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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아키코의 이 책은 현재 비룡소에서 <다얀 이야기> 시리즈로 여러권이 번역되었다.   우연히 원서를 발견했는데 같은 책인지 전혀 몰랐다. 도쿄에 갔을때 와치필드를 방문했던터라 우리나라 북오프에서 딸과 동시에 "앗 이 책!"하고 업어왔다. 단지 같은 작가의 책이려니 했을 뿐. 썩 좋아하는 책이 아니라 그런 착각을 했던거다. 번역책의 경우 표지가 다를 수는 있다. 표지 그림을 선택할 때 출판사측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컨택할 것이기에 그 나라의 정서나 편집자 등의 영향으로 그렇다고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이 책은 분명 그림책이다. 뭐 다 아는 얘기를 뭣하러?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원서보다 판형이 두배 가량 차이가 난다. 단순히 그림의 축소라면 그것도 봐줄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림의 많은 부분이 잘렸다. 판형이 다르니 그렇다고 하기엔 독자에 대한 우롱이며 더더욱 기막힌 것은 원서에 실린 그림 컷이 더 많다는 것이다.  이는 명백히 작가에 대한 우롱이다. 더구나 원서에 실린 그림의 순서까지 다르다면....   

더 중요한 것은 내용까지 다를지도 모른다는 것! 글밥의 양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ㅠㅠ 첫 페이지만 봤을 때는 같은 내용이지만 계속 확인해 봐야 할 일이다. 내가 일본어를 잘 모르니-.-;;

이렇게 씩씩거렸는데 일본 아마존을 찾아보니 비룡소에서 출판한 이 시리즈의 책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갖고 있는 같은 책은 왜 검색이 안되냐구!!!

어쨌든 책을 손에 가지고 있으니 없는 것은 말도 안되고 그렇다면 굳이 비룡소에서는 굳이 작은 판형의 이 책을 들여온 이유는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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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성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들
권혁수 디자인사회연구소 대표
김용 환
“그림은 마음 속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그리는 것이다”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에 이르는 한국 일러스트레이션의 근대기는 신문과 잡지에 게재된 시사만평과 소설삽화 형식이 지배하고 있었다

. 이 시기에 ‘ 기타 고오지 ’
라는 필명의 세계적인 펜화가가 한국과 일본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는데

, 그가 목정 木丁 김용환이다 . 그는 우리나라의 시사만화 , 삽화 , 아동만화 장르를 연 장본인으로 일본 유학 무사시노 ( 武藏野 ) 미술대학의 전신 , 데이고쿠 ( 帝國 ) 미술학교 시절 ,
산세이도 출판사의 백과사전 그림을 전담하는 삽화가 에지마 다케오

江島武夫 의 조수로 일하면서 사실주의 삽화의 세계에 입문했다 .
주로 펜화였던 그의 그림은 도해의 정통 정신과 태도를 기본으로 한 것으로 일러스트레이션의 근대적 정의인 삽화의 미학을 완성했다

. 김용환은 “ 삽화는 인물이 주역이며 , 사실적 그림을 본 바탕으로 해야 한다 .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고증을 하는 일이다 . 즉 시대적 고증 , 지역적인 풍속 고증이 필요하며 , 인물의 경우는 성격을 나타낼 수 있게 하고 , 희노애락에 의한 얼굴 표정이 중요하다 ” 는 삽화의 분명한 작품 원칙과 장르 인식을 내세우고 있다 . 또한 그는 “
그림의 본령은 사실이며 사실의 밑받침이 없이는 어떤 그림도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고 단호하게 말한다 .
그의 미술적 재능과 함께 이러한 미술 이데올로기의 확신은 소설 삽화에서 최고의 경지를 이루면서 만화 영역의 사실주의 표현에도 그 전형

