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다른 주저없이 손에 꼽을 수 있는 책 몇 권이 출간됐다. 이런 경우는 반가우면서도 속이 쓰리다. 속이 쓰린 건 당장에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혹은 보다 원초적으론 책을 구입할 만한 여력이 안된다는 것도 이유가 된다. 그러다가 품절/절판되는 책들도 드물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어떻게 해야지 출판사들이 책을 알아서들 보내줄까, 간혹 그런 공상을 하기도 하지만, 주로 칭찬보다는 험담을 늘어놓는 주제이기에 곧 그런 기대를 접어둔다. 물론 나는 거저 얻은 책에 대해서는 험담하지 않으며, 나의 험담은 주로 내 돈 주고 산 책들에 대해서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투자한 게 있으니!

해서 이것도 일종의 악순환이다. 내 돈 주고 사서 읽으니, 책에 대한 기대가 높을 수밖에 없고, 그러니 자연스레 이것저것 트집을 잡게 된다(물론 완벽한 책은 드물며, 대다수는 엉성한 책들이기에 꺼리들은 차고 넘친다). 또 그러니 이래저래 출판사로선 달갑잖은 독자일 테고 그런 독자에겐 책을 거저 보내줄 리 없다. 해서, 나는 여러 곤란 속에서도 책은 내 돈 주고 사서 읽어야 된다. 더더욱 눈을 부라리지 않을 수 없다. 이것도 책이냐?!(혹 '출판평론가'라는 이들에겐 책을 거저 보내주는지? 영화평론가들에게 시사회 티켓을 보내주는 것처럼. 사실이 혹 그렇다면 조만간 '평론가'란 직함이라도 구해봐야겠다. 그것도 혹 사야 되는 건가?)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슬라보예 지젝의 책과 그에 관한 책이다. 올해도 두 권의 책이 근간예정으로 돼 있는 지젝은 인문학 출판계에 '아무도 그보다 더 많이 쓸 수는 없다!' 상이 있다면 가장 유력한 후보에 들어가고도 남음이 있다. 이번에 나온 건 그의 주저에 속하는 <까다로운 주체>(도서출판b)와 입문서인 토니 마이어스의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앨피)이다.

'이론서'로서 <까다로운 주체>는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인간사랑)이나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인간사랑)에 이어지는 책이다(그 사이에 <부정성과 함께 남아있기> 등이 놓여 있다). 지난 토요일 마이어스의 책에 대한 중앙일보의 소개 기사에는 국내에 지젝의 저서가 17종이 번역/소개돼 있다고 했는데(그는 개정판이 나온 <향락의 전이>를 두 권으로 카운트했다), 실제 단독 저작은 히치콕에 대한 책까지 포함해서 13권이다(<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은 지젝이 편집한 책이고, 그의 글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 중 내가 '이론서'라고 분류한 책들이 그래도 번역이 양호한 책들에 속하며 부분적인 오역들을 빠져나가면서 꼼꼼하게 읽으면 읽을 수 있는 책들이다. 물론 아무리 지젝의 책들이라 하더라도 내용이 좀 무겁긴 하다.

 

 

 

 

지젝의 또다른 책들은 '영화책'이라 분류될 만한데, 실제로 영화들을 주된 분석대상으로 하고 있다. <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새물결, 2001)을 필두로 해서 <삐딱하게 하기>(시각과언어, 1995),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한나래, 1997), <진짜 눈물의 공포>(울력, 2004) 등이 그런 책들이다. 여기에 분류된 책들도 비교적 읽을 만한데, 나열된 순서를 거꾸로 하면 오역이 그래도 적은 순서가 된다. 지젝의 책 가운데 국내에 가장 먼저 소개된 <삐딱하게 하기>는 처음 소개한 공로는 인정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오역이 적지 않다(해서 이 책에 대한 만족도는 뒤로 갈수록 점점 떨어진다). 요즘도 절판되지 않고 계속 팔려나가는 책이므로 개정판이 나올 법하지만, 아주 명백한 오타나 오역들이(적지 않은데) 교정되지 않은 채 판을 찍고 있는 걸로 보아서 출판사로선 그럴 의향은 없는 듯하다(전향적인 방향으로 개정본 출간을 검토해주었으면 한다).

