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신간 가운데 무슨 책인가 궁금했던 책의 하나는 조지 린치의 <제국의 통로>(글항아리, 2009)이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열강의 대각축'이 부제이니 내용을 어림할 수 있지만, 그래도 실 내용이 궁금했다. 막상 서점에서 봤을 때는 화보가 많이 들어가 있어서 '화보집'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고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못했다. 가장 자세하게 검토해주고 있는 기사가 있기에 스크랩해놓는다. 물론 요즘은 출판사의 책소개 글이 어지간한 리뷰기사보다 자세하긴 하지만. 아래는 압축적인 소개다.  

"철도는 제국의 길이다. 오늘은 물론 내일도 그럴 것이다."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 이 책은 '철도'로써 열강들의 속셈을 파헤치고, 철도가 놓이는 곳에서 식민화된 주민의 실태를 드러낸다. 저자는 일본에서 출발해 대한제국, 만주, 중국, 몽골, 시베리아, 모스크바를 거치며 섬세한 관찰력으로 관통해나간다. 1903년에 출간된 이 책은 욕망에 사로잡힌 제국의 면모와 소수민족이 희생양이 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그린다.

국제신문(09. 12. 05) 열강의 통치수단 철도를 논하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동양과 서양에서 제국주의 침략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일어났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 같은 사실을 조명하는 책은 수없이 쏟아졌다. 그런데 제국의 통로는 그동안 접했던 제국주의 침략사와 분명한 변별력을 갖고 있다. 바로 '철도'를 통해 열강들의 속셈을 파헤치고 있다. 철도가 놓이는 곳에서 식민화된 주민의 실태를 드러내고, 20세기에 철도가 강국들의 '말없는' 통치 수단이 되어가는 과정을 탐색하고 있다. 철도가 역사적으로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철도는 제국의 길이다. 오늘은 물론 내일도 그럴 것이다." 영국 기자이자 기행문학가인 조지 린치는 철도를 그렇게 요약했다. 그는 1900년대에 접어들자마자 서양인으로서 최초로 시베리아 횡단철도 여행기를 남겼다. 일본에서 출발해 대한제국, 만주, 중국, 몽골, 시베리아, 모스크바를 거치며 섬세하고도 뛰어난 관찰력으로 당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1903년 출간됐지만 국내 학계에서만 알려진 이 책이 너무 늦게 일반에 공개된 점도 아쉽다. 번역자는 "부산에서 열차를 타고 시베리아철도를 거쳐 파리에 내릴 날을 그려보는 공상마저 없었다면 이 책의 번역을 끝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베리아 철도의 황해 종착역 대련의 모습.
 
어쨌든 욕망에 사로잡힌 제국들의 면모를 철도 하나로 꿰뚫어보는 시각은 독창적이다. 근대에 접어들어 약육강식의 식민 논리에 사로잡힌 제국주의 열강은 병사들을 내보내 전쟁을 벌이지는 않았다. 대신 약소국에 철도부터 부설한 것이다. '철도는 곧 침략과 수탈의 상징이며, 거기에는 무역상, 기술자, 상인들도 끼어들어 종국엔 철도가 좀더 개화된 정복의 방법으로 자리잡아간다'. 역사적으로 철도 부설 예정지는 서구 국가들에 헐값으로 팔려나갔고, 철도 수비를 빌미로 그들은 군대를 주둔시키며 철도 주변을 배타적 치외법권 지역으로 만들어 약소국의 주권을 침해했다.

그리고 러시아와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기 위해 펼치는 접전의 실상을 드러낸 부분은 흥미롭다. "러시아인가, 일본인가?" 저자는 조선을 차지할 나라가 어딘지 질문을 던지면서, 러일전쟁을 예고하기도 했다. 당시 '조선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는 열강들의 최대 관심사가 아니었던가. 저자는 이미 일본이 철도라는 '현대적 정복술'을 통해 한반도 종단철도를 부설하면서 인근 요지도 확보해 일본인 거류지로 만드는 등 침략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주시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은둔의 왕국'인 조선은 그 낌새를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다. 이 책은 당시 조선인의 생활상은 물론 거리와 전차, 지저분한 골목길, 수두에 걸린 왕족을 치료하기 위해 무당과 점쟁이들을 불러들여 굿을 하는 미신적 행태, 조선 관리들의 횡령과 부패, 근대화의 빛깔을 띠어가는 서울의 모습 등을 펼쳐보인다. 본격적인 식민 침탈에 앞서 고리대와 짝퉁 제작에 몰두한 '쩨쩨한' 거류지 일본인들의 면모도 낱낱이 폭로하고 있다. 불과 100여 년 전의 우리 땅의 모습에 마음이 아리다.

러시아 공산혁명이 발발하기 직전의 시베리아 대이주의 물결과 의화단운동 이후 중국, 일본, 그리고 만주와 몽골에서 숨가쁘게 펼쳐지는 근대화운동의 물결까지 다루고 있어 재미있게 읽힌다. 특별히 러시아의 만주 점령 정책과 과정, 그에 대한 열강의 시각 등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여기서 러시아 군대 내에 중국인 병사가 많이 고용됐다는 점 등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도 접할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서구인의 한계인가. 저자는 '일본은 문명, 조선과 중국은 미개'라는 서구식 오리엔탈리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 극동에서 점점 위축되어가는 영국의 영향력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쏟아내기도 한다. 그래도 100년 전 근대화의 문 앞에 선 극동세계의 가장 치열했던 모습들을 생생하게 증언해주는 자료로 가치가 있다. 당대의 모습을 담은 현장 사진도 눈길이 간다.(강춘진 기자)  

09. 1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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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12-06 13:32   좋아요 0 | URL
부산에서 모스크바까지라...정말 낭만적인 기차 여행 같지만,의외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무척 지루하다고 하네요.아시는 분이 하바로부스크에서 모스크바까지 대략 일주일간을 기차여해을 했는데 가도 가도 평원이라 무척 지루했다고 하더군요.오리엔트 특급같은 열차가 아니라면 무척 지루할테고,시간도 만만치 않아 차라리 비행기가 더 나을듯 싶다고 하는군요

로쟈 2009-12-06 14:04   좋아요 0 | URL
해본 사람들은 대부분 학을 뗀다네요.^^; 낭만을 찾는 여행이라기보다는 인내를 시험하는 여행일 듯싶고, 그런 면에서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젊어서는요...

카스피 2009-12-07 18:19   좋아요 0 | URL
재미있는거는 옷갈아 입기도 귀찮아서 거의 내복 바람으로 돌아다녔다고 하더군요.

노이에자이트 2009-12-06 15:01   좋아요 0 | URL
19세기 말 20세기 초 동아시아를 둘러싼 열강의 각축은 제 관심분야인데 요 몇년 동안 당시의 외교관이나 학자들이 쓴 책들이 계속 번역되어 나오는군요.좋은 현상입니다.이 분야에서 로쟈 님이 추천할 만한 책 한권은 무엇인가요?

로쟈 2009-12-06 15:02   좋아요 0 | URL
추천은 제가 받아야지요.^^

노이에자이트 2009-12-06 21:40   좋아요 0 | URL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