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번역서 가운데 관심도서는 로널드 애런슨의 <사르트르와 카뮈>(연암서가, 2011),  <찰스 다윈 서간집 기원>(살림, 2011), 그리고 싯다르타 무케르지의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까치, 2011) 등이었다(부케티츠의 <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이가서, 2011)도 장바구니에 넣어둔 책이다). 다윈의 서간집은 2권 <진화>가 마저 출간돼야 한다는데, 작년에 나온 다윈 평전들에 이어서 본격적인 다윈 읽기를 자극한다. 아무래도 <사르트르와 카뮈>를 먼저 손에 들 듯하고, <암>은 장서용으로 꽂아둘 참이다.

 

국내서로 눈길을 돌리면 김용옥의 <중용 한글역주>(통나무, 2011), 박홍규의 <이반 일리히>(텍스트, 2011), 그리고 주강현의 <제주기행>(웅진지식하우스, 2011) 등이 손꼽을 만한 책이다. 모두 상당한 필력을 자랑하는 인문학자들의 신작이란 공통점이 있다.   

 

거기에 한 권 보태자면 원로 문화인류학자 한상복 교수의 <평창 두메산골 50년>(눈빛, 2011)이 있다. 2018년 동계올림픽 예정지이기도 한 평창 두메산골의 지난 50년을 글과 사진으로 복원한 책으로 '한국의 마을 총서'의 첫 권이다. 이제는 책으로만 만나볼 수 있는 삶의 풍경이 눈앞에 그려진다.    

 

한겨레(11. 07. 09) 올림픽 품기 전의 평창 ‘50년간의 인류학적 탐사기’

강원도 평창이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됐다. 대회 개막식과 폐회식, 그리고 스키점프와 봅슬레이, 크로스컨트리 경기가 평창군 대관령면 용산리 알펜시아 리조트에서 열릴 예정이다. 알파인 종목들도 같은 용산리에 있는 용평리조트에서 열린다. 



겨울올림픽이 펼쳐질 두 리조트가 자리잡은 평창군 대관령면 용산리의 50년 전 모습은 어떠했을까? 알펜시아 리조트는 1949년 12월1일 도암초등학교 용산분교로 시작해 2000년 폐교가 된 용산초등학교를 허물고 지었다. 1960년 학교 건물이 완성되기 전에는 귀틀집과 움막집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여기서 6㎞가량 떨어져 있던 용산2리와 14㎞ 떨어져 있던 봉산리 아이들은 학교가 너무 멀어 서당을 다녔다. 아이들은 댕기를 땋고 한복 차림이었다. 학생들은 천자문과 동몽선습을 1년 동안 배우고 중급 과정으로 명심보감, 통감, 소학을 6년 동안 배웠다. 1960년 당시 봉산리 주민의 98%가, 용산2리 주민의 77%가 초등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주민들마저 잊어버렸을 오지마을의 50년 전 모습을 한상복 서울대 명예교수(문화인류학)가 생생하게 복원했다. 한 교수가 최근 내놓은 <평창 두메산골 50년>은 당시나 지금이나 오지로 꼽히는 용산2리와 봉산리의 50년 전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정밀하게 대조한 다큐멘터리 같은 책이다. 연구 보고서지만 진귀한 사진과 사람 중심으로 풀어가는 이야기여서 흡입력이 대단하다.

지은이는 1959년 겨울 대학 2학년 복학생 시절 두 마을을 처음 찾아 첫 문화인류학 조사를 했다. 당시 이 두 마을을 선정한 것은 이곳이 오대산, 박지산(두타산), 계방산 등 1000m가 넘는 산으로 둘러싸인 오지였기 때문이다. 봉산리는 지금도 비포장도로로 20㎞를 달려야 닿을 수 있는 두메로 강원도가 선정한 대표적 오지 관광지의 하나다. 그는 이듬해인 1960년에는 40여일을 머물며 두 마을의 생활양식을 들여다봤고, 이후 몇 차례 다시 방문해 두 마을의 의식주, 가족의 구성, 신앙과 의례, 교육 등을 조사했다. 그리고 이 결과를 졸업 논문과 석사 논문으로 썼다.

