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고
어제 미니 님의 페이퍼 ‘제일 처음 굴을 먹은 사람은 누구일까?’를 읽고 미니 님을 비롯해 그 글에 달린 여러 댓글을 살펴보니 많은 이들이 회라는 음식을 사회인이 되어 직장 회식 자리에서 처음 접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내가 회를 처음 알게 된 사연이 문득 떠오른다. 나는 열두 살, 그러니까 초등학교 5학년 때 회라는 음식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어느 날이었나 방 안에서 뒹굴거리며 책을 읽던 내게, 엄마가 문득 “너 오늘 엄마랑 어디 좀 갈래?”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무렵 엄마는 종종 나를 시장에 데리고 가서는 장을 보며 순대나 어묵 꼬치 같은 것을 사주곤 했던 터라, 그날도 그런가 보다 하고 신이 나서 엄마를 따라나섰다. 손을 잡았던가? 나도 그렇지만 엄마는 다정다감한 성격은 아니라서 아마도 손을 잡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 엄마는 시장과는 정반대쪽으로 걸음을 바삐 옮기더니, 어느 허름한 가게 안으로 앞장서서 들어갔다. 가게의 낡은 간판에는 실내포장마차라고 써 있었고, 가게 안에는 남루한 테이블 몇 개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한 서너 시쯤이었나, 손님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메뉴판이랄 것도 없이 벽에 쓰인 이런저런 글자를 보더니 아나고 한 접시랑 소주 한 병을 달라고 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말이 없었던 나는 엄마가 하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볼 뿐,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주인아주머니가 하얗고 잘게 부스러진 살점들이 빼곡하게 올라간 흰 접시와 소주 한 병, 그리고 새빨간 초고추장을 탁자로 가져다주셨다. 나는 그때쯤엔 오늘 엄마가 맛있는 것을 사주기는 글렀구나 싶어 조금 부아가 났던 것도 같다. 그런데 엄마는 아주 신이 난 표정이었다. “너 이게 뭔 줄 알아? 이게 회라는 거야.” 하더니 아나고를 푸짐하게 떠서 초고추장에 푹 찍어서는 입으로 가져간다. 그렇게 아나고를 먹고는 혼자 소주를 따라서 벌컥벌컥 마시는 게 아닌가. 어린 마음에도 이렇게 대낮부터 엄마가 술을 먹는 모습을 누가 보면 안 될 텐데 조바심이 났다. 엄마는 너도 먹어봐 하면서 내 입속에 초고추장을 찍은 아나고 한 숟가락을 들이밀었다. 날 생선을 먹는다는 게 꺼려져서 조금 저어했지만 입속에 넣은 아나고는 오도독오도독 쫄깃했다. “맛있지? 쫄깃하지? 엄마는 회를 정말 좋아해.” 그러면서 엄마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랬다. 엄마는 회를 좋아했다. 강원도 횡성, 산골에서 나고 자랐는데도 엄마는 회를 좋아했다. 엄마의 어린 시절은 유복했고, 그 부유한 환경에서 편히 자랄 수 있게 해준 사람은 다름 아닌 외할아버지였다. 외할아버지는 바다에서 나는 먹거리들을 좋아하셔서 횡성 그 산골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강릉까지 넘어가서는 싱싱한 횟감이며 생선을 사들고 집에 돌아오곤 하셨단다. 그래서 엄마는 그 어린 시절 횡성에 살면서도 회 맛을 알았고, 그때 그 시절, 그 산골에서도 도시락 반찬으로 생선구이를 싸가곤 했다고, 그렇게 열두 살의 나를 앉혀두고 행복에 잠긴 얼굴로 넋두리를 시작했다. 그런데 외할아버지는 너무나 일찍 돌아가셨다. 엄마의 불행은 어쩌면 그때부터 시작한 것 같기도 하다. 그 당시 우리 집은 할아버지, 할머니, 그러니까 엄마에게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되는 분들을 모시고 살았고, 아빠는 회는커녕 생선구이나 조림도 싫어하는,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촌놈 중의 촌놈’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니 우리 집에서는 회는커녕 반찬으로도 비린내 나는 생선은 거의 먹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빠가 엄마를 몰래 불러내 회 한 접시 사줄 아량이 있는 남자였느냐 하면, 그러기는커녕, 그 오후 엄마가 홀로 소주 잔을 벌컥벌컥 들이키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열두 살 나의 눈에도 내 엄마와 아빠는 서로 결코 만나지 말았어야 할, 불행한 부부였다. 엄마는 얼마나 회가 먹고 싶었던 것일까, 엄마는 얼마나 속상했으면 어린 나를 앞에 앉히고 소주를 마시는 걸까. 그날 엄마는 아나고 몇 점에 행복해 보이면서도 소주 몇 잔에 슬퍼보였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돌아가신 지 오래 전이고, 엄마의 인생 절반 가까이를 불행으로 이끌었던 아빠도 이제는 우리 곁에 없다. 그리고 나와 내 자매들은 어느덧 자라 스스로 번 돈으로 엄마에게 마음껏 비싼 회를 사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때부터였나? 엄마 생일이거나, 어버이날이거나, 아무튼 가족 기념일이면 우리는 늘 회를 먹는다. 