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고
어제 미니 님의 페이퍼 ‘제일 처음 굴을 먹은 사람은 누구일까?’를 읽고 미니 님을 비롯해 그 글에 달린 여러 댓글을 살펴보니 많은 이들이 회라는 음식을 사회인이 되어 직장 회식 자리에서 처음 접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내가 회를 처음 알게 된 사연이 문득 떠오른다. 나는 열두 살, 그러니까 초등학교 5학년 때 회라는 음식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어느 날이었나 방 안에서 뒹굴거리며 책을 읽던 내게, 엄마가 문득 “너 오늘 엄마랑 어디 좀 갈래?”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무렵 엄마는 종종 나를 시장에 데리고 가서는 장을 보며 순대나 어묵 꼬치 같은 것을 사주곤 했던 터라, 그날도 그런가 보다 하고 신이 나서 엄마를 따라나섰다. 손을 잡았던가? 나도 그렇지만 엄마는 다정다감한 성격은 아니라서 아마도 손을 잡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 엄마는 시장과는 정반대쪽으로 걸음을 바삐 옮기더니, 어느 허름한 가게 안으로 앞장서서 들어갔다. 가게의 낡은 간판에는 실내포장마차라고 써 있었고, 가게 안에는 남루한 테이블 몇 개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한 서너 시쯤이었나, 손님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메뉴판이랄 것도 없이 벽에 쓰인 이런저런 글자를 보더니 아나고 한 접시랑 소주 한 병을 달라고 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말이 없었던 나는 엄마가 하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볼 뿐,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주인아주머니가 하얗고 잘게 부스러진 살점들이 빼곡하게 올라간 흰 접시와 소주 한 병, 그리고 새빨간 초고추장을 탁자로 가져다주셨다. 나는 그때쯤엔 오늘 엄마가 맛있는 것을 사주기는 글렀구나 싶어 조금 부아가 났던 것도 같다. 그런데 엄마는 아주 신이 난 표정이었다. “너 이게 뭔 줄 알아? 이게 회라는 거야.” 하더니 아나고를 푸짐하게 떠서 초고추장에 푹 찍어서는 입으로 가져간다. 그렇게 아나고를 먹고는 혼자 소주를 따라서 벌컥벌컥 마시는 게 아닌가. 어린 마음에도 이렇게 대낮부터 엄마가 술을 먹는 모습을 누가 보면 안 될 텐데 조바심이 났다. 엄마는 너도 먹어봐 하면서 내 입속에 초고추장을 찍은 아나고 한 숟가락을 들이밀었다. 날 생선을 먹는다는 게 꺼려져서 조금 저어했지만 입속에 넣은 아나고는 오도독오도독 쫄깃했다. “맛있지? 쫄깃하지? 엄마는 회를 정말 좋아해.” 그러면서 엄마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랬다. 엄마는 회를 좋아했다. 강원도 횡성, 산골에서 나고 자랐는데도 엄마는 회를 좋아했다. 엄마의 어린 시절은 유복했고, 그 부유한 환경에서 편히 자랄 수 있게 해준 사람은 다름 아닌 외할아버지였다. 외할아버지는 바다에서 나는 먹거리들을 좋아하셔서 횡성 그 산골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강릉까지 넘어가서는 싱싱한 횟감이며 생선을 사들고 집에 돌아오곤 하셨단다. 그래서 엄마는 그 어린 시절 횡성에 살면서도 회 맛을 알았고, 그때 그 시절, 그 산골에서도 도시락 반찬으로 생선구이를 싸가곤 했다고, 그렇게 열두 살의 나를 앉혀두고 행복에 잠긴 얼굴로 넋두리를 시작했다. 그런데 외할아버지는 너무나 일찍 돌아가셨다. 엄마의 불행은 어쩌면 그때부터 시작한 것 같기도 하다. 그 당시 우리 집은 할아버지, 할머니, 그러니까 엄마에게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되는 분들을 모시고 살았고, 아빠는 회는커녕 생선구이나 조림도 싫어하는,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촌놈 중의 촌놈’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니 우리 집에서는 회는커녕 반찬으로도 비린내 나는 생선은 거의 먹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빠가 엄마를 몰래 불러내 회 한 접시 사줄 아량이 있는 남자였느냐 하면, 그러기는커녕, 그 오후 엄마가 홀로 소주 잔을 벌컥벌컥 들이키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열두 살 나의 눈에도 내 엄마와 아빠는 서로 결코 만나지 말았어야 할, 불행한 부부였다. 엄마는 얼마나 회가 먹고 싶었던 것일까, 엄마는 얼마나 속상했으면 어린 나를 앞에 앉히고 소주를 마시는 걸까. 그날 엄마는 아나고 몇 점에 행복해 보이면서도 소주 몇 잔에 슬퍼보였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돌아가신 지 오래 전이고, 엄마의 인생 절반 가까이를 불행으로 이끌었던 아빠도 이제는 우리 곁에 없다. 그리고 나와 내 자매들은 어느덧 자라 스스로 번 돈으로 엄마에게 마음껏 비싼 회를 사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때부터였나? 엄마 생일이거나, 어버이날이거나, 아무튼 가족 기념일이면 우리는 늘 회를 먹는다. 엄마하고 소주잔도 마음껏 기울인다. 회와 소주를 마음껏 먹으며 엄마는 그 옛날처럼 횡성 살면서도 늘 회를 먹고, 생선으로 도시락 반찬을 싸 가던 자신의 유년 시절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우리는 아, 그만해 벌써 100번째야! 하면서도 그런 엄마를 말리지 않는다. 언젠가 그렇게 엄마와 회를 먹던 날, 나는 엄마에게 열두 살 그때 일을 꺼내 물은 적이 있다. “아나고가 정말 맛있었어?” 엄마는 “쫄깃해서 맛있기는 하지….” 말끝을 흐린다. 그즈음 나는 아나고가 다른 회에 비하면 아주 저렴하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이제 아나고를 먹지 않는다. 그때 엄마는 소주 한 병과 아나고 회 한 접시를 먹기 위해 장을 볼 때마다 얼마나 한푼 두푼 돈을 아꼈을까. 회를 먹을 때면 나는 나도 모르게 그때 그 아나고를 떠올리게 된다. 내게 회는 엄마의 쓸쓸함이라면 엄마에게 회는 유복한 유년시절, 한없는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그리고 과메기
과메기에도 남다른 추억이 있다. 이제는 계절마다 포항 구룡포에 주문해서 먹는, 내가 몹시 사랑하는 계절 음식 중 하나인 과메기- 그런데 과메기에 관한 기억도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다. 이십대가 끝날 즈음 헤어진 사람이 있다. 여전히 좋아하고 사랑하는데도 헤어질 수밖에 없던 사람이라 미련이 많이 남았었다. 그래서 그랬던가, 헤어지고 몇 달 지나지 않아 그 사람 회사 앞에 무작정 찾아갔다. 그 사람은 그때 집에서 소개해준 사람을 억지로 만나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새로운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아 괴롭던 차에 내가 나타났으니 놀라움 반, 반가움 반이었으리라. 그는 우리 사이에 큰 변화는 없었던 것처럼,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처럼 말했다. “내가 요즘 아주 신기한 음식을 알았는데, 그거 사줄까?” 그러면서 끌고 간 곳은 어느 빌딩 1층에 자리한 큰 음식점이었다. 그 사람은 과메기랑 소주를 달라고 했다. 소주는 잘 마시지도 못하는 사람이 뭔 소주람, 과메기는 또 뭐람 싶었는데, 이윽고 가게 아주머니가 한상 푸짐히 차려주신다.

