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번역학 분야의 의미 있는 책이 출간됐다. 조르주 무냉의 <부정한 미녀들>(아카넷, 2015). 원저는 1955년에 나왔으니까 60년만에 나온 한국어판이기도 하다. 저자는 프랑스의 언어학자로 소쉬르를 재발견한 인물 중의 하나로 기억하고 있는데(롤랑 바르트와 논쟁을 벌인 걸로도 유명하다), 번역학의 선구자이기도 하다고.

 

언어학자 조르주 무냉은 프랑스 번역학의 토대를 구축한 선구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현대 번역학이 “조르주 무냉에서부터 출발한다.”는 표현이 말해주듯, 그를 폄하하는 측에서건 치켜세우는 측에서건, 무냉이 현대 번역학의 시원(始原)에 서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찾아보니 <번역의 이론적 문제점>(고려대출판부, 2002)도 출간됐었다. 절판된 책으로는 오래 전에 나왔던 <언어학 안내>(신아사, 1984)가 있었다. 제목 그대로 언어학 입문서. <부정한 미녀들>은 학술명저 번역으로 나온 책으로는 발레리 라르보의 <성 히에로니무스의 가호 아래>(아카넷, 2012)와 함께 '번역학 고전'으로 꼽힌다. 라르보의 책은 1946년에 나왔다. 제목의 '부정한 미녀들'은 번역사/번역학 책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런 뜻을 담고 있다.

책의 제목인 “부정한 미녀들(les belles infideles)”이라는 표현은 17세기 타키투스, 루키아노스 등과 같은 고전들을 번역하면서 아주 대담한 태도를 취했던 페로 다블랑쿠르의 번역을, 질 메나주가 다음과 같이 여자에 빗대어 표현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가 한 번역들은 내가 투르에서 애지중지했던 한 여자, 아름답긴 했지만 정조는 없었던 그 여자를 생각나게 한다.” 이때부터 “부정한 미녀들”이라는 표현은 유려하긴 하지만 원작에 충실하지 못한 번역을 단죄하기 위한 낙인으로 사용된다.

 

이 얘기는 쓰지 유미의 <번역사 산책>(궁리, 2001)에서 더 자세히 읽어볼 수 있고(<번역사 오디세이>(끌레마, 2008)가 재간본이다), 요네하라 마리의 <미녀냐 추녀냐>(마음산책, 2008)도 '부정한 미녀냐/ 정숙한 추녀냐'라는 번역학의 쟁점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정숙한 미녀'라면 가장 좋겠지만, 대개 번역 상황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부정한 미녀냐, 정숙한 추녀냐, 라는 선택지다. 무냉이 어떤 입장에 서 있는지 궁금하다...

 

15. 0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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