<복남이의 모험 >, 1945 년 을 제시했다 . “ 그림은 마음 속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고 손으로 그리는 것이다 ” 는 그의 단언은 오늘날 일러스트레이션이 회복해야 할 조형 - 언어 언어 - 조형 의 정체를 다시 한번 일깨우고 있다 .
일러스트레이션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역사 전 영역에서 늘 우리 곁에 있어왔던 지극히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대화와 소통의 미술이다 . 한국 일러스트레이션 100 년의 역사 앞에 서서 사실주의 정신의 일러스트레이터 , 사실성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생각한다 . “ 위대한 리얼리즘 작가는 커다란 임무 , 즉 세계관적 임무와 예술적 임무라는 이중의 임무를 갖는다 . 첫째는 이 관련들을 사상적으로 깨닫고 예술적으로 형성하는 것이다 . 그리고 둘째는 추상적으로 획득한 관련들에 예술적인 덮개를 씌우는 것 , 즉 추상의 지양이다 . ” G. 루카치 “ 우리에게 참된 농부상을 보여주든가 아니면 농부들을 그대로 놔두든가 하라 . 주름잡힌 어여쁜 옷 같은 것은 절대로 절대로 그리지 말든가 아니면 이치에 맞게 그리든가 하라 . 사람들에게 침묵을 지키게 하든가 아니면 그들의 신분에 어울리는 말을 쓰게 하라 . ” G.H. 레비스 오늘날 김용환 , 홍성찬 , 안보선 , 이복식의 그림들은 한국 일러스트레이션을 합리성의 미학 , 사실성의 기술로서 깨닫게 하는 조용한 역사 선언이며 , 동시에 절실한 현실 주장이다 .
홍성찬
“작가의 상상력은 어떤 증거를 향한 치밀한 사고능력이다”




일본이 패망한 이후 ,
한국 일러스트레이션은 주로 신문과 잡지의 삽화 형식을 유지하면서

70 년대 그래픽 아트의 시대까지 지속되었다 .
여전히 소설삽화들은 일제시대의 형식적인 표현방식을 따르면서 작가의 개성에 앞서 양식적 전형을 반복하는 수준으로 펜화

, 풍속화 , 수묵화 ,
채색화 등의 조형적 기법이 혼합된 기능적 기술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
일러스트레이션의 독자성을 자각하고 전통적인 의미의 풍속화를 새롭게 재해석하면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 홍성찬은 근현대의 한국 일러스트레이션을 견인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그의 일러스트레이션은 “ 우리에게 진정한 삽화는 있는가 ” 라는 질문에 진실하게 답하는 그림이다 .
그 전통은 물론 시대적인 명제이기도 했지만 오늘의 시점에서 더 귀하고 값진 것이다

.
그의 작품은 기법보다는 역사적 고증과 사실적 상황을 독자성으로 삼고 이야기와 분위기를 철저하게 재현함으로써 삽화의 진정성을 재인식하게 한다

.
충주성 전투 장면이나 임진왜란의 싸움터에서는 군사들의 함성과 아우성 소리가

, 그들이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 책을 덮어보면 매캐한 연기와 함께 화약냄새가 난다 . 일러스트레이터 류재수는 이를 두고 내적 고증 ( 정황 , 분위기 ) 의 세계라고 했다 홍성찬의 ‘ 발자국까지 들리는 ’ 풍경들은 “ 사람과 풍경은 무엇이며 그 세계는 어떤 것인가 ”
를 확인하게 함으로써 한국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데 큰 교훈과 귀감이 되고 있다

. “ 나는 작품을 대할 때 가장 합리적인 사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
예를 들어 소설가들은 소수병력으로 그 몇 배가 되는 적군을 물리쳤다고 하면 그걸 글로써 합리화시켜야 된다

.
마찬가지로 일러스트레이터도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는지 그 조건들을 하나하나 모두 만들어줘야 한다

. … 작가의 상상력은 어떤 증거를 향한 치밀한 사고능력일 것이다 . 눈에 보이는 , 또는 보이지 않는 고증이 필요한 것이다 .
그래야 보는 이들을 설득할 수 있고 작품의 합리성을 찾을 수 있다

.” 월간 < 디자인 > 인터뷰 , 1999 년 안보선
“명확한 해부도는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정도의 가상과 인간의 감정이 가미된 그림이다”

출처 : 사이언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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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혜숙의 그림책 꼼꼼하게 들여다보기 1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엄혜숙       
 
돋보이는 우리 창작 그림책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는 운율감을 살린 글, 아이들이 좋아하는 먹거리를 소재로 한 이야기, 정성껏 그린 그림, 단정한 책꾸밈 등이 돋보이는 우리 창작 그림책이다. 그림책이 많이 나오지만, 이만큼 글 작가와 그림 작가의 개성이 돋보 이는 창작 그림책은 좀처럼 만나기가 어려운 만큼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펼쳐보았다.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표지 그림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에서는 ‘손 큰 할머니’와 아이 동물들, 어른 동물들이 등장하여 다같이 만두를 빚고, 만두를 찌고, 만두를 나눠먹으면서 새해 첫날을 맞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민담의 세계, 마을 사람들이 하 나가 되어 일을 하고, 그 결과를 향유하는 공동체의 생활상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 지금은 사라진 마을 공동체 모 습도 떠오르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음식들과 놀이들이 잔뜩 등장하는 백석의 시 <여우난골族>도 떠오른다.
하지만 이렇게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는 앞서 말한 미덕만큼이나 아쉬운 점도 많다. 우선, 사건이 모두 ‘손 큰 할머 니’의 성격과 의지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주인공인 ‘손 큰 할머니’는 아이들이 동일시하기보다는 감탄하고 놀라워하는 대상인데, 이 때문에 아이들은 책 속에 흠씬 빠져들기가 어렵다. 또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그림책이면서도 그림의 비중과 역할이 너무 작아, 글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도 아쉽다. 또 시간적 배경이 명절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음식에 접근하는 방식이 새롭다기보다는 상투적이라는 점도 눈에 뜨인다.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서 남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하는 책이지만, 여러 번 이 책을 읽다 보니 이것저것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어서 한 번 정리해 보 았다.
 
