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있는 책들도 재밌고, 읽지 않은 책장에 꽂힌 책들 중에도 재미나 보이는 게 많고, 이웃님들의 산책, 읽은책에도 재밌어 보이는 책들이 가득~ 읽던 책 중도작파하고 딴 책 옮겨가지 않으려고 (읽던 책이 별로라면야 상관없지만), 그리고 책을 더 사지 않으려고 무진 노력중이다. (하지만 바로 어제, 애들책 중고 주문하다가 액수 맞추려고 한권 주문했다는 사실..)




<한자의 탄생>은 ... 이라고 쓰다가 상품검색 하니 <한자의 풍경>이다! 나 왜 철썩같이 탄생이라고 생각했나;; 딴 데 어디다가도 한자의 탄생이라고 쓴 것 같은데..?? 음.. 하지만 내용이 한자의 탄생이라서.. 그렇다고 변명..

갑골문부터 변화해온 한자의 역사를 더듬어보는 책인데, 의외로(?) 무척 흥미롭다. 갑골문이 금문을 거쳐 점점 추상화되면서 현대의 한자로 변화해온 과정을 그림으로 보여주니 이해가 잘 된다. 갑골문은 지금의 한자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게 그려져있어 재미있고, 귀엽(?)기도 하다. 또 이렇게 방대한 스케일의 역사를 보고 있으면 기묘한 느낌이 든다. 경탄과 함께 나 자신의 하찮음으로 인한 안도감이랄까. 



최근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인류가 동굴에 들어가 살기 시작했던 것은 전 지구적 차원의 자연현상과 관련 있다고 한다. 원래 지구의 자기장은 30만 년에 한 번 정도 역전된다. 이것을 지자기 역전이 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부터 약 4만 년 전에 대략 500년 동안 지구의 자북극이 남쪽으로 잠시 이동했다. 지구 자기장이 완전히 역전되지는 않았지만 짧은 기간 동안 정상상태에서 벗어났다가 원래 상태로 되돌아오는 이런 현상을 지자기 회유(geomagnetic excursion)라고 하며, 라샹 사건(Laschamps event)이라고도 부른다. 프랑스 라샹 마을의 용암 흐름에서 그 흔적을 발견하면서 이름 붙인 것이다. 이때 지구 자기장은 현재 수준의 6퍼센트 이하로 약화되었다. 그 후 약 250년 동안 다시 역전되어 지금과 같은 상태로 돌아왔다고 한다. 지구 자기장이 약해지면 더 많은 우주선(cosmic ray)이 대기로 들어와 오로라가 북극뿐만 아니라 지구 전역에서 관찰될 만큼 대기 변화가 컸을 것이다.
고대 인류는 지구 곳곳에서 나타나던 오로라를 바라보며 공포
를 느꼈을 것이다. 자외선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쏟아졌으며 번개와 고온 등으로 인해 생물이 적응하기 어려운 극한의 기후가 계속되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라샹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바로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 지역에서 동굴벽화가 처음으로 그려진 시기와 일치한다고 한다. 악천후와 높은 자외선 수치로 인해 인류의 조상들은 동굴에 들어 가서 살아야 했고 이때부터 동굴에 그림을 남기기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 40-41쪽



이런 거 말이다. 4만 년 전에 지구가 어쨌고.. 전 지구적으로 극한의 기후가 계속되면서 동굴벽화가 그려지기 시작했다는 둥.. 과학적인 내용은 다 이해 못해도, 멋있지 않은가...! 


그 외 특히 흥미로웠던 내용을 몇 가지 소개해 본다. 


진짜 소름인 어린아이 '동'자 이야기


갑골문에는 노예의 비참한 현실이 그대로 투영된 글자가 적지 않다. 행(幸) 자와 신(辛)자는 노예에게 가혹한 형벌을 집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 글자이다. 幸자는 죄를 지은 사람의 두 손에 채우던 수갑처럼 생긴 형벌 도구이다. 이 도구를 두 손에 찬 모습이 집(執) 자이다. 법을 집행(執行)한다는 말은 노예의 두 손에 수갑을 채우는 구체적 모습에서 왔다. 

(...) 

동(童) 자는 머리에 묵형을 받은 어린 노예를 나타낸 글자였다. 고대에 동요(童謠)란 남자 노예가 부르는 노동요를 뜻했다. 어린이의 순수한 동심을 표현하는 현대의 동요와 머리에 낙인이 찍힌 어린 노예의 숨 가쁜 노동요가 같은 단어라는 사실은 우리를 소름 끼치게 한다. 고대에는 형벌을 받은 사람은 관모를 쓸 수도 없고 머리도 묶지 못했다. 나중에 이 글자는 머리를 묶지 않은 어린아이를 가리키게 되었고, 별도로 노예를 나타내는 하인 동 자가 만들어졌다. 첩(妾) 자는 머리에 辛으로 묵형을 받은 여자 노예를 표현한 글자였다. 이것이 나중에는 정식 부인이 아닌 소실을 의미하게 되었다.  - 151~153쪽






우리나라 여성의 이름에 많이 쓰였던 '정' 자 이야기

정(貞) 자는 점을 칠 때 사용하던 나뭇가지를 정(鼎)에 꽂는 모습이다. 갑골의 표면에 직선으로 균열이 생긴 것을 卜 자로, 좀 더 복합적인 균열의 모습을 조(兆) 자로 표시하여 이를 토대로 무슨 일이 생길 조짐이나 징조를 예측하였다. 貞 자에 나타난 균열은 직선으로 갈라진 것으로 이 선의 각도나 모양으로 점괘를 판단했다. 여기에서 貞 자는 '똑바르다', '정도를 지키다'라는 의미로 확대되었다.

