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의 '문화와 세상' 칼럼을 옮겨놓는다. 오전에 아이템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강준만 교수가 지적한 '한국형 평등주의'에 대해 쓰게 됐다. 참고한 책은 <특별한 나라 대한민국>(인물과사상사, 2011)이며, 슬로터다이크의 말은 지젝의 <폭력이란 무엇인가>(난장이, 2011)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소셜네트워크 시대의 사생활과 사회윤리의 문제는, 직접 거명하진 않았지만 최근에 불거진 서태지, 이지아 커플의 이혼 파문 등을 염두에 두었다.

       

경향신문(11. 05. 10) [문화와 세상]평화를 위해 때론 무관심 필요

대한민국은 특별한 나라인가? 강준만 교수에 따르면 그렇다. “한국인은 한국을 잘 알까”란 질문을 던지면서 ‘새로운 한국학’을 제안하는 그의 책 제목이 <특별한 나라 대한민국>이니까. 지난 겨울에 나온 이 책에서 ‘영어의 문화정치학’이란 장을 흥미롭게 읽었는데, 강 교수는 한국 사회의 영어 광풍을 한국형 평등주의란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형 평등주의란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삶의 철학이다. 물론 “너도 하면 나도 하겠다”는 평등의식이 많은 부작용도 낳았지만 한편으론 한국 사회를 이만큼이라도 성장시킨 원동력이었다는 게 강 교수의 평가다. 한국인들에게 “나도 부자가 되어야 한다”거나 “내 새끼도 서울대 가야 한다”는 욕심만큼 강력한 성취동기도 드물었다. 

이 평등주의가 특별히 ‘한국적’인 것은 한국만의 사회역사적 배경을 갖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좁은 땅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밀집해 살아온 것이 한국인의 삶이었다. 그래서 사회문화적 동질성이 강한 ‘고밀집사회’로 분류된다. 게딱지처럼 붙어 살아왔다고 할 수 있을까.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약 400㎞이고 KTX로는 두 시간 반 거리다. 한국인들이 일반적으로 선망하는 나라, 미국은 어떤가. 동서로 약 4300㎞에 이르고 네 시간의 시차가 있을 정도로 광활해 동서횡단이 말 그대로 ‘대륙횡단’이 되는 나라다. 아무리 성조기를 흔들면서 닮아보려고 애를 써도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좁은 땅에 살다 보니 미국에 없는 것도 갖게 됐다. 이웃과의 강박적인 비교다. 다시 강준만 교수에 따르면 한국은 이 ‘이웃 효과’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나라다. ‘엄친아’나 ‘엄친딸’이란 말이 한국만큼 유행어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나라가 또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삶의 의미와 보람을 포함한 모든 일은 이웃과의 비교를 통해서 의미를 갖는다. 이렇듯 강한 타인지향적 인정 욕구가 ‘영어전쟁’에도 개입돼 있기에 단순히 ‘광풍’이라고 비판해봐야 먹히질 않는다는 게 강 교수의 지적이다. 애초에 영어전쟁의 목적이 영어를 잘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서열을 정하는 데 있기에, 혹 모두가 영어를 잘하게 된다면 이번엔 중국어 광풍이 불 나라가 한국이다.

이 이웃 효과의 또 다른 양상은 사생활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참견이다. 연예인뿐 아니라 대중매체에 노출된 일반인들까지도 ‘이웃’으로 간주돼 사생활이 까발려지고 품평의 대상이 된다. 이런 일에는 “우리가 남이가”란 태도도 한몫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한국형 평등주의가 사회 전체의 불평등에 대한 관심과는 자주 엇갈린다는 점이다. 사생활에 관한 고백과 폭로로 여론공간이 도배되는 일이 사회적 평등의 구현이라는 대의에 과연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바야흐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이고 이웃의 범위는 전 지구적으로 확장됐다. 하지만 거기에 걸맞은 사회윤리적 규범을 우리가 갖고 있는지는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독일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더 많은 의사소통은 무엇보다도 더 많은 갈등을 뜻한다”면서 세계화 시대에는 ‘서로를 이해하기’와 함께 ‘서로 비켜서기’란 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웃 간의 갈등과 마찰을 피하기 위해 물리적·정서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이 ‘서로 비켜서기’다. 그러한 거리두기 혹은 소외가 부정적인 결과만을 낳는 것은 아니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기본권이라면 우리에겐 자신만의 고독을 온전하게 향유할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 때론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 평화와 공존의 조건이다. 

11. 05. 09.   

