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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와 외규장각 의궤의 어머니 박병선
공지희 지음, 김지안 그림 / 글로연 / 2011년 12월
평점 :
145년 만에 297권의 의궤는 우리 소유가 아니라 5년 단위 '대여' 갱신 방식으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내가 의궤라면 울면서 돌아왔을 거'란 박병선 박사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분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화나는 것은 박병선 박사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협상에서 밀렸다는 점이다.
의궤나 직지가 빛을 보게 된 것은 정부의 노력에서라기 보다 그녀의 끈기와 노력, 애국심에 의해서 이뤄졌는데 대한민국은 한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은 책을 읽는 동안 매우 불편했다. 뭐 이런 일이 이번 뿐이겠냐만은 늘 자국민을 보호하고 문화재를 지키는 일 등에 무력한지....
몇 해 전 해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와 관련된 기획서를 쓰려고 자료 조사를 하던 중 그 수가 십만 점이 넘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화재청 홈피에서엔가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의 소재국별 현황이 집계된 것을 본 적이 있다. 물론 이 수치는 공개된, 그러니까 국.공.사립 박물관이나 미술관, 대학 등에 소장되어 있는 것에 한해서가 되겠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환수 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이뤄지고 있는지 따져 묻고 싶었다. 늘 개인에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지...후속 조치도 없이 그런 현황이 게시된 것은 아니라 믿고 싶을 뿐이다.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날 때, 스승 이병도는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라."는 당부를 했다. 그녀는 평생 그 말씀을 잊지 않고 프랑스 곳곳의 도서관의 책들을 뒤졌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단지 이 일은 자신이 세상에 나가서 해야 할 일이라 믿으며 온갖 시련에도 굴하지 않았다.
박박사를 골탕먹이기 위해 일반도서에서 귀중본 도서로 분류하고 신청서를 쓰고도 열람 허가가 떨어지지 않는 일, 도서관 직원들에게 박병선과 말을 섞지 말라는 윗선의 지시가 있기도 했다.
직지만 해도 5년을 바쳐 연구한 것을 한국의 서지학자들은 자신들이 직지를 연구한 것으로 발표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있었고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도 국제 재판에 세우겠다는 것을 박박사가 나서서 수습했다. 억울함이 없지 않았으나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오직 나라를 위해 중요한 일을 했으면 그만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박박사가 직지나 외규장각을 찾는 일만 했던 것은 아니다.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에서 프랑스 국민들은 모르는 외규장각을 설명하여 홍보가 되길 바랐다. 이로인해 외규장각이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도움을 주고자 했다. 반환에 따른 정당성을 당당히 밝히고 있다.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외교문제로 비화될 것을 염려하여 해제를 하는 동안에도 의궤를 찾았을 때에도 여기저기 호소했지만 우리가 여유를 부리고 무지한 탓에 결과적으로 타이밍을 놓쳐 소유가 아닌 대여가 된 것이다.
저술 활동 뿐 아니라 프랑스인들이 기록한 어마어마한 양의 한국 관련 자료를 찾아냈다. 후손과 세계에 한국의 독립정신과 역사를 알리고자 파리에 한국독립운동기념관을 세우기 위해 애썼으며 한인 사회, 한국인 입양인과 양부모들, 국제 결혼 가정을 대상으로 한국문화를 소개 하는 등 그녀의 한국 사랑과 열정은 대단했다.
생을 마칠 때 박사가 한 기도는 이랬다.
'내가 해 왔던 일을 내 손으로 마저 다할 수 없다면 누군가를 보내 주실 거죠? 조국을 위해서 우리 민족을 위해서 저 보다도 더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을 세워 주세요.'라고.
그녀보다 더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이야 많지 않겠지만 우리가 할 일은, 외규장각 의궤가 '대여'가 아니라 '소유'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