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완성해놓고 '등록하기'를 누르니까 '로그인' 화면이 뜬다. 그래서 날려버린 게 이 글인데, 사태를 대충 수습해서 다시 마무리짓기로 한다(별 재산도 없는 내가 성질 부린다고 누가 알아주겠는가?). 내용은 세계 100대 부자들에 관한 것이다. 어제(3월 11일) 아침 신문에 '포브스'지에서 이번에 발표한 세계 100대 부자 랭킹에 삼성 이건희 회장 일가가 82위에 올랐다는 기사를 읽은 게 발단이었다.  

 

 

 

 

그에 따르면, ‘2006년 10억 달러 이상을 보유한 억만장자’는 793명이고 이 회장 일가의 순자산은 전년보다 23억 달러 늘어난 66억 달러로 지난해 122위에서 40계단이나 뛰어올라 100대 부호에 들었다. 1위는 12년째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그리고 ‘투자의 귀재’라는 워렌 버핏이 2위란다. 지난해 세계 증시 호황에 힘입어 재산 10억 달러 이상 부자 수는 102명이나 늘었다는데(10억원이 아니라 10억 달러가 이젠 부의 기준으로 정착된 모양이다), 특이사항은 신흥경제성장국 브릭스(BRICs) 국가들, 즉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에서 부자들이 크게 증가한 점. 인도는 10명 늘어난 23명, 러시아도 7명을 새로 진출시켜 33명, 브라질도 두 배인 16명을 이번 명단에 올렸다고 한다. 

그래서 검색해본 것이 러시아 관련 기사였고, 코트라 홈피에서 관련 내용을 찾았다. 이미지들을 덧붙여서 기사를 정리해본다: "4월 22일자 월간지인 ‘포브스’ 러시아판 특별호에 2005년 러시아의 100대 부호 명단이 개재됐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보다 러시아의 100대 부호 평균 연령은 4살 낮아져 44 이며, 이들의 총 자산 합계액은 40억 달러 늘어난 1410억달러에 달하나, 오히려 억만장자의 수는 지난해 보다 6명 줄은 30명으로 집계됐다." 

"러시아의 가장 부자로는 러시아 추꼬트카 주지사겸 석유재벌이며 영국의 명문 프로축구 첼시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38, 사진)가 자산 평가액 147억 달러를 기록하며 선정됐는데, 그는 또한 지난 ‘포브스’ 미국판 3월호 세계 부호 명단 순위에서 21위를 차지한 바 있다." 나이가 나보다 더 먹지도 않은 이 '신종 러시아인'이 러시아 최고 갑부이다. 아래 사진은 7천 2백만 파운드(1,440억원 가량)에 샀다는 그의 요트이며 대공방어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고 전직 영국군 특수부대원 50여명이 경호하고 있다고. 그에 관한 내용은 조재익, <굿모닝 러시아>(지호, 2004)를 참조할 수 있다.

이어서 "지난 해 자산 평가액 152억 달러를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으나, 현재 세금 포탈 등의 혐의로 고초를 겪고 있는 유코스의 미하일 하다르콥스키(*호도르코프스키, 아래 사진) 전 회장의 자산에 대해 포브스는 7.6배 감소한 20억 달러로 평가 21위라고 발표다. 그러나 최근 언론센터에서는 미하일 하다르콥스키 재산에 대해 1억 달러가 넘지 않는다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하다르콥스키의 공식 재산 평가액에 대해 엇갈린 의견이 나오고 있다." 현재 그는 시베리아의 한 형무소에 수감돼 있는 걸로 안다. 역시나 <굿모닝 러시아>에서  신흥 올리가르히의 이 대표주자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어볼 수 있다.

1. Mikhail Khodorkovsky
Net worth: $ 15.2 billion
Source: oil
Company: Yukos
Age: 40
/ Photo: Vyacheslav Kochetkov, Moscow News Picture Agency

그리고, "러시아 100대 부자 중 여성으로 유일하게 명단에 오른 것은 모스크바 시장 유리 루스코프(*루쉬코프)의 의 부인 옐레나 바투리나로 지난해 3억 달러의 재산 증가를 보여 현재 14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63년생이니까 그녀의 나이 마흔 셋이다.

