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성별을 알고 나니 여러 가지 감정이 밀려온다.
우선 시댁 형님댁에는 딸만 둘이라 언제나 명절때는 아들이야기가 언급된다.
우리에게는 아들이고 딸이고가 문제가 아니라 아기가 문제였었다.
하지만 내 맘 한구석에 아들을 낳아 칭찬받고 픈 간사한 마음이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가끔은 얄미은 형님에게도 으스대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란 사람 그렇게 간사하고 못 되었다.
하지만 뜨게질을 하면서 여자아기 옷이 훨씬 더 예쁠 때 그리고 각종 블로그의 아이옷 만드는 것을 보면서 예쁘게 만든 여자아기옷을 볼때 남자 아기라면 허전하겠다 싶었다.
옆지기가 길을 가다 귀엽고 여우같은 여자 아이의 볼을 매만지거나 머리를 쓰다듬고 눈을 떼지 못할 때 딸을 좋아하겠구나 싶었다.
딸이라고 했을 떄 갑자기 나는 엄마의 삶을 떠올렸다.
엄마는 나를 30에 낳으셨다.
결혼도 늦으셨지만 친구들 엄마보다 우리 엄마는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나이 많은 엄마의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
어쩌면 우리 복이와 내가 그런 사이가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내 나이는 서른을 훌쩍넘어 30대 중반까지 넘어서려는 시기인데 늦어도 더 늦은 거지만.
딸은 엄마 나이가 많을 수록 좋지 않다는 걸 요즘 뼈져리게 느낀다.
몸이 안좋으셔서 엄마가 무엇을 해주면 먼저 걱정부터 된다.
엄마가 몸이 안좋으시면 든든한 오빠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몸이 안좋으셔서 복이가 태어나도 여느 사촌이나 친구들처럼 복이를 맡기고 다시 직업전선으로 돌아 갈 수 없을 게 뻔하다.
어쩌면 내 아기 복이에게 나는 똑같은 고민을 안겨줄 듯해서 걱정이 앞선다.
그럴려면 건강해야 겠구나 우리 엄마보다는 몇배로.
적어도 엄마는 내 나이때 펄펄 날랐다. 지금의 나처럼 비실대지는 않았으니.
딸이라서 밀려오는 걱정
아기를 갖기위해 했던 고생을 우리 아기도 할 지 모르겠구나.
정 많고 눈물 많아서 냉정한 남자를 만나도 눈물 바람으로 살다가 엄마 마음 아플까봐 차마 이야기도 못하면 안되는데.
내가 딸이어서 할 수 없었던 일들.
여행을 갈 수 없었고 밤늦게 돌아다닐 수도 없었고 어릴 때는 자전거도 못타게 하셨지. 그래서 언제나 불만이었다. 다시 남자로 태어나서 이 세상 펄펄 누비며 살고 싶다.
그런 고민을 우리 아기가 할까 마음아프다. 참으로 기우겠지.
나는 이런 걱정이 되는데
남자는 또 다르다.
남자가 바라는 건 확실히 아들이다.
아니라 해도 그렇다
함께 운동을 하고 싶고 산을 가고 싶고 자전거 하이킹을 가고 싶고 목욕을 가고 싶고. 그 많은 것을 꼭 아들과 하고 싶은 모양이다.
어릴 때 부모에게 이 녀석이 아들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소리를 들으며 또 들으며 자랐다.
야구선수가 야구 방망이를 흔들때면 저런 아들하나있으면 좋겠네. 하는 말도 들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한 그 소리가 가슴아팠다.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우리 아기가 그런 말로 가슴아플까봐 내가 겪었던 것을 고스란히 물려받을 까봐 속상하다.
차라리 아들이었으면 마음 편했을까?
엄마와 딸
한 여자로서 하나의 끈을 공유하며 사는 듯하다.
어릴 때 나는 엄마를 싫어했다.
너무 무섭고 너무 완고했고 다독여 줄줄 모르는 엄마는 계모같았다. 하지만 막상 결혼식때 가장 먼저 눈물을 터뜨린 사람이 엄마였다. 나는 늘 천사같이 잘해주던 아빠가 울 줄 알았다.
엄마와 딸.
든든하고 힘이 되는 전혀 두려움이 없고 자신감을 주는 엄마가 되어야 할 텐데
어떻게 하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