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한 핑계가 없을 때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주일 예배를 다녀온다. 대개는 설교 시간에 졸다가 오기 십상이지만(내가 좋아하는 시간은 설교시간이 아니라 기도시간이다) 그래도 '다윗의 덫'이란 제목의 오늘 설교말씀은 몇 가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어서 절반은 졸지 않을 수 있었다(이럴 때는 들고 간 한영성경과 러시아어성경을 이리저리 들춰보기도 한다). '다윗의 덫'이란 설교말씀은 사뮤엘하 11장 1-5절에 근거한 것이었는데, 그 유명한 '다윗과 바세바'의 일화를 다룬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남의 아내와 동침하고서는 그 남편을 죽게 만든 후에 그 여자를 아예 아내를 맞아들인 다윗의 '색욕'과 '주책'에 관한 일화인데, 다윗에 관한 허다한 일화들 가운데 그래도 가장 '재미있는' 일화가 아닌가 한다. 이게 내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는 건 헐리우드에서 이미 <다윗과 바세바>(1951)란 영화를 만든 바 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그레고리 펙과 수잔 헤이워드 주연이다. 그레고리 펙은 '맥아더 장군' 역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배우). '몇 가지 생각할 거리'를 여기에 다 늘어놓을 형편이 되지 않기에 성경말씀과 함께 몇 가지 이미지들만을 먼저 저장해둔다. 사무엘하 11장의 1-5절을 읽단 읽어보기 전에 렘브란트가 그린 '바세바'(<다윗왕의 편지를 받은 바세바>)를 잠시 감상해본다. 성경의 구절은 우리말로 읽기 편한 공동번역 성경에서 인용한다.   

1 해가 바뀌는 때가 왕들이 싸움을 일으키는 때였다. 그 때가 되자 다윗은 요압에게 자기 부하 장교들과 이스라엘 전군을 맡겨 내보냈다. 그들은 암몬을 무찌르고 마침내 라빠를 포위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다.
2 어느 날 저녁에 다윗은 침대에서 일어나 궁전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을 하고 있는 한 여인을 보게 되었다.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3 다윗이 사령을 보내어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하니, 사령은 돌아와서 그 여인은 엘리암의 딸 바쎄바인데 남편은 헷 사람 우리야라고 보고하였다.
4 다윗은 사령을 보내어 그 여인을 데려다가 정을 통하고는 돌려 보냈다. 여인은 마침 부정을 씻고 몸이 정결한 때였다.
5 바쎄바의 몸에 태기가 있게 되었다. 그래서 다윗에게 자기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렸다.

이 구절들에 대해서 목사님이 설교말씀을 하시는 중에 내가 한 딴짓은 4절에서 "여인은 마침 부정을 씻고 몸이 정한 대였다", 즉 '목욕했다'의 시점 문제를 따져본 것이었다. 러시아 성경에서는 다윗과 정을 통한 이후에 목욕하고 집에 돌아갔다는 식으로 번역돼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내가 갖고 있는 한영성경에서는 모두 다윗에게 오기 전에 목욕하고 온 것으로 돼 있다. 러시아어 성경의 오역일까? 하긴 오며가며 했을 목욕일 텐데, 순서야 대수롭지 않을 듯도 하지만. 아래는 영화속에서 목욕하는 바세바 역의 수잔 헤이워드.

50이 넘은 '늙은' 나이에 남의 아낙을 탐한 다윗의 '정력'이 부러워할 만한 것인지 지탄받을 만한 것인지는 다윗과 바세바를 그린 다른 그림들을 보건대, 다윗과 바세바의 관계가 영화에서처럼 멋있는 커플 관계였을 법하진 않다. 한 산부인과 의사는 ''핍쇼' 중독자 다윗'이란 칼럼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관음증은 다른 사람이 옷을 벗거나, 나체의 모습 혹은 타인의 성관계하는 장면을 몰래 보는 것을 즐기고 성적 쾌감을 느끼는 경우를 말한다. 사춘기를 거쳐 청소년 시기에는 누구나 이러한 경향이 있으므로 병적이고 비정상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청소년기를 지난 후에도 강박적으로 이러한 행위를 끊임없이 추구하며 사회생활, 직장생활에 비건전한 악영향을 준다면 진단될 수 있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위대하고 현명한 유대의 왕으로 추앙받는 다윗 역시 ‘관음증’의 희생자였을 가능성이 큰데, 그림(*어느 그림인지는 모르겠다)에 묘사된 것을 보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푸른 하늘에 흰구름이 떠있고 눈부신 햇살만큼 투명한 알몸을 드러낸 저 멀리 옥상의 아찔한 눈부신 여인의 알몸은 이민족과의 전쟁을 앞두고 깊은 시름에 잠긴 왕의 눈동자를 단숨에 사로잡는다. 번쩍 태양보다도 강렬한 자극에 이성을 잃은 왕은 백성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결국 유부녀인 그녀를 차지하고야 만다. 믿을 수 없게도 이 과정에서 음모를 꾸며 그녀를 과부로 만들어 버리는 만행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바세바, 그녀가 별볼일 없는 남편에게 실망해 화려한 권력을 꿈꾼 채로 대낮의 목욕이라는 치밀한 각본 끝에 스트레스 쌓인 왕을 유혹한 것인지, 정말로 우연한 대낮의 목욕에 ‘핍쇼’중독자인 늙은 왕이 주책없이 매료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남성의 부정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한 사람들은 그의 욕망을 추악한 관음증 탓으로 돌리지 않고 천하의 악녀 바세바가 그의 페니스에 술수를 부린 것으로 해석해 남성을 단지 어쩔 수 없었던 희생자로 격상시킨다('스포츠서울' 05. 10. 10).