35. Elena Baturina
Net worth: $ 1.1 billion
Source: construction, construction materials, petrochemicals
Comment: wife of Moscow mayor Yuri Luzhkov Age: 41
/ Photo from MN Archive 

"한편, 작년까지만 해도 러시아 부호들은 철강, 원유, 다이아몬드 등 주로 천연 자원에 의존했으나, 올해의 부자 100인의 명단에 유통 체인점 거물, 햄 제조업체 사장, 자동차 딜러, 심지어 슬롯머신 운영주가 신흥 부호로 선정됐는데, 이는 필수품에 대한 수요에서 생활 수준 상승에 따른 수요의 다변화와 유통의 활성화, 욕구의 다양화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런 소개내용을 접하니까 재작년 5월쯤에 써둔 글이 생각이 나서 여기에 옮겨둔다.

지난주(*2004년이다) 목요일자 (호텔 등에 무료로 배포되는 영자지, 35,000부 발행)와 금요일자 <이즈베스찌야>에는 <포브스>지 러시아판이 보도한 러시아의 ‘부자들’ 랭킹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내용을 종합하면, 러시아에는 36명의 억만장자(‘백만불’이 부의 지표이던 시절은 이미 지나간 듯하다. 억만장자는 'billionaire'인데(요즘 '백만장자'는 부자축에도 못 드는 모양이다), 산술적으로는 재산이 10억불 이상인 사람을 뜻하지만, 10억만장자라고 부를 순 없으므로, 그냥 ‘억만장자’라고 해두자. 원화로는 1조 2천억 이상의 재산가들을 말한다)가 있다(미국엔 277명). 이들의 재산은 러시아 GDP(국민총생산)의 24%, 거의 1/4을 차지할 정도로 엄청나다(미국의 경우는 6%).

그건 그만큼 빈부격차가 심하며 부가 편중돼 있다는 뜻도 된다(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한 지 아직 15년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들의 재산은 무섭게 증식되고 있는데, 지난 97년 조사 때의 경우 억만장자는 4명에 불과했었다. 이 부자들의 2/3는 석유나 가스 같은 자연자원을 채굴 수출하는 회사를 거느리고 있다(지금의 러시아는 석유와 무기 수출로 먹고 산다, 얼마전 들은 바로는 최대 산유국이다). 그리고, 이들의 대부분은 모스크바에 거주하고 있는바, 모스크바는 세계에서 억만장자 밀집도가 가장 높은 도시이다! 그대, 억만장자와 결혼하려는가? 일단은 모스크바에 와서 죽치고 있어 보기를...



이런 대동소이한 내용을 전하면서도 두 신문의 포커스는 각기 다른 곳에 맞춰져 있었는데, <모스크바 타임즈>는 152억불의 재산을 갖고 있다는 러시아 최고의 부자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가 아직 감옥에 있다는 소식을 그의 사진과 함께 보도하고 있고(탈세혐의로 체포되어 지난해 10월 25일부터 철창에 있다), <이즈베스찌야>는 러시아 억만장자 중 유일한 여성인 옐레나 바투리나를 두 장의 사진과 함께 한 면 전체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러시아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호도르코프스키란 이름이 낯설지 않을 텐데, 그는 최근에 부도설까지 나돌고 있는 거대 기업 '유코스'의 젊은 (전직)총수로서 정치적 야심까지 품고 푸틴의 재선가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권력의 ‘철퇴’를 맞았었다(비슷한 케이스로 현재 런던에 ‘망명’중인 한때의 최고 부자 베레조프스키는 이번에 47위로 순위가 떨어졌다).



