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과 다락방의 미친 여자

이번주 출간도서 가운데 분량으로 가장 압도적인 책은 재닛 브라운의 <찰스 다윈 평전>(김영사, 2010)이다. 탄생 200주년이었던 작년에 이미 예고된 책인데, 출간이 약간 늦어졌다(하긴 <종의 기원> 새 번역본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아무튼 에이드리언 데스먼드 등이 쓴 <다윈 평전>(뿌리와이파리, 2009)과 다윈에 관한 전기 중에서 단연 독보적이라 한다(사실 2000쪽이 넘는 분량 자체가 독자를 압도하고 남는다). 지난주에 나온 최종덕 교수의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휴머니스트, 2010)도 기획상으론 작년에 나와야 했을 것 같은데, 좀 늦춰진 책이다. 다윈 탄생 200주년의 '후폭풍'으로 봐야겠다. 두 책과 관련한 기사들을 챙겨놓는다.   

서울신문(10. 09. 04) 다윈과 한국사회… 대화로 풀다

찰스 다윈(1809~1882)이 1859년 ‘종의 기원’을 내놓았을 때 세상은 들끓었다. 신이 모든 것을 창조했다는 종교적 관념의 뿌리를 뒤흔든 탓이다. 당시 우스터 주교의 부인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며, 사실이라면 알려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고 했다는 말은 다윈의 진화론이 만들어낸 충격파가 얼마나 컸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진화론이 낳은 파장과 그늘은 오히려 그 이후에 더욱 심각했다.

‘마르크스가 자신의 대표적 저서 자본론 1권을 다윈에게 헌정했다.’는 헛소문이 돌 정도로 사회주의적 유물론자들에게도 충격을 줬다. 다윈의 진화론이 사회혁명이론의 정당성을 자연과학적으로 뒷받침한다고 본 것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장례식장에서 “다윈이 자연의 발전 법칙을 발견한 것처럼 마르크스가 인간사회의 발전 법칙을 발견했다.”고 말한 연설은 유물론자들이 다윈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설명해준다.

또 1940년대 구 소련에서는 다윈의 이론을 신성불가침으로 받아들인 생물학자 리셴코가 당시 서구에서 입증된 ‘개체발생 이후의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멘델학설을 부정하며 이에 반대하는 학자들을 반동으로 몰아 숙청했을 정도로 정치 영역으로까지 깊숙이 침투했다. 그뿐만 아니다. 다윈의 진화론 중 핵심인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이론은 허버트 스펜서에 의해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으로 설명되더니, 나중에는 그의 저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약육강식’으로 슬그머니 표현을 바꿔서 자유주의 자본주의자들이 열광하는 이론으로 변모했다.

약소 국가와 민족을 침략, 정복해 식민지를 넓혀가고, 생산수단을 가진 자들이 못가진 자들을 지배하는 약육강식형 경쟁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근거로 활용됐다. 이러한 것의 이론적 토대로서 ‘사회진화론’을 주창한 영국 생물학자 허버트 스펜서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가는 도시마다 역 앞에 군중이 모여 그를 환영한 것 또한 자본주의가 다윈을 받아들인 태도의 단면이다.

자본주의자, 사회주의자 양쪽 모두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다윈을 해석하고 적용한 것이다. 그만큼 다윈이 남긴 학문적 성과는 과학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정치, 경제, 종교, 철학 등 여러 분야에서 폭넓게 해석할 수 있는 뿌리가 된 셈이다. 또 그만큼 불완전한 상태로 열려 있고 지금까지도 지속되는 학문의 한 핵심축이기도 하다. 이는 다윈이 남겨준 짙은 그늘이 지구를 절반 가까이 돌아 동양, 한국사회에서도 의미있게 논의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최종덕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는 200년 전 태어난 다윈이 150년 전에 쓴 저작이 21세기 초반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에 대해 여러 분야에 걸쳐 학제 간 연구-이른바 통섭(統攝)적 연구-를 진행하는 이들이 모여 머리 맞대고 논의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물리학과 철학을 전공한 최종덕 상지대 교수가 대화의 한 편을 맡고, 학문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사학자 임지현 한양대 교수, 시인이면서 생명윤리에 주목하고 있는 전방욱 강릉원주대 생물학과 교수, 의철학을 전공한 인문의학자 강신익 인제대 교수, 노장철학 전공자이며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론을 연구하는 김시천 인제대 연구교수 등이 번갈아 또다른 한 편에 서서 대화를 나눈다.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 과학이 신화의 이미지로 포장되는 것의 문제점,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뿌리가 된 다윈, 환경과 생태의 위기 대처로서 진화론 공부, 진화론과 동양적 사유의 상관성 등 폭넓고 발걸음 빠르게 문제의식들을 펼쳐낸다.

