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브’라는 꼬리표가 붙은 사람들은 복장이나 음식에서 중간계급의 높은 기준을 맞추지 못해 비웃음을 사는 경우가 많다.

반인종주의가 차브 때리기(chav-bashing)를 정당화하는 데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 언론인인 야스민 알리브하이-브라운(Yasmin Alibhai-Brown)이 쓴 칼럼을 예로 살펴보자. 칼럼에서 그녀는 "세금을 납부하는 이민자들이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까지도 게으른 영국 거지들이 거실 소파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TV를 보게 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이민자들)는 이들 게으른 인간들이 원하지 않는 일자리까지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에 멸시를 당한다."

차브들에 대한 혐오감을 지속시키는 데 이용되는 또다른 허구는 나이든 점잖은 기성 노동계급은 사라지고 도덕성을 잃어버린 일부 소수만이 남아 있다는 주장이다.

레이첼 존슨은 "우리의 언론 매체는 중간계급에 의해, 중간계급을 위해 운영되는 중간계급의 매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말한다.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차브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긴 언론인들은 소수의 특권층 출신들이다. 그러나 독자들의 절대 다수가 노동자인 신문들조차도 차브 때리기에 동참한다.

노동계급 사람들을 악인으로 만들어서 입장권 가격인상을 정당화하고, 또 가격인상을 통해 노동계급을 축구경기에서 배제시켰다. 이와 동시에 축구는 거액이 오가는 대형 사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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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경우에 독자들은 텍스트를 변조시키고, 기대하고 있거나 몰두하고 있는 관심사를 텍스트에 끼워 읽을 준비가 되어 있다. 텍스트 자체는 독자가 자신의 뜻대로 변화시킬 수 있는 어떤 유사한 조어(造語)를 제공함으로써 잘못 읽기에 유리한 조건을 줄 뿐이다. 특히 교정되지 않은 눈으로 피상적인 훑어보기를 할 때는 의심할 여지 없이 이러한 환상의 가능성을 쉽게 얻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환상의 필연적인 조건은 아니다.

독자의 직업이나 현재 처해 있는 상황 또한 잘못 읽기의 결과를 규정한다. 최근 자신의 뛰어난 연구 결과를 가지고 동료들과 논쟁하고 있는 문헌학자는 장기(奬棋) 전략 Schachstrategie을 언어 전략 Sprachstrategie로 잘못 읽는다.

우리는 또한 쓰기와 베끼기를 할 때 동일한 단어가 매우 빈번하게 반복되는 현상도 마찬가지로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만한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다. 만일 작가가 자신이 이미 쓴 단어를 또 반복한다면, 이는 아마도 그가 그 단어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대화를 하고 있는 동안에 의지의 방해 기능은 계속해서 관념들의 흐름과 분절 운동을 조화시키려는 쪽으로 작용한다.

물건을 〈잘못 놓는 것〉은 물건을 어디에 놓았는가를 망각하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니다. 문자와 책을 다루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는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찾는 것을 단번에 들어 올릴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무질서로 보이는 것이 나에게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질서다

우리는 불쾌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관념들에 관한 이러한 종류의 기본적인 방어 노력을 히스테리 증상을 이루는 메커니즘의 하나로 간주해야 한다. 그런 방어 노력은 고통 자극이 일어났을 때의 도피 반사와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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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총선이 한창 준비중일 때 노동조합이 확실한 의석에 낙하산 후보를 내려보내고 있다고 많은 언론들이 흥분해서 보도했다. 가령 『타임스』는 "노동조합이 노동당을 더 왼쪽으로 몰아놓기 위해 후보들을 꽂아넣는다"고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결국 새로 선출된 의원 중 단지 3%만이 노조 출신이었다.

평생을 공영주택에 살았고 공영주택보호연대의 전회장이었던 앨런 월터는 이런 악마화에도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지적하며 두 가지 목적을 읽어냈다. "그들은 집을 소유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지만 더이상 어쩌지 못할 사람들만 공영주택에 남겨두려고 했어요. 그들의 목적 중 하나는, 공영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사회적 부적응자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누구든 능력이 있거나 의지가 있는 사람은 그곳을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이에요."

종합해보면 신노동당의 복지정책은 무능하고 열망이 없으며 얻어먹기만 하고 비정상적인 데다 무질서하다는 일련의 차브 이미지를 노동계급에 부여하는 데 기여했다. 이런 이야기들이 보수당이 아닌 노동당에서 나옴으로써 노동계급 사회와 개인을 향한 중간계급이 가진 수많은 선입견과 고정관념은 더욱 강화되었다. 하지만 이런 공격은 직접적인 공격보다 더욱 교묘하다. 신노동당의 기반이 된 많은 철학들은 중간계급 승리주의에 깊이 발을 담그고 있었다. 그 철학들은 넝마를 걸친 채 남아 있는 노동계급은 역사의 잘못된 편에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같은 ‘중산층 영국’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사회적 유동성은 노동계급의 조건을 전반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 개인 중 소수를 뽑아서 중간계급에 낙하시키는 데 기여한다. 그것이 강조한 것은 노동계급이란 빨리 벗어나야 할 짐이라는 인식이다. 그것은 계급을 폐지하거나 파괴하자는 말이 아니라 그저 개인들이 계급 사이를 이동하기 쉽게 만들자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계급 다수의 상황에는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 사회적 유동성은 가난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에서 도망치는 길을 제공하는 것이다.

