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래시 3장. 반격의 과거와 현재
미국 여성들이 역사를 가로질러 진보해 온 모습을 정확히 기록한다면 그 고리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자유의 선을 향해 좀 더 가깝게 움직이는, 한쪽으로 약간 치우친 나선형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이 나선형은 결코 목적지에 닿지 못한 채 무한을 향해 나아가는 수학적인 커브와 유사하다. 미국 여성들은 몇 세대를 끝없이 돌고 있는, 결코 도달하지 못한 채 목적지를 향해 꾸준히 가까워지기만 하는 이 점근성 나선에 갇혀 있다. - 110쪽
3장에서는 19세기 중후반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 온 여성들의 투쟁과 그에 대한 반격의 움직임을 간명하게 정리하고 있다.
19세기 중후반, 여성의 참정권 운동 등 여성의 지위 향상에 대하여 언론, 문학, 종교, 학계, 그야말로 "우주의 모든 힘"이 결집하여 페미니즘을 공격한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이 터지니까? 갑자기 여성들 나와서 일하라고 으쌰으쌰. 그러다가 또 전쟁이 끝나니까? 이젠 다시 집으로 가라고 훠이훠이. 다시 여성운동이 일어서니까 이제는 소비문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여성을 억압하는 교묘한 방식을 이용한다. 사실 이게 제일 무섭지. 이제는 대놓고 여자가 어쩌고 하면 들고 일어나지만, 끊임없이 여성의 아름다움(정형화된)을 강조하고 연약하고 가정적인 모습에 후광을 비춰주며, 관련된 제품들을 팔아먹는 이 자본주의 전략은 진짜 무섭다. 저자는 "그 잘못된 전선으로 인해 여성들은 그 거울의 타당성을 의심하고 비반사면이 가리고 있는 것을 들춰내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대량생산 된 거울의 이미지에 자신이 부합하지 않는다며 스스로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123쪽)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의 가장 위험한 이유는, 여성들을 혼자라고 느끼게 만든다고. 연대를 잃고 혼자 길을 잃었다고 느끼게 되면, "억압을 알고 있어도 침묵하게 된다"(125쪽)는 것.
사실은 여성성보다 연약한 건 남성성이라는 지적 부분에서 빵 터졌다. "이러한 연구들은 남성성이 연약한 꽃, 꾸준히 울타리를 만들어 주고 영양을 공급해 줘야 하는 온실의 난초와 같다고 밝힌다. (...) 남성성의 꽃잎을 가장 처절하게 짓뭉갠 것은 페미니즘의 가는 빗방울인 것 같다."(128,129쪽)
20년간 이루어진 전국규모의 조사에서는 남성성의 압도적으로 우세한 정의는 "가족을 잘 먹여 살리는 사람"이라는데(133쪽), 흥미롭다. 어쨌든 권력을 자기가 가져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지금은 경제력이 가장 큰 힘이니 경제권을 가져야겠다는 것이고, 과거에는 권력이나 명예가 아니었을지. 조선시대, 가족들은 입에 겨우 풀칠이나 하는데 방안에 들어앉아 공자왈 맹자왈 하던 양반님네들, 그자들의 남성성이란 '양반'이라는 지위에서 왔을 것이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남자들은 남성성을 주장하기 위해 가정폭력을 저지르는 것인가. 미국인구조사국에서 공식적으로 가장을 남편으로 정의하지 않게 된 해가 1980년이라는데(136쪽), 우리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아직도 '가장'의 의미 2번째로 '남편'을 달리 이르는 말이라고 쓰여 있다.
이 연약한 남성성의 꽃잎을 어찌해야 하는가..
옛날 분들은 남자아이에게 분홍옷을 입히거나 인형놀이를 하게 하거나 하면 "고추 떨어진다"고 했다는데, 그렇게 쉽게 떨어질 고추면 꼭 있어야 하나..? 애초에 이들이 생각하는 남성성이란 건 무엇일까. 부드럽고, 온화하고, 상대를 존중하고, 아내를 존경하면, 성능력이 떨어지나? 만약 그렇다면 그건 섹슈얼리티 자체가 왜곡되어서가 아닐까.
인용문
미국에서는 여성을 성공적으로 설득해 예 속에 협력하게 만드는 게 특히 유구한 전통이다.