11억 달러의 재산으로 전체 35위에 오르면서 러시아 여성 최고 갑부에 등극한 옐레나 바투리나(1963- )는 20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인테코'그룹의 총수인데, 그녀가 사업을 시작한 건 1991년 불과 25세의 나이 때였다). 그녀를 아내로 둔 ‘운좋은’ 남자는 현 모스크바 시장인 유리 미하일로비치 루슈코프이다(그는 대권에의 야심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사진). <이즈베스찌야>에 따르면, 그들이 처음 만난 건 1987년이고, 결혼한 건 1991년이다. 바투리나보다 30년 연상인 루슈코프의 나이 55세 때이고, 그로선 재혼이었다. 이들은 현재 12살과 10살 난 두 딸을 두고 있다. 덧붙여, 바투리나가 좋아하는 색깔은 에머랄드색이고, 좋아하는 작가는 미하일 불가코프와 알렉세이 톨스토이이다(레프 톨스토이 말고)…

이상, 나와 ‘무관한’ 얘기를 왜 시시콜콜 늘어놓느냐고? ‘포브스’의 부자 랭킹 관련 기사를 읽은 후에 우연히 옛날에 쓴 ‘프로메테우스 신화에 대한 몇 가지 신화’란 글을 읽다가 앙드레 지드의 소설 <잘못 결박된 프로메테우스>(1899)의 이야기가 문득 ‘현실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의 발단을 다시 옮기면 이렇다: “드라마가 아니라 우화적 소설인 이 작품은 1890년대 파리의 한 다방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제우스(=죄스)는 부유한 은행가(!)로 등장하고, 프로메테우스(=프로메떼)는 무면허 성냥 제조 혐의로 구속된다. 이야기의 발단은 대부호인 제우스가 아무런 이유없이 한 사람(꼬클레스)의 따귀를 때리고 다른 한 사람(다모클레스)에게는 500프랑의 돈을 익명으로 부친 데서 비롯한다.”



그러니까 ‘돈이 말하는(money talks)’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거 그리스 신화의 신들을 대행하는 이들이 바로 ‘대부호 제우스’와 같은 ‘억만장자들’인 것이다(사진은 아테네의 제우스 신전). 그들의 행위는 아무런 동기나 이유를 갖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상적’인바, 기호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억만장자’라는 기호는 비동기적인, 즉 완전히 자의적인 기호이다(이들은 발을 땅에 딛고 살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의 기호체계로서의 이들의 행동양식은 동기적인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평범한 인간들’ 혹은 ‘소금이나 받아먹는’ 샐러리맨들의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다).

왜 한 사람은 따귀를 때리고 다른 한 사람한테는 거액을 적선(기부)하는가? 왜 노동자들의 임금은 떼먹으면서 불우이웃돕기 성금은 수십 억씩 내는가? 평생 먹고 남을 재산을 쌓아놓고도 왜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는가? 이런 걸 ‘인간들’이 이해하려고 하면 머리만 혹사시키게 된다. 탈세라면 합법/불법을 가리지 않으면서도, 아이들에게 몇 백 만원짜리 장난감을 턱턱 사다주고, ‘언니들’한테도 팁을 몇 천불씩 콕콕 찔러주는 ‘몰상식’을 어떻게 이해한단 말인가?(우리 주변에도 백만장자급의 유사-제우스들이 더러 있다) 요는, 그들이 ‘우리들’과는 격이 다르며, 종이 다르다는 것. 왜 아니겠는가? ‘비인간적인’ 그들은 신이거늘!(사실, 자신이 벌었는데 다 탕진할 수 없는 재산이란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그게 '비인간적인' 자본(capital)과 '인간적인' 재산(property)의 차이이다. 재산이란 그 사람에 대해서 말해줄 수 있는 만큼의 소유를 뜻한다).