아, 바로 이거구나. 나는 눈앞에 놓인 과메기를 보고서야 몇 해 전 내가 이 과메기를 먹어보긴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원에서 만난 사람들과 늦은 밤까지 술자리를 가지다가, 3차였나? 어느 한 사람의 제안으로 가회동 한 허름한 술집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그 사람이 과메기를 주문했던 것이다. 그다지 호감가지 않는 모양새에, 생선을 좋아하면서도 도무지 극복하기 어려운 비릿함에 그때 나는 과메기에는 거의 손도 대지 않았다. “나도 과메기 알아.” 퉁명스럽게 말하니 그 사람은 조금 풀이 죽는다. 비린 건 먹지도 않는 사람이 이건 어떻게 알아서 먹는대? 그 또한 얼마 전 회식 자리에서 과메기를 처음 먹었는데 이상하게 맛있어서 내 생각이 났다는 거였다. 꼭 한번은 사주고 싶었다고…. 헤어졌는데 어떻게 사주냐? 하니, “그러게, 근데 이렇게 사 주네…” 하면서 그 사람이 과메기 쌈을 싸서 내 입에 넣어주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눈물 때문인지 과메기는 더 비렸다. 그날을 끝으로 그 사람은 더 보지 않았다. 그는 얼마 뒤 결혼했다.

그 후로 한동안 과메기는 잊고 지냈다. 과메기 따위. 그러다 어느 날 친구들이 한남동에 과메기 정말 잘하는 집이 있다고 해서 그 집을 찾아가는 바람에 기억 속에 파묻혔던 과메기가 되살아났다. 그날도 과메기를 먹으면서 그 사람을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때는 내 곁에도 다른 사람이 생겼는데, 과메기를 보니 그 사람과 그날이 자연히 떠올랐다. 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맛을 알려주고 싶어져서 과메기를 포장해 애인 집에 갔다. 지금도 여전히 내 옆을 지키는 이 사람도 예전에는 비린 걸 잘 못 먹었다. 그날 내가 사 간 과메기도 내 성의를 생각해서 열심히 먹어주긴 했지만 몇 점 먹지 못하고 “와, 나는 이게 한계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는 어느덧 계절마다 나보다 더 먼저 과메기를 찾는 사람이 되었다. 언젠가 그가 과메기를 앞에 두고 물었다. “난 너 덕분에 과메기를 알았는데, 넌 이거 언제 처음 먹어봤어?” 내 머릿속엔 자동적으로 그 옛날 그 사람과 함께 먹었던 순간이 떠오른다. 눈물 때문인지 더 비릿하게 느껴지던 그 과메기가…. 그래도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 예전에 대학원 사람들하고 가회동인가 거기 과메기 잘한다고 누가 데려간 적 있거든.” 나는 아마도 앞으로도 과메기를 볼 때면 눈물 젖은 그때 그 과메기를 떠올리겠지만, 지금 이 사람에게 그걸 말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도 그런 음식 하나쯤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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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2-09 12:5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흐흑...어쩜 글을 이렇게 잘 쓰시나요...
아나고..저는 얘를 가락시장에서 처음 만났네요. 길다란 쇠꼬챙이에 아나고 머리를 꿰어놓고 회 치는 모습과 그 꼬챙이에 아나고 머리가 차곡차곡 꿰어있는 광경이 어린 나이에 충격이었어요. 그리고 나중에 그 징그럽던 아나고 회를 맛보곤 맛있어서 깜놀했지만 그 이미지가 떠올라 잘 먹진 않습니다.
과메기는 저도 처음엔 비려서 꺼리다가 이젠 철되면 먹고 싶은 음식이에요. 참 이상한 현상이에요. 비려서 싫었는데 시간 지나면 먹고 싶어지는게...

그래도 지금 어머니가 맘껏 회도 드시고 속 이야기 할 따님들도 있으니 행복해 보이세요.

잠자냥 2022-02-09 14:04   좋아요 6 | URL
아니, 아나고를 그렇게 잡는군요! ㅠㅠ
앞으로 아나고 생각하면 더 아련해질 거 같은.... ㅋㅋㅋ
과메기는 딱 어느 계절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해요. ㅎㅎ

네, 울 엄마의 노년은 꽤 괜찮은 거 같습니다. (아닌가? ㅋㅋㅋㅋ)

미미 2022-02-09 13: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글을 읽으니 저도 첫 회는 엄마가 사주었던 기억이 나네요. 멍게와 해삼이었는데 저는 시장 가운데 있는 포차에서 먹었거든요. 생긴게 무서워서 고민하다가 초장에 찍어먹고 신세계가 열린ㅋㅋㅋㅋ어머님이 딸들과 먹은 회. 옛날 이야기까지 곱씹으며 얼마나 맛나셨을까요^^*

잠자냥 2022-02-09 14:06   좋아요 2 | URL
멍게와 해삼! 더불어 미더덕! 바다 내음 물씬 삼총사! ㅎㅎㅎ
저희 엄마가 회 먹을 때 즐겨 씹는 안주는 또 하나 있습니다. 아빠 이야기 ㅋㅋㅋㅋ

독서괭 2022-02-09 14: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회 이야기로 이렇게 멋진 수필을 한편 쓰시다니.. 어머님의 아나고 이야기도 전/현 애인과의 과메기 이야기도 달콤쌉쌀하고 넘 좋습니다. 저는 회에 대해 별다른 추억이 없네요. 아.. 하나 생각났다. 회 안주로 소맥 먹었다가 왕창 토했던..;;;;

잠자냥 2022-02-09 14:07   좋아요 6 | URL
ㅋㅋㅋㅋㅋ 아니 괭님, 제가 회 먹을 때 새로운 기억 안겨주려고 작정하신 거예요? 회 먹고 왕창 토한 거 강렬합니다. ㅋㅋㅋㅋ

독서괭 2022-02-09 14:11   좋아요 6 | URL
죄송합니다 이 아름다운 글에 더러운 댓글을ㅠㅠ;;;;

공쟝쟝 2022-02-09 14: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회보다 고기가 더 비싼(?) 시절을 살았던 바다 가스나는 이 글을 읽고 흐뭇하게 미소짓습니다. 아나고의 추억..*
어린시절 매운탕과 선어회는 정말 자주올라오는 메뉴였지만 (어려서 맛을 몰랐고요) 과메기는 저도 서울와서 처음 먹어봤어요. 뭐랄까 ㅂ린것에 내성이 이미 강했지만 그런 제게도 하드한 비림이었던 과메기…! 그러나 술과 함께 먹고 마시자마자 술이 아주 잘 받아서 저는 과메기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과메기 먹구 싶다!!!

잠자냥 2022-02-09 14:49   좋아요 4 | URL
ㅋㅋㅋ 울 엄마가 굉장히 부러워할 가스나다~
울 엄마가 여수 놀러 갔다고 하면 그 뭐더라 꼭 그걸 부탁하더라고요? 서대, 박대 사오라고 ㅋㅋ
과메기 정말 소주랑 환상 궁합이죠? 담날 아침 피부도 맨질맨질~ ㅎㅎㅎ
과메기 이제 2월이면 끝물~ 11월 올 때까지 기다리세요~~

공쟝쟝 2022-02-09 14:52   좋아요 4 | URL
서대회 아아 쩔죠! 저 금의환향, 낙향하면 초대할게요! 풀코스로 다 맥여드릴게요! 그때까지 영생하자요!!!!

잠자냥 2022-02-09 15:22   좋아요 3 | URL
와와- 정말 영생해야겠따! 버킷리스트로 쟝쟝이랑 서대회 먹기!

