두 번이나 돌아왔으르 때 거기서 너를 맞아 줄 수 있었던 거야 원장님이 보육원을 그만 두실 땐 애원해서 너를 우리 집으로 아예 데리고 왔어 이런저런 형편때문에 나는 위탁모로 일할 자격이 안 된다고 하더라 원장님이 어떻게 손을 써주신 거지 설아, 그건 모두 다 그 기부금과 원장님 덕분이었어, 그게 없엇다면 우리는  오늘까지 이렇게 같이 있을 수 없었을 거란다. "

 

 

나는 나도 모르게 의미없는 덧셈과 뺄셈을 무한히 반보하곤 했다 나에게 부모가 있었다면 , 나에게 곽은태 선생 님처럼 훌륭한 부모가 있었다면, 나에게 기부금이 없었더라면, 나에게 그 음식물 쓰레기통이 없었더라면, 가능하지도 않은 덧셈뺄셈에 병자처럼 집착해, 날마다 셈이 달랐다 어떤 날은 어짜피 부모도 없는데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했따가 어떤 날은 부모가 없으니 다른 건 하나도 밑질  수 없다고 발악했다, 셈이 남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떤 날은 크게 밑지고 어떤 날은 적게 밑졌다.

그 모든 덧셈과 뺄셈에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는 숫자가 바로 이모였다. 하나 번도 변한 적ㅇ없이 내 곁에 있어서 의미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그 존재조차 의심해 본 적이 없는 한 사람이었다.

 

 

한 아기가 새해 첫 날 음식물 쓰레기 더미에 버려져 있었고 그건 새해 첫 뉴스로 전국에 전파를 탔고 그  보육원은 기부금과 봉사의 손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그렇게 새해 첫 뉴스를 탄 아이는 자라서 입양이 되었지만 번번이 파양되었고 지금은 위탁모 이모와 함꼐 살고 있다

누구보다 영리하고 예민하고 똑똑한 아이는  파양으로 인해 전학할 수 밖에 없다는 어른들의 결정에 따라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우상 초등학교라는 명문사립으로 전학을 한다

딱 한학기만 죽은 듯이 누구의 눈에 띄지않고 견디면 된다는 생각으로 간 그 학교에서 그 아이는 누구의 눈에 당연히 띌 수 밖에 없는 아이였다.

살아 남기 위해 진한 화장을 하고 누구보다 악착같이 공부를 하고 독기를 품고 아이들 틈에 서 살아남았지만 그 삶이 쉽지는 않았다. 결국 반에서 폭력사태가 일어나고 그 가해자 학생의 집이며 동시에 가장 믿었고, 한 때 아버지가 되었으면 하는 의사 선생님의 집으로  위탁을 간다,

그 과정에 아이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입양과 파양이 아이의 의사가 아니었고 전학 역시 아이의 의사가 아니었으며

뒤늦은 전학으로 항의하는 학부모를 달래기위해 혼자 덩그러니 자격시험을 봐야하는 것도 그 아이 설이의 의사는 전혀 물어보지 않았다. 아무도...

그리고  폭력사태를 해결하는 방법이 가해자가 피해자의 위탁모가 된다는 웃기지도 않은 판단 역시 설이에게 물어보지 않고 어른들이 결정한다

그 집에서 부유하고 여유있는 생활도 잠시 그 누구도 설이 의사와는 관계없이 단지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영재학교입학을 위한 트랙에 오르고 학원을 다니고 산더미같은 숙제를 한다. 설이같은 재능을 가진 아이는 당연히 영재학교에 입학해서 그 재능을 꽃피워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영재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학원을 다녀야 한다는 괴상한 논리가 설이를 옥죈다

만약 니가 공부를 잘한다면

만약 니가 영재학교에 입학하게 된다면

만약 니가 학원 최고 반에 입학할 수 있다면....

모든 사랑은 이렇게 조건문을 꼬리표처럼 달고 쏟아진다.

내가 바라보는 모습 내가 상상하고 기대하는 모습이 그 아이의 모습이라고 어른들은 생각한다.

