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드디어 내일이면 히말라야로 간다!
1. 드디어 네팔이다.
주석 달린 월든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 깊이 읽기 주석 달린 시리즈 (현대문학) 3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제프리 S. 크래머 엮음, 강주헌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월든』의 경이로운 문장들을 읽어보십시오. 그것들은 우리의 가장 절실한 체험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 마르셀 프루스트

 * * *


(『주석달린 월든』 31쪽)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쓴 책은『월든』과 『주석달린 월든』달랑 두 권만 갖고 있었다. 그런데 올해 봄에 한꺼번에 무려 여덟 권을 더 샀었다. 그때 마침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날 예정이었던 히말라야 트레킹 때 짐꾸러미에 챙겨 넣을 책을 고르고 있었는데, 소로우가 쓴 책이라면 따져볼 필요가 없겠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신들과 함께 걷는 곳'이 히말라야가 아니던가. 소로우가 들려주는 이야기라면 '문명'에서 오롯이 벗어난 그곳 히말라야와는 너무나 잘 어울릴 것이라 여겨졌다.

히말라야로 떠나는 준비물 가운데 '몇 권의 책'은 필수품이라고 했다. 일찍 산행을 끝내고 롯지에서 저녁을 먹고 나면 다음날 아침까지는 '별 보는 일'과 '책 읽는 일' 말고는 별달리 할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두 사람의 구르카 병사들을 이끌고' 히말라야의 낭가파르밧 능선 저편으로 영원히 사라진 '시대의 반항아' 알버트 머메리가 쓴
알프스에서 카프카스로를 비롯해 소로우의 책도 세 권씩이나 챙겼다.(2년 전에 실크로드로 여행을 갔을 때 나는 걷는다 1 쓴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책 네 권을 들고 갔다가 깔끔하게 다 읽고 돌아온 기억도 그런 '무모한 욕심'에 보탬이 되었다. 사실 올리비에의 책은 걷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었지만 나는 정작 '날아다니며' 거의 다 읽었던 듯싶다. 인천 공항에서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까지 오가는 비행시간이 제법 넉넉했기 때문이었다.)

히말라야의 장엄한 풍경 속에 잠겨 '시대의 반항아'이자 '참된 등산가'였던 머메리의 책과 '문명의 반항아'이자 '참된 철학자의 삶'을 살았던 소로우의 책을 읽는 재미는 얼마나 짜릿할까. 기대가 무척 컸었다. 실제로 네팔에 도착한 이후 카트만두를 벗어나 히말라야에 접어든 첫날 밤에는 (다음날부터 만나게 될 히말라야의 눈덮힌 산봉우리들을 상상하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른 채 침낭 속에 들어가 머메리의 책을 두세 시간쯤 읽다가 잠들었었다. 그러나 히말라야에서 책을 펼치는 일은 그날 밤이 마지막이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내 얘기를 히말라야의 여러날 밤 속으로 더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다. 나는 어서 빨리 소로우에 대한 얘기로 발걸음을 옮겨야겠다.
 
올해 봄에 사들였던 소로우의 책은 나와 함께 히말라야에 올랐던 목사님(네팔 카트만두에 거주)께서 '여긴 읽을 만한 책들이 별로 없으니 다 읽은 책들은 좀 남겨두고 가라'는 부탁까지도 애써 외면한 채 고스란히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고, 나는 그때 무사히 되돌아온 그 책들을 다행히 요 몇 달 동안 거의 다 읽었다.

엊그제 마침내 제법 두툼한-그리고 주석도 제법 많이 달린-『소로우의 강』(원제는『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을 다 읽고 나니 이제야『주석달린 월든』을 제대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반가움마저 생겨났다. (이 책은 진작에 사 두고 가끔씩 드문드문 펼쳐보기만 했다. 왠지 소로우의 다른 책들을 다 읽고 나서 읽어야만 좋겠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오랫만에 다시 펼치는『월든』이지만 빼곡하게 '주석이 달린' 이 책은 역시나 처음에 읽었던 그냥『월든』과는 확실히 다르게 다가온다. 그리고『월든』에 왜 이토록 방대한 주석이 덧붙여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제는 분명하게 알 수 있을 듯하다.

