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피샤: <올드보이>는 원칙적으로 행복하게 마무리될 수 없는 영화이다. 그런데도 왜 해피엔드로 끝냈는가?
박찬욱: 그게 해피엔드라고 할 수 있는가.
아피샤: 하지만 주인공이 행복한 표정으로 웃지 않는가?
![](http://image.aladin.co.kr/product/53/5/coversum/3332430362_1.jpg)
박찬욱: 그는 웃는다고 볼 수 없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마지막 장면에서 라프샤(*이 단어는 대문자로 돼 있는데 뭔지 모르겠다. 등장인물인가? 영화를 몇 번 봤었는데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가 웃는 모습이 기억나는가? 그건 망각의 기쁨이다. 그에겐 아무런 좋은 일이 없다. 나는 관객에게 위안을 준다거나 영화의 끝에 가서 낙천주의를 주입시키고자 하지 않았다. 거기에 대해서 물어본 거라면.
아피샤: 당신이 영화를 찍을 때 모든 일을 아내와 상의한다는 게 사실인가?
박찬욱: 그렇다. 모든 단계에서 나는 아내의 의견을 반드시 묻는다. 아내는 매우 분별력이 있고 사려 깊은 사람이고, 영화와는 아무런 관련도 갖고 있지 않다. 주부로서 그녀가 아는 건 생활이다. 때문에 그녀의 충고는 나에게 아주 소중하다. 감독의 일이란 건 신의 일과 닮은 데가 있어서, 일에 몰입하다 보면 정말로 자신을 신이라고 자만할 위험이 있다. 감독들은 종종 유머감각을 잃고 아주 바보스런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아내는 내가 이런 걸 피하도록 도와준다.
아피샤: 아이들이 몇 살 정도가 되면 <올드보이>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박찬욱: 당신의 아이는 몇 살인가? 나의 딸아이는 지금 10살이다. 아이가 15살이 되면, 반드시 보여주겠다.
아피샤: 서구의 비평가들은 당신의 영화에서의 물리적 폭력이 강한 인간적 감정의 비유(=은유)라고들 쓴다.
박찬욱: 그건 헛소리다. 영화가 마음에 들면, 비평가들은 문화론적인 설명을 시도하려고 애쓴다. 만약에 그게 잔혹한 영화라면 그들은 아무리 환영적이고 부서지기 쉬운 것일지라도 자기 사회의 도덕적 표준과 일치하는 어떤 걸 가져와서 그걸 희석시키려고 애쓴다. 사회는 폭력을 단죄한다. 때문에 그들은 폭력이 비유라고 쓰는 것이다.
아피샤: 당신이 비평가였을 때에는 같은 일을 하지 않았는가?
박찬욱: 아니다. 나는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나는 정직한 비평가가 되려고 노력했다.
아피샤: 당신은 <올드보이>의 미국판 리메이크를 찍을 저스틴 린을 만나 보았는지?
박찬욱: 나는 리메이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들은 단지 이야기와 제목에 대한 판권을 샀을 뿐이다. 나는 저스틴 린의 영화를 한편도 본 적이 없고 그를 알지도 못한다. 이름은 들어봤지만.
아피샤: 미국판의 주연도 최민식이 맡는다는 소문이 있다.
박찬욱: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벤 에플렉이나 누군가 미국에서 인기 있는 배우를 고를 것이다.
아피샤: 당신은 정말로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라면 납치가 그렇게 나쁜 행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박찬욱: 나에 관한 무슨 인터뷰를 읽어봤는가? 아마도 내 말을 잘못 번역한 것 같다. 종종 내 말이 잘못 옮겨지는 것 같다는 의심이 든다. 내가 분명히 말하고 싶었던 건 이런 거다. 만약에 누군가가 당신을 납치한다면 그게 아주 무용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것. 자기인식과 개인의 어떤 예기치 않은 능력의 발견이라는 관점에서 말이다.
아피샤: 전작인 <복수는 나의 것>에서 당신은 자본주의 일반과 그 한국적 모델에 대해 혹독하게 비판했었다. 당신은 사회주의자인가?