해서, 영화책들 가운데, 내가 보기에 그래도 가장 안전하게 참조할 수 있는 건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들을 주로 다루고 있는 <진짜 눈물의 공포>인데, 이건 의외로 판매실적이 저조한다. 알라딘을 기준으로 하면, 조잡한 번역의 <무너지기 쉬운 절대성>(인간사랑)보다도 세일즈 포인트가 낮게 나온다(이 또한 기이한 일이다). 그 책을 다 읽은 건 아니지만, 그리고 몇몇 오타나 오역이 없지 않지만, 나로선 지젝에 입문하려는 독자라면 가장 안전하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이라고 추천하겠다.

그리고 물론 지젝의 나머지 책들이 있으며 대부분은 오역의 지뢰밭이다(오역 사례집으로의 활용가치는 있겠지만, 일반 독자라면 차라리 안 읽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듯하다). 그러니 지젝을 미워하고 말고 이전에, 지젝은 우리말로 읽는 것 자체가 드물고도 어려운 저자이다(사실, 정도의 문제일 뿐 대부분의 '사상가들'이 그렇다. 해서 한국어로 똑똑해진다는 건 정말 힘들다!). 때문에, 일반 독자들이 읽을 만한 입문서가 절실히 요구되는데, 이번에 출간된 마이어스의 책은 그러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책이다. 요컨대, '가장 쉬운 지젝 입문서'.

이미 루틀리지의 같은 시리즈('Critical Thinkers')의 책으로 클레어 콜브룩의 <들뢰즈>(태학사, 2004)가 출간된바 있고, 나는 그 책을 '가장 쉬운 들뢰즈 입문서'라고 부른바 있다. 그러니 마이어스의 책에 대해서도 같은 소개를 하는 것이 형평에 맞을 것이다(신생 출판사로 보이는 '앨피'는 이 루틀리지 시리즈의 에드워드 사이드 편도 출간했는데, 이 시리즈의 저작권을 상당수 인수한 모양이다. 좋은 시리즈인 만큼 양질의 번역서들이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거기엔 니콜라스 로일의 <데리다>도 포함돼 있는데, 나는 로일의 책을 모스크바에서 지난 가을에 읽었더랬다.)

마이어스의 책은 지난 2003년에 나왔는데, 영어권에서도 그런 류의 지젝 입문서로서는 최초의 책이 아닌가 싶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해 나온 것이 사라 케이의 <지젝: 비판적 입문>(Polity, 2003)이고, 작년에는 이안 파커의 <슬라보예 지젝: 비판적 입문>(Pluto Press, 2004)이 출간됐다. 모두 컴팩트한 분량의 '입문서'들이다. 마이어스의 책도 원제는 국역본처럼 요란한 게 아니라 그냥 <슬라보예 지젝>이며, "왜 지젝인가?(Why Zizek?)"와 "핵심 사상(Key Ideas)", 그리고 "지젝 이후(After Zizek)"라는 세 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책을 구하러 맘먹고 오늘 구내서적에 갔더니 아직 들어와 있지 않았다).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이 그러하듯이, 쉬운 문장으로 간결하게 서술돼 있고, 핵심적인 아이디어들은 따로 박스처리돼 있는 등 입문서로서의 요건은 깔끔하게 충족시키고 있는 책이므로 일독할 만하다. 그런데, 국역본의 제목은 왜 그 모양인가? 그거야 책이 좀 쉽게 눈에 띄게 하기 위한 출판사측의 계산 때문일 것이다. 그 계산이 통할지는 두고볼 일이지만, 모쪼록 지젝에 대한 오해의 많은 부분이 걷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지젝은 그에 대한 숭배자들 못지 않게 많은 혐오자들도 거느리고 있는 사상가이다. 나로선 그가 내가 읽고 이해하는 한도 내에서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따름이다. 더불어 나는 '같잖은' 비판들을 제시하기에 앞서서 중요한 것은 '읽기'라고 생각한다. 데리다의 가르침이기도 하지만 '읽기'는 모든 비판보다 멀리 간다('같잖은'이란 표현은 강유원의 것이다. 그는 현대 프랑스 철학은 '같잖은' 철학이라고 말한다. 사후 50년이 되지 않은 데리다나 들뢰즈 철학은 아직 유아적인 철학에 불과하고. 나는 그의 표현을 '같지 않은'이라는 문자 그대로의 뜻으로 읽는다. 데리다의 철학은 헤겔의 철학과 '같지 않다'. 그래서 '같잖은' 철학이다. 아울러 지젝의 철학은 알튀세르의 철학과 '같지 않다'. 그래서 '같잖은' 철학이다. 강유원의 프랑스 철학 비판은 그 자신의 시인대로 감정적인 것인바, 내가 읽고 싶은 건 그런 '같잖은' 감정이 아니라 비판의 실내용이다. 그건 지젝에 대한 갖가지 비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두번째 책은 박노자의 <우승과 열패의 신화: 사회진화론과 한국 민족주의 담론의 역사>(한겨레신문사)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 책의 목적은 '힘 숭배' 수용의 몇몇 초기 단계들-1883년 부터 1910년까지 미국에 다녀온 초기의 조선 지식인들이나 량치차오와 같은 한국 개신 유림의 '큰 스승', 그리고 개신 유림 계통의 주요 논객 등을 중심으로-을 짚어서 오늘날의 '승자 독식사회', '승자를 위한, 승자에 의한 사회'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개화기에 사회진화론 사상이 어떻게 수용되었는가에 대한 관심과 문제제기는 이미 박노자의 이전 저작에서 예고된 것이기도 하다.