햇살과함께 2022-02-09 14: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어제 밤에 과메기 먹었는데^^ 이런 반가운 글이! 설연휴에 언니가 올라올 때 부탁해서 사온거 냉동했다가 어제 둘째가 먹고 싶다고 해서 9시에 또 맥주사러 랄랄라~ 둘째 녀석이 어찌나 잘 먹던지, 술도 없이 그 느끼한 걸! 저는 고등학교 때 첨 먹을 때는 느끼해서 한 점도 못먹었는데 대학와서 술이랑 먹으니 그 맛을 알겠더라구요 ㅎㅎ 아나고와 오징어회는 집에서 자주 먹던 저녁반찬 수준? 잠자냥님 글 보니 초장 듬뿍 발라 아나고회 먹고 싶네요 ㅎㅎ

잠자냥 2022-02-09 15:23   좋아요 3 | URL
전 1월을 마지막으로 일단 올 겨울 과메기는 끝...을 맺었는데 이런 염장 댓글을?!
게다가 아나고를 저녁 반찬 수준으로 드시다니요. 이런 부러운 분! ㅋㅋㅋㅋ

햇살과함께 2022-02-09 16:41   좋아요 2 | URL
ㅋㅋㅋ 전 이번 겨울 첫 과메기 였어요 이젠 아나고나 오징어회도 집에 가야 먹을 수 있어서 1년에 1-2번? 밖에 못먹어요:;;;

다락방 2022-02-09 14:5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와 글 너무 좋다 진짜 너무 좋네요. 아나고도 과메기도 좋다. 아니 아나고랑 과메기를 제가 좋아한다는 건 아니고요 각각의 사연과 풀어놓는 이야기가 좋다고요. 너무 좋으네요.
저는 회라는 존재를 안 건 국민학교 시절이긴 한데요, 그 때 아빠가 낚시 갔다 생선 잡아오면 옆집 아저씨가 회를 뜨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때부터 그냥 보기도 싫어서 먹어본 적도 없었어요. 그렇지만 다 커서 어른이 되어 회식을 하다보니 안 먹을 수가 없는.. 산낙지도 회사 다니면서 처음 먹게된 겁니다... 인생..

그건그렇고,
저는 잠자냥 님의 어머니와 어린 잠자냥 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몇해전(십년은 안된것 같아요)에 아웃백에서 만난 내 또래 여성분이 생각나네요. 저보다 몇살 더 많아 보이는 분이셨는데, 어린 아들(초등저학년으로 보였어요)과 둘이 와서 제 옆테이블에 자리 잡고 음식을 주문하더니 와인을 한 병 주문하더라고요. 그 때 아들이 제엄마를 향해 ‘엄마 또 와인 시킬줄 알았어!‘ 하더라고요. 저는 그당시 사귀던 애인하고 둘이 와인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 날 총 세병을 마신것 같고(미쳤..) 어쨌든 애인이 잠깐 화장실 간 사이에 그 분이 제게 말을 걸더라고요.

˝어쩜 그렇게 와인을 맛있게 드세요?˝

라고요. 그리고는 몇마디 더 주고받고 저랑 건배를 했어요.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건배하는 중에 제 애인이 돌아와 자리에 앉았고 그렇게 그 분과의 대화는 끝이었는데요, 그 분 얼굴도 기억 안나지만, 얼마나 와인이 마시고 싶었을까, 건배해줄 벗이 필요해 부러 내게 말을건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 일이 생각나네요..

독서괭 2022-02-09 15:09   좋아요 5 | URL
아니 와인을 얼마나 맛있게 드셨으면..??

미미 2022-02-09 15:20   좋아요 4 | URL
다락방님 이것도 하나의 아름다운 페이퍼가 될 만한 이야기네요! 이런걸 댓글로도 쏟아내주시는 멋진 이웃님들 덕에 북플 애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ㅠ

잠자냥 2022-02-09 15:25   좋아요 4 | URL
회도 그렇고 고기도 그렇고 직접 잡는 광경 목격하면 맛을 음미하기 어려울 것 같기는 해요. 특히 어린 시절에 그런다면... 음. 산낙지 ㅋㅋㅋㅋㅋ 산낙지도 참 잔인하죠-

아니 그건 그렇고, 우리의 다부장님은 그때부터 벌써 오지랖이?!
얼마나 와인을 맛나게 드셨기에?

아마 그 시절, 울 엄마도 옆에 어느 아줌마가 소주 마시고 있었으면 분명히 말 걸었을 거예요. ㅋㅋㅋ

coolcat329 2022-02-09 15:49   좋아요 6 | URL
어쩜 다들 음식 관련 사연들이 있으시고 그걸 또 이렇게 재미나게 쓰시는지~~☺

책읽는나무 2022-02-09 20:28   좋아요 2 | URL
진짜루 어케 와인을 마셨길래????

다락방 2022-02-09 21:28   좋아요 2 | URL
그냥 꿀꺽꿀꺽 마셨는데요.. 🙄

북깨비 2022-02-09 15: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음식 있어요 😭 저는 하필 부대찌개라 먹을 때마다 한번씩 떠오르곤 합니다. 과메기는 어릴 적에 어른들이 먹는 걸 보고 보는 것만으로도 비려서 한번도 먹고 싶다는 생각을 안해봤어요. 그냥 생김새와 냄새만으로도 맛이 아주 정확하게 상상이 되서 ㅋㅋ 40이 넘어서도 아직 입에 넣어본 적이 없어요. 저 나중에 후회할까요? ㅋㅋㅋㅋ

잠자냥 2022-02-09 15:26   좋아요 4 | URL
부대찌개! 음식은 맛도 맛이지만 그런 추억과 기억이 더 그 음식을 오래 기억하게 하는 것 같아요.
올 겨울에는 과메기 한번 도전해 보세요. 쉰 즈음에는 매년 겨울이면 찾는 음식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Falstaff 2022-02-09 16:12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은 미쳤어, 미쳤어! 글쎄 이런 건 에피소드를 좀 더 보태서 소설로 써야지요! 아이구, 소재가 아깝네요. 여기 하지 않은 속 얘기까지 풀어 놓을 거 다 쏟으면 장편도 너끈할 텐데, 그걸, 하, 한숨밖에 안 나와요!! ㅋㅋㅋㅋ 웃지만 진심!

전 과메기 요즘 안 먹어요. 나이 서른에 처음 과메기를 먹었는데 그때 꽁치가 통으로 한 마리 그냥 손님 상에 재봉 가위하고 나왔답니다. 밥상 만한 양은 접시 위에 신문지 깔고, 신문지 위에 껍질도 안 깐 꽁치 과메기. 그걸 손님들이 직접 껍데기 벗기고 창자 끄집어 내고 (비린내도 이런 비린내는 절대 다시 경험 못할 거 같아요) 잘라서 먹었어요. 꽁치가 기름이 많아서 기름이 줄줄 흐르면, 그거 닦는데 신문지 만한 것이 없어서 손가락을 신문지에 쓱 문지르면 신문 잉크가 묻어서 ㅋㅋㅋ, 그 손으로 그냥 먹는 겁니다. 요즘처럼 잘 말린 건 먹지도 않았어요. 뻣뻣하다고. 그래 살이 흐물흐물, 냄새는 환장, 그걸 입에 넣으면 뭉클, 잠자냥 님 서재 친구분 가운데 포항에 사시는 분이면 아실 거예요. 코로 맡는 비린 냄새하고, 입에서 반은 부패한 살이 뭉클 거리면서 나는 비린 맛하고는 아예 비교 불가. 그럼에도 신기하게 묘한 감칠맛, 틀림없이 부패한 단백질에서 나오는 아미노산일 텐데, 그 썩어가는 살 덩어리를 돌김, 생미역, 쪽파, 마늘, 초고추장 듬뿍 찍어 먹으면, 다른 건 몰라도 술 하나는 정말 잘 넘어갑니다.
네 명이서 한 30마리 먹으면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몸의 모든 구석에서 비린내가 나는데, 다음날 네 명 가운데 한 명은 꼭 출근을 못하고 눈 뜨자마자 시작해서 퇴근시간까지 물똥을 찍찍 쏟습니다. ㅋㅋㅋㅋ 그게 그런 음식인데, 요즘에 아예 잘 말려서, 껍질 홀랑 벗기고, 손질까지 해서 파는 건, 도무지 씹는 맛도 없고, 뭉글거리며 혀의 약한 힘에도 쑥 구부러지며 발산하는 비린 맛도 전혀 없고, 비린내도 아이들 장난이고.... 못 먹겠어요.

원래 포항, 울진 어부들이 과메기를 해서 먹던 생선은 청어였습니다. 청어 과메기도 먹어봤는데, 청어는 꽁치보다 많이 두껍잖아요. 그래 그건 꽁치보다 많이 말려야 겨우 과메기 상태가 되는 관계로 맛이 요즘 파는 꽁치 과메기 맛이 나더라고요. 결론은 오리지널인 청어 과메기보다 꽁치 과메기가 훨 낫더라는 거.