박찬욱: 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그 특정한 결함들을 들춰낼 뿐이다.
아피샤: 그 말은 당신이 예술의 정치적 기능에 대해서 믿는다는 것인가?
박찬욱: 물론이다. 예술은 세상을 더 좋게 만들어야만 한다. 하지만, 나는 오늘날의 한국에 대해서 성급하게 폭로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비교의 대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도 알겠지만, 1992년까지 우리에겐 독재정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 최초로 선출된 민간 대통령에 의해서 우리 나라는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솔직히, 그때서야 나를 포함한 새로운 세대의 한국 감독들은 자신을 드러낼 기회를 갖게 됐다.
아피샤: 타란티노는 한해 내내 <올드보이>의 광고만 하고 다녔다. 어딜 가든, 어디에서건 이 영화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영화라고 열변을 토했다. 물론 당신이 그의 찬사에 대해서 응답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질문을 한다면, 당신은 <킬빌>을 보았는지? 두 사람의 영화가 아이디어상으로 서로 가깝다고 느끼지는 않는지?
박찬욱: 나는 1부만 보았다. 매우 아름다운 영화이다. 하지만, <올드보이>와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아피샤: 어떻게 아직까지 <킬빌2>를 볼 수 없었는지?
박찬욱: 나는 대체로 영화들을 많이 보지 못한다. 일이 너무 많다.
아피샤: 그럴 만하다.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 생각엔 어째서 당신을 포함해 타란티노와 라스 폰 트리에 등 몇몇 거장들이 거의 동시에 복수에 관한 이런저런 영화들을 찍었다고 보는가?
박찬욱: 복수란 건 촉매이다. 그 속에서 인간이 멋지게 드러난다. 거기에는 언제나 한 인간을 파괴한 어떤 객관적인 원인, 사건이 선행한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은 가장 솔직하고 가장 강렬한 감정을 드러낸다. 문명사회는 악에 대한 응징의 수단으로서 개인의 복수를 부정한다. 하지만, 복수에의 열망이 그 때문에 없어지는 건 아니다.
아피샤: 복수에 관한 당신의 3부작 중 마지막 편은 언제 나오는가?
박찬욱: 지금 막 찍기 시작했다. 생각에는 2월말이나 3월초까지는 끝내려고 한다. 이번 영화는 한 여자의 복수에 관한 것으로,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의 모티브와 플롯을 합금한 것이다. 간략히 설명하자면, 한 여자가 15년간 감옥살이를 한다. 그리고 풀려나서는 그녀가 겪은 일에 책임이 있다고 간주한 남자들에게 복수를 한다.
![](http://image.aladin.co.kr/coveretc/dvd/coversum/3882430561_1.jpg)
아피샤: 3부작을 끝낸 뒤의 작업에 대해서는 이미 정해두었는가?
박찬욱: 뱀파이어에 관한 영화이다. 제목은 <살아있는 악>이 될 것이다.
아피샤: 자신의 영화의 주제(혹은 플롯)에 대해서 아주 빨리 고안해낸다는 것이 사실인가?
박찬욱: 그건 비교의 문제이다. 가령 김기덕은 (나보다) 훨씬 더 빨리 작업한다. 그와 비교한다면, 나는 스탠리 큐브릭이다.
아피샤: 당신은 큐브릭을 좋아하는가? 당신이 좋아하는 감독들은 누구인가?
박찬욱: 한국 감독 중에 김기영이라고 있었다. 백과사전에는 그가 한국 ‘쓰레기 영화’의 왕이라고 씌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아주 대담하고 훌륭한 영화들을 찍었다. 그는 용기있고 타협하지 않는 예술가였다. 영화를 찍을 기회를 잃게 되었을 때, 그가 살던 집에는 화재가 일어나고 그는 불길에 타 죽었다. 비극적인 운명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그를 닮고 싶지는 않다.
![](http://image.aladin.co.kr/product/12/29/coversum/8972596817_1.jpg)
![](http://image.aladin.co.kr/product/30/66/coversum/8931390033_1.jpg)
아피샤: 그럼 당신이 닮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
박찬욱: 가능하다면, 잉마르 베르이만을 닮고 싶다...