인물의 성격
 
그림책을 볼 때 사람마다 유심히 보는 점이 다를 것이다. 나는 그림책에 나오는 주인공에 관심이 많다. 주인공의 성격과 역할에 따라 같은 소재라도 제각기 다르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에서도 우선 주인 공 할머니의 성격에 관심이 갔다.
이 그림책에서 ‘손 큰 할머니’는 마치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임금님’처럼 맘껏 힘을 휘두르는 존재다. ‘손 큰 할머니’가 일을 벌이면, 모두들 할머니를 따라간다. 즉, ‘손 큰 할머니’는 이야기의 중심에 있고, 모든 사건은 ‘손 큰 할머니’를 축으로 해서 전개되는 것이다.
할머니는 무엇이든지 ‘엄청 많이, 엄청 크게’ 하는 할머니이다. 그러기에 설날을 맞아 만두를 빚을 때도 엄청 많이 준비를 한다. 아이 동물들은 만두 빚는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본다. 할머니가 만두 빚을 채비를 하는 것을 기웃기웃 기대하며 보는 것이다. 하지만 어른 동물들은 어떤가? 잔뜩 준비한 만두소를 보고는 그만 ‘입이 떠억 벌어지는’ 것이다. 그 많은 만두를 빚을 생각에 말이다.
그런데 ‘손 큰 할머니’는 이렇게 만두 빚을 밀가루 반죽과 만두소를 엄청 많이 마련해 놓고는, 막상 만두 빚을 때가 되자 ‘누가 열심히 하나?’ 망원경으로 감시를 한다. 넉넉하게 음식을 마련하는 맘씨 좋은 할머니에서 갑자기 누가 열심히 일하나 안 하나 감시하는 감시자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크고, 멋진 만두를 빚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그림 1> 할머니는 망원경으로 누가 열심히 일하나 감시를 한다.
 
이렇게 할머니의 성격이 달라지면서 이야기의 성격도 달라지게 된다. ‘다같이 만두를 만들어 나누어 먹자.’는 게 이 그림책의 주제겠지만, 다같이 만드는 것이 즐거운 게 아니라 지루하고 힘든 노동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손 큰 할머니’와 숲속 동물들이 만두 빚는 과정을 보자. 처음에는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만두를 빚는다. 여우는 여우 모양의 만두를, 호랑이 는 호랑이 모양의 만두를 빚는다. 자기 생긴 대로 개성대로 빚는 것이다. 이렇게 한참이나 만두를 빚는다. 그러다가 점점 크게 만두를 빚는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만두소는 줄지를 않는다.
급기야 만두 빚던 동물들은 나가떨어지고, 그제서야 할머니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만두 하나를 빚자고 말이다. 이렇게 해서 생겨나게 된 게 바로 ‘세상에서 가장 큰 만두’인데, 이 만두를 아주 큰 가마솥에 밤새도록 쪄서 새해 첫날 아침에 나눠먹는다. 그리고 모두들 나이도 한 살 더 먹는 것이다.
 
 
<그림 2> 엄청나게 커다란 가마솥에서 엄청나게 커다란 만두가 익어간다. 새해를 기다리는 마음도 함께 익어간다
 
그런데 이렇게 지루하고 힘든 노동 끝에 만든 만두를, 다함께 쪄서 맛있게 먹고는 즐겁게 새날을 맞는다는 대목에서 웬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너무 안이하게 마무리한 게 아닐까. 또 엄청나게 많이 만두 빚을 준비를 하고, 며칠이고 만두를 빚다가 아무리 빚어도 다 빚을 수 없으니까, 그냥 큰 만두 한 개를 빚자는 발상은 용두사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즐거운 마음으로 커다란 만두를 빚을 수는 없었을까?
 