ㅋㅋㅋㅋ 재미난 글 잘 읽었습니다. 꼭 소설로 바꿔보시기 바라요!! 어떠셔요, 여러분!!!!

Falstaff 2022-02-09 16:17   좋아요 8 | URL
과메기 먹어보고 몇 년 후, 팀 졸병이 자기네 집에 과메기 왔다고 와서 먹으랍니다.
그래 용감한 남자들 서너 명, 여자는 딱 한 명이 갓 신혼집에 가서 아직도 덜 말라서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꽁치를 껍데기 벗기고 가위로 배를 주욱 가르니까, 순식간에 그 비린내가 24평 아파트를 완벽하게 점령했는데, 아이고, 지금 생각해도 정말 대단, 대단, 세상에 그런 대단한 비린내가 어디 있는지....
그래도 그걸 좋다고 느끼해서 단 한 점도 더 못 먹을 때까지 와구와구 먹고, 언제나 진리이듯 딱 한 명 다음날 결근을 해버렸습지요. 그게 바로 집 주인이자 과메기 파티를 주최한 직원이었습니다. ㅋㅋㅋㅋㅋ 지금은 벌써 회사 나가서 자기 회사 차려 잘 먹고 잘 살고, 회사 OB 모임 회장을 하고 있는 경상도 고령 촌놈.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2-02-09 16:43   좋아요 6 | URL
ㅋㅋㅋ 그런데 제가 또 남의 사연이랑 엮어서 소설 쓰는 게 뭔가 양심에 걸리다 보니 이것저것 걸러내다 보면 암것도 쓸게 없더라구요! ㅎㅎㅎ (엄마도 남인가 ㅋㅋㅋ) 그저 문학 애독자이자 고급진 눈의 소유자 골드문트 님의 ˝웃지만 진심˝ 감사히 받겠습니다.

아니 근데 정말 과메기가 재봉 가위랑 한마리 덥석 나오던 시절도 있었다굽쇼? 신문지에 쓱 문지르고 먹는 과메기맛 ㅋㅋㅋ 역시 골드문트 님도 묘사 하나는 끝내주십니다. 와 츄릅 먹고 싶다...

저도 청어 과메기 먹어봤는데, 꽁치가 더 좋더라고요.

햇살과함께 2022-02-09 16:47   좋아요 5 | URL
골드문트님 맛깔난 글 읽다가 입에 침이 계속 고이다가 갑자기 이야기 결론이… 침을 삼킬 수 없게 만드네요 ㅋㅋㅋ

coolcat329 2022-02-10 09:01   좋아요 3 | URL
골드문트님 술안주 얘기는 정말 3D입니다.
글에서 냄새가 진동합니다.ㅋㅋ

레삭매냐 2022-02-09 17: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과메기는 비려서리...

아나고는 씹는 맛에 헷

잠자냥 2022-02-09 17:55   좋아요 2 | URL
매냐 님은 맥주 관련 글을 맛깔나게 쓰심!

mini74 2022-02-09 18: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동기생들이랑 바닷가 가서 과메기 먹어봤어요. 근데 한 녀석이 실연의 아픔으로 과메기에 소주 왕창 먹고 쓰러짐 ㅠㅠ 근데 쓰러져서 반듯이 눕더니 막 토하는거예요. 흔들어도 꿈쩍도 안하고 ㅠㅠ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토하다 기도 막힐까봐 숟가락으로 막 퍼내던 ㅠㅠㅠ 전 과메기 지금도 싫어요
자냥님 어린 시절 이야기 넘 좋아요*^^*

잠자냥 2022-02-09 19:04   좋아요 3 | URL
으핫 ㅋㅋㅋㅋㅋ 그런 사연이면 증말 과메기 싫을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숟가락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2-02-09 20:3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어머님 이야기에 넘 감동하고 있었단 말이지요. 어머님, 오래오래 행복하게 회 많이 드시고 효도 받으시고.... 그러다가......

헤어졌는데 어떻게 사주냐? 하니, “그러게, 근데 이렇게 사 주네…” 하면서 그 사람이 과메기 쌈을 싸서 내 입에 넣어주는데 .......

저 울었잖아요. 저도 폴스타프님 생각이랑 완전 똑같아요. 이 멋진 이야기가 어디 우리 알라딘에서만 알려져셔야 되겠습니까.
잠자냥님 소설 쓰세요! 소설 쓰자고요, 우리!!!!!!!!! (아니, 저 말고 잠자냥님!!!!!!!!!!!!!!!!!!!!!!)

잠자냥 2022-02-09 22:17   좋아요 3 | URL
아니 단발머리 님을 울리다니 이런이런… 좋아 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2-02-09 20:4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울엄마도 아나고 제일로 좋아하셨었는데..생전 아나고회 한 접시 사드려보질 못했었네요^^
아나고란 말만 들으면 늘 스티로폴 한 접시 통째로 초장에 비벼 그 한 접시 혼자 다 드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저흰 외가가 삼천포였거든요..엄마가 바닷가 처녀였던지라 정말 어릴 때부터 해산물 반찬 고문이었어요. 멍게,해삼,미더덕,파래무침, 해파리,다시마....암튼 생선은 구워 주니까 어째 어째 먹겠는데 (생선도 종류별로 거의 다 먹은 듯) 맨날 자는 나랑 동생들 깨워서 시장에서 귀한 거 사왔다고 한 입만 먹어 보라고 멍게,해삼,말미잘,굴 등등을 졸린 얼굴 앞에 들이미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미니님 회식 부장님이 울엄마였!!!!!!!
그래도 그 덕에 어른이 되어 입맛이 많이 변했네요. 멍게,굴,미더덕은 없어서 못먹네요. 요즘 어패류,갑각류 알러지가 생겨 눈두덩이가 부어올라도 멍게,굴,전복은 정말 너무 먹고 싶네요^^

과메기는....저는 회식자리에서 처음 먹어 보고 넘 비렸던 첫 충격에 아직도 못먹는 음식인데요!
읽다가 보니 전 왜 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그 단편소설 같단 생각이 들죠??
남친에겐 말하긴 좀 그렇지만 나에겐 좀 애틋한 그 무언가!!!! 헌데 그 애틋한 그 무언가가 비릿한 과메기였다니????ㅋㅋㅋ
넘 강렬하다!!!!

잠자냥 2022-02-09 22:22   좋아요 3 | URL
삼천포! 몇 년 전 동해안 자전거 일주하면서 삼천포를 처음 지나갔는데 정말 아름다워서 눈이 부셨습니다. 그 좋은 곳이 외가였군요?! 그런데 해산물 반찬이 고문이라니 ㅋㅋㅋㅋ 그것도 재미납니다. “미니 님 회식 부장님이 울엄마”에서 빵 터집니다. 아니 그리고 저의 글을 앤드루 포터의 그 명작에 비교해주시다니 그저 황송합니다.

수이 2022-02-09 20:4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여기저기 다 난리났습니다, 옛 사랑 때문에. 과메기 이야기 듣고 있노라니 딸기라떼 생각나서 한참 소리없이 웃었어요. 좋네요, 옛 사랑 옛 추억.

잠자냥 2022-02-09 22:24   좋아요 4 | URL
그러게요, 여기저기 난리네요! 역시 음식은 추억을 불러오네요~

다락방 2022-02-10 08:25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 이 글 난리났어요 진짜. ㅋㅋㅋ 어제 갑자기 (비활동 알라디너)친구가 톡으로 말 걸어서 잠자냥 님 너무 좋다고 막 흥분을 하길래

˝과메기 읽음?˝
˝ㅇㅇ˝

이런 대화를 나눴다니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나고와 과메기 인기 잠잠해질때쯤 조기와 참치.. 어떻습니까?!

