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냐 공산주의냐

주말 북리뷰에서 새로운 관심도서가 눈에 띄지 않아서(리처드 슈스터만의 <몸의 의식>(북코리아, 2010) 같은 책을 나는 어제 손에 넣었다) 차라리 이번주 '장정일의 책속 이슈'를 스크랩해놓는다. 지젝의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를 다루고 있어서다. 나도 '사회주의냐 공산주의냐'란 서평을 쓴 적이 있지만, '책속 이슈' 곧 책의 핵심을 잘 짚어주고 있다.  

 

한겨레(10. 11. 05) '공갈 자본주의’ 대신 공산주의의 새출발을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은 2008년 금융위기의 해결책을 놓고 대립했다. 금융 파국을 방지하기 위해 연방준비은행이 7000억달러나 되는 구제금융을 민간 금융사에 지원하려 하자, 공화당 의원들이 구제금융은 금융사회주의이며 비미국적이라고 반대하고 나섰다. 하지만 오바마와 민주당은 초당적 협력을 강조하며, 끝내 월스트리트에 세금을 쏟아부었다.

슬라보예 지젝은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창비, 2010)에서 그때 미국에서 벌어진 사회주의적 조처의 목적은 “빈자가 아닌 부자를, 돈을 빌리는 자들이 아니라 빌려주는 자들을 돕는 것”이었다면서, 자본가들이 그토록 질색을 하는 ‘사회화’가 어떻게 자본주의 시스템을 구원하는 일에 복무할 때는 아무 거리낌없이 용인되고, 또 어떻게 가난한 자들을 위한 사회주의가 아니라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도 가능한지를 명료히 분석한다.

공화당 의원들이 구제금융을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맹비난했던 배면에는, 자본주의 체제에는 근본적인 결함이 없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심리전적인 목적이 있다. 즉 그들은 구제금융을 극렬히 반대함으로써 금융위기는 체제의 근본적인 결함 때문이 아니라 그저 지나치게 느슨한 법적 규제와 거대 금융기관의 타락이었을 뿐이라는, 흠결 없는 자본주의 체제의 신화를 효과적으로 선전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는 이런 서사를 통해 점차 자연이 되어 간다.

반면 구제금융에 동조한 좌파들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메인스트리트(중산층)의 복지는 번영하는 월스트리트(금융자산)에 의존한다”는 사실에 속수무책이었고, 월스트리트를 걷어차면 실제로 타격을 입을 사람들이 평범한 노동자라는 것을 분명히 안다. 이런 사실이 가르쳐 주는 것은 자본주의를 살리기 위해 언제라도 사회주의 구원 투수를 투입할 수 있는 우파는 물론이고, 좌파마저 그런 자본주의의 공갈을 자연스러운 질서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압도적 자연화’가 이루어진 속에서는 투기로 무일푼이 된 은행을 국고로 지원하는 것을 당연시하면서, 수천 명의 노동자가 쫓겨나는 공장을 국영화하는 건 비합리적인 것으로 믿게 된다. 이렇듯 자본주의는 공황이 발생할 때마다 자기 이데올로기의 기본적 전제를 반성하기보다 금융 감독과 같은 ‘기본으로 돌아가기’로 강화되고, 매번의 공황을 통해 중산층은 자본주의 질서에 더욱 길들여진다. 이게 사실이라면, 시장에서 참패하고 악마화(강제수용소화)된 국가 악몽으로 막을 내린 공산주의는 왜 매번 기본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숱한 진보적 인사들은 이 시대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결인 양 하지만, 현실은 사회주의 대 공산주의의 대결이며, 진정한 진보인사는 공산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지젝은 말한다. 오래전에 사회주의 정책의 기초를 완료한 서구 유럽은 물론이고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공공연히 사회주의 정책을 쓸 수 있는 미국의 예, 그리고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아시아적 온정주의’로 위장된 중국이 보여주듯이 전세계는 이미 사회주의화되었다. 그러나 기뻐할 이유가 없는 것은 그 사회주의가 자본을 위한 사회주의이며, 자본주의는 가중되는 심각한 체제 모순 때문에 그만큼 강력한 국가의 권위(법·경찰)와 민중을 달랠 사회주의 복지정책마저 수용해 나간다.

세계는 영구혁명의 혼이 제거된 사회주의와 재장전된 공산주의의 싸움이라고 단정하는 이 책은, 공황과 재출발 사이를 왕복달리기 하는 자본주의의 희극적인 반복을 보면서 공산주의의 새 출발을 촉구한다. 그게 내가 읽은 이 책의 핵심이다. 지젝이라는 성체(聖體)를 뜯어 먹는 방법은 제각기이겠지만, 지젝의 거시기를 뽑아 내시로 만들고 비역까지 하는 일은 아주 손쉽다. 그의 급진주의적 정치이론은 모르쇠 하면서, 정신분석이나 문화이론의 가두리에 그를 감금하는 것이다.(장정일_소설가) 

10. 11. 06. 

 

P.S. '공갈 자본주의'의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한 독자라면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살림, 2008)과 홍기빈의 <자본주의>(책세상, 2010),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부키, 2010)를 참고해볼 수 있겠다. 장하준 교수의 책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유시장'을 문제(불행)의 원인으로 지목한다는 점에서 지젝과는 관점이 다르지만, 신자유주의 비판서로서 여전히 계몽적 가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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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1-06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 작가 고어 비달이 미국 경제 체제를
"가난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자유 기업,
부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주의" 라고 했다는데,

가난한 자들을 위한 사회주의가 아니라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라는 것도 있군요!


로쟈 2010-11-07 20:47   좋아요 0 | URL
'그들만의 사회주의'(자기들끼리 해먹기)라서 문제인 것이죠...

2010-11-06 1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7 2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