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쥐를 잡자 - 제4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ㅣ 푸른도서관 18
임태희 지음 / 푸른책들 / 2007년 6월
평점 :
'쿵'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러고는 빰 위로 눈물이 흘렀다.
잠시 책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미혼모의 아이가 자라 고등학생이 되어 임신을 하고 낙태를 결심한 순간이었다.
그런 선택을 헀구나. 그래 잘했다. 그게 현명하다 싶으면서도 쿵쿵쿵쿵.
그래 임신 했나보구나 하고 짐작했었다.
뱃속에 자라는 쥐는 아기였었어. 라고 짐작했었지만 책이 중반에 들어서 그것이 기정사실화 되고 나니 마치 내일인마냥 걱정이 커져 두근거렸다.
낙태를 하는 순간에는 몇년전 아기를 유산했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태동이 느끼지 못하던 때 초음파로 점처럼 보이고 점차 점이 커져가는 것만 보이던 때 심장이 뛰지 않는 다는 아이.
그때 나는 내 몸을 원망했었다. 아이 심장하나 지켜내지 못하다니.
그렇게 낙태는 아니지만 유산을 하고 나서 나는 한동안 기력을 찾지 못했었다.
아이도 가버려 없는데, 임신 초기였는데 젖이 나와서 윗옷을 적셨다. 여러 번 옷을 갈아입으면서 맘 속으로 울었던 것같다.
그 아이는 그렇게 태어나지 못했는데 그 일이 있은 뒤 2년은 그 일에 대해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이는 언제나 맘속에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임신했던 친구의 아이가 자라서 돌잔치를 하고 집에 놀러오고 어느덧 어린이집에 다니는 것을 보는 요즘까지도.
그아이를 가졌을 때 꾸었던 태몽이 생생하게 살아나서 아직도 유효한 것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미혼모도 아니었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30대 초반인 내게도 그 일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커다란 충격이면서도 함부로 아프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러니 17살 주홍이에게 그일이 얼마나 큰 충격일까.
주홍이가 아파하고 두려움에 떨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자꾸 눈물이 난다.
차마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이제 딸을 키우는 엄마가 되어서 훗날 내 딸이 이런 일로 마음 아플 지 모른다 생각하니 좀처럼 눈물이 멎지 않는다.
낙태가 맹장수술만큼 아니 그 보다 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난 유산을 할 때 알았다.
당시 병원에 누워있는데 커튼 하나 사이로 많은 여자들이 잠시 신은소리를 내뿜으며 누워있다 가는 것을 보았다. 하루에도 여러명이. 그러는 것에 나는 '세상에!'를 연발할 수 밖에 없었다.
아기를 지우고 언제그랬냐는듯 아픔을 숨기며 당당히 살아가는 이 시대의 여자들. 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지워지지않은 아픔이라는 것을.
내가 만약 선생님이 었다면 진홍이에게 무슨 말과 위로를 해 주었을까?
책 속 양호선생님은 참으로 멋지다
"부탁하건데, 그저 걷다가 우연히 만나는 길을 무작정 걷지는 말거라. 같은 길을 걷게 되더라도 네가 고른 길을 당당하게 걸으렴."
나는 절대로 해주지 못할 멋진말을 해주고 묵묵히 도움의 손길을 주었다. 마냥 발만 동동거리고 어쩌다 그랬니만 반복할 나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
그러나 두려움에 떨 아이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워준 것은 아닌지.
죽은 주홍이의 옆에 누운 엄마의 모습에 눈물이 철철난다. 뻔히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장치야 라고 하면서도 나는 그냥 넘기지 못한다.
나. 철이 늦게 들어 이제야 너를 안을 자신이 생겼는데 너는 기다려 주지 않고 가 버렸구나. 아무것도 못 해줬는데........
처음 널 보았을 땐 네 작은 체구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어. 그때 넌 작은 주먹을 휘두르며 온 힘을 다해 울고 있어지. 그런데 지금 넌 조용하기만 하구나.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나는 조용히 일어나 주홍이의 배 위에 이불을 살포시 덮어 주었다. 진작 그랬으면 좋았을 것을. 미련한 어미는 자식의 시체에대 대고 입을 맞추었다.
내 딸, 먼 곳에서 추위에 떨지 않기를 바라며.
이마에 키스.
내 딸, 먼 곳에서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손발에 키스.
난 내옆에 곤히 자는 내딸을 바라보았다.
이제 5개월된 아기. 보고만 있어도 눈물나는 아기.이런 내용의 책을 읽으며 난 우리 아기에게 말한다.
"아가야, 엄마에게 와 주어서 고마워. 정마 고마워."
이 세상 모든 아기는 소중하고 아름답다.
그 아기를 품은 시간은 두려움보다 설레고 행복한 시간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 아이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아프다.
냉정하게 잣대를 대어 보면 이 이야기는 너무나 진부한 뻔한 이야기다.
미혼모의 아이. 여고생의 임신. 낙태. 자살.하나같이 충격적인 이야기들이지만 너무 자주 들어서 그러려니 하는 이야기들.
하지만 구질구질하지 않게 깔끔하게 글을 구성하고 전개해 나간 작가의 솜씨가 뛰어 나다. 푸른 문학상 시상식에서 얼핏 보았던 것같은데 이렇게 이 책을 읽고 눈물 흘릴 줄 알았다면 눈이라도 더 맞추어볼걸 싶다.
두고두고 주목하고 싶은 작가 임태희.
이 이야기를 진부하다고 넘길 수 없는 진짜 이유는 이 시대 진홍이와 같은 고민으로 밤을 지새울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만 걱정인것은 그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주홍이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기를 내심 조바심을 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