그들이 진리에 다가가는 방식은 ‘대화’다. 2000년 전 동양에서 공자가 제자들과 정치·경제·도덕·교육 등 숱한 의제를 다뤘던 방식이었고, 비슷한 시기 서양에서 소크라테스가 제자 플라톤, 소피스트들과 다투고 논쟁하며 진리를 도출해 냈던 방식이었다.

특히 김시천 연구교수와 최종덕 교수의 대화를 통해 진화론적 사유구조는 당연히 생물학적 진화론에서 차용한 것이지만 과학적 진화론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세계 속에서 잉태한 총체적 사유구조를 뜻함을 보여준다. 생명의 역사와 문명의 시간을 사유하는, 서로의 궤적을 확인하는 과정은 흥미롭다. 새로운 범주의 고전 해석을 바라보는 것도 이목을 끈다.

이와 함께 ‘찰스 다윈 평전’(전2권, 재닛 브라운 지음, 임종기 옮김, 김영사 펴냄)은 태어나서 비글호 항해를 거친 시절인 1858년까지의 삶과 ‘종의 기원’을 펴낸 1859년부터 말년까지로 나눠 정리했다. 두 책 모두 ‘종의 기원’ 텍스트 자체는 없지만 개념의 정립과 함께 얽혀 있는 뒷얘기, 주변부 사례 등 풍성한 맥락의 설명이 돋보인다. 이를 통해 다윈에 대한 이해를 넘어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를 폭넓게 해주며 ‘종의 기원’ 원저를 읽고픈 충동을 느끼게 한다.(박록삼기자)   

 

한국일보(10. 09. 04) 다윈 편지 1만4000통 면밀 분석 "진화론은 개인 아닌 사회적 작품"

찰스 다윈(1809~1882)이 활동했던 19세기 영국은 진화와 진보의 시대였다. 인간의 정신과 사회구조의 본질이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이 뿌리내리기 시작했고, 사상가들은 신의 권능보다는 인간 능력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표했다. 경제 분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생겼다. 급속한 산업화로 시장이 확대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기업가들의 발빠른 상황 적응이 부각됐다. 구체적으로 '진화'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이를 두고 '사회의 자연법칙'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환경에 잘 적응한 개체가 생존해 그 변이를 후대로 전달한다는 다윈의 진화론은 지금까지 한 위대한 자연과학자의 인내와 통찰의 결과물로 평가돼왔다. 하버드대 과학사 교수로 다윈 전문가인 재닛 브라운(60)은 그러나 <찰스 다윈 평전>에서 다윈의 업적을 다윈 개인이 아닌 정치, 경제, 사회, 과학, 종교 각 분야에서 거대한 변화가 진행되던 빅토리아 시대의 산물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종의 기원>이 출간됐을 때 공공연히 진화론 사상을 옹호한 사람은 정작 다윈이 아니라 그의 과학계 친구들이었다.

저자가 다윈의 위대성을 수많은 정보를 관리하고 중개하는 능력에서 찾는 점도 특색있다. 그는 다윈의 인생을 "편지로 굴러갔다"고 요약한다. 현재 남아있는 다윈의 편지는 1만4,000통이 넘는데 저자는 이를 면밀히 분석, 진화론이라는 다윈의 이론이 사회적 작품이자 집합적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다윈이 자신의 이론을 완성하기 위해 편지를 교환했던 인물은 비글호 항해를 함께했던 동료는 물론 사촌, 숙모, 정원사, 대학교수, 생리학자, 말 사육자, 정원사, 사냥개 사육자 등을 망라한다. 다윈은 다운이라는 농촌마을에서 살았지만 그의 집은 은거지가 아니라 세상과 과학적 교류를 맺는 거대한 '축'이었다는 것이다.

두 권의 책이 각각 1,000쪽 내외의 방대한 분량인데, 양에 걸맞는 내용의 충실함 때문에 <찰스 다윈 평전>은 다윈의 생애와 진화론을 조명한 수많은 책들 가운데 마스터피스로 꼽힐 만하다. 과학자로서뿐 아니라 재테크에도 능했던 자산가로서 다윈의 면모 등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그의 이면을 엿볼 수 있는 점도 흥미롭다.(이왕구기자) 

10. 09.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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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4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04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비스 2010-09-05 06:47   좋아요 0 | URL
원서는 1,2권 각각 622, 600쪽인데 번역본은 어떻게 편집을 한 것인지 1권이 1140쪽,2권이 984쪽이네요. 게다가 1권은 거의 2배로 쪽수가 늘어났구요. 혹시,쪽수와 책값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 수도.

로쟈 2010-09-05 08:12   좋아요 0 | URL
한국어판을 보니 표준적인 편집입니다. 원서가 빽빽한 게 아닌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