슬라보예 지젝의 '동유럽의 기적' 혹은 '슬로베니아의 기적'이라면, 원래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란 러시아 이름을 가졌던 박노자는 '러시아의 기적'이라 할 만하다. 나는 그가 러시아의 '선진적인' 교육 시스템의 산물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으론 그런 시스템과 무관한 '별종'이지 않을까 싶다. 이미 여러 권의 저작을 통해서 한국인보다 더 예리하게 한국의 역사와 사회에 대해서 비판하고 분석해온 그의 작업은 동의하지 않는 부분에서조차도 더없이 값지고 소중하다. 해서 당분간은 '박노자의 모든 책'이다. 그런 책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아주 소략한데, 짐작에 메이저 언론이라는 조중동이 모두 북리뷰에서 이 책을 다루지 않았다. 책을 낸 한겨레에서만 장문의 서평을 실어주었다. '우승과 열패의 신화'(우수하면 승리하고 열등하면 패배한다는 신화)는 한국사회에서 아직도 유효하다는 걸 그들의 불편한 '침묵'이 말해주는 것은 아닌지.

 

 

 

 

세번째 책은 진화생물학자 에른스트 마이어의 <생물학의 고유성은 어디에 있는가?>(철학과현실사)이다. 이 양반이 지난 2월에 작고했다는 걸 서평을 보면서 알았는데, 1904년생이니까 101세의 장수를 누린 셈이다. 책은 그가 100세 때에 쓴 마지막 저서라고 하는데, 이래저래 경탄스럽다(103세에 세상을 뜬 철학자 가다머를 떠올리게 한다). 미국 진화생물학계의 태두로서 진작부터 '20세기의 다윈'으로 불린 마이어이지만, 국내에 출간된 그의 책은 빈약하다. <진화론 논쟁>(사이언스북스, 1998)으로 처음 소개됐고, <이것이 생물학이다>(몸과마음, 2002)로 거장의 면모를 살짝 보여주었을 뿐. 마이어의 모든 책이라고 하기엔 너무 빈약하게 소개됐지만, 나중에 나온 두 권 정도는 읽어둘 만하다(<진화론 논쟁>은 소략한 책이다). 같이 나온 과학책으론 개리 마커스의 <마음이 태어나는 곳>(해나무)이 있다(마이어의 책이 아니었더라면, 이 책이 지난주의 교양과학서이다). 저자는 미국 인지과학계의 새로운 기대주인 듯한데, 노암 촘스키나 스티븐 핀커 같은 대가들이 추천사를 쓴 걸로 봐서 집어들어 손해보지 않을 책이다.

