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론 지도에 별로 관심을 가진 바 없어서 지도의 역사에도 둔감한 편이다(고등학교 때 선택과목으로 지리 대신 세계사를 고른 탓인지도 모른다. 지리와 역사가 상호배제적이라니!). 그래서 올해가 대동여지도 150주년이 되는 해라는 것도 몰랐다. 게리 레드야드의 <한국 고지도의 역사>(소나무, 2011)의 출간기사를 보고서야 알았다. 저자의 학덕과 열정이 느껴지는 책이다. 해외 한국학의 수준이 상당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한국 고지도의 역사에 대해서 우리도 내세울 만한 학술적 업적이 있는 것인지?). 박범신의 소설 <고산자>(문학동네, 2009)에까지 관심이 생겼다...

  

서울신문(11. 06. 25) “콜럼버스 ‘강리도’ 가졌다면 동쪽으로 항해 떠났을 것”

올해는 고산자(古山子) 김정호(?~1866)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가 세상의 빛을 본 지 150년이 되는 해다. 지난 4월부터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특별전시회와 학술대회를 시작했고 전국 곳곳에서 잇따라 전시, 강연행사를 가진 뒤 오는 10월 20~21일 서울대에서 종합학술대회를 연다. ‘대동여지도 150주년 기념학술사업준비위원회’가 마련한 150주년 기념행사의 결정판이다. 성대하면서도 꼼꼼히 김정호를 기념하고, 그의 손길이 깃든 성과의 현재적 의미를 따져 보는 자리다.

‘조선 후기까지 조정에 제대로 된 지도가 한 장도 없어 김정호는 10년 동안 조선팔도를 돌아다니고 백두산을 8번 오르내리며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무지한 조정은 나라의 기밀을 적들에게 알려줬다며 김정호에게 억울한 죄명을 씌워 죽음에 이르게 하고 지도와 판목은 압수해 불살랐다.’

이제껏 ‘청구도’, ‘대동여지도’ 등을 만든 김정호에 대한 보통의 인식이었다. 시대와 불화한 삶 속에 관련 문헌의 부족, 게다가 비극적 최후까지 더해졌다니 ‘전설’ 또는 ‘영웅’이 될 만한 요소를 충분히 갖춘 셈이다. 하지만 이는 1934년 일제 총독부가 만든 ‘조선어독본’에 실린 내용이 해방 이후 교과서에까지 이어지며 빚어진 오해와 편견이다.

일제는 김정호 이전에는 제대로 된 지도 한 장조차 없는 것으로 조선의 역사를 부정하며 왜곡하는 식민사관을 주입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학계 일각에서 ‘김정호 바로세우기’를 진행하고 있지만 오랜 세월 이뤄져 온 인식의 벽은 여전히 두껍다.

최근 번역 출간된 ‘한국 고지도의 역사’(장상훈 옮김, 소나무 펴냄)가 반가운 이유다. 한국역사학의 권위자인 게리 레드야드(79)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학 석좌명예교수가 쓴 ‘한국 고지도의 역사’는 한국 지도학의 발달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 세계 지도학계에 알린 노작(勞作)이다. 레드야드 교수는 책을 통해 자신을 ‘김정호의 열렬한 팬’이라고 소개하며 ‘김정호 이전의 성과’에 주목할 것을 주문한다.

지난 22~23일 두 차례에 걸쳐 레드야드 교수와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국사 전문가인 그는 한국말을 구사할 수 있지만 “고령으로 귀가 어두워 전화 인터뷰는 불가능하다.”며 양해를 구했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하게 한국사와 한국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이글이글했다. 



→한국사 전문인데 지도학에 관심을 두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저는 사실 평생에 걸쳐 한국사를 연구해왔고 한국의 지도학은 역사의 한 부분으로 공부했을 뿐입니다. 그러던 차에 1990년 위스콘신대 지리학부로부터 한국의 지도학에 대한 글을 청탁받았습니다. 바로 ‘세계 지도학 통사’(The History of Cartography)의 동아시아, 동남아시아편에 해당되는 원고였죠. 애초 60쪽 정도로 예상했으나 정리하다 보니 300쪽에 가까워졌습니다. ‘세계 지도학 통사’ 편집위 또한 한국 고지도의 중요성을 흔쾌히 인정했습니다.