적어도 이후에 벌어진 결과는 다윗의 '주책'보다 바세바의 '각본'에 힘을 실어주는 듯하다. 11장의 나머지 절들을 마저 읽어보기로 하자. 

6 그러자 다윗은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어 헷 사람 우리야를 자기에게 보내라고 하였다. 요압이 우리야를 다윗에게 보냈다.
7 우리야가 당도하자 다윗은 요압과 병사들의 안부를 묻고 싸움터의 형편도 알아보고 나서
8 집에 돌아가 푹 쉬라고 하였다. 우리야가 어전에서 물러나올 때 왕은 술상까지 딸려 보냈다.
9 그러나 우리야는 집으로 가지 아니하고 대궐 문간에서 근위병들과 함께 잤다.
10 다음날 다윗은 우리야가 집에 돌아가 자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우리야에게 물었다. "그대는 먼 길에서 돌아온 몸이 아닌가? 그런데 어찌하여 집에 내려가 보지 않았는가?"
11 우리야가 다윗에게 대답하였다. "온 이스라엘 군과 유다 군이 야영 중입니다. 법궤도 거기에 있습니다. 제 상관 요압 장군이나 임금님의 부하들도 들판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만 집에 가서 편히 쉬며 먹고 마시고 아내와 더불어 밤을 지내다니, 도저히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12 다윗은 "그럼 오늘은 여기에서 지내도록 하오." 하며 우리야에게 내일은 돌아가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우리야는 그 날도 예루살렘에서 묵었다.
13 다음날 다윗은 우리야를 불러들여 한 식탁에서 먹고 마시게 하여 그를 흠뻑 취하게 만들었다. 우리야는 그 날 저녁에도 어전에서 물러나와 집으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근위병들과 함께 잤다.
14 날이 밝자 다윗은 요압 앞으로 편지를 써서 우리야에게 주어 보냈다.
15 다윗은 그 편지에 이렇게 썼다. "우리야를 가장 전투가 심한 곳에 앞세워 내보내고 너희는 뒤로 물러나서 그를 맞아죽게 하여라."
16 요압은 성을 지켜보고 있다가 강병이 지키고 있는 데를 알아내어 그 곳으로 우리야를 보냈다.
17 그러자 그 성에서 적군이 나와 요압의 군대를 쳤다. 다윗의 부하들은 쓰러지고 헷 사람 우리야도 죽었다.
18 요압은 다윗에게 전황을 보고할 전령을 보내면서
19 이렇게 지시하였다. "이번 싸움의 보고를 드리면,
20 왕께서 화를 내시며 '어쩌자고 그렇게까지 성에 가까이 쳐들어갔었느냐? 성벽에서 화살이 날아올 줄도 몰랐느냐?
21 여룹베셋의 아들 아비멜렉이 누구의 손에 죽었느냐? 데베스 성벽 위에서 어느 하잘것없는 한 계집이 내려 던진 맷돌에 맞아 죽지 않았느냐? 그런데 어찌하여 성벽 가까이 갔었느냐?' 하고 꾸짖으실 것이다. 그 때 너는 왕의 부하 헷 사람 우리야도 죽었다고 아뢰어라."
22 전령은 길을 떠나 다윗에게 와서 요압이 이른 대로 보고하였다. 그러자 다윗은 화를 내며 전령에게 호통을 쳤다. "어찌하여 그렇게까지 성에 가까이 쳐들어갔었느냐? 적군이 성벽에서 화살을 쏘아댈 줄도 몰랐더냐? 여룹베셋의 아들 아비멜렉이 누구의 손에 죽었느냐? 데베스 성벽 위에서 한 계집이 내려 던진 맷돌에 맞아 죽지 않았느냐? 그런데 어찌하여 그렇게까지 성에 가까이 갔었느냐?"
23 전령이 왕에게 대답하였다. "적군이 들에까지 나와 우리를 몰아대기에 우리도 마주나가 놈들을 쫓다 보니 성문 가까이까지 쳐들어가게 되었습니다.
24 그 때 성 위에서 활을 쏘아대는 바람에 임금님의 근위병도 몇이 죽었고 임금님의 부하인 헷 사람 우리야도 죽었습니다."
25 이 말을 듣고 다윗은 전령에게 말하였다. "요압에게 돌아가거든, '전장에서는 누구든지 죽을 수 있는 것이니, 이 일로 걱정하지 말고 힘을 다하여 기어이 그 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시오.' 하고 일러라." 이런 말로 그에게 용기를 주라고 하였다.
26 우리야가 전사했다는 전갈을 받고 그의 아내는 남편을 위하여 곡을 했다.
27 곡하는 기간이 지난 다음, 다윗은 예를 갖추어 그 여인을 궁으로 맞아들여 아내로 삼았는데, 그의 몸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다윗이 한 이 일이 야훼의 눈에 거슬렸다.

