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비가 왔지만 잠시라도 갠 어제는 고속도로가 휴가 차량으로 북적였다고 한다. 비 피해는 피해고 피서는 피서인 것. 하루종일 비가 내리는 바람에(지금은 좀 잠잠한 듯하지만) 집밖으론 한 발작도 나가지 않고 '집안에 갇힌 사람' 모드로 지냈다. 도서관에 반납하려던 책이 있었지만 며칠 여유가 있길래 포기했다. 그나마 비오는 날씨를 싫어하지 않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3월 이후로 유일하게 강의가 없었던 지난주엔 단 하루만 외출했었기에 나름대로는 휴가 기분으로 지냈다. 할일이 많았지만 '할 수 없다'는 심정이 휴가 기분이다. 하지만 '나가수'도 끝나고 새로운 한주를 목전에 두려니 갑자기 두려움이 앞선다. 어쩌자고, 휴일을 다 쉬었더란 말인가!..  

 

다 쉬고자 하는 바람에 서재 포스팅도 하지 않았다. 뭔가 대범해 보이지 않은가, 혼자 속으로 흡족해하다가 떠올린 책은 스테판 하딩의 <지구의 노래>(현암사, 2011)다. 그래, '지구의 노래'를 들으며, 혹은 읽으며 주말을 보냈다고 하면 더 폼이 날듯도 싶다. 생태주의 세계관을 설파하는 '가이아' 관련서이다. 서문을 쓴 린 마굴리스가 한 말. "<지구의 노래>는 세계의 모든 주요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 학계, 기업 또는 정치적 지지자들이 아니라 이용 가능한 최선의 과학 지식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나는 하딩이 보여준 이 용감하고 성공적인, 세상을 온전하게 보존하려는 시도에 경의를 표한다." 일단 한국어가 '세계 주요 언어'에 일찌감치 포함돼 다행스럽다. 그리고 '지구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한번 더.   

 

그리고 떠올린 건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시간의 목소리>(후마니타스, 2011). 남미쪽 저자들은 이름만으론 국적을 알기 어려운데, 갈레아노는 이번에 코파컵에선 우승한 우루과이 사람이다. 이번에 나온 건 333편의 짤막한 이야기 모음이라고. 사실 <지구의 노래>에서 <시간의 목소리>로 건너뛴 건 저자들 간의 관계나 주제상의 연결고리와는 전혀 무관하게도, 표지 때문이다. 제목의 타이포그라피로만 채운 표지가 왠지 친연성을 보여주지 않는지. 비트겐슈타인의 용어로 '가족유사성'이라고 해도 좋겠다. 좀 닮았다는 얘기다. 그래서 듣는 김에 '지구의 노래'도 듣고, '시간의 목소리'도 들어봄직하다. "주말에 뭐하셨습니까?" "시간의 목소리 좀 들었습니다." "..."

 

사실 <시간의 목소리>는 아직 구입하지 않은 책이니 '시간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 건 비유이거나 허세다. 갈레아노의 새 책이 나온 걸 보고 내가 구입한 건 오히려 <갈레아노, 거울 너머의 역사>(책보세, 2010)다. 라틴아메리카의 수난사를 다룬 <수탈된 대지>(범우사, 2009)와 <불의 기억>(따님, 2005)의 저자이기도 한 갈레아노가 '핍박받은 사람들'의 역사를 600여 개의 짦은 이야기로 재구성한 것이다. 원제가 '거울'이니까 역사를 들여다보는 600여 개의 거울을 의도한 셈이다. 나는 이걸 <시간의 목소리>보다 먼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레아노, 거울 너머의 역사>와 같이 주문해서 받은 책이 크리스토퍼 로이드의 <지구 위의 역사>(김영사, 2011)이다. 생각보다 크고 무거운 책이었다(하긴 제목을 고려하면 크고 무거운 게 당연하겠지만). 우주탄생에서 21세기까지 다루는데, 전체 4부 가운데 2부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고, 3부는 문명의 탄생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4부가 '서기 570년경부터 지금까지'다. 요즘 말하는 '지구사'의 교과서 같은 책. 그래, 휴가라면 모름지기 이 정도 스케일의 책들을 읽어줘야 하는 거지...  

이후에 20분 정도 더 써내려 갔지만 갑자기 로그아웃되면서 날려먹었다(이럴 땐 임시저장 효과도 없군). 여하튼 일요일엔 장대한 스케일의 책을 읽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특히나 비가 오는 일요일이라면, 더구나 할일도 아주 많은데 공을 친 일요일이라면... 

11. 0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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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11-08-01 08:54   좋아요 0 | URL
로쟈님도 나가수를 보시는군요.

로쟈 2011-08-01 14:56   좋아요 0 | URL
최선을 다해 노래하는 모습들이 보기 좋아서요.^^

파타고니언 2011-08-05 00:14   좋아요 0 | URL
분야가 다른 두 권인데 같이 꼽으셔서 놀랐습니다. 그런데 안목이 정말 예리하세요! <지구의 노래>와 <시간의 목소리> 두 권 모두 같은 디자이너의 작품이거든요.

로쟈 2011-08-05 09:56   좋아요 0 | URL
짐작이 맞았네요. 얼핏 봐도 닮았으니 안목이랄 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