잠자냥 2022-02-10 08:57   좋아요 6 | URL
ㅋㅋㅋㅋ 아니 그래요? 그런 일이?! ㅋㅋㅋ 조기와 참치 ㅋㅋㅋㅋ 생각해보겠습니다. ㅋㅋㅋㅋ

다락방 2022-02-10 08:58   좋아요 7 | URL
물론 고래와 갈치 혹은 날치와 불가사리로도 가능합니다.

구단씨 2022-02-10 15: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데, 할 말이 또 생각나지는 않고, 왜 그렇게 사연들은 비슷하게 아프고 그리워서 눈물이 나려고 하는지...
잠자냥님 어머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면서 회 맛있게 많이 드셨으면 좋겠네요.
고등어~ 이 책은 읽으면서도 뭉클뭉클 했어요.
그리고 저는 과메기를 못먹어서 궁금한 맛입니다. ^^

잠자냥 2022-02-10 15:29   좋아요 2 | URL
네, 전에 저도 구단씨 님의 어머니 관련 글을 읽고 참 많은 생각을 했었답니다.
아무래도 모든 사람들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참 그런 것 같습니다...
과메기는... 고등어보다는 덜 비린 맛이라고 자부합니다!(야채에 싸먹는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비릴 거 같은데 그게 참...그렇지 않은 묘한 음식입니다. 언젠가 구단씨 님에게도 과메기의 추억이 하나쯤 생기길 바라봅니다!)

psyche 2022-02-13 09: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글이 장안의 화제였던 바로 그 글이군요! 읽으면서 찡하고 나의 추억을 떠올리며 또 한번 찡한 이런 글이라니.
아!!! 정말 좋아요. 위에도 여러분이 말씀하셨지만 이렇게 그냥 넘기기 아까운 소재와 글솜씨 입니다. 꼭 소설로 써주세요!!!

그건 그렇고 전 과메기 말만 들어보고 한번도 본 적이 없는데 이게 겨울에만 먹을 수 있는 건가요? 맛이 무척 궁금하네요.

잠자냥 2022-02-13 10:22   좋아요 3 | URL
네 과메기는 보통 11월 말에서 2월 초까지가 제철이라고 해요. 저는 12월, 1월에 먹었을 때 가장 맛있더라고요. 배추, 김, 다시마(또는 미역), 쪽파, 마늘, 거기에 과메기 한 점 초장 푹 찍어서 얹어서 쌈싸먹는데, 과메기(바닷바람에 말린 꽁치)를 야채에 싸 먹으면 엄청 비릴 거 같아서 꺼려지는데…. 의외로 비리지 않고 잘 어울려서 계속 생각나는 맛이랍니다. ㅎㅎㅎ

psyche 2022-02-13 13:12   좋아요 0 | URL
과메기를 먹으려면 겨울에 가야하는군요. 언제 먹어볼 수 있으려나요. ㅜㅜ
 
면도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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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돈을, 어떤 사람은 명예를, 어떤 사람은 성공이나 권력, 지위를 중요하게 여길 것이며 또 어떤 이는 건강, 사랑, 애정 같은 가치를 높이 사기도 할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인생을 최고의 삶으로 여기기도 할 것이다. <면도날>에도 이렇게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이 다양한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작품의 시작은 최근 읽었던 몸의 또 다른 작품  <케이크와 맥주>와 비슷하다. <케이크와 맥주>처럼 작가가 대단히 속물적인 한 인물을 만나면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단 <면도날>의 화자로, 직업이 작가인 ‘나’는 서머싯 몸 그 자신이다(이 작품의 재미 중 하나는 이렇게 서머싯 몸이 작품 전면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나’(그러니까 서머싯 몸 그 자신)는 우연한 기회에 ‘엘리엇 템플턴’이라는 남자를 알게 된다. 그는 사람을 만날 때 사회적 신분 말고는 아무것도 관심 없는 인물로, 상류사회는 그에게 인생 전부이며 파티는 숨구멍과도 같다. 사교계의 명성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엘리엇에게 사실 일개 작가인 ‘나’는 처음에는 그다지 중요한 인물은 아니었다. ‘나’ 또한 그의 속물스러움에 때로는 진저리를 치기도 하지만 사람을 잘 챙기고 베풀기 잘 하고 배려심이 깊은 그를 종종 만나며 친분을 쌓는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작품이 엘리엇 템플과 화자인 ‘나’의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이윽고 새로운 인물들-래리, 이사벨, 그레이 같은-이 등장하고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미국인인 엘리엇은 사교계의 명성을 좇아 이곳 유럽으로 건너와, 파리와 런던을 오가는 생활을 즐기는데 거기에 그의 조카딸인 이사벨 가족이 함께 하게 된다. 이제 막 스물 청춘인 이사벨과 래리는 약혼한 사이로, 아름다운 외모와 상냥하고 예의바른 태도로 주변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인물들이다. ‘나’ 또한 래리와 이사벨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들을 종종 만나면서 그들의 인생을 지켜보게 된다. 엘리엇은 조카딸을 사랑하는데 비해 그녀의 약혼자인 래리에게는 탐탁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데, 알고 보니 래리는 번듯한 외모와는 달리 빈둥빈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한량이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이후 고향에 돌아와 전쟁 영웅 대접을 받은 뒤 성공가도를 달릴만한 일에 뛰어들고도 남을 텐데 이 청년은 여기저기서 제안하는 좋은 일자리를 다 마다하고 벌써 꽤 오래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  래리가 보란 듯이 일자리를 얻어 예전처럼 활기차고 의욕적인 삶으로 뛰어들 것이 분명하리라 기대하던 이사벨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는 가운데 ‘나’는 래리와 단 둘이 이야기할 기회를 통해 그가 전쟁터에서 가깝게 지내던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로 인생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음을 알게 된다. 누군가의 죽음을 눈앞에서 본 이후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래리- 그는 정신적인 삶에 몰두하면서 궁극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해답을 찾아 나선다.



“난 증권 같은 걸 만지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어.”
“알았어. 그럼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거나 의학 공부를 하는 건 어때?”
“아니, 그런 건 싫어.”
“그럼 뭘 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그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면도날>, 80쪽)

“그런데 왜 취직을 안 하겠다는 거야?”
“왜냐고 난 돈에 관심이 없어.”
이사벨은 웃었다.
“래리,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사람은 돈이 없으면 살 수 없어.”
“난 조금은 있어.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 만큼은 있다구.”
“빈둥거리는 거?”
“그래.” (<면도날>, 82쪽)



래리가 예전의 모습대로 돌아오기만을 바라던 이사벨은 급기야 툭 터놓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돈에 관심이 없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빈둥거리고 싶다는 래리의 말에 충격을 받는다. 위의 짧은 대화만으로도 두 사람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래리는 하루 여덟 시간에서 열 시간 가까이 책을 읽고, 소르본 대학에서 하는 강의도 듣고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공부하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그러나 이사벨은 도무지 그런 약혼자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런 것들을 배워서 뭐하려고 그래?” “현실적으로 별로 쓸모없는 것들 같은데.” 말할 뿐이다. 정신적인 삶에 만족하는 래리를 ‘너는 미국인’이라고 다그치며 이제까지 없던 번영의 시기를 누리는 미국의 발전에 참여하고 이바지하는 삶을 살라고 종용한다. 그러나 래리는 ‘정신적 세계를 추구하는 삶이 얼마나 즐겁고, 얼마나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지’ 이사벨에게 가르쳐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기만 하다. 데카르트를 읽고 평온함과, 품격, 명석함에 전율하는 사람과 ‘커다란 쇼윈도가 줄줄이 이어진 콘크리트 보도를 걸으면서 모자나 모피코트, 다이아몬드 팔찌, 금장 화장품 케이스 등을 구경할 수 없으면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 결혼해 삶을 함께 공유한다는 것은 어쩐지 불가능해 보인다. 그들은 그래서 결국 각자의 길을 걷기로 선택한다.

