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경향신문에서  곧 개봉된다는 영화 <호텔 르완다>와 관련한 칼럼을 읽었다. 100만명이 넘는 인종 대학살(제노사이드)가 벌어진 12년 전 '94년의 석달'을 재연한 영화라고 하는데, 그 봄의 벚꽃과 목련들을 기억하고 있지만 지구 한쪽에서 벌어지던 그때의 참상에 대해선 아무런 기억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불편하고, 잠시 허탈하고 착잡했다. 달리 더 보탤 말도 없다(그냥 '잘만든 영화'라고 말할 수 있으면 속편하겠다). 관련기사를 옮겨놓으며 영화가 개봉되면 잠시 시간을 내봐야겠다...  

경향신문(06. 09. 05) 영화 '호텔 르완다'

-토마스 카밀린디. 그를 처음 만난 건 1년전 이맘 때다. 저널리즘 연수프로그램 참가차 머무른 미국 미시간대학에서였다. 토마스는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왔다고 했다. 첫인상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다. 미소가 선량하고, 유창하진 않아도 품위있는 영어를 구사하는 점이 조금 눈에 띄었을 뿐이다.

-한달쯤 뒤였을까. ‘신산(辛酸)’이란 말로는 부족할 그의 삶에 대해 듣게 된 것은. 가난하지만 우애깊은 집안의 장남. 고등학교 시절 대통령 앞에서 연극 공연한 것을 계기로 국영 라디오방송 기자가 된다. TV가 드물고 문맹률이 높은 르완다에선 라디오가 가장 사랑받는 매체라고 한다. 끔찍한 내전만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토마스는 안온한 삶을 살았으리라.

-그러나 1994년 4월6일 그의 생일날, “모든 것이 변했다”(토마스의 술회). 후투족 출신 대통령이 의문의 비행기 사고로 숨지면서, 잠복해 있던 후투·투치족 사이 갈등이 폭발한다. 후투족 전사들은 벌목용 칼과 구식 총을 들고 닥치는 대로 투치족 학살에 나선다.



-온건파 후투족이던 토마스는 투치족 출신 아내와 둘째딸을 데리고 벨기에 기업 소유의 ‘밀 콜린’ 호텔로 피신한다. 호텔은 평소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 하지만 그날은 위험지역을 피해 가느라 꼬박 이틀이 걸렸다. 토마스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외부 세계와의 유일한 끈인 팩스전화기를 들고 프랑스 라디오 RFI에 기사를 송고한다. 이 때문에 밀 콜린 호텔은 “바퀴벌레(후투족이 투치족을 멸시해 부르는 호칭)들의 온상”이란 비난에 휩싸인다. 후투족 자치군이 호텔로 몰려와 토마스를 내놓으라고 위협하지만, 호텔 지배인 폴 루세사바기나는 단호히 거절한다.



-루세사바기나 덕분에 목숨을 구한 이는 토마스뿐이 아니다. 당시 밀 콜린에는 많은 투치족과 온건파 후투족들이 총칼을 피해 모여들었다. 루세사바기나는 때로는 돈과 고급 샴페인으로, 때로는 탁월한 협상력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상상을 넘어서는 용기로 1,268명의 생명을 지켜낸다. 하지만 호텔 밖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스러져간다. 유엔도 미국도 유럽도 수수방관하는 사이, 석달 만에 1백만명이 목숨을 잃는다. 토마스도 처가에 보낸 맏딸이 숨졌다는 비보를 듣는다. 대학살은 끝나지만 희망을 놓아버린 그는 고국을 등진다. 아내와 둘째딸을 벨기에로 보낸 토마스는 미국 정부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토마스가 겪은 ‘94년의 석달’을 담담히 재연한 영화 <호텔 르완다>가 7일 개봉한다. 당시 전세계가 외면하는 동안, 수없이 많은 토마스가 꽃같은 아이들을 가슴에 묻었다. 필자도 기자로서 무력했다. 국제면에 실린 기사를 무심코 읽은 기억만 어렴풋이 남아있다. 그때 내가, 우리가 외면했기에 12년이 지난 지금도 레바논에서, 팔레스타인에서, 수단의 다르푸르에서 죄없는 어린이와 여자와 노인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 아닐까. 그래서 아픈 마음으로, 사죄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러 가려 한다. ‘또다른 토마스’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호텔 르완다’를 권한다.(김민아 정치부 차장)

한겨레(06. 09. 05) 아프리카 르완다를 위임통치했던 벨기에는 소수 부족인 투치족에게 권력을 쥐여주고 다수 부족인 후투족을 지배하게 했다. 르완다는 1962년 독립했지만, 이때부터 두 부족 사이의 권력 다툼으로 크고 작은 인명 피해가 이어져 왔다. 그리고 1994년 4월 후투족 출신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본격적인 내전이 시작됐다. 내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100일 동안 민간인을 포함해 100만여명이 숨졌으며, 르완다는 초토화됐다.