스물다섯살 대학생에서 일흔다섯살 노학자가 된 한 교수는 학문 인생의 출발지였던 이곳으로 지난해 다시 들어갔다. 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이 우리 이웃들의 생활사를 들여다보자는 의미로 기획한 ‘한국의 마을 총서’ 시리즈 작업에 참여하면서 두 마을을 여러 차례 찾아가 지금의 현실을 정리했다. 한국의 마을 총서 시리즈는 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이 2002년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과거와 자취를 말살하는 반달리즘에 맞서 이를 지키고 증언하겠다는 취지로 준비한 프로젝트로, 첫 권으로 나온 이 책 <평창 두메산골 50년>에 이어 앞으로 경상도의 농촌 마을, 전라도의 평야 마을, 청계천 판자촌 등을 다룬 책들이 계속 출간될 예정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마을 인구와 학교 학생 등의 통계를 비교하는 것은 물론 마을을 떠난 이들까지 찾아가 수십명을 인터뷰했다. 50년간 마을의 변화에 대한 정량적 접근은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의 달라진 생활과 문화를 최대한 담았다. 지역 주민들의 편지와 시 등도 수록돼 산골 마을 주민들의 일상을 볼 수 있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특히 50년 전과 지금을 나란히 비교한 사진들이 압권이다. 50년 전 사진은 한 교수가 직접 찍었고 최근의 사진은 엄상빈 상명대 교수가 찍었다



용산2리와 봉산리, 두 마을은 50년 동안 어떻게 바뀌었을까. 두메산골에 올림픽 경기장이 들어서는 것처럼 두 지역은 상전벽해가 됐다. 역시 드라마틱한 것은 인구수다. 봉산리는 1960년 221명에서 2010년 29명으로, 용산2리는 427명에서 63명으로 줄었다. 50년 전 주민들은 감자와 옥수수를 생계형 농업으로 키웠고 부족한 식재료를 (산나물처럼) 산에서 구했다. 하지만 지금 주민들은 대부분 가구별로 몇만㎡ 규모의 농지에서 고랭지 채소를 재배한다. 그리고 도시 사람들처럼 시장에서 식재료를 사서 먹는다.

그러나 여전한 것들도 있다. 특히 전통문화는 그대로다. 공동체 신앙과 의례의 상징인 서낭당은 50년 동안 변하지 않았고, 지금도 두 마을에선 마을의 안녕을 비는 서낭제를 매년 치른다. 지은이는 책에서 “월정사를 통해 용산리로 들어갈 때 마치 어린 연어가 민물을 떠나 바다를 돌아보다 나이를 먹어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다”고 회고했다.(권은중 기자) 

11. 0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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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11-07-10 20:38   좋아요 0 | URL
김화영 교수가 번역한 카뮈 전집에는 아쉽게도 카뮈가 장송의 <반항적 인간> 서평에 분개하여 <현대>지에 투고한 편집장에게 보내는 글이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사르트르의 재반박문은 근래에 번역된 <시대의 초상>에서 읽을 수 있지만 정작 논쟁을 촉발한 장송의 글과 카뮈의 글은 방곤 교수가 번역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부록에서만 볼 수 있는 상황이지요. 이 번역은 좀 아쉬움이 있기에 김화영 교수의 번역으로 읽었으면 했는데 구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김화영 교수가 장송과 카뮈의 글을 번역해서 잡지에 실었다는 기록은 있는데 찾아보기도 쉽지 않구요. <사르트르와 카뮈>에 이 글들의 번역이 실렸는지 궁금하네요.

로쟈 2011-07-11 23:37   좋아요 0 | URL
김화영 교수 편 <사르트르>(고려대출판부)에 혹 번역돼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사르트르와 카뮈>에는 물론 개별 글들의 번역이 들어있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