누군가는 늘 웃고 편하게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을 하면서도

그 누군가가 내 아이라면 열심히 누구보다 뛰어나게 살아가길 바란다,

 

설이는 누구앞에서도 당당하고 표독스럽게 가시를 세울 줄 알았지만 동시에 누군가 자기를 무한히 사랑하고 품어주기를 바랬다. 이모가 아무 조건없이 품어준 사랑이 있지만 설이는 남들이 가진 부모와 여유와 그리고 부모가 주는 사랑을 상상하고 그리워한다.

벼려진 아이.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부단히 문제를 풀고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

본능처럼 알아가는 눈치로 사방에 가시를 세우지만 늘 지치고 힘들었다.

 

풀잎 위에서 자란 것도 괜찮았다. 그 풀잎을 지키려고 애썼던 원장님의 투쟁과 이모의 순박한 사랑 그리고 참을 수 없이 싫었던 음식물 쓰레기통까지 그 무엇도 빼거나 더할 수 없이 하나인 것을 이제는 알겠다. 많이 흔들렸지만 나는 엄마가 나를 내려놓은 그곳에 두 발로 섰다. 그것을 생각하면 자꾸 콧대가 높아졌다 새해 첫날 나는 언제나 얼굴을 찌푸리고 지냈는데 이렇게 웃으며 맞이한 새해는 처음인 것 같았다.

 

내가 가지 못한 것들 내가 후회하는 지난 일들 되돌아가 가서 되물리고 싶은 많은 기억들 시간들 만약 내게 그게 없었더라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런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곳으로 가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 선택 대신 저 선택을 했더라면 수많은 계산을 하며 우리는 한가지를 잊고 있다. 내가 아는 가장 후회스러운 순간을 빼버리면 내 지난 시간과 기억은 와르르 무너진다. 그저 하나 제일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을 뺀 것이지만 그 하나의 시간이 지탱하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는다. 그 시간과 순간을 빼고나면 오롯이 완전한 나머지가 남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억하는 그 시간과 삶들은 사라지고 낯설고 다른 모습의 시간과 삶이 나타난다.

그 낯선 모습이 더 나을지 더 나쁠지는 알 수 없다.

내 욕심대로 필요없는 것을 빼고 필요한 것을 더해서 삶을 다시 만들 수 없다.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린다면 그 가장 나빴다고 믿는 순간은 사라지며 동시에 그로 인해 가질 수 있었던 행복한 순간이 함께 무너질 수도 있다.

어쩌면 원장님의 그 위선때문에  많은 기부금으 들어올 수 있었고 그 돈으로 보육원 원생들이 조금이라도 풍족하게 지낼 수 있었을 것이고 엄격하지만 스스로에게도 고지식했던 원장님이기에 자기를 위해 한푼 남겨놓은 게 아니라 보육원을 이해 모든 돈을 쏟아 부었을 것이다,

원장님의 잔소리와 통제가 설이를 어디서든 자신있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부모도 없고 초라하지만 누구보다 똑똑하다는 자부심도 있었을 것이고 기억인지 상상인지 알 수 없지만 새해 첫날 쓰레기통을 열고 자신을 바라보던 원장님의 눈길과 품에 안았을 때의 느낌 그때 내렸던 눈의 질감까지 그건 아프지만 따뜻한 기억일 수도 있다.

무심하고 무지한 이모역시 어떤 조건제시문도 붙이지 않고 설이를 믿고 방치했기에 설이는 자유롭고 편안하면서 안정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떤 나쁜 기억은 어떤 좋은 기억과 등을 기대고 있고 때로는 엉뚱한 결과로 좋은 일이 뒤따리그도 하고 나쁘 일을 견디게도 하는 법이니까

 

이야기는 한 불행한 아이의 성장기를 말하지만 꼭 설이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누구든 삶을 되물리고 싶고  자라면서 상처를 받고 자라고 또 자라서는 그걸 잊고 때로는 그것이 전부여서 똑같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 상처가 아픈 이유는 상대가 나에게 상처를 주겠다는 순수한 악의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데 있다,

나를 사랑한다고 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인데... 그게 사랑이라고 주는 상처들이라 너무 아프다. 곽은태와 곽시현처럼 말이다

설이는 별로 걱정되지 않는다.