서머싯 몸은 이 두 청춘, 이사벨과 래리를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켜보며 그들이,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이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지, 원하는 바를 얻는지 재치 있는 입담으로 풀어나간다. 이 작품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래리는 그가 찾는 인생의 궁극적인 해답을 찾고자 안정적인 직장과 보장된 미래, 사랑하는 약혼녀도 모두 버리고 유럽 곳곳- 프랑스의 탄광과 수도원, 독일의 농장,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등지를 방랑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영향 받기도 하고 또 때로는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의 여정은 인도의 아슈라마에까지 이른다. 사실 이 작품을 흥미롭게 읽다가 래리가 인도로 갔다는 부분, 래리가 갠지스강을 바라보면서 정신적으로 무언가 큰 깨달음을 얻는 장면에서는 조금 실소가 터져 나왔다. 별 다섯에서 갑자기 별 넷으로 하락하는 시점…. 결국 서양인의 방랑의 끝, 방황의 끝은 인도인가, 갠지스강인가 싶어 그놈의 오리엔탈리즘은 입담꾼 서머싯 몸도 어쩔 수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그래서 래리는 자신이 바라는 걸 정말 얻었을까?

물질적인 풍요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처음에는 래리의 선택에 사뭇 공감이 갔다. 하루 8~10시간 가까이 도서관에 틀어박혀 빈둥빈둥 책을 읽고 배우고 싶은 언어를 마음껏 배우고 여기저기 떠도는(여행하는) 삶이라니 얼마나 멋진가!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에게는 그런 삶이 가능하도록 뒷받침해 주는 부유한 환경이 있었다. 그는 비록 어려서 부모를 잃었지만, 유복한 후견인 집안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고 현재도 빈둥빈둥 놀면서 지내도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돈이 들어온다. 래리처럼 해마다 3천만 원 가까운 돈이 들어온다면 아무것도 안 하고 책 읽고 언어 공부하겠다는 사람들이 알라딘 서재에는 널리고 널렸을 것이다. 그러므로 래리의 정신적인 삶을 찾아 떠나는 방랑에는 얼마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부(富)가 뒷받침되었기에 조금은 배부른 투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물론 그는 어느 순간 그 돈마저도 굴레라고 말하면서 그 굴레를 벗어난다. ‘나’, 즉 서머싯 몸은 그런 래리를 어리석다며 뜯어 말리는데 이런 작가의 어느 정도 속물적인 모습은 참 인간적으로 다가와 슬며시 웃음이 나기도 한다.


돈과 명예, 화려한 삶을 좇는 이사벨도 내가 좋아할 만한 인간 유형은 아니지만 나쁜 여자로만 그려지지는 않는다. 이사벨뿐만이 아니라 래리를 스쳐지나가는 또 다른 여인들, 수잔이나 소피도 그들의 화려하고(?) 자유분방한 삶에 어떤 도덕적인 평가를 내리기보다는 나름 애정 어린 시선을 담아 그려간다. 이 여성인물들은 대부분 자기들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당당히 밝히고 그것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케이크와 맥주>의 ‘로지’와 닮았다. 물론 소피가 애초에 선택한 삶은 자기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렇지만 “천국 같은 생활을 하다가 그것을 잃게 되니까 보통 사람들이 사는 보통 세상을 견디지 못하고 좌절해서 지옥으로 곤두박질친” 것처럼 “신들이 마시는 넥타를 마실 수 없다면 차라리 밀주를 마셔도 상관없다고 생각”(328쪽)하고 자기를 내던지듯 살아가는 그녀의 선택도 선택이라면 선택이 아닐까. 진짜 천국이 아니면 차라리 지옥을 선택하겠다는, 그 극단적이리만치 성스러움을 고집한 그녀의 모습에서 래리가 ‘결혼을 생각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던 게 아닐까.


“어쨌든 사는 게 엿 같잖아요. 그걸 잠시나마 잊게 해 주는 무언가가 있다면 당연히 누려야죠.” (<면도날>, 370쪽)


소피는 이렇게 말했다. 고단한 삶에서 그걸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그 ‘무언가’- 그것이 결국 여기 등장한 모든 인물들이 추구했던, 저마다 높이 샀던 그 무엇이 아니었을까. 엘리엇은 사교계의 명성을, 이사벨은 부와 성공을, 그레이는 안정적이고 수익성 높은 직장과 사무실을, 수잔은 다정하고 안정적인 삶을, 소피는 지옥이 된 현실을 벗어나기를, 그리고 래리는 정신과 영혼이 충만한 삶을…. 인생은 여전히 진행 중이기에 그들은 그 ‘무언가’를 찾아 계속 방랑할 것이고, 그러다가 정말 운이 좋은 그 누군가는 ‘면도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설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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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2-08 17: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래리랑 저랑도 왠지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저도 물질이나 이런거 보다는 심리적인 안정을 중요시 하거든요. 다만 차이는 래리는 돈이 많고 저는 돈이 없다는거? 😅

잠자냥 2022-02-08 17:32   좋아요 4 | URL
알라딘 서재 분들은 대부분 래리에게 공감할 거예요. 다만 다들 래리처럼 후원자도 없고 돈도 없다능 ㅋㅋㅋㅋ

mini74 2022-02-08 17: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문장이 와 ! 넥타를 마실 수 없다면 밀주를 마셔도 상관없는 ㅎㅎ 문장들이 넘 좋아요. 그 무언가를 전 아직도 모르겠어요. ㅠ

잠자냥 2022-02-08 17:32   좋아요 4 | URL
진짜 재미나고 탁탁 치는 문장 역시 많습니다~ 역시 몸~~

Falstaff 2022-02-08 19: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오, 전 소피가 인상 깊었어요. 내용은 기억하는데 다른 등장인물은 서머싯 몸 말고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요!
(이래서 독후감을 써 놓아야 한다니까요. 썼으면 지우지 말고 버텨야 하고요. ㅠㅠ)

잠자냥 2022-02-08 20:36   좋아요 3 | URL
네 소피 인상 깊죠. 저도 몇 년 지나면 소피만 기억날까요? ㅋㅋㅋ 리뷰 강제 삭제당한 골드문트여~

공쟝쟝 2022-02-08 20: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 면도날은 뭘까요? 전 이번에 알겠어요. 고독하고 조용한 환경이요… (시골에서 티비소리때문에 지쳐가는 중..) 아 내가 그 상태를 너무 사랑하는 구나…(망했다 망했어!) 자냥님이 물어봐서 저 선택지 중에서 그나마 제일 원하는 건.. 전 돈입니다 돈… 내가 나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은 이제 좀 알겠으니까 그를 위해 귀찮은 것들을 제거할 용처로서 돈 돈 돈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래리에 공감하고 부러워서 짜증난다!!

잠자냥 2022-02-08 21:39   좋아요 2 | URL
ㅋㅋㅋ집에 오래 가 있으니까 당근 고독을 그리워할 거 같았습니다. 래리의 그 삶 저도 증말 부러워요. 하지만 나는 몸의 충고를 받아들여서 돈을 다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인도에도 가지 않을 것이라능(인도 왠지 씻는 거 불편하대서 여행도 안 가는 나란 사람…ㅋㅋㅋ)

책읽는나무 2022-02-08 22: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의 면도날은?
돈!!!! 명예!!!!! 권력!!!!!
전부 다 원합니다.^^
또 뭐없나? 찾아봐야겠어요🧐🧐
면도칼의 칼날을 넘어서야죠!!ㅋㅋㅋ
욕망 덩어리!!
그나저나 저도 래리처럼 한 번 살아보고 싶군요ㅋㅋㅋ

잠자냥 2022-02-08 22:24   좋아요 2 | URL
ㅋㅋㅋ 근데 래리처럼 살아보려면 탄광에서 일도 해봐야 하고 농가에서 막일도 해야 하고 부랑자처럼 떠돌기도 해야 합니다! ㅋㅋㅋ

초란공 2022-02-08 23: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빈둥거리기!!! (원하면 이루어지나요? ㅋㅋ)

잠자냥 2022-02-08 23:48   좋아요 2 | URL
ㅎㅎㅎ 다들 그 꿈이 이뤄지면 좋을 텐데요!

