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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잠 - 이보다 더 확실한 행복은 없다 ㅣ 아무튼 시리즈 53
정희재 지음 / 제철소 / 2022년 10월
평점 :
나는 제법 식탐도 있는 편이다. 하지만 '잘래, 먹을래?' 선택의 순간에는 망설임 없이 잠을 선택했다. 호강에 겨운 소리이긴 하지만, 밥 먹으라고 깨우는 것만큼 귀찮은 일도 없다. 가장 논리에 안 맞는 말이 '먹고 자'다. 아니, 먹다 보면 깨잖아. 이 기세 그대로 푹 자야 개운하다고요. 제발 날 내버려둬요! - 20쪽
...뭐지? 내 얘긴가? 이거 내가 썼나?
이 책을 쓴 정희재 작가는 잠에 일가견이 있는 듯하다. 잠에 관한 지극한 애증이 책 속에 잔뜩 묻어난다. 잠, 너는 무엇이기에 나를 이토록 갈망하게 하느냐. 그 갈망이 충족되지 못할 때는 또 엄청난 고통을 준다.
나 또한 잠 많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 자로서 읽으며 많이 공감했다. 술술 읽히면서 공감도 가고 재미도 있는 글들. 얼마전 읽은 <안녕, 나의 순-정>과 좀 비슷한 느낌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잠이 많아서, 엄마가 아침에 깨우느라 매번 고생하셨다. 엄마아빠 또는 조부모님들이 하는 그 말 있잖은가? "꼭 너 같은 딸(아들) 낳아 고생해봐라!" .. 그말 그대로 내게 실현되었으니 우리 첫째가 날 닮아 잠이 많다.. 아침에 깨우기 힘들다 ㅠㅠ 아침에 일찍 일어나던 아이들도 사춘기 되면 못 일어난다는데(밤에 안 자서 그런건가?) 벌써 이러면 나중에 깨울 일이 걱정이다. 얼마전에 진심으로 엄마에게 사죄했다. 깨우느라 많이 힘드셨겠다고 ㅋㅋ 엄마는 핏 하고 웃기만 했다.
하루는 밀크티를 마시면서 스님(괭주: 작가가 티베트에서 만난)이 지나가는 말투로 한마디 툭 던졌다.
"난 잠자리에 들 때가 젤 행복하더라."
갑작스러운 길티 플레저 고백이었다. 속으로 은근히 놀랐다. 스님은 수행자가 아닌가. 불교의 초기 경전인 『숫타니파타』에는 잠에 대해 엄하게 기준을 제시하는 부분이 나온다.
- 아무때나 잠자는 버릇이 있(....) 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 34쪽
이런, 나는 불교에 입문은 못하겠구나. '갑작스러운 길티 플레저 고백'이라는 표현에 푸핫 웃었다. 잠자리에 들 때가 행복한 사람은 많을 테다. 하지만 근면, 성실, 부지런, 열정 등등의 이미지를 가진 사람에게는 잠은 다소 죄악시되는 경향이 있다. 본인이 택한 거라면야 다행인데, 우리 사회는 근면, 성실, 부지런, 열정 등등을 미덕으로 칭송하면서 잠꾸러기들을 게으르다고 비난하곤 한다. 이 책에 나오는 '타이밍' 에피소드도 그렇다. 나는 학창시절에 못 들어본 약인데, 저자가 나보다 연배가 높은가봉가. 학생들에게 무분별하게 잠 깨는 약을 팔았다고 하니 오싹한데, 최근 나오는 드링크들은 카페인 함량이 더 높다고 하니 걱정스럽다.
수면의 황금기가 곧 인생의 황금기임을 모르는 젊은이는 상상도 하지 못한다. 새벽에 세 번, 네 번 깨느라 통잠을 못 자는 시절이 온다는 것을. 그 뿐인가. 부모나 조부모가 새벽에 깬 이후에 다시 잠들지 못한다고 호소해도 그게 얼마나 막막하고 몸에 무리가 되는 일인지 구체적인 실감이 없다.