상투적인 반복과 예기치 않은 사건이 주는 효과
 
이렇게 할머니의 역할은 변하지만, 할머니의 성격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하다. ‘엄청 많이, 엄청 크게’ 하는 분이 다. 이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것들--엄청 많은 밀가루 반죽, 엄청 큰 함지박, 엄청 많은 만두소, 엄청 큰 바늘과 가마솥--을 보면, 반복되기 때문에 재미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상투적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할머니는 처음부터 끝까지 ‘손 큰 할머니’이고,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이것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성격이 일관되게 나타나면서도 기대치 못한 즐거움을 줄 수는 없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구리와 구라의 빵 만들기>를 꺼내서 다시 읽어보았다.
 
 
<구리와 구라의 빵 만들기> 표지 그림
 
이 그림책에 나오는 구리와 구라는 들쥐 형제인데,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로 ‘음식 만들기와 먹기’이다. 구리와 구라는 숲속에 가서 도토리와 밤을 줍다가 예기치 않게 커다란 알을 발견하고, 이 알로 커다란 빵을 만들어 숲속 친구들하고 나눠먹는다. 같은 주제지만, 이 편이 더 즐겁게 여겨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구리와 구라가 ‘가장 좋아하는 건 음식 만들 기와 먹기’라는 일관된 성격으로 등장하면서도, 예기치 않게 커다란 알을 발견하는 놀라움, ‘이 알을 어떻게 할까?’ 궁리하다가 ‘커 다란 빵을 만들자.’는 생각을 하는 아이다운 발상이 빛나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구리와 구라가 빵 냄새를 맡고 하나둘씩 나타난 동물들과 욕심내지 않고 빵을 나누어먹는 모습은 정말로 귀엽고 천진스럽다.
 
 
<그림 3> 구리와 구라가 신나게 이야기를 하며 가다가 커다란 알을 발견한다. 둘은 이 알로 무엇을 만들까 한참이나 생각한다.
 
 
<그림 4> 구리와 구라는 숲에서 발견한 커다란 알로 커다란 빵을 만들어 숲속 동물들과 나눠먹는다. 그런데 둘이 가장 좋아하는 건 바로 음식 만들기와 먹기이다.
 
이에 비해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에서는 ‘손 큰 할머니’의 ‘엄청 크게, 엄청 많이’ 하는 습관 때문에 많은 동물들이 만두 빚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양을 말이다. 하지만 동물들은 힘겨워하면서도 아무도 할머니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만두를 만든다. 해마다 엄청 많이 만두를 만드는 할머니 때문에 다른 동물들이 이렇게 휘둘려도 되는 것일까? 그리고 이런 과정은 다 잊고, 나중에 만두를 쪄서 먹고는 모두 즐거워해도 되는 것일까?
사람과 동물이 사이좋게 어울리고 있는 민담의 세계가 재현되고 있으면서도, 지나치게 사람 --그것도 ‘손 큰 할머니’ --중심으로만 그 세계가 펼 쳐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할머니가 즐겁게 엄청 많이 만든 만두를, 다른 동물들이 신나게 먹는 그런 세계는 있을 수 없는 것일까? 아니면, 할머니와 동물들이 모두 즐겁게 만두를 만들고 즐겁게 나눠먹는 그런 세계는 그릴 수 없는 것일까?
 