(…) 여성운동을 비난하는 논문의 약 3분의 1, 도서와 소책자의 약 절반을 저술한 필자가 여성이었다. - 111
잡지의 기고가들은 페미니즘이 ‘여성의 행복을 파괴한다고 조언했고, 대중소설들은 ‘직장 여성들‘을 공격했고, 성직자들은 ‘여성 반란의 유해함‘을 질타했고, 학자들은 페미니즘이 이혼과 불임에 기름을 끼얹는다고 비난했고, 의사들은 산아제한이 ‘정신이상, 결핵, 브라이트 병, 당뇨, 암의 증가‘에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잡지의 작가들은 젊은 여성들이 더 이상 ˝그 모든 페미니즘 소동˝에 시달리기를 원치 않는다고 전했다. 포스트페미니즘 정서가 처음으로 표출된 것은 1980년대의 미디어가 아니라 1920년대의 언론에서였다. 이렇게 빗발치는 공격 때문에 페미니즘 조직의 회원 수는 곧 급락했고, 나머지 여성 모임들도 황급히 남녀평등헌법수정안을 비난하거나 아니면 사교 모임으로 성격을 바꿔 버렸다. 그리고 ‘한때의 페미니스트들‘이 고백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미국은 여성들에게 동등한 존중 대신 미스아메리카대회를 제안했다. 이 대회가 개최된 1920년은 여성들이 투표권을 쟁취한 해이기도 했다. - 114
전시 경제를 통해 여성들에게 산업계의 고소득 일자리 수백만 개가 개방되고, 정부마저 최소한의 보육 서비스와 가계 지원책을 제공하기 시작한 1940년대에 다시 나선은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회전했다. - 115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산업계, 정부, 미디어는 다시 여성들을 강제로 후퇴시키기 위해 똘똘 뭉쳤다. - 116쪽
광고업자들은 전시에 보내던 메시지(여성도 일을 하면서 가족 생활을 즐길 수 있다)를 거꾸로 뒤집어 이제는 여성은 선택을 해야만 하고, 그 선택은 가정뿐이라고 주장했다. - 117쪽
'여성의 신비‘로 집약되는 1950년대에 대한 기록은 풍부한 편인데,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베티 프리던의 1963년 저작이다. 하지만 사실 집에 틀어박힌 1950년대의 여성이라는 이 유명한 이미지는 당시 여성들의 실제 환경과는 차이가 있었다. 이는 오늘날의 반격과 특히 관련이 깊은 중요한 특징이지만,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노동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보니 그 영향은 종종 무시되고 큰 문제가 없거나 심지어는 의미 없는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1950년대 여성들은 서둘러 결혼을 하긴 했지만 취업 역시 많이 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전시 여성의 노동 참여를 능가할 정도로 속도가 붙었다. 그리고 반페미니즘적 광기를 자극하고 지속시킨 것은 여성의 가정으로의 후퇴가 아니라 바로 이런 여성의 수그러들 줄 모르는 직업 시장으로의 유입이었다. 현실에서는 아홉 시부터 다섯 시까지 일하는 여성들이 오히려 고분고분한 집순이이자 노리개라는 문화적 환상을 고조시켰던 것이다. 문학 비평가 샌드라 길버트Sandra M. Gilbert 와 수전 구바 Susan Gubar가 전후 시대에 대해 논평한 것처럼 “뇌를 써서 돈을 버는 여성들이 늘어날수록 소설, 연극, 시에서 여성을 육체밖에 없는 존재로 재현하는 남성들이 늘어났다“. - 118쪽
요컨대 1950년 대의 반격은 여성들을 ‘행복한 주부‘로 탈바꿈시키지 못했고, 그저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는 비서로 좌천시켰을 뿐이다.1950년 대 여성들의 모순적인 환경(경제적 참여는 늘었지만 문화적으로 지위가 궁지에 몰리고 약화된)은 반격의 공세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상황을 보여 주는 핵심적인 역설이다. - 119
지난 10년간 현대의 대중문화가 펼쳐 보인 잘못된 여성상은 여성의 현실을 가리면서 오히려 거울처럼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거대한 벨벳 커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커튼은 여성을 고치로 만들거나, 여성들을 신전통주의자로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그 두꺼운 직물은 여성의 권리에 대한 정치적 공세를 숨기는 동시에 미국 여성들이 자신을 판단할 때 갖다 대는 터무니없는 기준이 되어 버렸다. 그 잘못된 전선으로 인해 여성들은 그 거울의 타당성을 의심하고 비반사면이 가리고 있는 것을 들춰내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대량생산 된 거울의 이미지에 자신이 부합하지 않는다며 스스로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 122,123
˝그때 난 우리가 이 안에서 모두 함께라고 생각했어.˝ 동등한 권리에 대한 여성들의 집합적인 요구가 이에 저항하는 반격의 벽에 부딪히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조각들로, 그 하나하나 가 고립된 여성의 삶인 조각들로 부서지게 된다. 반격은 광고업자들의 설명처럼 ‘가족이 함께하는‘ 편안한 기분이 아니라 이제는 모든 여성이 혼자라는 으스스한 깨달음을 안겨 주었다. -124
