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만난 모 대학 교수님은 그 때의 만남이 두번째였다. 만나기 전까지는 내게 전화할때 항상 선생님이라고 부르셨다.
나는 대화를 나눌 때의 습관이 있는데
그건 아 정말혹은 정말이에요? 진짜요? 아 재미있네요를 연발하는 것이다.
진짜 재미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좋아해서 나도모르게 습관이 되어버린 듯하다.
내 그런 반응에 보통 사람들은 신나서 이야기를 한다.
그 교수님도 그랬다.
그런데 그런 대화의 단점이 있다.
아니 단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만의 문제일지도
대화를 하다보면 상대방이 나를 어리게 보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사실 대화자체가 어린이아가 묻는 느낌이 날 수도 있을것이다.
사람들은 무게잡고 냉랭하고 도도하게 있으면 친절하고 어려워한다. 하지만 조금만 상냥하고 편해지면 또 상대의 의사를 너무 존중하는듯하면 막대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역시 그것도 나만의 문제일지 모른다.
하지만 내게 있어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 교수님은 나와 대화를 하는 도중 마치 나를 그의 제자로 착각한듯 말투가 반말로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일적으로 만난 사람과는 웬만해서 반말을 쓰지 않는데 너무 빠른 진도랄까 조금 기분이 얹잖았다.
그런데 다음날, 바로 내가 생강차를 선배에게 전해주려고 한날에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이유는 원고만 주었는데 시디를 주고 싶단다.
하지만 나는 정말 시간이 안되었다.
오전에는 오후에 못할 일을 처리해야하고
점심에는 시청에 가야 하고 그 약속이 끝나기 무섭게 홍대를 가야했다.
그 두 약속을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원주에서 서울에 내려오셔서 오후에는 내려가시니 오전에꼭 봐야한다고 하시는거다.
시간 약속을 잡는 데 점심때 시청으로가야한다고 여러번 말했음에도 또 여러번 그럼 강남으로 오라고 하신다. 그것도 점심때
도무지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교수님의 그 억지 약속에 나는 일정이 조금씩 밀리고 마침 내 오전 일이 늦어져 10분정도 늦을 걸 예상했는데 약속시간 한 시간전 숙소인 신촌근처에서 만나기로 했으므로 나는 30분정도 약속을 미룰 것을 제안드렸다.
그런데 너무 늦다고 하신다.
그래서 10분 늦을 것 제안했는데 역시 너무 늦어서 안된다고 하신다.
오후 세시에는 원주에서 모임이 있다고 하셨다.
칼같은 분이셨나?
그러면서 그냥 원주로 가신단다. 가서 전화를 하신다고 했다. 내기억에는 분명히.
나는 방법이 없어 그러시라고 했다.
하지만 그 분과의 약속때문에 일찍나온 나는 한시간 길에서 서성여야 했고
모든 약속의 딜레이 되어 버거운 하루를 보냈었다.
저녁에는 너무 지쳐 잘 도착하셨나는 전화를 하기에도 버거웠는데 그래도 내가전화를 드려볼까 하다가 그분이 주신댔지 하는생각이 났다.
그분의 모임과 일정을 알수없는관게로 내가 연락드리기도 좀 그랬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제
연락을 했더니 교수님 목소리가 좀 심드렁했다.
웬지 삐친 느낌.
하!
조금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하신다고하시더니 연락이 없다는 말을 했더니
"그쪽에 연락한댔지? 내가 한댔어?"
과감없는 그분의 말. 역시 반말투.
갑자기 그분과 일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렇다고 일을 하고 안하고는 아니지만 말이다.
내가 그 교수님을 만난것은 책때문이었다.
그 교수님의 책을 한권 진행하고 있는데 그 책이 서점으로 풀리지않을 것같아 다시 책을 내려고 나를 만난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교수님의 책은 도합 3권이다.
그런데 모두 물에 관련된 책이다.
모 이온수기 회사와 함께 만드는 책들인 거다.
그래서 교수님은 좋은 책을 만들고 싶지만 비용을 대는 이온수기 회사는 간단하게 회원이나 영업사원이 돌릴 책을 만들려고 한다.
그 중간에서 나는 흔들리지 않고 책을 만들어야 하는 일을 맡은 것이다.
교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도 두번만났을때도 교수님은 아는 사람이 어떤 책을 만들었는데 12만부가 나가고 또 어떤 사람이 쓴 책은 13세나 인쇄를 하고 그런이야기를 하면서 이번 책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잘나가는 책은 다르다.
잘나가는 책에는 저자의 자랑이 들어있지 않다.
저자의 연구 성과 저자의 연구가 실린 논문 사진
어렵디 어려운 물에대한 알카리수 환원수 전해알카리수 심층수
독자는 이런걸 중요시하지 않는다.
약장사 책같은 독자들의 사용후기 역시 모 회사의 광고책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이 책이 십만부가 넘게 팔리길 원하는 거였다.
지난번 만남때 거기에 대한 이야기와 방향에 대한 것을 말했었다.
이러이러한 부분은빼고 좀더 쉽고 새롭게 글이 다시 씌어져야 한다고
솔직히 읽어본 결과는 대학생 리포트 읽는 느낌이었다.
논문에서 리포트 처럼 느껴지게 한건 아마도 그분의 쉽게쓴 노력이었을 거다.
또한 그 글 역시 그분의 작품이 아니다.
원래 다 그렇다라고 하지만 나는 그말을 인정할 수가 없다.
자기 이름으로 내면서 자기가 책을 안쓰고
(물론 대필이 많은 자서전은 또 다르다)
세권의 책을 내면서 세권의 내용이 조금씩 토시만 달라졌을 뿐
책 속의 일련번호의 규칙도 다르고 수정원고에 교정 표시가 다섯손가락 안으로 꼽힐 만큼 스스로의 원고에 만족하시는 분.
그런 자부심 속에 내가 이러저러 한 것은 빼는게 좋겠다고 했는데다 약속도 못지켰으니 삐칠만 하시다.
하지만 그 마음 속에는 배려가 느껴지지 않는다.
단순 일을 하청받는 사람같아서 아랫사람의 시간이나 약속은 전혀 중요시 하지 않는 사람같아서 오히려 내가 화가 난다.
나는 그 교수님을 내심 존경하려고 했었다.
빚까지 내어 필리핀이나 아프리카로자원봉사를 하시고 지금도 버는 돈이 봉사를 위해 나간다고 하셔서이다.
앞으로의 사람도 봉사의 삶을 살고 싶다고 하셨다.
그런 사람은 존경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내게 있어 봉사는 아직 먼 이야기이기때문이다.
그러나 함께 일하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멀리있는 사람에게 하는 봉사가 얼마나 의의가 있을지!
늘 대화를 하면서느끼는 것이지만
나와 대화를 하면 내가 좀 어려보이나 보다.
사실 그분은 아주 젊잖은 편이고 그정도면 교수의 위엄을 차리지 않는 분일 지 모른다.
그런데도화가 나는것은 젊은 교수라 봐주지 못해서 일까?
이런 경험은 참 많은편이다.
입장이 내가 일을 주는 입장이 되면 내가 더 어리고 철없이 행동해도 존중해하지만 그 입장이 바뀔 땐 정말 모두 똑같다.
아무튼 한동안 나는 그분께 전화를 드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일을 하기 위해 전화를 해야겠지만 그 일을 않하게 되더라도 그런 불쾌한 감정을 느끼면서 일을 할 수는 없다.
홋 내가 아직 배불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