『월든』에 필요한 주석을 쓰느라 오랜 시간을 바쳤던 제프리 S. 크래머는 말한다. "『월든』은 한 영웅에 대한 책이기 때문에 영웅을 그린 책이다." 라고. 그래서 '이 책은 신화처럼 읽힌다.'라고. 나도 그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고 싶다. 그의 말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월든』을 한번 읽어보고 나서 판단해도 물론 늦지 않다. 영웅을 그린 신화는 그렇게 쉽게 읽히지 않는다.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 멀리서 답을 찾을 필요는 없다. 소로우 스스로 이 책 속의 한 장인 「독서」에서 그 방법을 미리 밝혀 놓았다.

"영웅을 그린 책들이 우리 모국어의 문자로 인쇄되더라도 타락한 시대에 사는 사람에게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혜와 용기와 관용을 발휘해 일상적인 용법이 허용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를 추측해가며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의 뜻을 열심히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를 '영웅처럼' 여기고 있다. 『월든』은 어느덧 영웅에 대한 이야기로 격상된지 얼마쯤 지났고, 어떤 독자들에게는 신화처럼 읽혀야 하는 책으로 바뀌었다.『주석달린 월든』은 괜히 나온 책이 결코 아니었다.

이 책 속에 담긴 주석은 과연 얼마나 될까. 두 번씩이나 두드린 내 계산기는 정확하게 1,640개라고 두 번 말한다. 놀라운 숫자이고 이렇게 주석이 많이 달린 책은 여태 읽어본 적이 없어서 내게는 더욱 놀라운 책이다.

소로우 형제와 함께 '일주일 동안'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으로 보트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제 다시 콩코드의 숲속으로 되돌아가 월든 호숫가 오두막에 놓인 빈 의자 하나를 끌어다 놓고 그의 곁에 앉아 그의 얘기에 귀를 기울일 시간이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소로우가 말하는 대로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의 뜻'을 열심히 찾아 가면서 들어야겠다. "책은 처음 씌어졌을 때처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읽혀져야 한다"는 그의 권고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이 없었더라면 새까맣게 놓치고 말았을 얘기들이 과연 얼마나 많을지 몹시 궁금하다.



(『주석달린 월든』 52쪽)

 


어떤 날씨에나, 낮이나 밤 어떤 시간에나 나는 시간의 홈85을 활용하고 그 순간을 내 지팡이86에도 표시해두고 싶었다. 달리 말하면, 과거와 미래라는 두 영원이 만나는 점,87 요컨대 현재의 순간에 서고 싶었고, 현재라는 출발선에 발끝을 대고 서고 싶었다.88
(52쪽)


주석

85. ['시간의 홈'은 'the nick of time'을 번역한 것이다-옮긴이] 이 표현은 16세기에 'in the nick'으로 처음 사용됐다. 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 'nick'이라는 단어는 '아슬아슬한 순간'이나 막대에 새겨진 눈금을 뜻한다. 어떤 사람이 교회에 들어가자마자 문이 닫혔다면 그는 용케 시간에 맞춰 늦지 않게 들어간 것이며 따라서 '시간의 홈'에, 즉 아슬아슬하게 들어간 것이 된다.

86. 소로는 측량하기 위해 눈금이 새겨진 막대를 갖고 다녔지만, 여기에서는 대니얼 디포(Daniel Defoe, 1660-1731)의 로빈슨 크루소를 빗댄 표현이다. 크루소는 나무 기둥에 눈금을 새겨 시간을 기록했다. 소로는 일기에서도 "로빈슨 크루소가 막대기에 매일 표식을 했듯이, 우리는 매일 우리의 품성에 눈금을 매겨야 한다"(일기 1:220)라고 썼다. 소로는 자급자족하며 독립된 삶을 살았던 크루소에게 매력을 느꼈던지 「커타딘 산」과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에서 거듭 크루소에 대해 언급했다.

87. 토머스 무어(Thomas Moore, 1779-1852)가 동양의 화려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삼아 쓴 이야기체 시 「랄라 루크」에서 "과거와 미래-두 영원! / 두 끝없는 바다 사이의 이 좁은 지협"을 빗댄 표현으로 여겨진다.

88. '출발선에 발끝을 대고 서라toe the line'는 선원들에게 갑판 점호 시간에 두 판재를 이은 자리에 발끝을 대고 서라는 지시였다. 그래야 열이 반듯하게 정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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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을 쓴  제프리 S. 크래머의 머리말 가운데 소로우가 쓴 편지에 실린 '등산에 대한 숙제'도 무척 흥미롭다.)

                                               머리말

"『월든』출간."  『월든』이 출간된 1854년 8월 9일, 소로가 일기에 쓴 내용의 전부다. 그가 월든 호수로 이주한 후 9년 동안 일곱 번이나 원고를 고쳐 쓴 후에 맺은 결실이었다.