힘들 일이 있겠지만 적어도 잘 해쳐나갈 수 있을 거란 믿음이 든다.

그가 경험했던 일들이 아픔이었든 행복이었든 그걸 잘 받아들이고 품어내는 깊은 속을 가졌고 잘 삭혀 내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사족....

이 책을 고른 이유가 책 광고에서 동구 이야기가 나와서였다.

늘 견디고 참아내는 동구를 너무 믿고 착하다고 내버려두지 않았나 한다는 마음과 그 반대로 사납고 거칠고 버릇없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고 섶었다고 반항하고 일방적인 소통을 거부하는 아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말에 끌렸다,

설이는 충분히 반항하고 거칠지만.. 이 아이도 견디고 참아내는 부분이 있었다.

동구와 다르지만 그 아이 방식으로

많이 기대했는데 기대가 너무 컸던 모양이다.

별 생각없이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싶었지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정하고 그 방향으로 글을 쓴다면 이렇게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기도 하겠구나 하는 건방진 생각을 잠깐 했다

설이는 참 매력이 많은 아이인데 설이가 부닺치는 상황이 너무 상투적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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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기키 기린은 늘 좋은 모습만 보이는 인간형이 아니다.

 온화하고 따뜻한 미소뒤에 장난기가 숨어있고 그 장난기에 악의가 가득할 때도 있다.

위악을 떨거나 의뭉스럽게 아닌 척 착한 척 하는 얼굴로 가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맨얼굴을 버림으로 더 뜨악하고 섬뜻한 무언가를 드러낼 때가 있다.

 

<걸어도 걸어도>에서 무심하게 레이스를 뜨면서  장남의 기일마다 찾아오는 구출된 아이를 계속 찾아오게 하는 이유를 말하는 것, 그 아이도 충분히 죄책감을 맛봐야 한다는 말과 겨우 일년에 한번 여기 오는게 뭐가 힘들다고 그러냐는 말을 태연하게 하는 엄마의 모습은 앞에서 계속 가족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시중들며 챙기던 엄마와는 다른 모습이다.

아니 똑같이 온화한 표정을 짓고 정성스럽게 레이스를 뜨는 그 모습 그대로 본심을 드러내는 말을 감추지 않고 뱉어내버리는 모습이 더 대비된다.

물론 앞 장면에서 남편 흉보거나 아닌 척 재혼한 며느리에게 직언을 해버리거나 아들에게 은근히 걱정하는 모습등등은 그저 푸근하고 모든 걸 받아주는 엄마가 아니라 속물적이고 내 자식이 우선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아프게 해서라도 내가 위안을 받아야 겠다는 그 말이 가장 냉정하다.

그러나 그 말을 하고도 태연히 다정하게 손자에게 인사를 하고 잠자리를 챙기고 떠나는 아들 내외를 배웅하고 아쉬워한다.

 

<태풍이 지나가고>에서의 엄마도 그렇다.

아들이 기왕이면 출세해서 엄마에게 척척 용돈을 주고 위신을 세워주고 어디에서든 자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되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을 온몸으로 드러낸다.

전혀 아니라고 말을 하지만 그녀의 표정이나 행동에는 아쉬움 속상함 그래서 은연중에 표현해버리는 태도들이 담겨있다.

여기에서 자식들 역시 그런 엄마가 익숙해서 아무렇지 않게 받아 넘긴다.

속으로 쌓이는 상처나 앙금이야 없지 않겠지만 우리 엄마는 늘 저래왔던 사람... 이라는 태도가 아들에서도 딸에서도 보인다. 어쩌면 그래서 더 편하게 엄마를 대하고 이것저것 부탁하고 심지어 몰래 집안을 뒤져도 아무런 죄책감도 없을지도 모른다.