글과 그림의 역할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에서의 글과 그림의 역할을 살펴보았다. 이 책은 아무래도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이에 어울리는 그림이 담긴 그림이야기책이다. 그만큼 그림보다는 글이 이야기 전개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성이 강한 그림책의 경우, 말 곧 문장이 이야기 전개를 주도할 때가 많다. 이런 경우에는 그림책이라는 장르가 점차로 삽화가 들어 있는 그림이야기책으로 옮겨가기가 쉽다. (마쓰모토 다케시의 <그림책론> 참조) 그런데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도 그림에 의해 이야기가 전개 되기 보다는 글과 그림이 동시성을 지니고 전개되면서 그림이야기책으로 옮겨가는 게 아닌가 한다. 글에서 이야기한 내용이 다시 그림으로 표현 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그림책을 본다’고 할 때는 그림을 보고, 글을 보고, 다시 그림을 보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라고 한다. 그림책에서는 그림과 글이 하나가 되어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에 그 중의 하나라도 없으면, 완결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림이 없더라도 내용 전달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책의 매력은 반감되겠지만 말이다. 그림책의 글로서는 아쉬운 점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이야기책이라면 아주 수준 높은 그림이 들어 있 는 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의 글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리듬감이 아닐까 한다. 소리내어 읽다 보면, 판소리의 글처럼 운율 이 저절로 붙으면서 흥겨운 느낌이 드니 말이다. 게다가 들 속에 가끔 등장하는 노래는, 옛날에 일을 하면서 불렀던 노래도 연상되고 해서 흥겨 운 느낌을 한껏 살려준다.
‘손 큰 할머니’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을 보자.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할머니이다. 큼직한 털쉐타를 입고, 퍼머머리까지 한 할머니 이다. 하지만 이야기에서 나타난 할머니는 보통 할머니가 아니다. 동물들을 좌지우지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는 할머니다. 큰 산만큼 만두소를 만 들고, 마당을 지나 소나무 숲까지 가도록 밀가루 반죽을 하는 할머니다. 그뿐인가? 이렇게 엄청 크게 만든 만두를 찔 커다란 가마솥까지도 갖고 있는 할머니다.
이런 할머니라면, ‘할머니 손이라도 크게 그려졌다면.’ 하는 생각이 든다. ‘손이 크다.’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뜻을 아이들은 모를 수도 있고, 안다고 하더라도 시각적으로 재해석해서 그렸더라면 즐거운 기분이 더 커졌으리라. 사족이지만,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손 큰 할머니라고 하면 서 왜 손이 크게 그려져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어른인데도 ‘손이 크다.’는 말의 함축된 의미를 몰랐다는 것이다.
글이 주도성을 갖더라도 그림 나름대로 자유로운 영역이 있었더라면, 그림을 보는 재미가 컸을 게다. 만약에 밀가루 반죽이 마당을 넘어서 소나 무 숲까지 갈 때에도, 그냥 넘치고 넘치는 밀가루 반죽뿐 아니라, 그 반죽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일--길 가던 동물이나 새가 화들짝 놀란다든가 , 나무가 그 무게를 못 이겨 쓰러진다든가--이 그림으로 표현되었더라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그림 5> 밀가루 반죽은 마당을 지나 저기 저 소나무 숲까지 닿았다. 이 정도 만두를 빚으려면, ‘참, 할일이 엄청나다!’
 
글이 표현하고 있지 않은 것을 다시 상상하고 해석해서 시각적으로 그려내는 일, 그것이 어린이책에서 그림이 할 역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마음이 즐거워지는 그림책을 기다리며
 
어린이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들이다. 그러기에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해도, 결국은 독자인 어린 이들이 즐겁게 책을 보고, 그 속에서 뛰놀 수 있는가 하는 점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어린이책은 ‘어른이 어린이에게 말을 거는 형태’ 라고 생각한다. 즉 어린이와 즐겁게 대화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어떻게 말을 거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네, 아니오’ 밖에 나올 수 없는 말인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만큼 발랄하고 즐거운 대화가 될 것인지는 말을 거는 어른 편의 역할이 크다. 언제부터인가 책을 볼 때마다 이 책을 만든 이가 어떤 입장에 서 있는가를 살펴보게 된다. 그래서 주인공을 유심히 보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어린이책을 볼 때마다 마음이 기쁘다. 미래를 향해 열린 어린이들과 같은 책을 보면서, 같이 즐거워할 수 있다는 게 기쁘다. 어린이 같은 마 음이 되어 볼 수 있어 기쁘다.
자꾸만 보아도 즐거운 글, 자꾸만 보아도 또 보고 싶은 그림, 그런 어린이책을 기다리며 소박한 생각과 글을 마칠까 한다.
 
출처 : <꿀밤나무> 제1호 (1999. 1. 1)
 
이 글을 쓴 엄혜숙은 아동 도서 편집자이자 번역자이다. 책읽기와 영화보기, 술이나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기가 취미이다. 지금은 인하대학교에서 아동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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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그림책  - 문학·그림·삶의 조화 (월간미술1999/02)

England 문학·그림·삶의 조화 1

이호백 <도서출판 재미마주 대표>

영국은 현대적인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의 성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나라다. 출판된 지 1백년이 넘은 그림책이 아직도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영국 그림책은 그 역사에 걸맞는 수준과 형식을 일궈냈다. 대표적인 작가들의 작품세계와 특성을 통해 영국 일러스트레이션의 단면을 알아본다 .


지난 93년 조그마한 영국산 토끼 한 마리의 1백살 생일잔치가 뉴욕과 파리·동경을 비롯한 세계의 주요 도시 에서 치러졌다. ‘피터 래빗’이란 이름의 이 토끼는 다름아닌 1백 년전 런던에서 출간된 조그마한 그림책의 주 인공이다. 이 《피터 래빗》을 비롯한 베아트릭스 포터(Beatrix Potter)의 대표작들은 전세계적으로 매년 수백 만권 이상 팔리며 해를 거듭할수록 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 한 출판사가 일본이 가 지고 있는 아시아 판권을 사들여 《피터 래빗》 시리즈 전집을 출간한 바 있다.