![](http://image.aladin.co.kr/product/60/35/coversum/8952204417_1.jpg)
![](http://image.aladin.co.kr/product/60/49/coversum/8932016534_1.jpg)
![](http://image.aladin.co.kr/product/32/38/coversum/8932904146_1.jpg)
네번째 책은 박찬욱 감독도 좋아하는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세계를 해설하고 있는 홍대화의 <도스또예프스끼>(살림)이다. 박찬욱은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유머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 유머는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이면서 그의 문학적 교양을 인정해줄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복수는 나의 것>에 나오는 아나키스트들의 집단 살인 장면은 <악령>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라고 감독은 고백한 바 있다(말이 나온 김에 장석원의 첫시집 <아나키스트>도 신간이다).
![](http://content.answers.com/main/content/wp/en/thumb/4/4a/200px-La_femme_publique.jpg)
![](http://194.2.120.77/ImagesCinefil/AffichePetitFormat/9542.jpeg)
참고로, 발레리 카프리스키가 주연한 안제이 줄랍스키의 영화 <퍼블릭 우먼>(1984) 또한 원작은 따로 있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을 주된 모티브로 하고 있는 영화이다. 줄랍스키는 그 이듬해에 소피 마르소를 주연으로 하여 <격정>(<성난 사랑>으로도 출시돼 있다)을 찍었는데, 역시나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http://image.aladin.co.kr/product/60/21/coversum/8936471082_1.jpg)
![](http://image.aladin.co.kr/product/60/21/coversum/8936471090_1.jpg)
![](http://image.aladin.co.kr/product/60/29/coversum/899546707X_1.jpg)
![](http://image.aladin.co.kr/product/60/35/coversum/8932906270_1.jpg)
![](http://image.aladin.co.kr/product/60/35/coversum/8932906300_1.jpg)
![](http://image.aladin.co.kr/coveretc/dvd/coversum/3592430262_1.jpg)
고전으로 치자면, 세르반테스의 <돈끼호떼>(창비사)가 민용태 교수의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됐고, 작년에 서거 100주년을 맞았던 안톤 체홉의 <4대 장막전>이 실제로 작품을 국내 무대에 올렸던 연출가 전훈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됐다(이 번역의 의의는 레제드라마가 아닌 공연텍스트로서 '체홉'을 읽어볼 수 있다는 점이겠다). 그리고 20세기 영국문학의 대표 작가 중 한 사람인 E. M. 포스터 선집으로 나온 두 권 <전망 좋은 방>(열린책들)과 <모리스>. 제임스 아이보리의 영화들과 함께 컬렉션을 만들면 되겠다.
![](http://image.aladin.co.kr/coveretc/book/coversum/8932016518_1.jpg)
![](http://image.aladin.co.kr/coveretc/book/coversum/8980382618_1.jpg)
![](http://image.aladin.co.kr/coveretc/book/coversum/5000155094_1.jpg)
그리고 마지막 책은 오랜만에 출간된 모리스 블랑쇼(1907-2003)의 책 <밝힐 수 없는 공동체, 마주한 공동체>(문학과지성사).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조르부 바타유에 대한 해석을 거쳐 동일성 지배 바깥의 공동체, 즉 조직, 기관, 이데올로기 바깥의 '공동체 없는 공동체'에 대한 사유를 명확히 제시한 장-뤽 낭시의 논문 '무위(無爲)의 공동체'에 대한 응답으로 씌어진 모리스 블랑쇼의 '밝힐 수 없는 공동체'와 그에 대한 낭시의 재응답인 '마주한 공동체'를 함께 싣고 있다. 중심의 부재 또는 빈 중심으로 현시되는 역설적이고 '밝힐 수 없는 공동체', 내재주의와 전체주의를 넘어서 있으며 전체의 고정된 계획을 갖고 있지 않는 공동체에 대한 가능성을 프랑스 철학계의 두 거목이 함께 모색하는 이 책은 20세기 이후 '공동체'와 '우리'의 관계에 대한 가장 급진적이며 멀리 나아간 논의를 담고 있다."