독서괭 2022-02-09 13: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결국 뭔가 뒷받침이 되니까 마음껏 마음의 풍요를 위해 떠돌 수 있는 것이군요.. 영혼의 고향, 그곳은 인도..갠지스..ㅋㅋ 그것 땜에 별 하나 깎으셨단 얘기에 으하하 웃었습니다^^ 전쟁을 겪고 나서 인생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부분에서 <댈러웨이 부인>의 셉티무스가 떠올랐는데 삶의 향방은 많이 다르네요.
전 근데 아무것도 안 할 수 있으면 진짜 너무 아무것도 안 할 것 같아서.. 적당히 일하고 쉬면서 살면 좋겠어요.

잠자냥 2022-02-09 14:08   좋아요 2 | URL
저도 인도나 갠지스 한 번 다녀오면 이 물욕(책욕심)이 좀 사라질까요? ㅎㅎㅎ
전쟁의 참상을 겪으면 인생에 대한 생각이 좀 달라질 것 같기는 해요.
 
면도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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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서머싯 몸, 재미 하나는 진짜 끝내준다. 그러나 래리가 인도로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서구인에게 갠지스강이란, 인도란 무엇인가. <인생의 베일>의 ‘키티’, <케이크와 맥주>의 ‘로지’ 그리고 이 책의 이사벨, 수잔, 소피 등 몸이 여성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은 확실히 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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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02-07 06:5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 <면도날> 독후감 분명히 썼는데 날렸어요! <달과 6펜스>도 같이 없어진 거 보니까, 또 술 마시고 뭐 조작하다가 실수한 거 같아요. 술을 끊던 목을 끊던 양단간의 결판을 봐야지 이거 어디......
<케이크와 맥주> 읽으면서 제일 생각났던 작품이 바로 이 <면도날>이었는데 말입죠. ㅠㅠ
M의 시각도 독특하고, 귀여운 잘난 척도 재미나잖아요.

잠자냥 2022-02-07 09:40   좋아요 4 | URL
그러니까요, 제가 분명 골드문트 님 리뷰 본 기억이 나서, 이번에 책 읽고 다시 읽어보려고 찾아봤는데 도무지 안 보이더라고요. 몸 작품 재미나다는 페이퍼만 보이고 말입니다. 아마 전에 골드문트 님 서재 알라딘에서 난리 났을 때 사라졌나 봅니다.
암튼 여기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 참 속물이기도 한데 뭔가 밉지 않아요. 여성 인물들만이 아니라 속물인 엘리엇, 속물인 몸 그 자신도 ㅋㅋㅋㅋ 다들 밉지 않습니다.

암튼 독서에 슬럼프가 왔을 때 서머싯 몸이나 도끼선생 책 읽으면 바로 탈출입니다. ㅋㅋㅋㅋ 이런 입담꾼들 같으니라구.

coolcat329 2022-02-07 10: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진작에 사놨는데 읽지는 않았네요. 저는 제목이 맘에 들더라구요. 뭔가 한 방이 있을 거 같은 느낌? 🤨

잠자냥 2022-02-07 11:24   좋아요 3 | URL
일단 이야기가 정말 재미나고요. 제 기준으로는 한 방도 있네요. ㅎㅎㅎ
 
브라질 산토스 디카페인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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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페인 사라져서 슬펐는데, 이렇게 새로운 디카페인으로 찾아왔다! 역시나 디카페인인지 절대 모를 감쪽같이 깊은 맛~ 신맛은 거의 없고 카라멜의 단맛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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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2-04 10: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앗 땡투 땡투~~ 저도 사러 갑니다. 슝-

잠자냥 2022-02-04 11:46   좋아요 3 | URL
앗 감사 감사~~ 전 어제 받아서 오늘 아침에 마셨어요. ㅋㅋㅋ

다락방 2022-02-04 14:19   좋아요 3 | URL
저 샀어요. 부자 되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2-02-07 09:41   좋아요 1 | URL
150원 입금됐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다. 부장님~

공쟝쟝 2022-02-08 10:33   좋아요 1 | URL
15000원쓰고 150원 나눠주며 풍성해지는 사람들…🤣

독서괭 2022-02-04 10: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책구매할 때 같이 사야겠어요~

독서괭 2022-02-04 10:43   좋아요 2 | URL
아 홀빈이군요.. ㅠ

잠자냥 2022-02-04 11:45   좋아요 2 | URL
괭님괭님 드립백도 있어요~ ㅎㅎㅎ

독서괭 2022-02-04 11:56   좋아요 2 | URL
오옷 그래요?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02-04 11: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브라질 원두 취향이예요
반갑네요^^

잠자냥 2022-02-04 11:47   좋아요 2 | URL
오 브라질 원두 취향인 분이 이 디카페인 먹으면 맛을 더 잘 감별할 수 있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Falstaff 2022-02-04 11: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요새 커피는 다른 데서 사서 말입죠. ^^;;;

잠자냥 2022-02-04 12:03   좋아요 3 | URL
커피값이 요새 다 스멀스멀 올라서 슬픕니다요~

mini74 2022-02-04 21: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카라멜맛에 솔깃 합니다 ㅎㅎ

잠자냥 2022-02-04 22:32   좋아요 0 | URL
단맛이 느껴집니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은 그리움이다. 내가 가본 적 없는 장소, 만난 적 없는 이들을 피사체로 담았는데도 그의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마음속에서 무언가 그리움이 일렁인다. 뿌옇게 물기 어린 유리창, 촉촉하게 비에 젖은 거리, 만지기만 해도 바스라질 듯 보송보송해 보이는 하얀 눈…. 그리고 그 비에, 눈에 수증기에 가려져 뚜렷하게 형체를 드러내지 않는 남자, 여자, 아이, 노인, 사람들, 사람들…. <영원히 사울 레이터>의 표지 이미지도 그렇다. 물기로 뿌옇게 흐려진 창밖으로 한 남자가 보인다. 한 손에 우산을 든 그는 모자를 벗는 중인지 쓰는 중인지 아리송하다. 거리는 어제인지 오늘인지 흰 눈이 내린 듯하고, 때마침 창밖으로 노란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간다. 물기 서린 창문 위로 누군가가 손 글씨를 남겼다. 뭐라고 썼는지 그 또한 또렷이 알 수 없지만 뭉툭한 그 글씨는 이 모든 이미지들과 함께 마음에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그리워하게 하는 흔적들.

<영원히 사울 레이터>의 표지 이미지는 사울 레이터의 사진이 지닌 힘을 단 한 장으로 완벽하게 보여준다. 사울 레이터는 뉴욕 이스트빌리지의 집에서 60년 가까이 살았는데 그 거리를, 자신의 동네를 날마다 산책하면서 주로 평범한 사람들과 일상적인 거리의 모습들을 렌즈에 담았다. 창문과 거울을 이미지를 구획하는 덮개와 프레임으로 활용해 이미지를 추상화했고 눈과 비를 이용해 사진에 회화적 요소를 덧입혔다. 더욱이 그의 작품이 소개될 당시(1950년대, 아니 사실상 레이터가 활동한 기간 내내), 사진에서 컬러는 경시되는 분위기였는데, 그는 거기에 과감히 색을 입혔다. 노랑, 빨강, 초록 등등 그 컬러도 화려하고 선명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그의 이 과감한 선택은 그를 이제 컬러 사진의 선구자로 명명하기에 이르렀다.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에 이어 <영원히 사울 레이터>를 한 장 한 장 넘겨보노라니, 내가 그의 사진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싶어진다. 빗방울 흐르는 창, 수증기 맺힌 창, 빨강 우산, 노랑 버스, 노랑 택시, 흰 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초록 가게, 꿈꾸듯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 혼자여서 고독하고 외로워 보이지만 어쩐지 집으로 돌아가면 누군가가, 그도 아니면 고양이 한 마리라도 살포시 반겨줄 것 같은 사람들, 카페 구석에서 글을 쓰는 여인….  어렴풋한 수증기와 빗방울, 왠지 따뜻할 것만 같은 하얀 눈, 꿈꾸는 사람들의 눈빛으로 인해 그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이미 꿈속 어딘가를 거니는 것 같다. 어느덧 그리움이 밀려온다. 이미 지나간 시절, 1950년대나 60년대로 짐작되는 한때. 그 무렵을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을 담은 레이터의 사진은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 시절이 꼭 좋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찍은 피사체는 하나 같이 쓸쓸하고 외롭다. 그런데도 그의 렌즈를 통해 바라보면 그 외로움은 희석된다. 물기 어린 창이나 부옇게 흐려진 거울이 필터처럼 외로움과 고독감을 걸러준다.