인쇄술과 교육열의 결합된 1백년 역사

1백년 전의 그림은 그것이 걸린 미술관에 가지 않으면 기껏해야 화집이나 우편엽서·포스터가 되어 대중들과 만날 수 있고, 1백년전 영화는 자료실에 가야 볼 수 있지만, 1백년 전의 그림책은 그림책 형식 그대로 새로운 독자와 늘 만날 수 있음을 《피터 래빗》은 보여 주고 있다. 더불어 지금 우리의 서점가 어린이 책 코너에서 는 20세기 초부터 최근에 이르는 세계의 걸출한 그림책들과 만날 수 있다. 버지니아 리 버튼·장 드 브뤼노프 같은 30~40년대의 그림책 작가는 물론 존 버닝햄·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 모리스 센닥· 토미 웅게러· 하야시 아키코 등 60년대 이후에서 최근에 이르는 그림책 작가들의 작품들도 쉽게 눈에 띈다. 요즘과 같은 첨단 디지 털 이미지 시대에 아직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팔리느냐는 식의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겐 관심거리도 안 되겠지만, 변변한 그림책 한권 제대로 만들어 보지 못한 우리의 어린이책 출판계 일각에서는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미국 것이든 일본 것이든 팔릴 만한 그림책들을 이미 잔뜩 소개해 놓고 있다.

이 글에서 영국의 일러스트레이션 작가를 다루는 이유는, 1백년 넘게 장수하고 있는 그림책이라는 장르를 우 리는 그동안 너무 쉽게 이해하고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즉석 대중문화로 잘못 생각해 왔음을 꼬집기 위해서이 다. 좋은 그림책은 좋은 글에 좋은 그림이 들어가면 되지 않느냐는 단순한 생각으로, 글 잘 쓰는 소설가가 동 화 한편 쓰고 그림 잘 그리는 화가가 그 글에 일필을 휘두르면 책이 되지 않느냐고 할 만큼 그림책의 위상이 약화된 상황에서 이제 좀 벗어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그림책 장르란 문학과 조형예 술의 영역 확대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 문학을 하고 ‘순수미술’을 하는 사람들이 잠시 외도하듯이 끄적일 분 야는 아니라는 아주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림책은 하나의 상품이고 흥행사업이다. 이 흥행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바로 한 작가의 개인적인 삶에서 비롯된 문학과 그림의 진실성이며, 그런 삶과 유리되지 않은 목소리를 내는 작가를 알아볼 줄 아는 출판사의 노력이다. 우리가 영국의 그림책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자연스러운 책만들기의 과정이다.

서양에서 그림책은 출판과 이미지 재현기술, 그리고 조기교육에 대한 각성이 일던 19세기 후반기에 등장하 기 시작한다. 당시 영국은 프티 부르주아들이 정치적 안정과 제국주의의 성공에 힘입어 풍요로운 부와 문화 를 구가하던 빅토리아 왕조시대였다. 이미 출판시장은 넘치는 문학 문고본과 학습물의 양산에서 탈피한, 보 다 새로운 형식의 출판을 기다리고 있었고, 목판인쇄술의 이미지 재현기술은 최고의 경지에 이른 상태였다.

한편 사진술의 발달은 빛으로 인쇄판을 분리하는 현대적 옵셋 인쇄술을 실현시켰다. 또한 전 유럽에 불어닥 친 조기교육 붐은 학습지 사업에 성공한 출판인을 낳았다. 그리고 이들 중 몇몇은 어린이를 위한 출판이 무 엇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시 프랑스 최고의 학습지 출판사였던 아셰트(Hachette)는 실험적인 출판을 하던 에첼(Hetzel)사를 인수하여 그 실험정신을 토대로 어린이 책을 출판하였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고조된 유럽의 아동 출판 시장은 이제 교육이라는 전통적인 과제에서 벗어나, 보다 발달한 인쇄술과 만날 수 있는 삽화에 신경을 쓰는 문학물과 이미지 상품으로서의 출판을 생각하게 된다.

영국에서는 이미 많은 미술가들이 산업제품의 무감각한 생산방식에 반발하여 다품종 소량 생산의 공예적 전 통을 살리기 위해 산업현장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출판 분야에서도 아름다운 책을 만들기 위한 인쇄업자와 화가들의 협력이 이루어짐에 따라 오늘날의 그림책과 같은 양장본 책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판 매되는 그림책의 고전들은 이런 시대적인 자각 속에서 탄생한 것들이다.





