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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욱 선생님이 들려주는 방정환 ㅣ 산하인물이야기 1
고정욱 글, 양상용 그림 / 산하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 날’을 제정하고 ‘어린이’란 말을 가장 처음 쓴 분으로 아주아주 어릴 때 방정환 선생님의 위인전을 읽었던 기억은 있지만 이것 외에 아무것도 없다. 무식하단 말이 절로 나온다.-.-
손병희의 사위란 것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방정환이 일본에서 공부하면서 우리보다 일찍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에서 동화와 동요를 어린이들에게 널리 알리는 운동을 활발하게 펼치는 것을 보고 자극받아 조선의 어른들이 어린이를 위해 해 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우리나라 어린이들을 위해 읽을거리, 놀 거리, 즐길 거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건강을 뒤로 한 채 어린이 잡지를 만들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1922년 세계명작 동화집을 우리말로 옮겨 <사랑의 선물>이 나오게 된다.
일본이 우리보다 그림책을 비롯하여 모든 면에서 앞섰는데 방정환 선생님이 더 빨리 태어났더라면 우리의 어린이 책이 일찌감치 발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방정환은 ‘색동회’를 만들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해송, 윤극영 등과 힘을 합쳐 어린이 잡지인 <어린이>를 1923년 3월 20일에 창간한다.
그 어린이 잡지를 통해 윤석중, 이원수 같은 우리나라의 훌륭한 작가를 배출하였고, ‘고향의 봄’이란 동요를 만든 이원수 선생님이 어린이 잡지를 통해 한 소녀와 글동무가 되어 훗날 그 소녀와 결혼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소녀는, 우리가 어릴 때 많이 부르던 ‘뜸북뜸북 뜸북새~~’로 시작하는 <오빠 생각>을 지은 최순애 선생님이라고 하니 ‘어린이’ 잡지가 당시 아동 문학의 글로 들어서게 하는 디딤돌이 되었던 듯하다.
당시 우리는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조선 독립신문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끌려가기도 하였다. 어두운 현실에서 일본에 대항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장차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어린이를 길러내는 것만이 훗날 나라를 되찾을 희망이란 것을 깨닫게 되어 어린이를 위한 운동을 열심히 하게 된 것이다. 또 세계의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을 모아 전시회를 준비하는 일도 하였다 하니 어린이를 위해 세심하고도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본의 경찰은 방정환이 벌이는 일에 항상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우려하여 감시를 보다 철저히 하였고 결국 모든 활동을 금지했다. 하지만 그런 일에 겁낼 사람은 아니지~
그리고 이 책에서는 눈에 띈 이야기는 우리 국민 대다수가 동참한 3.1 만세 운동에 대한 부분으로 평화적으로 시작한 불길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뜨겁게 퍼져나가자 일본이 강제 해산시키고 총칼응 앞세워 백성을 짓밟는 것이 흡사 지금의 우리 정부가 하고 있는 것과 똑같이 느껴져 잠깐 흥분하게 했다.
어린이의 가슴에 작은 물결을 일으키고자 했던 소파 방정환.
서른 두 해를 채우지 못하고 너무 일찍 떠난 안타까움과 슬픔에 어린이들을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하지만 산소를 마련할 돈도 없었던 나머지 5년여를 납골당에 옮겨졌다가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망우리에 조그만 산소와 묘비가 세워졌다한다.
그리고 묘비엔 ‘어린이의 마음은 천사와 같다’라는 뜻의 ‘동심여선(童心如仙)’이라 쓰여 있다고 한다. 그동안 어린이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알맹이를 뺀 속빈강정과 다름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동화책을 좋아하는 엄마들도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 더 깊이 있는 책을 읽으면야 좋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면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을 분량이니 잠깐의 시간을 투자해 방정환 선생님의 발자취를 살짝이라도 쫓아보자.
울 아들이 고정욱 작가를 한때 좋아하여 그의 작품을 많이 읽었더랬는데 고정욱 작가의 역사관이 맘에 안 들어 한동안 멀리 했었는데 이 책은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