 나중에는 남편이 죽었지만 재혼하지 않는 여성을 가리키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글자를 ‘곧을 정‘으로 읽으며 20세기 한때 여성의 이름에 자주 사용하였다. 이름자로 선택할 때 이 글자가 원래는 점복을 담당했던 사람을 나타내었고 나중에는 여성에 대한 봉건적 속박을 강조하는 의미로 쓰였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올바르고 곧은 성품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자를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독 한국 여성의 이름에 자주 쓰인 현상은 우리 사회가 여성의 정절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전통적 습속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 136,137쪽



아래는 귀여운 동물 갑골문.. 





다음으로 읽고 있는 책은, 나만의 페미니즘 독서목록 5월의 책, <을들의 당나귀 귀 2>! 



이 책은 팟캐스트 '혼밥생활자의 책장'을 즐겨 들을 때 좋아하게 된 손희정 영화평론가가 기획한 책이라 사두고 못 읽고 있었다.. 동명의 팟캐스트에서 진행되었던 내용을 담았다고 한다. 손희정과 임윤옥, 김지혜 세사람에 더하여 한 명의 게스트를 초대하여 대화를 나누는 방식인 듯하다.

아직 나혜석을 다룬 첫 챕터만 읽었는데, 참 좋다. 지난달 책이었던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의 엮은이 장영은님이 게스트다. 나혜석 책 리뷰 쓰기 전에 이 부분 먼저 읽었다면 좀더 리뷰를 잘 쓸 수 있었을 것 같아 아쉽... 



영은  (...) 자기 스스로에 대해 말하고 쓴 최초의 여자가 바로 나혜석인 거예요. 스스로 자기 삶을 거침없이 이야기한 사람. 그 당시 여성 지식인들한테 "당신 이야기 좀 해주세요" 하고 청탁을 하면 대체로 부끄럽다, 할 말이 없다, 이러면서 말을 안 해요. "나는 보잘것없는 존재다, 나중에 이야기 하겠다" 이러면서 미루죠. 그래서 그들이 남긴 자기 이야기는 대체로 환갑을 넘어서 나오거나, 그런 식의 회고록이죠. 그런데 나혜석은 달라요. 그는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바로 그 순간에 말과 글로 정면 돌파한 거의 유일한 사람이에요.  - 19쪽 


영은  나혜석은 ' 한 사회의 소수자는 스스로 글을 쓰고 말을 할 떄 그나마 기회가 생긴다. 기회가 생긴 다음에 사람이 될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 32쪽 


영은  (...) '사람은 누구한테나 자기만의 힘이 있다. 아무리 보잘것없고 아무리 가진 것 없고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자기만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힘이 한 가지, 혹은 두 가지가 있다.' 이런 말도 해요. 저는 그 말이 어떤 글보다도 크게 다가왔어요. 이혼 후 아이들까지 다 뺏기고, 하는 일마다 망하고, 정말 생계가 막막해지죠. 그래도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내게 있는 힘이 뭘까?'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고, 끝까지 쓰고 그렸죠. 생의 마지막에 양로원에 있으면서도 엄청나게 많이 썼다고 해요.

      (...) 끝까지 뭐라도 하려고 노력했던 나혜석의 모습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사람들이 흔히 나혜석이 폐인이 되어 길 위에서 쓰러져 죽었다고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이, 그렇게 무기력한 모습은 아니었다는 거죠.    - 42쪽 



다음은 <퀴어, 젠더, 트랜스>. 



오랜만에 퀴어 관련 책을 집었다. 작년? 아니 재작년인가;; '퀴어' 주제독서 한다고 한참 읽다가, 두권 남겨놓고 정리 페이퍼를 쓰지 못한 채 미결로 남았는데.. 이번에 끝내 버릴 마음. 나머지 한권은 <조선의 퀴어>다. 

간만에 읽는데, 역시 흥미롭다. 퀴어 당사자들이 처한 상황이 흥미롭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고, 이론이 흥미롭다. 왜냐, 젠더-성별 이분법이라는 것이 너무나 당연시 되는 사회의, 그러한 규범을 딱히 의문 없이 받아들이며 자라온 나에게 사유를 확장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사람은 여자 아니면 남자, 그게 얼마나 당연하게 여겨지는지, 너덧살만 되도 아이들은 누군가를 보면 여자다 남자다 구별하고, 애매모호할 땐 어느 쪽이냐고 답을 요구한다.  