엄마도 사람이고 단점을 드러내고 욕심과 속물근성을 드러내는 인물이라 자식들도 그냥 그런게 당연하게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이런 가족사이에 늘 예의를 차리고 긴장하고 있는 건 이혼한 며느리다. 어쩔 수 없이 태풍때문에 전 시어머니 집에서 하루를 묶어야 하는 상황이 불편하지만 그동안 익숙했던 관계의 사람들이고 이제 알만큼 아는 터라 보아넘기고 적당히 무시하고 맞장구쳐주며 하루를 넘기려고 한다.

그런 며느리의 속내를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어쨌든 이번 기회에 아들 며느리가 합쳐지면 좋겠고 덜 떨어지고 어딘가 아픈 손가락인 아들을 며느리가 책임져 주면 좋겠고 그 핑계김에 손자를 자주 보면 좋겠다는 생각일 것이다.

남들 보기에도 이혼하고 말도 안되는 사립탐정노릇이나 하는 것보다 번듯한 가족이 있고 뭐리도 하고 있는게 더 보이기도 덜 창피스럽다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극속의 기키 기린 역시 그런 마음을 손톰 만큼도 숨길 생각이 없다.

노골적으로 더 큰집으로 이사가고 싶다고 하고 누구나 아들은 용돈을 얼마를 주고 하는 말을 아들앞에서 하니까

 

<앙>에서는 그래도 수더분하고 겸손하다.

여기서는 누구의 엄마도 누구의 시어머니도 아닌 그저 슬픈 과거를 가진 한 개인으로 나온다.

그럼에도 그 역할을 기키 키린이 함으로써 인물은 더 풍성해진다.

아픔은 있고 사람들에게 소외받았던 인물이지만 유머도 있고 직설적인 화법도 여전히 구사하며 더 다양한 인물이 된다.

그저 참고 인내하는 전형적인 인물이 아니라 눙치는 유머도 할 줄 알고 사람 속을 모르는 척 고집을 피우기도 하고 팥들을 아기처럼 보살피고 말도 거는 귀여운 할머니가 되기도 한다.

 

<어느 가족>에서 기키 기린은 너무 늙어버려 마음이 아팠다.

어쩌면 틀니를 빼고 연기해서 더 나이 들어 보였고 말년에 암으로 고생했다고 하니 그 여파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을 가족으로 삼고 낡고 오래된 집에서 다 함께 생활하는 할머니

돌아가시 할아버지가 남긴 연금을 타고 다른 가족이 다양한 방법으로 벌어오는 돈을 같이 쓰고 보살핌을 받고 집에 들어온 누구든 내치지 않는다.

영화 중반에 보면 아마 바람을 피워 재혼한 할아버지의 둘째 부인 자식에게까지 찾아가 그야 말로 말 그대로 삥을 뜯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죽은 영감의 기일이라는 이유로 남의 집에 가서 염치 없이 향을 올리고 대접하는 케잌을 야무지게 모두 먹어치우는 모습 그리고 배웅하며 내미는 돈봉투까지 사양없이 받아 챙기는 모습이 너무 자연스럽다.

그냥 그렇게 늘 해왔던 사람처럼 모든 것이 물흐르듯 하다.

 

이 배우를 처음 어느 영화에서 봤는지 모르겠다.

아 <도쿄 타워>에서도 생활력 강하고 자식을 친구처럼 대하는 그래서 오히려 자식이 더 어려워하는 어머니로 나온다.

늘 보면 인자해서 뭐든 양보하고 희생할 것 처럼 생긴 할머니가 은근히 장난기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누군가를 골리고 나서 짐짓 시치미를 뗀다. 누군가에게 들키면 아닌 척 하거나 쉿 하며 함께 공범으로 만들어 버리는 모습

그런데 그 모습이 밉지가 않다.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 같은 일들, 차마 남의 눈 때문에 체면때문에 못한 일들을 태연하게 해치우며 어깨를 으쓱해버리는 모습이 의외로 후련하고 시원하다.