삶에서 당신의 운명을 증진시키는 공식적인 길이 중간계급이 되는 것이라면 그 뒤에 남겨진 사람들은 무엇이 되는가? 확실히 모든 사람이 중간계급 전문직업인이나 사업가가 되지는 못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사무실이나 가게에서 사회가 돌아가는 데 필요한 일을 하는 노동계급으로 일해야 한다. 그러니 그들이 처한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직업에서 벗어나는 데 주안점을 두는 것은 결국 그들을 부적합한 사람들로 내몬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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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가라-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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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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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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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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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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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내가 선생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_ 한 강, <소년이 온다> , p110/178

한강(韓江, 1970 ~ )은 <소년이 온다>에서 '인간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인간이 존엄한 존재인가, 아니면 추악한 존재인지 묻는 소설 속의 질문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상황은 5.18 민주화운동의 모순에서 비롯된다. 국가폭력에 맞서 공동체를 지켜야 하는 상황. 공동체를 지키는 행위는 숭고한 시민의식의 발현이었지만, 이러한 발현이 국가 공동체에 의해 강제되는 상황에서 이들은 죽음과 삶의 선택 기로에 놓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_ 한 강, <소년이 온다> , p8/178

우리 군대가 총을 쐈어.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너를 힘껏 끌고 나아가며 난 노래했는데. 목이 터져라고 애국가를 따라 불렀는데. 그들이 내 옆구리에 뜨거운 불덩어리 같은 탄환을 박아넣기 전에. 저 얼굴들을 하얀 페인트로 지워버리기 전에. _ 한 강, <소년이 온다> , p40/178

이러한 상황에 더해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전문집단인 군대(軍隊)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맞서다 죽거나, 도망치고 모른 척하면서 살아남아야 했다. 죽은 자도, 살아남은 자도 모두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죽은 이들은 자신의 생명을 잃었고, 살아남은 이들은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부여받은 비참한 상황. 1980년 5월의 광주에 있던 이들 중 이를 피할 수 있었던 이들은 없었다.

이상하고 격렬한 힘이 생겨나 있었는데, 그건 죽음 때문이 아니라 오직 멈추지 않는 생각들 때문에 생겨난 거였어.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누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생각할수록 그 낯선 힘은 단단해졌어. 눈도 뺨도 없는 곳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피를 진하고 끈적끈적하게 만들었어. _ 한 강, <소년이 온다> , p8/178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_ 한 강, <소년이 온다> , p95/178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삽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도청 앞 스피커에서 연주곡으로 흘러나온 애국가에 맞춰 군인들이 발포한 건 오후 한 시경이었습니다. 시위 대열 중간에 서 있던 나는 달아났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산산조각 나 흩어졌습니다. _ 한 강, <소년이 온다> , p95/178

거대한 상실감 속에 그나마 한줄기 빛으로 비춰지는 것은 계엄군이 광주 외곽으로 빠져나간 5월 22일부터 상무충정작전이 시작된 5월27일까지 광주 시민에 의해 자치 질서를 회복하던 시기의 모습이었다. 짧은 시기 동안 광주에서 보여준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과 양심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모습임이 분명했지만, 이러한 인간의 숭고함이 인간의 야만에 의해 드러나야 했던 것이라는 점에서 아픔이 더해진다.

그사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가전에서 희생되었는지 난 알지 못합니다. 기억하는 건 다음 날 아침 헌혈하려는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서 있던 병원들의 입구, 피 묻은 흰 가운에 들것을 들고 폐허같은 거리를 빠르게 걷던 의사와 간호사들, 내가 탄 트럭 위로 김에 싼 주먹밥과 물과 딸기를 올려주던 여자들, 함께 목청껏 부르던 애국가와 아리랑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_ 한 강, <소년이 온다> , p96/178

<소년이 온다>에서 그려지는 권력을 향한 야만과 이에 대한 저항 과정에서 발현된 숭고함. 이것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전부를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한 면모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참혹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제42주년 5.18 민주화 운동을 맞아 염원한다.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다음 문단은 검열 때문에 온전히 책에 실리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_ 한 강, <소년이 온다> , p80/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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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22-05-16 21: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516에 518이 다가오네요.

겨울호랑이 2022-05-16 21:44   좋아요 2 | URL
네... 올해도 어김없이 시간이 가네요 길게 느껴지는 하루하루지만요...

거리의화가 2022-05-16 23: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항상 겨울호랑이님 덕분에 시의적절한 글을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에 푸른눈의증인을 읽어보려구요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2-05-17 05:4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 역시 거리의화가님 덕분에 좋은 책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 행복하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