지식은 마치 이와 같았다. 세계 안에 있는 무언가를 만지고 다루는 유일한 방법은 사유의 도구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사유의 집게로 집어내지 못한 것은 어떤 것도 알 수 없었다.  - 20쪽

마치 동성애자들이 끼를 떨거나, 서로 손을 잡거나, 자신의 성적 생활에 관해 이야기하는 등 동성애자라는 것을 공공연히 ‘과시‘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때에 한해서 동성애자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우리는 평등이 우리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는 상황에서 평등을 논의하려고 한다. -  35쪽

젠더를 권리의 문제로 만드는 일은 젠더 역할이나 고정관념에 순응하지 않았을 때 어떠한 결과를 마주할지 정하는 권한을 개인에게 준다는 것을 뜻한다.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젠더인지 아닌지와는 상관없이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다.  - 57쪽


후.. 읽고 싶은 책은 많고 시간은 늘 왜이리 없는지. 그래도 좀 차근차근 정리하며 가고 싶다. 남은 5월에 이 책들을 다 끝낼 수 있기를 바라며..(어려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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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5-24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자의 탄생>도 그럴 듯한데요! 왜 ‘풍경’으로 했을까 급궁금해지네요!ㅎㅎㅎ 소개해주신 내용만 봐도 넘 흥미롭습니다. 갑골문 신기하지 않나요? 저는 한자 모양이 형성될 때를 보면 오히려 글자 기억하기가 훨씬 쉽더라구요. 오늘날의 글자가 만들어지고 나면 오히려 외워야 하는 글자가 되어버려 더 어렵게 느껴지는 듯합니다. 이 책 5월 안 넘기고 읽어야겠어요*^^*

독서괭 2023-05-23 21:02   좋아요 0 | URL
저 pc 끄고 나서 생각하니 태그에는 이번엔 ”한자의 발견“이라고 쓴 것 같은데.. 확인을 할 수가 없네요 ㅋㅋㅋㅋ 풍경 왜이리 입에 안 붙는지 ㅋㅋ 갑골문 정말 신기하고 재밌더라고요!! 저도 재밌는데 화가님은 더 재밌어 하시겠다 생각하며 읽고 있어요~ 어서 시작해보세요^^

난티나무 2023-05-24 04: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글자에 얽힌 몰랐던 사실!!!! @@
<조선의 퀴어>도 저한테 있지 말입니다.. 있기만 합니다.^^;;;;;

독서괭 2023-05-24 22:2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조선의 퀴어> 재밌는데 중간에 딴 길로 새면서 완독을 못했어요.. 그런 책이 한두권은 아니지만 ㅠㅠ

다락방 2023-05-24 08: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한자의 풍경 재미있는데요? 그렇지만... 또 사면 안되겠죠? 저는 그만 사야겠죠? 사서 조카 줄까요? 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05-24 22:3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타미 조카 아직 어리지 않나요? 이거 재미있으려면 역사나 한자를 원래 좋아하거나 성인에 가까운 나이여야 하지 않을까 싶고..

책읽는나무 2023-05-24 2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요즘 한자 공부를 하고 있거든요. 진짜 진짜 안 외워지긴한데 한자 형성과정 이야기 들여다 보면 재미나고 신기하긴 합니다. 근데 여성들의 여자 女가 들어간 단어들 이야기를 읽다 보면 화가 나고 열불 나서...ㅜㅜ
때려치우려다....ㅋㅋㅋ
돌아서면 이미 머릿 속에서 한자들이 사라져서.....ㅋㅋㅋ

독서괭 2023-05-24 22:32   좋아요 1 | URL
오 한자공부를 하시는군요!! 한자는 갑골문부터 변해온 과정을 봐도 많이 변한 글자가 많아서 외우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ㅋ 그리고 의외로 상형문자에서 시작했지만 표음문자화가 많이 되어서 생긴 것과 뜻이 전혀 관련 없는 게 대부분이라 하네요.
돌아서면 사라져 화도 낼 수 없다 ㅋㅋㅋㅋㅋ

2023-05-24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24 2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24 2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24 2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24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3-05-25 0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퀴어 하면 독서괭님 아니겠습니까? ㅋㅋ
한자의 풍경 책 재미있을거 같아요. 제가 한자세 완전 취약하지만 ㅎㅎ (고등학교때 한자 ‘가‘ 받았습니다. 수우미양가 중 가 ㅋ)

독서괭 2023-05-31 13:01   좋아요 0 | URL
퀴어 하면 저인가요?? 언제부터 ㅎㅎㅎ
한자 ‘가‘ 받으셨다니, 역시 새파랑님은 서양문학파시군요.. 라고 쓰고 보니 일본문학도 좋아하시던데 ㅋㅋ

그레이스 2023-05-31 0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액수 맞추려고 주문할때가 있죠.
그런데 그렇게 끼어 들어온 책으로는 너무 좋은데요?^^
벼르던 책을 사는거니 좋을수밖에 없네요~♡

독서괭 2023-05-31 13:02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맞아요, 얼결에 주문한 책인데 생각보다 더 좋아서 기쁩니다^^
새로운 세계를 공부하는 맛을, 쉬운 입문서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