야훼(여호와)의 눈밖에 난 다윗과 바세바의 아이는 결국 태어난 지 얼마되지 않아 죽고 만다. 하지만, 그들은 곧 둘째 아들을 갖게 되는바 그가 바로 (생전에!) 다윗의 대를 잇는 솔로몬이다. 우리야의 아내로 남아있었다면 바세바가 솔로몬의 어머니, 곧 국모가 될 수 있었을까? 더불어, 이 솔로몬은 다윗뿐만 아니라 야훼의 사랑마저도 독차지하게 되는데 말이다(사무엘하 12:24 "다윗이 아내 바쎄바를 위로하여 잠자리를 같이 하니 바쎄바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였다. 야훼께서 그 아이를 사랑하셨다").

내가 들은 설교말씀의 결론은 성도들이 '다윗의 덫'에 빠지지말아야 하다는 것이었는데, 좀 일면적이란 생각이 든다. 만약에 그랬다면 다윗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 솔로몬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때로 악은 선을 잉태한다. 그것이 선악의 변증법인가? 둘 사이에서 낳은 첫째 아들은 죽게 했지만 둘째 아들은 사랑한 게 또한 야훼의 법이었으니 이 또한 사랑과 증오의 변증법이라 할 만하다.

해서, 러시아 화가 마르크 샤갈이 다윗과 바세바에 관한 그림을 이처럼 그릴 때, 그가 염두에 둔 건 '불륜'이 아니라 '섭리'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은총'이었는지도. 인간의 우연한 의지란 그렇게 역사의 필연을 만들어가는 것 아닌가?..

06. 09. 10.

P.S.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내가 궁금해한 '목욕' 문제에 대하여 정확하게 답하고 있는 내용이 있다. 성경의 난해구에 대한 질의응답인데, 답변은 민영진 목사의 것이다. 바세바/밧세바는 혼용돼 있다.

 

 

 

 

질문: <개역 개정판> 삼하 11장 4절 번역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개역>의 이해를 따르면, 1) 다윗이 자기 부하를 바세바에게 보냅니다. 2) 그 들이 바세바를 다윗에게 데려 옵니다. 3) 바세바는 자기 집을 떠나기 전에 벌서 월경(月經) 을 끝내고 깨끗하게 목욕을 하였습니다. 4) 다윗이 바세바와 동침합니다. 5) 그 일이 끝나자 바세바는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개역 개정판}의 번역을 따르면, 1) 다윗이 바세바에게 자기 부하를 보냅니다. 2)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합니다. 3) 다윗이 그 여 자와 동침합니다. 4) 다윗이 그 여자의 부정함을 깨끗하게 합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습 니다). 5) 그래서 그 여인은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개역 개정판>)

바세바가 자신의 부정함을 깨끗하게 한 것은 그가 자기 집을 떠나기 전입니다. 이 진술 이 다른 진술보다 시제상(時制上)으로 먼저 일어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후에 일어난 다른 연 속적 사건들 속에 진술되기 때문에 번역판들은 이 진술을 연속적인 사건 전개 속에 들어 있 는 것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 이 본문을 괄호 속에 넣기도 합니다. 우리말 <공동번역>도, <표준새번역>도 이러한 <개역>의 이해와 상치하지 않는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만 <개역 개정판>은 "다윗이 전령을 보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여 그 여자와 동침 하고 그가 그 여자의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개역 개정판>) 라고 달리 번역하였습니다. 이러한 개정의 배경을 묻고 싶습니다.