P.S. 참고로, 일반적 평등주의가 '사회 전체의 비대칭'을 문제 삼는 데 비해서 '한국형 평등주의'는 '부자와 나의 비대칭'만 문제삼는다는 비판을 강준만은 <88만원 세대>의 공저자 박권일의 칼럼에서 인용하는데(238쪽), 해당 칼럼을 찾아서 옮겨놓는다.  

시사IN(08. 10. 07) 부자에게 유리한 한국형 평등주의   

세제개편안을 둘러싼 정부의 발언을 지켜보노라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화가 나서? 아니, 웃겨서. 압권은 뭐니 뭐니 해도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감세 효과의 53%가 중산층과 서민에게 돌아간다”라면서 밝힌 중산층의 기준이 “통계청 과표구간으로 연소득 8800만원 이하”란다. 통계청 과표구간상 연소득 8600만원만 해도 실제 연봉은 1억원이 넘어간다. 이 발언이 기사화된 직후 아니나 다를까 수많은 사람이 모멸감에 사로잡혔다. “내가 중산층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하류 인생이었다”라는 식이다. 여론은 부글부글 끓어올랐고 “부자를 중산층으로 둔갑시키는 ‘강부자’ 정권”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애초 중산층이라는 용어 자체가 매우 허술한 개념이기 때문에 혼란이 가중된 경향이 있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건 ‘강부자 정권’이라 불리는 이 정부가 하는 일마다 부자의 발목을 잡는다는 점이다. 즉, 부자가 부자를 궁지로 몰아간다. 대한민국 서민이 ‘중산층’이라는 말에 얼마나 민감한데, 거기에 대고 “소득 8800만원” 운운했으니 작정하고 벌집을 쑤신 꼴이 아닌가.

어느 사회이건 지배계급은 자기의 이익을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포장하기 마련이다. 그 ‘포장’이 얼마나 교묘하고 설득력 있는가가 바로 지배계급의 역량을 재는 지름길이다. 따라서 유능한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의 ‘급소’와 ‘성감대’가 어디인지 귀신같이 파악한다. 대영제국의 신화는 무력으로만 이루어진 게 결코 아니었다. 식민지에 관한 방대한 지식의 집적이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다. 이렇게 피지배계급에 대한 지식이야말로 지배계급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자기 이익을 관철할 수 있게 만드는 열쇠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그리고 한국의 부자를 보면 도무지 지배계급의 역량이란 걸 눈 씻고 봐도 발견할 수 없다. 지배계급이 이렇게 무식한데 어떻게 이들이 대한민국을 지배할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배당하는’ 사람들의 의식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대개 한국의 부자는 “평등주의 근성이 나라를 망친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나라 망친다는 건, 자기가 망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저건 ‘한국형 평등주의’가 얼마나 부자에게 유리한 이념인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자기 존재를 배반하는 피지배계급의 의식
일반적 의미에서 평등주의는 “너무 많이, 혹은 너무 적게 갖는 건 불공평하다”라는 것이다. 반면 한국형 평등주의는 “나도 부자가 되어야 한다”이다. 자매품으로 “내 새끼도 서울대 가야 한다”와 “나도 MBA 따야 한다” 등이 있다. 즉, 일반적 평등주의는 ‘사회 전체의 비대칭’을 문제 삼는 데 비해, 한국적 평등주의는 ‘부자와 나의 비대칭’만 문제 삼는다. 전자의 처지에 서면 필연으로 부자가 가진 것을 일정 부분 빼앗아올 수밖에 없다. 그래야 못 가진 자에게 분배할 테니까. 그러나 후자의 처지에 서면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없다. 부자들의 것을 빼앗는 것은 곧 자신의 숭고한 목적을 훼손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서점에서 ‘부자 되기’ 처세서가 불티나게 팔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리하여 한국형 평등주의는 부자가 되기 위해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한 사람을 수탈하는 상황을 야기하고, 부자에게는 어떤 위험도 초래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 구실을 한 게 바로 이것, 한국형 평등주의였다. 존재를 배반하는 피지배계급의 의식이 그렇게 지속적으로 지배계급의 무능을 상쇄시키는 한, 지배-피지배 관계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슬프고 기묘한 균형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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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10 0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雨香 2011-05-13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형 평등주의..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주제이군요.
(시사인 기사를 보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시사인 기사 퍼가겠습니다. 재펌이되겠네요.)

로쟈 2011-05-14 10:07   좋아요 0 | URL
일종의 '유사 평등주의'라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