 

 

 



네번째 책은 사이먼 윈체스터의 <영어의 탄생>(책과함께)이다.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OED라고 불리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곡절 많은 사전 편찬사이며, OED와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의 열정, 노력, 자부심, 좌절 등을 함께 담은 흥미로운 휴먼스토리이다. OED 제작에 깊이 관여한 머리 교수와 죄수 마이너의 이야기를 담아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교수와 광인>의 저자 사이먼 윈체스터가 썼다." 내가 덧붙일 말은 없으며, '영어의 시대'를 살고 있는 만큼, 그 사전 편찬과 관련한 이야기도 한번쯤 귀담아 들어봄 직하다. <한국어의 탄생> 같은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끝으로, 이젠 '원로' 비평가가 된 김윤식 교수의 <김윤식 선집 7 - 문학사와 비평>(솔출판사)이다. 서점에 깔린 것만 보고 책을 들춰보지는 않았는데, 하여간에 아직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평가임에도 불구하고 그 선집이 거의 다 추스려지고 있는 듯하여 한편으로 세월무상을 느끼게 된다. 학부시절 신간으로 나온 <낯선 신을 찾아서>(일지사, 1988)를 서점에서 사들고는 도서관에서 읽던 기억이 새로운데 말이다. 나는 이 독보적인 문학사가이자 비평가의 '자질'이 '낯선 신'에 대한 갈망과 열정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갈망/열정을 안은 이라면, 방황은 영원할 수밖에 없으며 책읽기 또한 종결될 수 없다(그때 비평은 운명의 표정을 갖게 되리라). 개인적으로 비평집들을 읽을 때 내가 기준으로 삼는 것은 그러한 열정/수난의 함량이며, 그 기준은 김윤식을 근거로 한 것이다. 이 선집과 함께 나란히 나온 것이 <비도 눈도 내리지 않는 시나가와역>(솔출판사)인데(역시 예술기행), 책읽기의 어느 경지에 이르면 비도 눈도 내리지 않는 어떤 영토에 가닿게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시방 내가 있는 곳은 아직도 바람 많이 불고 꽃이파리 나부끼는 땅, 생의 푸르름이 아직 이념의 회색빛보다 진한 곳, 진하다고 믿어지는 곳. 비도 눈도 내리지 않는 그 어느 저녁을 위해서 아직은 읽어야 할 책들이 너무 많다. 갈길이 멀다..

05. 04. 25.

 

 

 


 

P.S. 좀 지난 책이지만, 지난 2월말 정현종 시인의 정년퇴임 기념으로 나온 책 <영원한 시작>(민음사)도 기록해 두고 싶다. 후배 교수인 정과리가 시인의 제자들의 글을 묶은 것으로 일종의 기념논총이다. 소개에 따르면, "필자들은 정현종 시학의 요체가 '상상력'이라고 보았고, 상상은 질료의 운동과 교감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은 1부 '질료'와 2부 '운동'으로 구성돼 있고, 3부에서는 '교감'이란 제하에 스승과 제자들이 나우었던 정담을 싣고 있다. 이러한 구성을 틀지우고 있는 건 물론 바슐라르의 상상력론인바, 그것이 한 시인의 총체적인 시세계를 조명하는 데 바쳐지고 있는 것은 드문 경우이다. 해서 정현종의 독자와 바슐라르의 독자가 모두 한번쯤 읽어볼 만하겠다. 읽어서 남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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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4-25 18:08   좋아요 0 | URL
출판평론가에겐 물론 책을 보냅니다^^

로쟈 2005-04-25 20:14   좋아요 0 | URL
그들이 듣기 좋은 소리들만 늘어놓는 이유가 있는 거겠죠...

비로그인 2005-04-25 20:47   좋아요 0 | URL
유혹하는 책들이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르는데 그것에 손을 뻗을 수 없을때는 가슴이 쓰라립니다...;;; 자본의 압박...;;;

릴케 현상 2005-04-25 21:08   좋아요 0 | URL
ㅎㅎ 전번에 발마스님은 쓴소리했다가 잘렸잖아요^^출판인회의 이달의 책이었던가?

로쟈 2005-04-26 12:56   좋아요 0 | URL
잘릴 만했지요. 발마스님이 좀 직설적이잖아요. 아주 훌륭한 책이지만, 몇 가지 '옥의 티'가 있다고 하면 됐을 것을(물론 서평은 그 티잡기로 도배를 하더라도)...

2005-04-26 1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4-26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4-26 1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주니다 2005-04-27 09:58   좋아요 0 | URL
메일 받으셨나요? 발송 실패했다는 메세지가 자꾸 뜨는군요. 내용을 저장하질 않아서 못받으셨으면....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