England 문학·그림·삶의 조화 2

이호백 <도서출판 재미마주 대표>


그림과 문학으로 전하는 동심

영국 그림책의 효시인 케이트 그린어웨이(Kate Greenaway)와 베아트릭스 포터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린어웨이는 당시 가장 예쁘장한 그림책을 그린 작가였다. 아기자기한 소녀들의 군상을 즐겨 그렸던 그린어웨이는 당시 유명한 인쇄업자 에반스와 함께 선물하기 좋은 양장본 그림책 《ABC북》을 만들기 시작했다. 《ABC북》은 조악한 흑백 학습지가 대부분이었던 아동출판물에서 천연색의 다채로운 이미지와 그림들을 선보여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지금도 런던 소호 거리의 리버티 백화점에서는 식탁보 문양 하나라도 진지하게 고르고 있는 할머니들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문화 전통은 이때부터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당시 부모들은 자녀와 함께 볼 책 한 권을 고르는 데도 세심하고 까다로웠던 것이다.

그린어웨이의 천진스런 어린이 그림이 에반스의 화려한 인쇄술과 결합된 그림책은 이런 까다로운 취향을 즐기던 영국 부르주아들에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잘 팔리는 그림책 한 권은 유럽 전역에서 1만~2만권 정도 판매되었는데, 그린어웨이의 그림책은 그중 베스트 셀러였다.

포터의 그림책은 그린어웨이와는 다른 흐름을 보여준다. 그린어웨이가 고전주의 시대의 요정 같은 순진한 여자아이를 등장시켜 전래동요나 동화를 그렸다면, 포터는 어린이의 시각에서 이야기하는 작가였다. 예를 들어 홍당무 밭에 들어가 농장 주인에게 쫓기다 길을 잃은 피터 래빗의 절망감에는 그녀 스스로가 아이의 심성을 지니지 않고서는 그릴 수 없는 섬세함이 담겨 있다. 실제로 그녀의 그림책에 나오는 동물들은 자신이 이름붙여준 주변 동물들· 가족· 측근들을 모델로 한 것이다. 이렇듯 생활 주변에서 자연스레 벌어지는 22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포터의 그림책에서 우리는 좋은 그림이란 ‘말하고 있는 이야기’라는 새로운 전통을 얻게 된다. 포터의 그림책은 문학과 그림이 하나가 되어 어린 독자들의 마음을 전하는 그림책으로 남게 된 것이다. 이런 모든 일은 포터의 재능을 알아준 무명의 출판업자 프레데릭 완(Frederic Warne)과의 인연으로 가능했다. 포터의 작품은 대부분의 대형 출판사에서 거절을 당했던 것이다. 포터는 영국의 중부 소리 지역에 농장을 차리고 양을 키우면서 말년을 보낸다. 그녀는 세상을 뜨기 전에 자신의 저작권 수입과 유산을 국립환경관리국에 기증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부흥은 20세기가 되면서 점차 위축되었지만 60년대에 이르러 그림책은 다시 활성화되었다. 당시 삽화가들 중 자신의 이야기와 조형세계를 펼칠 수 있는 그림책 작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오늘날까지도 자타가 공인하는 영국의 3대 일러스트레이터가 활동한 시기가 바로 이때인데,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Brian Wildsmith)·찰스 키핑(Charles Keeping) 그리고 90년대까지도 높은 인기를 누린 존 버닝햄(John Birningham)이 그들이다.

내용을 능가하는 뛰어난 조형미

와일드스미스는 그림책의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한 작가이다. 탄광촌에서 색깔에 대한 갈증을 지니며 자란 그는, 과슈의 톤과 얼룩이 만들어 내는 색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60년대 옵셋 인쇄술의 탄생을 가장 기뻐한 작가다. 한 아동문학 평론가는 “영국의 그림책은 와일드스미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평가하는데, 그것은 와일드스미스의 그림책이 글에 담긴 내용을 표현하는 것은 물론 장면마다에 내용 이상의 조형적 즐거움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책 한 장을 액자에 넣어 보면 내용과 상관없이 즐거운 표현주의 회화가 된다.

텍스트의 충실한 해석과 표현주의적 필치가 즉흥적으로 만나는 그림책 전통은 버닝햄으로 이어진다. 그의 첫 데뷔작인 《ABC 북》과 《퐁테뉴 우화》《동물들》은 지금도 판매되고 있다.

런던 근교에서 서민적인 풍경을 보고 자란 키핑은 이 세 작가 중 가장 런던적인 이미지 표현에 생을 바친 작가다. 그는 2백여 권에 이르는 책에 삽화를 남긴 일러스터레이터였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22권을 남긴 그림책 작가로 더 인정받고 있다. 마부촌과 도자기 공장이 몰려 있는 런던의 풍경, 그 속에서 살아가며 정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그는 삽화가 경력 10년째이던 60년대 초반 첫 그림책을 발간하였다.