이제 더 이상 그녀의 연기를 볼 수가 없다.

 

느긋한 하루 <어느 가족>을 보면서  영화의 내용에도 빠져 들었지만

이제 그렇게 익숙하면서도 새롭고 은근 유쾌하고 따뜻한 그 인물을 만나지 못한다는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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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와이프

 

 

 

글렌클로즈를 위한 글렌 클로즈의 영화

단순한 플롯과 구성을 꽉 채운건 그녀의 연기와 표정이었다.

 

남편이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는 새벽 다정한 노부부의 모습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누구나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고 느낄 만큼 서로에게 다정하고 여전히 서로가 필요하고 심지어 섹시하기깍지한 관계 . 완벽하게 나이든 부부의 모습이 그려진다.

남편의 노벨상 수상 소식으로 뛸듯이 기뻐하지만 한편 씁쓸한 표정이 언뜻 언뜻 들어난다.

그동안 도와준 아내를 언급하며 감사하는 자리에서도 조안의 표정은 썩 밝지 않다.

무조건 좋지 않은 무언가가 있을까

비행기를 타고 스웨덴으로 가는 길 틈틈히 과거가 플래시백 되는데

결국 남편의 그 모든 작품은 조안의 것이었다.

재능이 없는 교수였던 남편 대신 재능있는 조안이 글을 고치고 손대면서 발표한 모든 작품이 연달아 인기를 얻고 명성을 얻으며 어쩌면 두 부부의 공동작품으로 그러나 세상은 철저하게 남편의 작품으로 그 모든 것을 평가한다.

시대의 이유로 여자가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의 목록을 더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 그래서 조안도 글쓰기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아이러니 한 것은 그렇게 재능 없는 남편이 한 무리의 영리해 보이는 여학생들앞에서 당당하게 하는 말이 그것이다   "글을 쓰지 않으면 작가가 아니다"

조안을 글을 썼지만 작가가 아니었다.

시대가 그녀를 그렇게 만들기도 했겠지만 어느 부분은 그녀의 선택이기도 했을 것이다.

남편을 순수하게 도와주고 싶은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컸을 것이고

누가 쓰던 작품이 완성되고 성공한다면 그만이라는 소박한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 소박한 마음이 커다란 명성과 부와 명예로 돌아왔다.

철저하게 조안은 뒤로 숨고 남편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일을 조금씩 알아가며 뒤를 캐는 전기작가에게 조안은 마음이 흔들린다.

여태 나이 먹어가며 여전히 자기가 손이 가지 않으면 물가에 내어놓은 아이처럼 불안하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남편을 챙겨야 하는 것

아이들도 돌보지 못하고 서재에 박혀 썼던 글들은 남편의 이름으로 출판되고 인기를 얻었다.

심지어 남편은 작품과 주인공마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한 것은 무엇이고 내가 남긴것은 무엇인가

어쩌면 모든 주부가 아내가 한 번은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묻는 말이다.

내 인생은 어디로 갔나?

무엇으로 채워졌을까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아왔을까?

스웨덴 왕에게 자신의 역할이 '킹 메이커'라고 말을 하지만 

남편이 수상소감으로 다시 자기를 언급하며 영혼의 단짝이니 영감의 원천이니 하는 말에 그만 모든 감정이 올라온다.

이전에 조안은 남편에게 절대 수상 소감에서 자기를 언급하지 말라고 누누이 당부를 했었다.

누군가의 내조자로 빛 뒤에 숨은 어둠이기는 싫었을까?

아니면 당연히 내가 받아야 할 스포트라이트에서 나는 제외되고 잊히는 것이 영 꺼림칙했을까

그저 조력자로 내조자로 사는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순간일 수도 있다.

그리고 두 부부는 평생 처음으로 충돌하고 돌이키지 못할 지점까지 갈라서지만

그 순간 남편은 사망한다.