길을 잃었다는 기분이 들었을 때는 사회적 흐름에 맞서기보다는 안전한 은신처를 찾는 것에 어쩔 수 없이 더 끌리게 된다. 거대한 남성 문화와 전투를 벌이기보다는 일상생활에서 특정한 남자와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더 긴요한 일이 된다. (페미니즘의 모든 강령을 조용히 지지하고 있더라도)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신중한 자기 보호 전략으로 보인다. 결국 이런 조건에서는 사회 부정의를 치유하려는 충동이 부차적으로 미뤄질 뿐만 아니라 잠재워질 수도 있다. 페미니스트 작가 수전 그리핀Susan Grifin의 말처럼 ˝혼자라고 느끼는 상태에서는 억압을 알고 있어도 침묵하게 된다.” - 124,125
여론조사 기관들은 남성의 저항이 어떤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가늠해 볼 수는 있지만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우리의 사회조사관들은 ‘남성 문제‘를 다루는 데는 항상 ‘여성 문제‘에 쏟던 열정의 10분의 1도 쓰지 않았다. 남성성에 대한 연구는 서가에서 보기 드물다. 문헌을 들여다보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우리는 남성성이 여성성에 비해 덜 복잡하고 덜 짐스러우며, 유지하는 데 손이 덜 간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남성의 상태에 대해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연구들은 이를 절대 장담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이런 연구들은 남성성이 연약한 꽃, 꾸준히 울타리를 만들어 주고 영양을 공급해 줘야 하는 온실의 난초와 같다고 밝힌다. 사회 연구자 조지프 플레 Toseph Pleck은 ˝성 역할의 위반은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마거릿 미드 Margaret Mead 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남성다움은 절대적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이는 매일 유지하고 다시 획득해야 하는데, 그것을 규정하는 데 본질적인 요소 중 하나는 양성이 진행하는 모든 경기에서 여성을 이기는 것이다.” 남성성의 꽃잎을 가장 처절하게 짓뭉갠 것은 페미니즘의 가는 빗방울인 것 같다. 128,129
지난 20년간 사회적 태도를 추적해 온 전국 규모의 거대한 조사인 ‘양켈로비치 모니터 Yankelovich Monitor‘의 설문조사가 밝혀낸, 크게 주목받지 못한 연구 결과는 우리를 그럴싸한 대답으로 훌륭하게 안내한다. ‘양켈로비치 모니터‘의 조사 요원들은 20년간 대상자들에게 남성성에 대해 정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20년간 압도적으로 우세한 정의는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이는 지도자나 운동선수, 바람둥이, 의사 결정자가 되는 것도, 심지어는 단순히 ‘남자로 태어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가족을 잘 먹여 살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133
이제는 이 연구의 전국 샘플 중에서 5분의 1이나 차지하는 이 집단은 주로 소득 사다리에서 굴러떨어지고 있는(그래서 이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한), 중위 연령 33세의 결혼하지 않은 젊은 남성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집단에 속한 남성들에게는 또 다른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들이 페미니즘을 두려워하고 비방한다는 점이다. 134
반격의 공개적인 의제를 설정하고 확산시켜 온 것은 도전자들보다 훨씬 많은 부와 영향력을 가진 남성들, 미디어와 재계, 정계를 주름잡는 남성들이기 때문이다. 가난하거나 교육 수준이 낮은 남성들은 반페미니즘 테제의 창시자들이라기보다는 수용자들이다.135
이런 자리는 남성이 여성에게 패배하는 곳이 아니다. 이런 자리는 남성들은 돌아보지도 않고, 여성들은 남자가 아예 없거나 실직 상태거나 불안정 고용 상태인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받아들이는 생의 막다른 곳에 있는 일들이었다. 137
적의 얼굴을 알 수 없을 때 사회는 그것을 만들어 낸다. 하락하는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과도한 집값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불안 같은 것들은 공격 대상을 필요로 하는데, 1980년대에는 그것이 대체로 여성들이었다. 138
1980년대의 문화는 여성들의 정치적 발언을 막아 버렸고 그 대신 쇼핑몰에서 자기표현을 하도록 방향을 틀어 주었다. 소극적인 소비자는 상품 구매 ‘권리‘를 행사하고, 계산대에서 자신의 ‘선택‘을 하는 가짜 페미니스트로 다시 판매되고 있다. 141
크리스토퍼 래시가 「나르시시즘의 문화 The Culture of Narcisim1에 서 밝혔듯 소비주의는 ˝남성의 억압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편을 드는 것처럼 보일 때˝ 여성의 진보를 가장 치명적으로 침해한다. 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