(중략)

월든 호수로 이주한 날의 일기도 간단하기 그지없다.
"7월 5일 토요일. 월든-어제 이곳에 살려고 왔다."

(중략)


소로는 일기에서 언급하고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에서 되풀이했듯이, 자서전이 전기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는 "내가 내가 아니면 누가 나이겠는가?" 라고 묻고, 『월든』을 출간한 후인 1857년 10월 21일의 일기에서 "시인이라면 자신의 전기를 써야 하는가? 훌륭한 일기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그가 창조해낸 상상의 영웅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은 게 아니라 현실의 주인공이었던 그가 매일의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중략)

그러나 우리는 『월든』이 엄격한 의미에서는 자서전이 아니라, 소로가 자신이 만들어간 신화적인 삶에 예술적인 완전함을 더하기 위해 자유롭게 써내려간 문학 작품임을 기억해야 한다.

(중략)

소로가 쓰고 있던 것은 분명히 신화였다. 『월든』을 의도된 방향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읽는 독자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소로는「독서」에서 "올바른 독서, 즉 참다운 책을 참다운 정신으로 읽는 것은 고귀한 운동이며, 요즘의 세태가 높이 평가하는 어떤 운동보다도 독자에게 힘든 운동이다. 운동선수들이 받는 것과 같은 훈련이 요구되고, 책을 읽겠다는 마음가짐을 거의 평생 동안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책은 처음 씌어졌을 때처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읽혀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월든』을 월든 호숫가에 잠시 살았던 사람의 기록으로 생각해서 자서전으로 읽는다면, 소로가 에머슨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고 어머니와 누이들이 빨래를 대신 해주었다는 사실을 들먹이며 쓸데없이 트집 잡는 사람들의 주장에 귀가 솔깃해질 수 있다.

소로는 「독서」에서 "영웅을 그린 책들이 우리 모국어의 문자로 인쇄되더라도 타락한 시대에 사는 사람에게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혜와 용기와 관용을 발휘해 일상적인 용법이 허용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를 추측해가며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의 뜻을 열심히 찾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의도와 방향을 분명히 밝혔다. 소로는 먼 옛날의 책, 동서양의 정신적인 고전에 대해 글을 쓴 것이 아니다. 소로는 지금 당신이 손에 쥐고 있는 책에 대해 쓴 것이다.
『월든』은 한 영웅에 대한 책이기 때문에 영웅을 그린 책이다.

(중략)

소로가 경험에서 진실을 이끌어내는 방법은 1857년 11월 16일 블레이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네에게 숙제 하나를 내겠네. 산을 오르는 게 궁극적으로 자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고 빠짐없이 적어보게. 그렇게 쓴 글을 반복해서 읽고, 자네 경험의 중요했던 모든 것을 담아냈다고 만족할 때까지 고쳐 써보게. 인간은 앞으로도 산에 올라야 할 테니 자네가 산에 올랐던 이유를 먼저 자네 자신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해보게. 처음 열두 번 정도를 시도해서 정확하게 해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게. 하지만 끈기 있게 반복해보게. 특히 충분한 휴식을 가진 후에 자네가 문제의 핵심이나 정점에 닿았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도전해서 산에 오르는 이유를 자네 자신에게 설명해보게. 이야기가 꼭 길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간략하게 정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네. 산에 오르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자네가 진정으로 산의 정상에 오른 적이 있었던가? 자네가 워싱턴 산의 정상에 올랐다면, 거기에서 무얼 보았는지 묻고 싶군. 자네도 알겠지만, 모든 것이 그런 식으로 입증되는 걸세. 산 정상에 올라 상쾌한 기분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네. 정상에 오르면 우리는 더 이상 오르지 않으니까. 대신 점심 같은 걸, 여하튼 집에서처럼 푸짐하게 먹네. 어쩌면 집에 돌아온 후에야 우리는 진정으로 산에 올랐다고 말할 수 있네. 산이 뭐라고 말하던가? 산이 무엇을 하던가?


『월든』을 읽는 독자에게도 똑같은 충고가 주어질 터다. 『월든』을 읽는 데는, 즉 산을 오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는 '진정으로 산에 올랐는가? 거기에서 무엇을 보았는가?'라고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월든』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대답은 시대마다, 또 개인에게도 매년 달라지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도 산에 오르고 월든 호수로 되돌아가며 『월든』을 다시 읽는다. 『월든』이 출간된 지 1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가슴에 설득력 있게 와 닿는 글이라는 사실은, 위대한 스승의 우화처럼 보편성을 띤다는 증거이며, 우화를 만드는 선각자이자 시인이었던 소로에게 보내는 찬사다.