가장 명예로운 순간, 가장 절정에서 가장 뒤통수를 치며 이제 조안은 죽은 노벨문학상 작가의 남은 가족이 된다. 죽어버린 작가의 아내로 남는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조안은 전기작가에게 남편의 일을 더 이상 떠벌리지 말라고 경고한다.

모든 것은 거짓이며 있지도 않은 일이라고..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노트를 집어드는데.

 

그녀는 그 노트에 이제 자기의 글을 써가기 시작할까

아니면 그냥 빈 노트로 두고 작가의 아내로 살아갈까

그녀의 눈동자에서는 어떤 답을 찾을 수도 없다.

영화내내  지루하고 예측 가능한 플롯에서도 다양하게 빛나며 의미를 응축하던 그녀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겨우 눈빛으로 모든 감정이 오가고 영화를 풍성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녀가 아니면 누가 표현할까

마지막 비행기안에서 그녀의 표정은 무엇이었을까

과연 집에 돌아가면 아들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까

모르겠다.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이번 선택은 오롯이 그녀의 몫이 되기를 빈다.

더 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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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다시 여름, 한정판 리커버)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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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장은 스쳐지나갔고 어떤 문장은 마음으로 들어왔다.
다시 읽으니 왜 이 문장을 놓쳤을까 다시 담은 문장이 있고 이 문장이 왜? 싶은 밋밋함도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떤 마음으로 읽느냐에 따라 문장 빛깔이 변한다.
운다고 달라질 건 없지만 가끔 울어도 괜찮고 버텨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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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죽음을 경험하지 못해서 누군가의 경험을 들어 본 적도 없고 그래서 나의 죽음과 타인의 죽음을 비교한 적이 없었다.

죽음이후의 과정에 대한 무지가 죽음에 대해 허무맹랑하게 마주할 수 있었는지도...

죽음은 죽은 당사자보다 남은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을 했다..

죽음 이후를 알지 못했고  내가 늘  보았던 것은 남겨진 사람들이었고 내가 경험한 것도 남겨진 사람으로서의 역할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가끔 엄마와 통화할 때마다 아버지 기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말을 들었지만 노인들은 여름이면 기력이 떨어지는 거고 늘 걱정이 많은 엄마의 노파심이라고만 생각했다

올해를 넘기기 힘들 수도 있겠다는 엄마의 말도 전문가의 평가도 아닌데 하면서 넘겼다.

그러나 그렇게 무심했던 어느 여름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부고를 들은 건 한 여름 물놀이를 끝내고 사물함에서 꺼낸 핸드폰 문자를 통해서였다.

참 웃기는 상황이었다

아버지의 부고를 문자로 들었고 더구나 하루종일 물놀이를 하며 깔깔거리는 동안 아버지는 돌아가신 거였다.

그 몇주전 아버지가 전화를 하셨다

늘 엄마를 통해서 건네받은 수화기를 통해 어색하게 안부를 묻고 어쩔 수 없이 오가는 정중하지만 영혼없는 문답과 의례적인 걱정이 오가던 통화와 달리 그날은 아버지가 전화하셨다

딱히 대단한 내용이 있거나 죽음을 예감한 어른의  충고같은 건 아니었다.

그냥 아이들의 안부를 묻고 엄마에게 자주 전화하라고 전화를 기다린다고 얘기했을 뿐이었고

여느때랑 다르지 않게 나도 얼른 끊기만을 바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이제 나이를 먹고 나도 한 가정을 이루었고 돌봐야할 아이가 있어 부모의 부재가 그렇게 크게 와닿지는 않을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무시하고 냉정한 성격탓에 장례식장에서 무덤덤해보일까 그걸 더 걱정했다

그러나 부재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컸다.

