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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시간 ㅣ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박슬라 옮김 / 오픈하우스 / 2012년 5월
평점 :
<하드웨이>, <1030>, <사라진 내일>에 이어 네번째로 읽는 잭리처 시리즈.
네 권 중 가장 재미있었다. 리처에 대한 정보가 가장 많이 담겨 있기도 했다. 그는 군인 가족 출신으로, 어머니는 프랑스인이다. 부모도, 조부모도, 두 살 위의 형도 모두 죽었다. 그야말로 홀홀단신이다.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임이 객관적인 보고서를 통해 전달된다.
그는 모든 종류의 소형화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았다. 육해공군이 공동으로 개최한 1,000미터 소총사격대회에서는 최고점을 기록했다. 적성 보고서에서는 그가 교실에서 평균 이상의 성취도를 보였고 전장에서는 매우 우수하며 영어와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고 스페인어 실력 또한 무난하며 모든 휴대용 무기에 능통하고 맨손 격투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빼어나다고 적혀 있었다. - 전자책 인용
육체적 능력과 지적 능력을 모두 갖춘 사람. 그리고 커피를 즐길 줄 아는 사람.
향긋한 커피 냄새가 집 안을 가득 채웠다. 콜롬비아산이로군. 리처는 생각했다. 거칠게 간 신선한 원두야. -전자책 인용
거의 완벽에 가까운 남자가 아닌가? 하지만 파트너로서는 결정적인 결점이 있으니 정착을 못 한다는 것이다. 완벽한 떠돌이 인생. 그는 여벌옷을 가지고 다니는 대신 며칠에 한번씩 새옷을 사 입고 입고 있던 옷은 버린다. 이런 놀라운 행태에 대해 잔소리하는 사람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여기에 대해 리처도 할 말은 있다.
가게 주인은 현금으로 120달러를 받았다. 나흘 정도는 이걸로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에 30달러 꼴. 1년을 계산하면 1만 달라가 넘는 액수다. 의복만으로 1년에 1만 달러. 어떤 사람들은 미친 짓이라고 하겠지. 그렇지만 리처는 이렇게 사는 게 좋았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옷에 쓰는 돈이 1년에 1만 달러에도 턱없이 모자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좋은 옷 몇 벌을 옷장에 모셔두고 지하실에서 세탁을 한다. 그렇지만 옷장과 지하실은 집이라는 테두리에 둘러싸여 있고 집은 1년에 1만 달러보다 훨씬 비싸다. 사든 빌리든, 어느 쪽이든 말이다. 게다가 때맞춰 수리하고 유지보수를 하는 데도 돈이 든다.
그러니 정말로 정신이 나간 건 누굴까? - 전자책 인용
맞아. 니 말 맞아. 하지만 그래도 네 쪽이 더 정신이 나간 걸거야...
이번 이야기에서 잭 리처는 그가 탄 버스가 우연히 사고를 당하여 시골 마을 볼턴에 머무르게 되고, 거기에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마약밀매 현장을 목격한 증인인 노부인 재닛 솔터는 재판에서 증언하기 전까지 경찰들에 의해 신변 보호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 마을에는 몇년 전 유치하여 지은 교도소가 있는데, 만일 교도소에서 탈옥이나 패싸움 등이 발생하여 싸이렌이 울리면 경찰관 전원이 출동하여 경계근무를 서야만 하는 약점이 있다. 마약밀매단이 이 점을 이용해 재닛 솔터를 해치려 할 것이라고 예상한 리처는 경찰들과 협력하여 그녀를 지키고자 하는데...
재닛 솔터. 이 노부인 정말 환상적인 분이다.
"(...) 난 옥스퍼드대학교의 도서관학과 교수었어요. 거기서 보들리언도서관을 운영하는 데 도움을 줬고. 나중에는 미국으로 돌아와 예일대학교 도서관을 운영했지요. 그런 다음에 퇴직해서 마침내 고향인 볼턴에 돌아온 거예요."
"부인께서 가장 좋아하는 책은 뭡니까?"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책은 뭐죠?"
"전 없습니다. 부인은요?"
"나도 없어요." -전자책 인용
무려 옥스퍼드대학교 교수에 예일대학교 도서관을 운영했던 분이 제일 좋아하는 책은 없다고 대답하다니. 뭔가 멋있다. 나도 앞으로 그렇게 대답해야지. 하지만 내가 그렇게 대답하면 그냥 책을 안 읽은 사람으로 보이겠지...
게다가 목격자라는 신분으로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걸 받아들이는 이 자세를 보라.
"나 자신이 매우 대단한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무슨 특권 말인가요?"