Het toilet van Bathseba

대답: 이미 질문 안에 대답이 주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우리말 번역들을 좀 구체 적으로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윗이 사자(使者)를 보내어 저를 자기에게로 데려 오게 하고 저가 그 부정함을
   깨끗케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저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개역>)

    다윗은 사령을 보내어 그 여인을 데려다가 정을 통하고는 돌려보냈다. 여인은
   마침 부정을 씻고 몸이 정결한 때였다. (<공동번역>)
 
    그런데도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서 그 여인을 데려왔다. 밧세바가 다윗에게로
   오니, 다윗은 그 여인과 정을 통하였다. (그 여인은 마침 부정한 몸을 깨끗하게
   씻고 난 다음이었다.) 그런 다음에, 밧세바는 다시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다. (<표준새번역>)
  
    다윗이 전령을 보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여 그 여자와 동침하고 
   그가 그 여자의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개역 개정판>)

<개역> <공동번역> <표준새번역>이 문제의 본문을 같게 번역하였는데 반하여, <개역 개정판>만이 같은 본문을 달리 번역하였다면, 일단 {개역 개정판}을 의심해 볼 수 있을 것 같 습니다. 뿐만 아니라, <개역 개정판>에는 다윗을 가리키는 "그"와 바세바를 가리키는 "그 여자"의 용법에도 부정확한 데가 있습니다. "그가 그 여자의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 로 그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에서, 앞의 "그가"는 다윗인데 반하여, 뒤의 "그가"는 문맥 으로 볼 때 "바세바인데도 불구하고, 듣기에 따라서는 마치 다윗을 가리킨 것처럼 들리기 도 하는 문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선, 여러 동사의 주어를 구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을 보면 다음 과 같습니다.

1) 부하들을 보낸 이는 다윗이다.
2) 부하들을 시켜 밧세바를 데리고 온 이도 다윗이다.
3) 다윗에게 온 것은 바세바이다.
4) 그 여자와 동참한 것은 다윗이다.
5) 자신의 부정함을 깨끗하게 한 이는 밧세바이다.
6) 자기 집으로 돌아간 것은 밧세바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의 발생 순서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사건을 히브리어 본문으로 한 번 인용해 보겠습니다.

1) 다윗이 부하를 보냈다 (히브리어 완료태 동사)
2) 그가 그 여자를 데리고 왔다 (히브리어 완료태 동사)
3) 밧세바가 다윗에게 왔다 (히브리어 완료태 동사)
4)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하였다 (히브리어 완료태 동사)
5) 밧세바가 자신의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다 (히브리어 분사)
6) 밧세바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히브리어 완료태 동사)

위에서 보듯이 여섯 개의 동사 중에서 다섯 번째의 동사를 제외한 다른 다섯 개 동사가 모두 와우 연결법(waw consecutive) 형태를 지니고 있는 완료태 동사임을 확인할 수 있습 니다. 그리고 이들 동사들의 발생 순서는 여기 나열된 순서 그대로입니다. 다만 밧세바가 자 신의 부정함을 깨끗하게 한 것만은 완료태가 아닌 분사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분사 로 표현된 동사의 사건이 다른 완료태 동사와 관련된 다른 사건들과 같은 맥락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우리의 본문은 밧세바가 이미 다윗에게 오기에 앞서서 월경을 끝 낸 상태에서 목욕을 하여 자기의 몸을 정결하게 하였고, 그런 상태에서 다윗과 동침하여 임신을 하게 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역 개정판>의 모호한 표현도 다음과 같이 고치면 더 분명해 질 것입니다. 

    다윗이 사자(使者)를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 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케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
   니라.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瑚璉 2006-09-11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엉뚱한 이야기입니다만 생물학적으로만 보자면 월경을 막 끝낸 상태에서는 임신이 안되지 않을까요?

로쟈 2006-09-11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에 그렇게 디테일하게 서술하는 것 같지는 않구요(^^), 그냥 논리적인 순서가 그렇다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톡톡캔디 2008-11-25 0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실에서는 월경 중에도 임신하는 여자도 있더군요...(더 엉뚱한 이야기입니다만 -__-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