엄마하고 소주잔도 마음껏 기울인다. 회와 소주를 마음껏 먹으며 엄마는 그 옛날처럼 횡성 살면서도 늘 회를 먹고, 생선으로 도시락 반찬을 싸 가던 자신의 유년 시절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우리는 아, 그만해 벌써 100번째야! 하면서도 그런 엄마를 말리지 않는다. 언젠가 그렇게 엄마와 회를 먹던 날, 나는 엄마에게 열두 살 그때 일을 꺼내 물은 적이 있다. “아나고가 정말 맛있었어?” 엄마는 “쫄깃해서 맛있기는 하지….” 말끝을 흐린다. 그즈음 나는 아나고가 다른 회에 비하면 아주 저렴하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이제 아나고를 먹지 않는다. 그때 엄마는 소주 한 병과 아나고 회 한 접시를 먹기 위해 장을 볼 때마다 얼마나 한푼 두푼 돈을 아꼈을까. 회를 먹을 때면 나는 나도 모르게 그때 그 아나고를 떠올리게 된다. 내게 회는 엄마의 쓸쓸함이라면 엄마에게 회는 유복한 유년시절, 한없는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그리고 과메기
과메기에도 남다른 추억이 있다. 이제는 계절마다 포항 구룡포에 주문해서 먹는, 내가 몹시 사랑하는 계절 음식 중 하나인 과메기- 그런데 과메기에 관한 기억도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다. 이십대가 끝날 즈음 헤어진 사람이 있다. 여전히 좋아하고 사랑하는데도 헤어질 수밖에 없던 사람이라 미련이 많이 남았었다. 그래서 그랬던가, 헤어지고 몇 달 지나지 않아 그 사람 회사 앞에 무작정 찾아갔다. 그 사람은 그때 집에서 소개해준 사람을 억지로 만나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새로운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아 괴롭던 차에 내가 나타났으니 놀라움 반, 반가움 반이었으리라. 그는 우리 사이에 큰 변화는 없었던 것처럼,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처럼 말했다. “내가 요즘 아주 신기한 음식을 알았는데, 그거 사줄까?” 그러면서 끌고 간 곳은 어느 빌딩 1층에 자리한 큰 음식점이었다. 그 사람은 과메기랑 소주를 달라고 했다. 소주는 잘 마시지도 못하는 사람이 뭔 소주람, 과메기는 또 뭐람 싶었는데, 이윽고 가게 아주머니가 한상 푸짐히 차려주신다.
아, 바로 이거구나. 나는 눈앞에 놓인 과메기를 보고서야 몇 해 전 내가 이 과메기를 먹어보긴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원에서 만난 사람들과 늦은 밤까지 술자리를 가지다가, 3차였나? 어느 한 사람의 제안으로 가회동 한 허름한 술집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그 사람이 과메기를 주문했던 것이다. 그다지 호감가지 않는 모양새에, 생선을 좋아하면서도 도무지 극복하기 어려운 비릿함에 그때 나는 과메기에는 거의 손도 대지 않았다. “나도 과메기 알아.” 퉁명스럽게 말하니 그 사람은 조금 풀이 죽는다. 비린 건 먹지도 않는 사람이 이건 어떻게 알아서 먹는대? 그 또한 얼마 전 회식 자리에서 과메기를 처음 먹었는데 이상하게 맛있어서 내 생각이 났다는 거였다. 꼭 한번은 사주고 싶었다고…. 헤어졌는데 어떻게 사주냐? 하니, “그러게, 근데 이렇게 사 주네…” 하면서 그 사람이 과메기 쌈을 싸서 내 입에 넣어주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눈물 때문인지 과메기는 더 비렸다. 그날을 끝으로 그 사람은 더 보지 않았다. 그는 얼마 뒤 결혼했다.
그 후로 한동안 과메기는 잊고 지냈다. 과메기 따위. 그러다 어느 날 친구들이 한남동에 과메기 정말 잘하는 집이 있다고 해서 그 집을 찾아가는 바람에 기억 속에 파묻혔던 과메기가 되살아났다. 그날도 과메기를 먹으면서 그 사람을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때는 내 곁에도 다른 사람이 생겼는데, 과메기를 보니 그 사람과 그날이 자연히 떠올랐다. 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맛을 알려주고 싶어져서 과메기를 포장해 애인 집에 갔다. 지금도 여전히 내 옆을 지키는 이 사람도 예전에는 비린 걸 잘 못 먹었다. 그날 내가 사 간 과메기도 내 성의를 생각해서 열심히 먹어주긴 했지만 몇 점 먹지 못하고 “와, 나는 이게 한계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는 어느덧 계절마다 나보다 더 먼저 과메기를 찾는 사람이 되었다. 언젠가 그가 과메기를 앞에 두고 물었다. “난 너 덕분에 과메기를 알았는데, 넌 이거 언제 처음 먹어봤어?” 내 머릿속엔 자동적으로 그 옛날 그 사람과 함께 먹었던 순간이 떠오른다. 눈물 때문인지 더 비릿하게 느껴지던 그 과메기가…. 그래도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 예전에 대학원 사람들하고 가회동인가 거기 과메기 잘한다고 누가 데려간 적 있거든.” 나는 아마도 앞으로도 과메기를 볼 때면 눈물 젖은 그때 그 과메기를 떠올리겠지만, 지금 이 사람에게 그걸 말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도 그런 음식 하나쯤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