우리나라 아버지들 누구나 그렇듯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보다 일터에서의 시간이 더 길고

가부장적인 경상도 가난한 집 장남으로 관심과 애정을 나누고 금전적 물질적으로 돌봐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았던 아버지라 늘 가족은 뒷전이라는기억이 컸고 그래서 미웠고 그다지 정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이 들어 많이 작아진 모습이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누구나 겪는 노화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예감했을까

아니면 내가 느꼈듯이 어느 순간 다가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당해버렸을까

장례 과정은 애도의 과정이 아니었고 형식적인 관례였다

그리고 슬픔은 나중에 뒤늦게 몰아쳤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빈자리가 문득문득 느껴지고 그와 내가 생각보다 많이 닮았다는 것도 그래서 너무 뻔하게 속이 보여서 그렇게 미웠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문득 하곤 한다.

나이 먹어 마주한 죽음도 쉽지않았다.

 

그래서 가끔 생각했다.

차라리 어린 시절 부모가 돌아가신다면 그게 덜 슬프지 않을까

그런 분들이 들으신다면 어이없고 화가 날만한 언급인지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내색하지않지만 엄마가 돌아가시면 어쩌나 너무너무 두려워졌다

그렇다고 살갑지도 않은 딸이 갑자기 180도 바뀌는 드라마틱한 이변은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내 과거를 돌이켜보고 내 마음을 들여다 보면서 받았던 상처들 은연중 알게 모르게 일어났던 학대들이 기억나며 분노하기도 하고 원망하는 마음도 들었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지금 와서 따져들기엔 이후 삶은 내가 책임져야 할 내 일이며 엄마는 이미 늙었고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는 걸 알아버렸고 받아들이지는 못하지만 이해하게 되는게 더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러면서 든 생각

차라리 아직 좋거나 싫거나 어떤 추억이 많이 쌓인 시간이 없는 상태가 누군가의 부재를 받아들이기에 더 쉽다고 생각했다

이미 누군가의 부재가 익숙해진다면 그리고 그렇게 성장했다면 어딘가 모르게 결핍을 느낄때도있지만 미운정 고운정이 들어서 누적되어 꾸덕꾸덕해진 기억들보다 낫지 않을까 이기적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내 아이가 점점 나이들고 성장하면서 내가 더 건강해야 하는 게 아닐까. 난 이미 죽어도 괜찮은 순간은 지난게 아닐까 하는 철없고 이기적인 생각을 하곤 했다

철없던 십대에 엄마랑 갈등할 때 미워하고 나만 생각할 때 그땐 엄마가 중요하진 않았다.

더 중요한 친구가 있고 장럐고민이 있고 연애가 있고 일이 있었다.

그러나 나이 먹고 엄마가 점점 자리를 크게 잡고 있었다

이젠 내 아이에게도 내자리가 좋든 나쁘든 클텐데 이제 내가 내 엄마에게 느끼듯 내 아이들도 나에 대해 그렇게 자리를 잡아버렸겠구나 . 아 때를 놓쳤구나 하는 이기심이 들었다.

 

그리고 친구의 암소식을 들었다.

건강해고 단단하고 우리 친구모임 누구보다 가정적이고 헌신적이고 명확하던 친구였다.

나이가 들다보니 허리가 아프고 다들 자궁에 물혹 하나씩은 가지고 있고 어깨가 아프고 그랬다.

그냥 그런 건 줄만 알았다.

연말에 허리가 아프다고 하며 만났을 때 생각보다 많이 수척해서 놀랐지만 얼마나 허리가 아프면 저렇게 걷는게 힘들까 걱정했지만 여전히 힘있고 자기 생각이 확실한 말투랑 누구든 신경쓰고 안부를 전하는 담담한 애정에 무심하게 느꼈다

그런데 그 증상들이 모두 암을 향하고있었다.

급하게 수술을 받고 이제 항암을 남겨두고 병문안을 아직 원치 않은 친구의 소식을 기다리며

이 책을 읽었다

 

책속에 뇌수술과정들 그리고  부작용들 그리고 허무한 결말들

모든 것이 남의 일이 아니고 두려웠다.

내 친구도 이제 인생에 힘든 일이 한모퉁이를 돌아서 당분간은 한숨을 돌릴 시기였다.

우리는 그 연말에 모여 도데체 모인 회비로 어디를 여행을 가야햐나 침을 튀며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런데...