 - 제프리 S. 크래머(주석을 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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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2) 먼댓글(3) 좋아요(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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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ne summer night
    from Value Investing 2014-08-05 18:47 
    모든 책이 다 독자들만큼 따분한 것은 아니다. 어떤 책에는 어쩌면 우리의 현 상황에 딱 들어맞는 말들이 들어 있을 가능성도 크다. 만약 우리가 이 말들을 정말로 듣고 이해할 수만 있다면 아침이나 봄보다 우리의 삶에 더 큰 활력을 줄 것이며, 우리에게 사물의 새로운 측면을 보여줄지 모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 권의 책을 읽고 자기 인생의 새로운 기원을 마련했던가! 우리의 기적들을 설명해주고 새로운 기적들을 제시해줄 책이 어쩌면 우리를 위하여 존재할
  2.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둘러싼 이야기
    from Value Investing 2015-12-12 00:14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이 과정에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만일 네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도 네 안으로 들어가 너를 들여다본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제4장 <잠언과 간주곡> 중에서 * * * 내가 이 소설을 만난 건 대략 31년 전쯤이다. 물론 그 때 내가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받았던 대단한 감동은 오랜 세월 탓에 그저 희뿌연 안개 너머로 보이는 풍경처럼 그저 어슴푸레하
  3. 다시 콩코드와 월든 호숫가로 발길을 옮긴 시간들
    from Value Investing 2017-04-18 16:57 
    "시인이라면 자신의 전기를 써야 하는가? 훌륭한 일기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그가 창조해낸 상상의 영웅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은 게 아니라 현실의 주인공이었던 그가 매일의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1857년 10월 21일의 일기에서 * * * 어떤 작가는 오로지 작품으로만 그를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호메로스가 대표적이다. 작가의 삶이 덜 알려질수록 작품이 더욱 신비로운 색깔로 채색되는 경우도 드물지는
 
 
oren 2013-12-10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오래 전에 올렸던, '내일이면 히말라야로 간다'는 그 소식만 듣고, 그 이후 '간다, 온다' 소식을 듣지 못한 어느 알라디너 분께서, 그 먼 데까지 '링크'를 걸어달라는 정중한 부탁을 해주신 덕분에, '먼댓글'이 제법 '멀리까지' 내려간 점을 부디 양해해 주세요~

숲노래 2013-12-10 0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로우 님은 영웅이라기보다는 시골이웃이리라 하고 생각해요.
어느 책으로 돌아보더라도
호미와 연필을 손에 쥐고 즐겁게 삶을 지은
시골이웃.

이러한 시골이웃, 영웅 아닌 시골이웃이 차츰차츰 늘어날 때에
지구별에 평화와 사랑이 감돌 수 있으리라 느껴요.

oren 2013-12-10 09:50   좋아요 0 | URL
비록 콩코드에 사는 이웃 사람들 대부분은 소로우의 독특한 삶의 방식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고, 소로우 또한 지역 잡지에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할 때마다 이웃 주민들이 '재미없어 할까봐' 고민했던 흔적도 여러차례 드러냈지만, 그런 점들은 소로우에게 결코 아무런 문제도 되지 못했지요. 그는 시골 이웃 사람들로서는 쉽게 짐작하기 어려웠던 '전혀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지요.
* * *
내가 아는 한 청년은 몇 에이커의 땅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는데 그는 '여력만 있다면' 나처럼 살고 싶다고 내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남이 내 생활양식을 그대로 따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 까닭은 그 사람이 내 생활양식을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나는 또 다른 생활양식을 찾아낼지 모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될 수 있는 한 많은 제각기 다른 인간들이 존재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각자가 자기 자신의 고유한 길을 조심스럽게 찾아내어 그 길을 갈 것이지, 결코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이웃의 길을 가지는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월든』중에서

oren 2013-12-10 10:20   좋아요 0 | URL
저는 월든을 처음 읽을 때 소로우에게서 받았던 강렬한 인상 때문에 제 생각을 적어둔 게 있는데, 소로우의 책을 읽으면 아직도 가끔씩 그때 떠올렸던 시골 할아버지 생각이 난답니다. 그분은 손수 호미를 들고 밭을 가꾸시기 보다는 주로 꿀벌을 키우셨지만요.