그가 활동하던 60년대의 런던은 현대화 과정 속에서 급속도로 멍들어가는 시기였다. 탁해지는 대기, 공장· 상가· 아파트에 밀려 헐리는 변두리 주택가나 재래시장, 그릇공장 등의 풍경들 속에서 스스로 오갈 데 없는 아이의 심정으로 몇 권의 그림책을 그렸다. 주로 초기의 그림책이 이런 자괴감을 그리고 있는 데 비해 60년대 말부터 런던은 난삽하게 엎지러진 물감 대신에 담담한 브라운 톤 드로잉으로 그려진다.

버닝햄 역시 독특한 세계를 그림책 속에 담아낸 인물이다. 버닝햄은 다양한 재질감 구사나 독특한 캐릭터 창안, 상징적 기호나 심벌을 만들어 자신의 문학적 메시지나 분위기를 표현해낼 줄 아는 작가다. 그는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아이, 현실에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적이고 서정적인 아이, 꿈꾸는 아이를 그렸다. 국내에도 그의 첫 작품인 《털없는 거위 보르카》나 80년대에 그려진 《지각대장 존》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등이 출간되어 있다.

이상 살펴본 주요 작가들의 그림책 세계는 영국적인 지역성이 세계적인 성공과 연결된 좋은 본보기들이다. 80~90년대 들어 신진작가들이 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눈사람》으로 유명한 레이먼드 브릭스(Raymond Briggs), 천진한 어린이들을 주로 그린 헬렌 옥슨버리(Helen Oxenbury), 《자이언트 아저씨》 시리즈의 삽화가로 잘 알려진 쿠엔틴 블레이크(Quentin Blake), 숨은 그림 찾기하듯 눈속임 그림을 즐기는 앤서니 브라운(Anthony Browne), 포터처럼 전원이야기를 그려 사랑받고 있는 질 바클램(Jill Barklem), 예쁘고 아기자기한 영국 인형을 색연필로 그린 제인 히세이(Jane Hissey) 등이 그들이다. 하지만 이미 상업적인 고려가 작업 동기에 포함된 이들의 작품은, 가장 자연스럽게 자기의 이야기를 그렸던 옛 거장들의 성과에는 못 미치는 듯하다.

문화가 설 땅을 넓히는 것은 바로 문화 생산자 스스로의 몫이다. 문화 생산자들이 성실하게 새로운 장르를 열어가는 만큼 우리 문화가 다채로워질 뿐만 아니라 굳이 영국이나 프랑스를 꿈꿀 필요도 없어진다. 우리가 영국이란 나라에서 꽃피우고 성공한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을 통해 얻는 정보는, 한 나라의 문화적 균형 감각은 미술 생산자들의 개인적이고 소박한 생산 이유와 성실성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출처: 일러스트레이터 포탈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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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그림책 -  삶에 대한 자유로운 철학자 -  사노요코



독자에게 삶에 대한 문제들을 유쾌하고 간결하게 보여주는 사노요코는 1983년 북경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무사시노미술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베를린 조형대학에서 석판화를 공부했다.
귀국후에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에 관한 일을 하다가 1971년 <야기씨의 이사>를 출간하면서 그림책 책가로 데뷔했가. 지적이고 자유로운 방랑자로 묘사되는 사노요코는 그림책 작가뿐만 아니라 소설작가,수필가등으로도 유명하다.




그녀의 그림책은 편안하고 느긋한 선과 따뜻한 색채호 인간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을 보여준다.
통통 튀는 듯한 생동감이 넘치는 그녀의 작품은 아이들의 불안학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마음을 날카롭고 간격하게 표현하고, 그림만으로도 그 넘치는 존재감을 느낄수 있을 정도로 강한 매력을 발산한다.
또한 모두 알고 있지만 잠시 잊고 있는것등에 대해 세심하고 신선하게 떠올리게 한다.




그녀의 그림책작품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히는 <100만번 산 고양이>, <하늘을 나는 사자>는 사랑한다는 것과 살아있다는 것의 아름다움, 사람간의 관계를 갖는 거등 사람으로서의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들에 대해 쉽고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했다. 그녀는 이와 같은 작품을 통해 그림책이 세대를 넘어 소통할수 있는 예술로서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그림책은 산테이아동출판문화상, 니미난키치문학상, 고단샤출판문화상그림책상, 그림책일본상, 등을 수상했으며, 2004년에는 수필집<신도 부처도 없다>로 고바야시 히데오상을
수상했다.

글자료 출처 : 그림책 상상
그림자료 출러 : 엠비일러스트 mbillu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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