→‘세계 지도학 통사’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신다면.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세 권을 펴낸, 전 세계와 고금을 아우르는 세계 지도학의 종합연구서 시리즈입니다. ‘한국 고지도의 역사’는 제2권의 아시아 동남아시아편에 수록돼 있습니다. 모두 8권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앞으로 적어도 20년 더 걸려야 마칠 수 있는 현재진행형 작업이죠. 애초 위스콘신대에서 편집기획을 시작한 영국 출신 지리학자인 J B 할리 교수와 데이비드 우드워드 교수는 이미 돌아가셨고 새로운 편집기획위원을 선정해 계속하고 있습니다. 인공위성, 디지털 과학기술의 발달도 반영할 생각입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도서관이 이 책을 비치해 두고 있습니다.

→김정호 팬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지도학에 관심을 기울이기 전부터 고산자 김정호와 대동여지도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대동여지도가 중요한 연결 고리였군요. 그런데 왜 대동여지도의 팬이 되신 겁니까.

-한국 역사에 대해 잘 아는 세계의 학자들은 별로 없습니다. 설령 있다 해도 대동여지도와 같이 구체적인 성취에 대한 것은 잘 모르죠. 제가 ‘세계 지도학 통사’ 원고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地圖)-그는 이것을 ‘동아시아 최초의 진정한 세계지도’라고 일컬었다-에도 관심이 남다릅니다. 아시아편 표지 사진으로 ‘강리도’를 실은 이유이지요. 아마 콜럼버스가 1492년 이 지도를 갖고 있었다면 서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항해를 떠났을 겁니다. 세계사도 많이 바뀌었을 테고요. 



→한국의 옛 지도를 연구하면서 아쉬운 점이 있었는지.

-글을 쓰는 데만 2년 반이 걸렸습니다. 한국의 많은 저작은 물론 일본, 중국, 유럽 학자들의 이론도 충분히 검토하고 종합했어요. 그 과정에서 김정호나 대동여지도 외에도 한국 지도학에 많은 성취가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너무 대동여지도에만 관심을 쏟으며 다른 것에는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앞서서 노력한 이들, 예컨대 양성지(梁誠之·1415~1482), 정척(鄭陟), 정상기(鄭尙驥·1678~1752) 등에 대해 좀 더 주목했으면 합니다.

“지금도 날마다 한국 뉴스를 챙겨 본다.”는 레드야드 교수는 “김정호와 같은 천재를 둔 한국인 여러분에게 축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정겹게 말했다. 대동여지도 150주년 행사에 대해서도 축하의 말을 잊지 않았다. 국내판은 흑백 도판을 쓴 원서와 달리 컬러 도판으로 바꿨다. 번역을 맡은 장상훈 박사는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에서 학예연구관으로 일하고 있다.(박록삼기자) 

11. 06. 25.  

P.S. '06. 25'란 날짜를 적고 보니 한국전쟁에 관한 책도 언급해둔다. 러시아와 중국, 미국, 3개국의 학자가 쓴 <흔들리는 동맹: 스탈린과 마오쩌둥 그리고 한국전쟁>(일조각, 2011)이 번역돼 나왔기 때문이다. 원제는 'Uncertain Partners: Stalin, Mao, and the Korean War"(1993)이다.   

다소 오래된 책이긴 한데, 부제대로 소련과 중국, 스탈린과 마오의 '미덥잖은' 파트너관계를 조명한 책이다. 자세한 리뷰는 '6.25전쟁 관련저서'를 특집으로 다룬 <해외 한국학평론2>(일조각, 2001)에 수록된 이완범 교수의 서평을 참조할 수 있다. 개인적으론 김학준의 <한국전쟁>(박영사, 2010)에서 책에 대한 소개를 읽었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중국쪽 시각에서 본 한국전쟁 관련서도 몇 권 나와 있다. 하지만 스탈린과의 관계는 <흔들리는 동맹>이 가장 자세히 다룬 듯싶다. 책의 집필 자체를 러시아의 외교관이자 중국문제 전문가 세르게이 곤차로프가 주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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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11-06-25 17:12   좋아요 0 | URL
빗소리 들으며 로자님의 글을 읽으니 좋네요. 이제 산에서도 들에서도 잠시 로자님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로쟈 2011-06-26 12:23   좋아요 0 | URL
스마트폰을 쓰시나 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