* * *

이웃에 사람이 있음으로써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되던 모든 이점이 대단치 않은 것임을 느꼈고 그 후로는 그런 것을 생각해본 일이 없다. 솔잎 하나하나가 친화감으로 부풀어올라 나를 친구처럼 대해주었다. 나는 사람들이 황량하고 쓸쓸하다고 하는 장소에서도 나와 친근한 어떤 것이 존재함을 분명히 느꼈다. 나에게 혈연적으로 가장 가깝거나 가장 인간적인 것이, 반드시 어떤 인간이거나 어떤 마을 사람이지는 않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부터 어떤 장소도 나에게는 낯선 곳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P189)

(나의 생각)
소로우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어릴 때 우리 마을에 사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자꾸만 떠오른다. 내가 태어나 자란 마을은 집성촌이었던 때문에 그 할아버지도 집안 어른이셨는데, 학문의 깊이로는 이웃 수십킬로 이내에서는 따라올 만한 분이 없다고 할 정도였었다. 아주 어릴 때의 기억이라 자세한 건 생각나지 않지만 사서삼경에 통달하셨고, 주역을 비롯한 동양철학에 대한 깊이가 대단하다고 하셨던 것 같다. 그 할아버지는 특이하게도 우리 마을에서 2∼3km쯤 떨어진 강 건너 산 아래에 홀로 사셨다. 머리도 백발이셨고 콧수염과 턱수염도 백발이셨기 때문에 어떨 땐 산신령을 좀 닮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우리가 가끔씩 강을 건너 산으로 땔깜나무를 하러 다니거나, 한 겨울에 토끼나 꿩을 잡으로 다닐 때나, 농삿일을 도우러 할아버지가 사시던 집 근처를 지나칠 때면, 그 할아버지는 언제나 책만 열심히 들여다보셨던 것 같다. 우리는 늘 '혼자 산 밑에 사시면 깜깜한 밤이 되면 얼마나 무서울까?' 하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어쨌든 그 분의 삶 또한 소로우와 매우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늘 자연과 가까이 있으면서도 조금도 외롭지 않고, 늘 옛 성현들과 만나고 또 그 분들과 대화하기 위해 '고전'을 읽는 데 평생을 보냈던 것 같다.

마녀고양이 2013-12-10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유를 모르겠으나,
오늘 제 어깨에 지나치가 힘이 들어가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잠시 힘을 빼봅니다. 하아.......
한때 소로우를 정말 부러워하고 그렇게 살고 싶어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망이 실은 제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욕구와 맞물려 있음을 깨달으면서
소로우처럼 순수하게 그 자연 속에서 사는 목적이 아니었구나 싶더군요. 언젠가
저도 소로우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히말라야 여행 궁금합니다. 곧 올려주실거죠? ^^
다시 보니 먼댓글에 다 있었군요.... 와아,

oren 2013-12-10 13:47   좋아요 0 | URL
소로우는 월든에 도착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일기에서 "삶! 삶이 무엇이고, 삶이 무엇을 하는지 누가 알겠는가?" 라고 썼을 정도로 '삶 자체를 모험 속에 내던진' 사람이었죠. 그의 나이 스물여덟 살일 때였으므로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나이가 아니었나 싶기도 해요. 누구나 한때 집을 떠나 홀로 살고 싶은 꿈을 꿔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싶어요. 그러나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이래저래 여러 '삶의 굴레' 속으로 점점 빠져들 수밖에 없으니, 우리가 더욱 '자유로운 삶'을 갈망하는 지도 모르구요.

히말라야에 다녀온지 겨우 일곱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제겐 벌써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지네요. ㅎㅎ

다크아이즈 2013-12-11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석달린 월든, 보관함에 담았어요.
제가 이해하든 못하든 오렌님의 발자국이 지나간 책은 관심을 아니 가질 수가 없지요.
소로우처럼 살고 싶지도 않고, 살지도 못해요.
다만 소로우 내면의 행적과 그 삶을 존중하고 알고 싶습니다.

논술 교재로 주석 없는 월든 읽을 땐 별 감흥이 없었는데, 오렌님 안내를 보니 다시 읽어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고맙습니다^^*

oren 2013-12-11 15:38   좋아요 0 | URL
『주석달린 월든』을 찬찬히 읽어 보니 한 권의 책 속에 무수히 많은 신화와 전설, 역사와 문화, 경제와 철학, 자연과 과학, 소설과 시를 비롯한 문학 등등,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인간의 삶'에 대한 거의 모든 부분이 빼곡히 들어차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되어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에서 불쑥 내던지는 원대한 생각은 어른이 된다고 해서 쉽게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어린아이의 생각은 그 자체로 빛나기 때문에 구름에서 번갯불을 끌어내릴 필요가 없다'고 말한 소로우 님이 스스로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날만큼 지혜롭지 못한 걸 항상 한탄한다'면서 무려 9년 동안이나 묵히고 다듬어 쓴 글이니, 팜므님이 다시 읽어보시면 틀림없이 새롭게 다가오는 대목이 많으리라 믿어요.