최근에 국내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되고 있지만, 정치제도와 공동체라는 화두는 내년에 새삼/새롭게 숙고되어야 할 중요한 테마이다. 블랑쇼/낭시의 책은 우리의 사고를 점화시켜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비평가 중의 한 사람이 블랑쇼에 대해서는 김현의 <프랑스 비평사>(현대편)가 유용한 길잡이이다. 그리고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레비나스가 쓴 <모리스 블랑쇼에 대하여>(동문선, 2003)이 소개돼 있다(사진은 두 사람, 블랑쇼와 레비나스이다). 그의 비평서로는 <문학의 공간>(책세상, 1990/1998)과 <미래의 책>(세계사, 1993)이 번역/소개돼 있다. 소설로는 <죽음의 선고>, <알 수 없는 사람 또마> 등이 금성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에 수록돼 있었다. 한편, 2003년 블랑쇼의 죽음 이후에 한 대학원신문에서는 블랑쇼 특집을 꾸미기도 했었는데, 그때 이번에 출간된 책의 역자가 쓴 글을 잠시 옮겨본다.
-자크 데리다는 레비나스의 장례식에서도 그랬듯이 이번 블랑쇼의 장례식(그의 사망 나흘 후인 2003년 2월 24일)에서도 장문의 추도문을 낭독하였다. “어떻게 바로 여기서, 이 순간에, 이 이름, 모리스 블랑쇼를 말하면서 떨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로 시작하는 추도문은 블랑쇼를 읽었던 많은 독자들이 그의 죽음 앞에서 느꼈을 감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블랑쇼는 단순히 한― 아마도 위대하다고 불러야 할 ― 철학자도, 작가도, 문학비평가도 아니었다. 더욱이 그는 어떤 문예, 사상의 사조와 흐름을 주도하는 이론가도 아니었다. 그는 하나의 목소리였다. 벌거벗은, 초라한, 무력한, 사라져 가는 그러나 그래서 찬란한 우리 자신의 모습에로 우리를 부르는 목소리…. 그 목소리는 언제나 어떤 과거보다 더 먼 과거로부터 들려왔지만 또한 어린아이의 속삭임이기도 했고, 또한 절규이기도 했다. 같은 헐벗은 어린아이들, 즉 삶과 사회체제의 잔인함에 고통 받는 타자들의 숨결을 듣도록 우리를 부르는 소리 없는 절규….
-블랑쇼는 살아 있을 때, 은둔 때문에 오히려 ‘알려진’ 작가였다. 각종 매체(신문, 방송, 인터넷)에서 쏟아져 나오는 정보의 홍수를 문학이 비켜 나갈 수 없게 된 시대에, 각종 매체에 의존해 얻을 수 있는 선전효과를 무시할 수 없는 시대에, 블랑쇼의 은둔은 오히려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의 은둔은 그의 사상을, 그의 글쓰기, 그의 작품을 신비화시켰으리라. 그러나 나는 그 신비화 가운데 그의 작품이 오해될 것이라고, 그리고― 다음의 말을 어떠한 감정의 과장도 없이 쓴다 ― 그 신비화에 블랑쇼가 저항했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블랑쇼는 작품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고자 하지, 1인칭 ‘나’를 보여주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거리 아무데나 흩어져 있는 이름 없는 자들, 하지만 ‘헐벗은 어린아이들’로서의 ‘그’들로 하여금 말하게 했을 뿐이었다. '그’들, ‘나’라고 말할 수 없는 자들, 어떠한 1인칭의 권력도 소유하지 못한 자들, 다만 헐벗음으로만 그 권력을 거부하고, 그 권력에 저항할 수 있었던 자들. 필요하다면 결국 자신의 사라짐·지워짐을 긍정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침묵의 제 3자들, 3인칭의 인간들, 다시 말해 ‘우리’와 다르지 않은 타자들.