(...)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잠이 흔해만 보였네. - 44, 45쪽
나는 20대 중반, 취업 전 불면을 겪으며 고생했다. 하지만 취업 후 불면은 사라졌지.
그러나 출산.. 신생아를 돌보는 일은 끝없는 잠과의 투쟁인 것이었다. 수면 루틴? 그런거 없다. 아이의 루틴이 나의 루틴이 된다. 안온하게 꿈의 세계에 잠겨 있다가 갑자기 멱살 잡혀 끌려나오는 느낌이란..
8시간 이상 자놓고도 자다가 한번이라도 깨면 다음날 '잠을 설쳤다'며 징징대던 나에게 이건 정말 가혹한 시련이었다. 그래, 깨우는 거 좀 힘들면 어떠냐. 이젠 밤에 거의 안 깨고 쭉 잘 자주는 첫째에게 고마워해야겠다.(둘째는 아직 가끔 깨고, 아침에는 거의 항상 일찍 깨신다)
(괭주: 닐 스탠리 박사의 말)
-잠은 이기적인 일이며, 어느 누구와도 여러분의 잠을 함께 나눌 수 없습니다. - 76쪽
잠은 이기적인 일이다! 크, 명언이다.
나는 독서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읽는 행위에 있어서는 오롯이 홀로 하는 일이므로. 같은 화면을 같은 속도로 볼 수 있는 영상과는 크게 다르다. 하지만 독서는 같은 책을 각자 읽거나, 같은 책을 읽지 않더라도 그 감상을 공유하는 게 가능하다. 잠과는 달리..
그러고보면 잠과 독서를 좋아하는 짝꿍을 둔 내 옆지기는 쫌 외로웠겠다.
출산 전에 나의 주말 오전은 존재하지 않았다(대체로).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내 옆에서 남편은 홀로 티비를 보곤 했다. 음, 외로움을 넘어서 짜증이 났을 수도 있다. 잠이 많지 않은 사람은 잠 많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법.. 이 인간은 맨날 퍼잔다고 생각했겠지.. 슬퍼지니까 그만두자. 애들 태어난 후에는 늦잠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나는 열배로 부지런해졌다 ㅠㅠ
게으르고 싶다. 자다 깼다가 그대로 잠에 취해 다시 자서 꾸던 꿈을 이어꾸고 싶다. 뒹굴거리다가 읽던 책을 조금 잃다가 또 잠에 빠져들고 싶다!!!
이번주는 월~금 5일간 모닝루틴을 성공했는데, 그래도 내 눈을 뜨게 하고 몸을 일으키게 하는 건 책을 읽고 싶다는 열망이다(어쩌면 요의가 더 중요할 수도 있지만.. 그건 좀 없어보여).
어젯밤 도착한 <지적 리딩을 위한 기본 영단어 300 WORDS - 이 시대 작가들이 자주 쓰는 바로 그 단어>를 펼쳐 읽는데 아주 재미있는 거다. 문제 푸는 것도 신나고. 아휴. 시간이 부족해서 아쉽.
회사 행사로 신청한 책 <시인의 집>은 오늘 받아서 또 신난다.
지인 중에 일주일 평균 4-5시간 잔다는 사람이 있는데, 보면 늘 나보다 눈이 반짝거리고 기운이 넘친다(나는 8시간 내외로 잔다..). 이 분은 매일 3-4시간을 더 누린다는 게 아닌가. 부럽기 짝이 없다.. 아니, 그렇게는 바라지도 않으니 8시간 자면 그분처럼 눈이 반짝거리고 기운이 쌩쌩 나면 좋겠다. (심지어 그 분은 나보다 나이도 많고 애도 둘이라고 ㅠㅠ )
리뷰인데 왠지 페이퍼처럼 되면서 리뷰책도 아닌 다른 책 사진을..
더불어 동료에게 선물한 드립백세트 사진도^^
(배경으로 전락한 슬픈 다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