"내가 이제껏 지켜온 삶의 원칙대로 행동할 기회를 경험하고 있잖아요. 세상을 살다보면 끔찍하고 사악한 일을 마주하기 마련이지요. 그렇지만 나는 우리의 법제도를 믿어요. 피의자들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고, 동시에 그들에게 불리한 증거를 갖고 있는 증인들을 대면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고도 믿어요. 하지만 말이야 항상 쉽지. 그렇지 않나요? 그걸 행동으로 보여줄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무척 드물어요. 감사하게도 내겐 그런 기회가 찾아왔지요." -전자책 인용
와우. 교수님 너무 멋져요 ㅠㅠ
또 이 책에는 멋진 여성이 한명 더 등장한다. 바로 수잔 터너. 리처가 지휘관으로 있었던 110특수부대의 현 지휘관이다. 이번 책의 특징 중 하나는 리처의 베드씬이 안 나온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수잔 터너와 전화로 썸을 타기만 하고 만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이 둘은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도움을 주는 관계이지만 썸을 타면서 티키타카도 하는데, 그게 또 재밌다.
"전 애꾸눈에 꼽추에다 나이는 쉰 살이나 돼요."
"그럴 줄 알았어.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치 챘지."
"못 되게 구시긴."
"키는 165에서 170센티미터 정도일 것 같은데. 목소리가 후두를 통해 나는 걸 보면 꽤 말랐고."
"그러니까 제 가슴이 절벽이라고 하시는 건가요, 지금?"
"기껏 해봐야 75A일 거고."
"젠장." -전자책 인용
그리고 이 장면. 이거 예전에 다락방님 페이퍼에서 본 것 같다. 철벽 치는 수잔 터너 ㅋㅋ 너무 웃김 ㅋㅋ
리처가 물었다.
"자네 결혼했나?'
그녀가 물었다.
"선배님은요?"
"안 했지."
"한 번도?"
"한 번도."
"별로 놀랍지도 않네요."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전자책 인용
"다른 건요?"
"결혼은 했나?"
그녀는 대답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 전자책 인용
왜 안 가르쳐 주는거야 ㅋㅋ 리처 얼마나 궁금했을까.
또 이번 편에서 리처가 한국에서 머물렀다는 얘기가 나온다. 사우스다코타 지역이 그렇게 추운 곳인가? 리처는 마을에서 머무는 동안 추위 때문에 엄청나게 고생한다. 추워 죽겠다는 식의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그런데 리처가 경험한 한국도 비슷했나 보다.
"지금 이게 춥다고요?"
"따뜻한 건 아니죠."
"이 정도면 약과입니다."
"알죠." 리처가 말했다. "한국에서 겨울을 나 봤으니까. 이것보다 훨씬 매섭죠."
"그런데요?"
"군대가 따뜻한 외투를 지급해줬거든요."
"그리고?"
"그리고 한국은 최소한 재미있기라도 했죠." -전자책 인용
시리즈 중에 한국이 배경인 것도 나오려나? 아직까지는 없는 것 같은데.
참, 이번 책에서는 "~하오"체가 사라졌다! 말투가 훨씬 자연스러워져서 읽기 편했고, 어쩐지 나이들고 무례하게 느껴지던 리처가 젊고 예의바른 청년으로 느껴졌다. 축하합니다, 잭 리처. 번역 덕에 회춘했어요. 나는 이 차이가 출판사가 바뀌었거나 번역자가 바뀌어서일까 했는데 지금 보니 출판사 동일(오픈하우스), 역자는 <사라진 내일>도 번역했던 사람이었다. 아마 출판사 내에서 하오체의 부자연스러움을 지적했던 게 아닐까 싶다.
잭 리처 시리즈 중 고작 네 권 읽었을 뿐이지만, 마지막 100쪽 정도에서 숨가쁘게 몰아치는 게 특징인 것 같다. 어젯밤에도 막판에 손에서 놓지 못하고 끝까지 읽어 버렸다. 엄청난 박진감과 속도감이다. 매권마다 장면과 상황 묘사도 굉장히 세세한데, 이런 작품을 꾸준히 써내고 있는 작가, 대단하다.
과연 잭 리처는 재닛 솔터를 지켜내고 범인을 때려잡을 수 있을까? 궁금하다면 읽어보시라!
※ 잭 리처 시리즈의 추천 포인트
1. 액션/스릴러물이라는 장르상 폭력적이고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야기 전개에 별로 필요하지 도 않으면서 과하게 집어넣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수준이라고 봄.
2. 잭 리처의 신변잡기 정보를 모아가는 재미(예: 잭리처의 양치법, 잭리처의 다림질법)
3. 잭 리처의 티키타카/농담 센스
4. 추리와 액션은 덤.
다음은 <악의 사슬> 이다!
어느 때보다도 맑고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신호가 내려진 순간 상대가 누구든 천 배는 빨리 허리춤에서 총을 뽑아들고 발사할 수 있을 것 같은 흥분과 설렘이 느껴졌다. 놈이 총을 들어올리기도 전에 땅속에 묻힌 광맥을 감지하고 쇠 냄새를 맡고 도면을 그리고 부품을 주조해서 직접 총을 만들고도 시간이 남을 것 같은 그 오싹한 고양감.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죽음이 나를 두려워하리라. 두려움을 공격성으로. 죄책감을 공격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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