삶은 모퉁이를 돌 때 마다 예측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떨어뜨린다.

매일이 그날이그날인 것이 가장 저주스러웠던 젊은 날이 지나고  지금 그날이 그날이라는 것이 가장 축복받은 것인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작가의 투병생활과 삶을 마무리하는 2부보다 그가 의사로서 살아오며 경험한 환자들이나 질병 수술등을 묘사한 1부가 더 실감이 났다.

병에 걸리고 아프고 투병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에 시달리는 건 우리에게 현실이었다.

죽음을 직면하고 그 이후 삶을 어떻게 정리해야하나 하는 문제는 아직 내 일이 아니었으니까

친구의 수술 결과를 기다리며 읽었던 책이 하필이면 이 책이라는 것

그리고 결국 주인공(저자)가 죽어버렸다는 것

무언가 자꾸 찜찜해졌다.

 

나는 철저히 타인이므로

저자는 30대에 일찍 죽음을 맞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행운의 사나이라는 생각을 했다.우리와 다른 교육과정을 통해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고 이런 저런 공부와 고민 끝에 의학을 선택했고 그 길이 천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

게다가 의사로서 능력도 인정받아서 현재 힘든 레지던트시기가 끝나면 어디든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는 앞날까지 보장을 받게 되어있었다.

게다가 사랑하는 가족들 한때 위기를 겪었지만 끈끈한 애정을 바탕으로 함께 하는 배우자

죽음을 앞두고 태어난 딸 그리고 본인이 원하는대로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가족과 마지막 시간은 함께 보내는 것

너무 짧은 기간이지만 그 시간이 무척이나 충만했다는 생각을 해서 부러웠다.(난 속물이라..)

이렇게 자기 죽음을 미리 알고 준비한다는 게 고통일 수도 있지만 남은 시간을 최선을 다해 자기가 선택한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이 부럽고 좋았다.

우리는 누군가 아파서 입원을 하고 죽을 수도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 어쩌면 환자 본인은 철저히배제되기도 한다. 나이가 너무 많아서 혹은 어려서 내 삶을 연명할지 깔끔하게 정리할지를 스스로 정할 수 없기도 하고 주위사람의 정과 노력을 어쩌지 못해서 그들이 원하는대로 이끌려 갈 수도 있다. 내가 내 삶을 정하겠다는 결정이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는 못 보낸다.. 라는 말은 애정이고 사랑이지만 이기적인 내 만족일 수도 있

책을 읽는동안 마음이 사실 딴 곳에 가있어 집중을 하기 쉽지는 않았다

참 운이 좋구나

마지막을 이렇게 상세하게 기술하고 저리가 삶을 정리하고 돌아볼 수 있다는 게 때로 감동이기도 했지만  내가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괜히 책을 얼른 반납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자꾸자꾸 생각이 났다.

죽음을 앞두고 남은 가족을 생각하고 삶을 정리하는 것.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게 과연 옳은 결정인가 하는 것

의사로서 내 삶을 정리하는 것

모든일에 최선을 다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는 마음

책 제목대로 숨결이 바람으로 날리는 그날까지.. 그 숨결은 따뜻했다

에필로그에서 그의 아내가 말했듯이 그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그는 비극이 아니었다.

 

가끔 생각한다.

지금 죽더라도.. 이 죽음이 비극이구나 허무하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으려면

내가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달렸구나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

결국 내가 선택하고 행동하는 건 지금 내 삶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후회하지 않도록... 그리고 내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을 많이 남겨주도록 하는 것.. 그게 중요하다.

 

언젠가 아침에 등교하던 아이에게 잔소리를 했고 좋은 표정을 보이지 않았던 그날

아이가 무심하게말했다.

이렇게 내가 등교하고 그 사이에 일이 생겨 엄마나 나 둘 중 하나가 죽는다면

지금 이렇게 싸우고 찌뿌린 얼굴이 우리의 마지막 기억이 될거야....

적어도 지금 이순간이 마지막이 되더라도 후회가 되지 않은 삶...

작가도 그걸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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