-<호텔 르완다>(감독 테리 조지)는 이 처절했던 100일 동안 1268명의 목숨을 지켜낸 한 호텔 지배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후투족에 의한 투치족 학살이 시작되면서 수도 키갈리의 최고급 호텔 밀 콜린스에는 올리버 대령(닉 놀테)을 비롯한 유엔군과 잭(호아킨 피닉스) 같은 외신기자, 외국인 여행객은 물론 투치족 피란민들이 모여든다. 이 호텔의 투치족 출신 지배인 폴 루세사바기나(돈 치들)도 투치족 출신 아내 타티아나(소피 오코네도)와 자식들, 이웃들을 호텔로 대피시킨다.



-영리하고 처세에 능한 폴은 불안정한 정국에서 안전망을 확보하려고 오래 전부터 온갖 서비스와 뇌물로 유력 인사들과 친분을 쌓아왔다. 내전 초반, 그는 그렇게 쌓은 인맥을 동원해 가족들을 지켜내려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가족들을 지키려다 목숨이 위태로운 이웃들을 차마 외면하지 못해 돕게 되고, 같은 이유로 호텔에 몸을 숨긴 투치족을 살리는 데 인맥과 지혜를 쏟아붓는다.

-폴은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영웅’이지만, <호텔 르완다>는 그를 ‘영웅 떠받들 듯’ 과대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흑인들의 생과 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유엔과 서구사회의 모습을 너무 흥분하지 않으면서 너무 무겁지도 않게 ‘당시 사실 그대로’ 틈틈이 묘사한다. 이를 통해 자기 가족이 최우선이고 전부였던 가족주의자 폴이 영웅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과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이다. 유엔과 서구사회는 자신들의 역량 밖이라며 내전을 중단시키지 않는다. 또 호텔에 묵었던 백인들과 그들의 개까지만 안전하게 피신시킨 뒤 투치족 흑인들을 남겨둔 채 호텔에서 유엔군을 철수시켜 버린다. 이 과정에서 폴은 등떠밀리듯 호텔에 남은 피란민들의 목숨을 책임지게 되지만, 떠밀린 등을 되돌리지 않는 건 그의 따뜻한 인정과 연민 때문이다.



-과대포장은 없지만 <호텔 르완다>는 밋밋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르완다 내전이라는 사실 자체가 있는 그대로 오감을 멎게 할 정도로 끔찍할 뿐더러, 에피소드들도 디테일하다. 또 배우들의 눈부신 연기도 영화에 윤기를 덧입히는데, 특히 돈 치들은 마치 다큐멘터리 속 실재인물 폴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폴의 심리변화와 긴장감을 뛰어나게 표현해냈다.(전정윤 기자)

 

 

 

 

06. 09.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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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09-05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한겨레에서 이 영화기사 봤습니다.저두 이거 페이퍼로 올리고 싶었지만 낮에는 바쁘고...물론 밤에도 애기땜에 바쁘고...ㅜㅜ필름 2.0인가에서는 오스카 남우주연상 정도 줘야 되는거 아니냐고 주인공의 연기를 높이 평가하더군요.이게 동숭아트센터에서 개봉하는것 같은데...다른데도 하는지 모르겠어요.많이 개봉하진 않을 거 같은데.동숭 아트센터는 대학다닐때 참 자주 갔던 영화관이었지만...그나저나 아기 태어난 후 천만명이 봤다는 <괴물>도 못보고 있는데 동네 상가에 영화관에 생겨도 보긴 힘들겠죠?

로쟈 2006-09-05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괴물>은 봤으니까 제가 조금 형편이 나은 듯합니다(한때는 일주일에 3-4편씩 개봉관에서 보던 시절도 있었는데요)... 문화생활은 '여유'를 필요로 하는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