숲노래 2013-12-14 0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육사 위인전을 읽으니,
이육사 님도, 이녁 형제와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도 모두,
집안이 넉넉한 살림이었어도
손수 농사지으면서 학문도 함께 하면서 지내셨더라고요.

oren 2013-12-14 12:15   좋아요 0 | URL
아하.. 이육사 님도 손수 농사지으면서 시를 쓴 시인이었군요. 『소로우의 강』에서 소로우 님이 글을 잘 쓰려면 '장작 패는 법이라도 배우라'고 했던 깊은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되는군요.

* * *

한가로이 공부만 하는 것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이 있을까? 장작 패는 법이라도 배워라. 학자도 땀 흘려 일하고, 여러 사람과 대화하고, 갖가지 일을 보고 들을 기회를 가져야 한다. 꾸준히 해야 하는 노동은 공부 못지않게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글과 말에서 쓸데없는 수다와 감상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노동을 하는 것이다. 당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일하고 나서 그 시간 동안 생각의 흐름을 놓쳤다고 안타까워할지 모른다. 하지만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그날의 경험을 단 몇 줄이라도 적어보라. 상상력은 뛰어나나 게으른 공상에 불과한 글보다는 훨씬 음악에 가까운 진실한 글이 나올 것이다. 작가란 모름지기 노동자들의 세계를 다뤄야 하므로, 그의 삶의 원칙도 그러해야 한다.

짧은 겨울해가 지고 어둠이 오기 전에 패서 묶어내야 할 장작들이 많이 쌓여 있는 작가를 상상해보라. 그는 일터에서 쓸데없이 춤을 추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시간을 아껴 굳은살이 박힌 투박한 손으로 도끼를 들어 장작을 내리찍는 소리가 쩌렁쩌렁 숲을 울릴 것이다. 이렇게 일하는 투박한 손에서 나온 그의 글들은 도끼 소리가 잦아들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독자들의 귀에 쩌렁쩌렁 울릴 것이다. 학자는 손에 못이 박힐 정도로 강인한 진실을 쓰기 위해 애써야 한다. 손에 박힌 못이 그가 쓰는 글을 튼튼하게 만들어준다. 실제로 몸이 활기차지 못하면 정신의 노력이 나아질 수 없고, 열매를 맺을 수도 없다. 우리는 글 쓰는 훈련을 거의 받지 못한 고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내몰렸을 때, 금세 힘차고 정확한 글투에 도달하는 모습에 깜짝 놀라곤 한다. 솔직하고 생기 있고 성실하면서 잘 다듬어진 글투는 학교가 아니라 농장과 일터에서 더 잘 배울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 투박한 손으로 쓰여진 글들은 잘 무두질된 가죽끈이나 사슴의 근육, 소나무 뿌리에 못지않게 질기고 억세다.

그랜드슬램 2017-05-26 1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3년전에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갔을 때
<월든>을 배낭에 넣어서 간 적이 있더랬습니다.
시간관계상 푼힐까지 가는 곳 롯지에서 설산을 바라보며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감자튀김에 맥주를 마시고 홀로 침잠하며 소로우의 삶과 철학을 느꼈는데
여행의 행복이 배가 되었습니다.
항상 금과 같은 리뷰와 페이퍼의 글을 소중히 읽고 있는 독자입니다^^
감사드리고 항상 건강하시어 좋은 글 많이 써 주세요^^

oren 2017-05-28 23:28   좋아요 0 | URL
오호.. 그랜드슬램 님께서도 히말라야 가셨을 때 <월든>을 가지고 가셨었군요. 정말 놀랍네요. 제가 4년 전에 ‘랑탕계곡‘ 쪽으로 트레킹을 갔을 때 ‘안나푸르나‘ 쪽으로 트레킹 갔다 온 친구도 함께 동행했었는데, 나중에 언젠가는 저도 ABC, EBC 코스로 또다시 트레킹을 나서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답니다. 언젠가 또다시 히말라야를 찾을 때, 그 때도 <월든>을 들고 갈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