 

 

 



따라서, 그리스인들의 신에 대한 관심은 현대인들의 부자에 대한 관심과 등가이다. 오, 불쌍한 호도르코프스키, 감옥에 갇힌 거부(巨富)여! 그는 최고신(권력=부이다!)에 반항하다가 벌받고 있는 현대판 아틀라스요, 시지프스가 아닌가? 미국의 사회학자 베블렌은 이 신들을 일컬어 ‘Leisure Class’, 즉 유한계급이라고 불렀는데(한 국역본은 ‘한가한 무리들’이라고 옮겼다. 이 ‘한가한 무리들’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한심한 무리들’이다), 이때의 레저는 노동의 반의어이다. 그들의 생은 도대체가 무슨 ‘겨를’이 없는 노동자들, 혹은 ‘인간들’의 생과는 달리 온통 ‘남은 겨를’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니, 신들의 자녀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여생을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IMF때 베스트셀러였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에 따르면(물론 내가 이 책을 읽은 건 아니다.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혐오스러운데, 사실 모든 아빠는 자녀들을 거느린 ‘부자 아빠’이면서 한편으론 자신을 자녀들에게 한없이 부족하게만 여기는 ‘가난한 아빠’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를 가르는 기준을 간단하다. 노동을 통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이 돈을 벌게 하거나(가령 주식이나 이자 소득 등) 한번의 노동으로 지속적인 소득을 얻어내면(가령, 특허나 인세 소득) 부자이고, 주로 노동을 통해서만 먹고 살아야 하면 가난한 자이다. 때문에, 부유할수록 한가하고, 가난할수록 몸으로 때워야 한다.



 

 

 

부자들도 열심히 일하지 않느냐고? 그리스의 신들은 맨날 놀기만 했던가? 그들도 열심히 수작을 걸고, 참견하고, 바람피고, 심술부리고, 진수성찬을 먹어대면서 굉장히 바쁘게 지냈다. 하지만, 그건 ‘신들의 일’이다! 해서, 거꾸로 말하면, 그들은 아무런 삶도 살지 않는다. (인간적) 삶의 근간은 노동이며 고통이기 때문이다. 여가를 꿈꾸고, 행복을 꿈꾸는 것은 삶의 현실, 혹은 인간의 조건이 (여가가 아닌) 노동이고, (행복이 아닌) 고통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 다 아는 바이고, 또 곧 알게 되겠지만 그건 ‘막간의 행복’이다. 당신은 아직 젊은가? 곧 늙고 병들어 죽으리라. 때문에 신화 속 제우스가 이런 인간들을 별 볼일 없게 생각한 것은 아주 당연하다. 그건, 오늘날의 ‘제우스들’이 보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심한 것들’ 같으니라구!

스스로를 한심하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잠시 신적인 관점에 서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점들에 갈 때마다 책의 목차보다도 표시된 가격이 얼마인지를 먼저 확인하는 나는 스스로 얼마나 한심한 것인지. 책을 집었다가 놓았다가 반복하면서 열심히 머릿속으로는 이 달에 탕진한 지출이 얼마인지를 따져보는 나는 얼마나 가련한 것인지. 그러면서 결론은 어디 (제우스의) ‘돈벼락’이라도 좀 떨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어디서나 마찬가지겠지만, 모스크바에서도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듯 한심하게 ‘노르말나’하고, 가련하게 ‘노르말나’하다. 어이, 서울에 있는 ‘인간들’, 노르말나하게 잘 있는지?(*나도 지금은 서울에 있다.)

06. 03. 11 - 12.

P.S. '한가한 무리들'과 '한심한 무리들'의 경계가 아직 모호하지 않다면, 계급투쟁은 지나간 년대의 구호가 아니다. 그건 자본의 윤리와 무관하다. 즉, '도덕적인' 한가한 무리들과 '부도덕한' 한심한 무리들이라는 이차적 범주가 가능하지만, 그것은 이차적이다. '사촌이 땅사면 배아픈' 인간들이 특별히 도덕적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투쟁의 주체는 바로 그런 오만하고 이기적인, 그래서 '너나 내나'라고 생각하는 인간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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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6-03-12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노르말나'하게 잘 있어서 신들의 삶에는 관심을 가질 틈이 없답니다-.-+

로쟈 2006-03-12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