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물윤리위원회의 소식지 '책&'(398호)에 실린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이달의 주제로 고른 건 조선시대 세계지도다. 관련서가 많지는 않지만 요긴한 책들이 몇권 있어서 골라보았다.   

책&(11년 9월호) 우리 지도에 담긴 세계의 인식 

세계란 무엇인가? 세계사에 관한 책들을 대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질문이다. 세계사, 곧 세계의 역사라면 ‘세계’라는 단위 혹은 개념이 필수적으로 전제돼야 한다. 이 세계라는 개념이 언제, 어떻게 형성됐는가 하는 문제는 늘 품고 있는 관심거리다. ‘세계’란 말 이전에도 세계는 과연 존재하는가라고 물으면 이건 철학적인 문제로도 비약한다. 주로 다양한 종류의 세계사가 이런 물음을 촉발하는데, 방향을 조금 틀어서 ‘세계지도’는 어떤가란 흥미도 생겼다. 세계에 대한 공간적 표상으로서 세계지도는 말 그대로 세계를 그린 것이니까 세계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보여주는 아주 직접적인 자료이다.  

오지 도시아키의 <세계지도의 탄생>(알마, 2010)은 그런 관심에서 손에 들 만한 책이다. “지도가 표현하는 것은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데, 특히 세계지도에 대한 저자의 기본 관점은 유익한 지침이 된다. 지도의 구성요소로 과학성‧실용성‧사상성‧예술성 네 가지를 드는 그는 현대 지도에서는 과학성과 실용성을 중시하지만 사상성과 예술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도의 역사 자체가 사상성‧예술성에서 과학성‧실용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천해왔다. 그것을 저자는 세계관을 표현하는 ‘세계도’에서 세계를 표현하는 ‘세계지도’로 변화해온 것이라 정리한다. 세계도와 세계지도를 개념상 구분하는 것이다. 세계도에서 세계지도로의 변화가 곧 ‘세계도의 근대화’이다. 이러한 근대화를 선취한 것은 중세 이슬람의 이드리시 세계지도이지만, 세계도의 근대화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대항해시대에 이르러서이며 이를 주도한 나라가 포르투갈이었다. 1502년에 제작된 칸티노 세계지도는 지도에서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을 알리는 지표이기도 했다.   

세계지도가 그러한 탄생사를 갖는다면 우리의 경우는 어떤지 자연스레 궁금해진다. 이 분야의 책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개리 레드야드의 <한국 고지도의 역사>(소나무, 2011)는 발군의 저작이다. 단행본의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세계지도학계가 다양한 문화권에서 지도학의 역사를 조명한 <세계지도학 통사>(전8권) 가운데 ‘한국 지도학’ 편에 해당한다. 한국 지도학의 발달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했을 뿐더러 서구 학계에 한국 전통 지도학을 알리는 데 기여한 저술이다. 저자는 전통시대에 한국문화가 중국 문명에서 많은 것을 빌려 썼고 지도학도 예외는 아니지만 한편으로 중국과는 매우 다른 모습도 보여준다고 말한다. “중국 문명이 지도제작 기술을 주도했지만, 한국의 지도는 이 관계로만 정의할 수 없으며, 동아시아 문명 내부의 위대한 다양성을 보여주는 대단히 쓸모 있는 매개체이다”라는 것이 그의 평가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선왕조 초기인 1402년에 완성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이다. 보통 <강리도>로 칭해지는 이 지도는 동아시아 지도제작 전통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이다. 아쉽게도 현재 한국에는 남아 있지 않고 몇 개의 사본만이 일본에 전해지고 있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류코쿠대학 소장본으로 레드야드는 147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1480-1534년 사이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하는 시각도 있다). <강리도>는 14세기 중국 지도를 바탕으로 하여 중국‧한국‧일본 세 나라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지도를 연구해서 통합적으로 만든 지도이다. 레드야드에 따르면 이런 시도 자체가 당시의 지도 제작 표준에 비추어 놀랄 만한 것이다.  

<강리도>는 아프리카와 아라비아 반도, 그리고 유럽의 윤곽까지 보여주는데, 한국을 매우 크게 확대하는 대신 일본 열도도 남중국해에 멀찍이 표시해놓은 게 특징이다. 이러한 상대적 크기와 배치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15세기 초 조선의 세계관이다. 중국을 문명의 중심으로 놓되 조선이 동아시아의 주요 국가임을 분명히 하고 일본은 가능한 한 멀리 두려고 했다. 오지 도시아키의 구분에 따르면 <강리도>는 확실히 ‘세계관’을 표현한 ‘세계도’였다.   

현재 사본들이 모두 일본에 소장돼 있는 만큼 <강리도>에 대한 연구는 일본 학자들에 의해 많이 진행되었다. 미야 노리코의 <조선이 그린 세계지도>(소와당, 2010)는 <강리도>의 원천에 대한 연구서이다. 지도 자체는 조선의 것이지만 <강리도>는 당시까지 축적돼 있던 동아시아 지성의 산물로 큰 의의를 갖는데, 저자는 <강리도>의 모태가 된 두 장의 중국 지도, 청준의 <혼일강리도>와 이택민의 <성교광피도>를 추적하여 <강리도>의 탄생배경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켜준다.   

오상학의 <조선시대 세계지도와 세계인식>(창비, 2011)은 제목대로 ‘조선의 지도에 담긴 세계’를 읽어내려는 시도로 한국 지도학 연구 동향과 성과도 가늠하게 해준다. 저자는 15세기 <강리도>에서부터 17‧18세기의 원형 천하도, 그리고 19세기 최한기의 <지구전후도>에 이르기까지 우리 지도에 담긴 세계인식을 추적하며, 특히 원형 천하도의 의의를 높이 사고 있다. 학술적인 성격의 책이기에 레드야드의 <한국 고지도의 역사>가 제시한 윤곽의 ‘상세도’로 읽을 수 있다.   

11. 0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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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i 2011-09-16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리도의 비대칭성을 보니 무슨 이유에선지 요즘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누구누구의 뇌지도'가 생각나네요. 동글동글한 섬 모양은 '환공포증'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어요.

로쟈 2011-09-17 09:12   좋아요 0 | URL
저렇게 다 그려넣은 세계지도가 처음이라는 것도 놀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