-블랑쇼가 거부하고자 했던 1인칭의 권력(그 권력을 그가 의도 가운데 원했을지 모른다고 말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은둔을 통해, 나타나지 않음으로 그 권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을 그에게 돌려주어서는 안 된다. 신비화된 1인칭 블랑쇼로부터 그의 작품을 읽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다만, 단순히, 그의 작품에서 3인칭의 인간들, 타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데에, 작품으로부터 그를 이해하는 데에, 작품으로부터 한 개인 블랑쇼의 은둔·지워짐이란 3인칭이 말하기를 원했던 그에게는 바로 글쓰기의 실천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 있다. 그는 살아있을 때, 단어들, 문장들 사이로 사라지기를 원했고, 이제, 그의 죽음 이후로, 그 사라짐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어야 할 과제는 그의 독자들의 몫으로 남는다.
-블랑쇼는 “‘내’가 죽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중 아무나, “‘그 누군가’가 죽는다”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그 말은, 정확히 하이데거에 반대해, 죽음으로의 접근의 경험이 ’나‘의 본래성을 회복하게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 오히려 ’나‘를 이름 없는 자의 비본래성으로 되돌아가게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죽음으로의 접근, 즉 ‘나’아닌 타자가 되기, 비인칭적 실존에 기입되기, ‘내’가 통제할 수 없는―의미로, ‘나’의 존재의 ‘의미’로 포착할 수 없는― 익명의 실존으로 되돌아가기. 그렇게 귀결되는 블랑쇼의 죽음에 대한 사유와 그 자신의 죽음 사이에 어떤 연결끈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블랑쇼가 마지막으로 써서 출간한 작품에 붙인 제목은 <나의 죽음의 순간>(1994)이었다. 거기서 그는 나치의 총구와 마주한 그(또는 나)의 죽음의 순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그를 대신해 이 가벼움의 감정을 분석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 갑작스럽게 다가온, 물리칠 수 없는 감정이었을 것이다. 죽는―죽을 수 없는. 아마도 황홀경. 차라리 고통 받는 인간성에 대한 연민의 감정, 죽을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사는 것도 아니라는 것에서 오는 행복감. 그때부터 그는, 은밀한 우정으로, 죽음과 맺어졌다.” ‘나’의 죽음, 심각한 것이 아님, 정확히 말해 심각할 수 없음―수동성으로서의 죽음의 체험―, ‘가벼움’ 또는 아니면 ‘행복감’. 우리들 중 누구도 블랑쇼의 죽음의 순간을 목격하지 못했다. 그의 옆집에 살던 한 대학생이, 그가 죽은 지 얼마 후, 언론·방송에 그의 죽음을 알렸고, 그에 따라 그의 사망소식이 전해졌을 뿐이다.
-위대한 한 작가의 죽음인가? 그의 죽음은 의미심장한 것인가? 아마, 다만, 단순히, 우리들 중 아무가 죽어갔을 뿐이다. 그러나, 분명, 우리 안에 있는 ‘내’가 죽어나간 것이고, 한때는 ‘나’(지금 쓰고 있는 필자, 내가 아니라 그의 독자 중 아무나 될 수 있는 ‘나’)를 스쳐갔던 시간이 이제 결코 돌이킬 수 없이 사라져버린, 아니 죽어버린 것이다. 결국 블랑쇼의 죽음이 전해주는 감정은 ‘나’의 어떤 부분이 도려내어질 때 다가오는 통렬함이다. 그러나 그 통렬함을 느끼는 이유는 그가 ‘내’가 잘 아는, ‘나’와 가까운 자였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가 결코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서, 나아가 무엇도 ‘가르치지 않으면서’, 글쓰기를 통해 전달되는 우정으로, ‘나’로 하여금 ‘우리’를 만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재난의 글쓰기’ 또는 ‘우정의 글쓰기’, 그 글쓰기를 그의 죽음과 별개로 여길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멀리서나마 다시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렇게 죽음에 대해 가장 깊이 몰입했던 한 비평가의 죽음은 또한 그의 새로운 삶이기도 하다. 텍스트로서의 삶. 우리에게 그 삶이 주어졌고, 우리에겐 지금 그걸 읽을 '자유'가 있다...
05. 12.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