단순한 것이 지닌 아름다움을 믿는다.
전혀 관심을 끄는 데가 없는 대상도
굉장히 흥미로울 수 있다고 본다.



사진을 찍을 때 그림을 떠올리진 않았다.
사진은 찾아내는 것이지만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책을 소장하는 게 좋다
그림을 감상하는 게 좋다
인생을 누군가와 함께하는 게 좋아서
내게 마음써주는 이에게 나도 마음을 준다.
내게는 이것이 성공보다 중요했다.



레이터가 사진을 찍기 시작하던 1940년대 초기작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10여 년 동안의 미발표작까지의 엄선한 사진들이 실린 <영원히 사울 레이터>는 전작인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에 비해 인간 사울 레이터, 한 사람의 모습을 더 오롯이 만날 수 있다. 피츠버그에서 태어난 레이터는 뉴욕으로 오기 전까지는 도서관에 틀어박힌 채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처음에는 회화를 사랑했고,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와 일본 우키요에 작가들을 깊이 존경했다. 랍비가 되라는 가족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1946년 드디어 뉴욕으로 떠난 그. 그곳에서 그는 깜짝 놀랄 만큼 이국적이고 낯선 환경을 태어나 처음 접한다. 이 거대 도시는 레이터에게 비로소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렇게 그가 60년 넘게 살았던 거리의 소소한 풍경들을 <영원히 사울 레이터>에서 만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레이터의 자화상을 여러 점 살펴 볼 수 있고, 그의 벗이자 연인, 뮤즈였던 패션모델 솜스, 사울이 사진에 담은 최초의 모델이자 뮤즈인 두 살 어린 동생 데버라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인물 사진에서도 대상을 그저 대상으로만 표현하지 않는 레이터의 섬세한 시선이 느껴진다.

레이터는 “중요한 것은 장소나 사물이 아니라 자신의 시각”이라고 말한 바 있다(<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91쪽). <영원히 사울 레이터>에서도 그의 그런 생각은 여전하다. 그는 “신비로운 일은 친숙한 장소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늘 세상 반대편으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영원히 사울 레이터>, 196쪽) 말하면서 자신이 늘 산책하던 도시의 일상,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그런데도 그가 빚어낸 세계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목적 없이 그저 세상을 바라본다’는 태도로 찍은 그의 소박하면서도 아련한, 꿈결 같은 사진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빨강 노랑 초록으로 빛난다. ‘특정 대상을 찍기 위해 촬영을 계획한 적은 없’지만 순간순간이 빚어낸 일상의 아름다움을 포착할 수 있었던 그,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보지만 “세상은 무한한 기쁨의 근원”이라고 생각한 그. 그 모든 작품들이 “좋아서 한 일들”의 결과물이라고 말하는 그. ‘우리는 공개된 부분이 현실 세계의 전부인 척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이 세상은 빙산의 일각만을 보고 있다’고 말하곤 했던 그. 그렇게 생각했던 사울 레이터였기에 평범함 속에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렇기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보면 내 작품은 그리 대단하지 않다.”(136쪽)고 겸손하게 말할지언정, 그의 이 섬세한 사진들은 그가 믿고 싶었던 대로 분명 사람들에게 소소한 기쁨을 주었을 것이다. 성공보다도 “내게 마음써주는 이에게 나도 마음을 주는” 것이 중요했던 사람. 그런 사람이었기에 레이터의 사진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 아닐까. 오늘은 나도 손에 익은 평범한 카메라를 꺼내들고, 또는 스마트폰에 달린 카메라를 켜고 내가 걷는 이 동네 구석구석의 모든 평범한 것들을 좀 더 애정 어린 마음으로 렌즈 속에 담아보고 싶게 만드는 사진, 사울 레이터의 세계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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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2-03 15:19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내내 카메라를 들고 멋진 순간을 포착할 수 없으니 사울레이터의 사진같은 추옥돋는 작품들을 보면 빚을지는 기분도 들어요.^^

잠자냥 2022-02-03 15:45   좋아요 5 | URL
찍고 싶은 피사체의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하기 참 어렵죠. 저는 제 고양이들 정말 귀여운 걸 다 못담아서 늘 한입니다. ㅋㅋㅋㅋ

페넬로페 2022-02-03 16: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사울 레이터의 사진 넘 좋아요~~
60년 동안 같은 지역을 산책하면서 이렇게 좋은 작품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 참 대단해요. 이 책은 소장해야 되겠어요^^

잠자냥 2022-02-03 17:00   좋아요 4 | URL
네, 이 책은 두고 두고 펼쳐 보면 좋은, 소장용 책 맞습니다.

coolcat329 2022-02-03 16: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사울 레이터 사진은 사진같지가 않고 그림 같아요. 대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이 중요, ‘친숙한 장소‘에서 그 만의 시각으로 담아낸 사진이라 그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거 같아요.

잠자냥 2022-02-03 17:01   좋아요 3 | URL
그렇죠?! 정말 한폭의 그림 같습니다. 실제로 레이터의 그림도 참 좋더라고요~

mini74 2022-02-03 17:5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 빨간 우산 사진이며 넘 좋네요. 저도 이 책 주문했어요. 내일 온다는데 와야 오는거겠지요 ㅠㅠ

잠자냥 2022-02-03 18:32   좋아요 2 | URL
내일 올 거예요~ ㅋㅋ

초란공 2022-02-03 20:07   좋아요 1 | URL
다른 분 책 사시는거 보면 저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ㅋㅋ 아무래도 저는 책 마케터를 해야할까봐요 ㅋㅋ

새파랑 2022-02-03 18: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뭔가 흐릿하게 찍히는 사진이 우리의 기억처럼 흐릿한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더 마음에 와닿는거 같아요. 사울 레이터는 이름부터 멋짐 폭발입니다 ^^

잠자냥 2022-02-03 18:33   좋아요 4 | URL
그러게요. 생각해 보니 정말 이름도 멋지군요!

얄라알라 2022-02-03 18: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늘(어제였을지도...) 초란공님께서 사울 레이터 도서관 책을 입양해오신 에세이 읽었는데, 잠자냥님께서 사울 레이터를 2월 3일에 또 소환해주시네요. coolcat님, 페넬로페님, 북플에 사울 레이터 팬덤이 이미 있었군요! 저는 mini74님처럼 바로 주문하지는 못했지만, 꼭 사진집 확인해봐야겠습니다!

초란공 2022-02-03 20:23   좋아요 3 | URL
북사랑님은 오늘 저녁 책을 주문한다.... 레드썬!!! ㅋㅋ

잠자냥 2022-02-04 09:58   좋아요 0 | URL
네 어제 저도 초란공 님 리뷰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을 알아보듯이 좋은 사진도 많은 분들이 알아보시는 거겠죠. ㅎㅎ

책읽는나무 2022-02-03 20: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못참고 주문했죠.
저는 월요일 받기로 했죠.
그래서 이 리뷰를 가슴 설레며 읽게 되는 거겠죠? 리뷰마저 넘 좋네요♡

잠자냥 2022-02-03 23:20   좋아요 1 | URL
아니, 왜 하루 배송이 아니되는 것입니까?! ㅎㅎㅎ 사진 천천히 잘 감상하세요~~

독서괭 2022-02-03 22: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정말 마법같은 사진이예요~ 저 이번달 살 수 있는 책 딱 1권인데(이미 1권은 사서 오는 중..) 무지무지무지 고민됩니다ㅜㅜ

잠자냥 2022-02-03 23:21   좋아요 1 | URL
네, 정말이지 보고 있으면 마법 같습니다. 세상이~ ㅎㅎ다음 달도 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