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한겨레신문에 전면광고로 나가는 휴머니스트 북리뷰 3호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김용석의 <서사철학>(휴머니스트, 2009)에 대한 소개를 청탁받고 쓴 것이다.  

휴머니스트 북리뷰(09. 11. 02) 스토리텔링, 그 비밀의 문을 열다

‘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을 아우르면서 유례없는 ‘깊이와 넓이’의 인문학적 사색을 펼쳐온 철학자 김용석의 새로운 책이 출간됐다. 이번엔 아주 묵직하다. 제목부터가 한푼의 에누리도 없다. 서사철학! 일단 육중한 책의 무게가 월척의 손맛을 느끼게 한다. 마치 거대한 향유고래가 수면으로 솟아오르는 걸 보는 기분이랄까. 이건 ‘책’이라기보다는 그냥 ‘강적’이다!   

‘서사’에다 ‘철학’이 붙었다. 무엇을 다루는 것인가? 사실 이야기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틈틈이 보아온 것이어서, 제목을 통해 나는 ‘이야기에 대한 본격적인 철학적 탐구’ 정도를 떠올렸다. 그러고는 폴 리쾨르의 <시간과 이야기>나 노에 게이치의 <이야기의 철학>을 얼핏 상기했다. 하지만, 저자의 스케일은 이 두 사람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가 다루는 일곱 가지 이야기 장르 가운데 ‘만화’와 ‘영화’는 물론 ‘진화’까지 포함된 걸 보고서 나는 저자의 상대가 그 자신밖에 없음을 알아차렸다.  

저자 또한 그런 자부심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철학자들이 지혜를 사랑하는 ‘필로소피아’의 정신으로 찾고자 한 세상의 이치가 크게 ‘원리’와 ‘윤리’, ‘진리’라고 말하면서 이제 네 번째 탐구의 대상으로 ‘설리(說理)’를 내세울 때 그는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철학의 제4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요컨대 그는 ‘이야기의 철학’을 주창하며, ‘설리의 철학자’를 자처한다.   

물론 계보가 없는 건 아니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이야기 철학’ 또는 ‘서사철학’의 원조로 꼽는다. 하지만 알다시피 <시학>은 ‘비극’이라는 한 가지 장르만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즉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것은 서사철학의 가능성이지 그 전모가 아니다. 그 서사철학이 거대한 윤곽을 드러내면서 이름에 걸맞은 규모를 자랑하게 된 것은 전통적인 서사 장르뿐만 아니라 대화와 혼화, 만화까지 포괄하여 서사철학의 집대성을 시도한 <서사철학>에 와서이다. “이야기에 대한 철학적 관심과 연구를 총괄하여 서사철학이라고 부른다”는 정의 그대로다. 과연 저자가 그어놓은 서사철학의 경계 바깥이 가능할지 궁금할 정도로 저자는 다양한 장르와 범위에 걸친 이야기들을 다룬다.  

‘서사’ 또는 ‘이야기’라고 했지만 요즘 뜨는 말로는 ‘스토리텔링’이다.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는 옛말이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옛말이다. 요즘 이야기는 상종가다. 어디서나 주문하고 이야기를 보챈다. 사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건 이야기를 말하며 이야기와 만난다. 리쾨르의 말을 빌면, 우리의 정체성 자체가 이야기로 구성되는 것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서사 장르에 한정하더라도 우리의 주변은 온갖 신화적 이야기와 중세적 판타지와 마술적 이야기들로 넘쳐난다. 우리의 주인공은 해리 포터이고, 우리의 연대기는 나니아 연대기이며, 우리의 성공담은 언제나 모든 난관들을 극복해 나가는 모험 서사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우리는 이야기를 지어내면서 누군가가 만들어내는 이야기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세상 자체가 이야기의 중층 구조다. <서사철학>은 이러한 이야기들의 세계, 이야기들의 우주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고, 무엇을 해석할 수 있는지 시범적으로 보여준다. 한마디로 장관이다.   

비록 아직 불안정하며 불완전한 ‘시론(試論)’일 뿐이라고 저자는 말하지만 지나친 겸손이자 과소평가다. 자신의 텍스트 읽기를 여러 스토리텔링이 품고 있는 철학 콘텐츠를 발굴하는 작업 정도로 정의하고 있는 것도 그렇다. 허구를 필요로 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곧 ‘서사적 인간’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사철학>은 서사철학을 넘어선다. 그것은 ‘서사적 인간학’을 창출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곱 가지 특색을 지닌 장르에 대한 연구로 구성된 <서사철학>이 ‘이야기 탐구의 아이리스’가 되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기대는 이미 이루어졌다. 단, 내가 염두에 둔 ‘아이리스’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무지개의 여신 아이리스가 아니라 요즘 뜨고 있는 블록버스터급 드라마 <아이리스>다. <서사철학>은 오랜만에 등장한 인문서의 블록버스터다.  



09. 11. 02.   

P.S. <서사철학>에서 이채로운 것 중의 하나는 저자가 '서사'를 'tale'의 번역어로 쓰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서사철학'의 영어표현은 'Philosophy of Tale'이다. 나는 '서사'가 서사학의 대상인 '내러티브'를 염두에 두었을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story'도 'narrative'도 아닌 'tale'이었던 것. 이게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개인적으로 더 따져보려고 한다. 마침 서사학의 원조라 할 블라디미르 프로프의 <민담의 형태론>(박문사, 2009)이 새로 번역돼 나왔다. 이번이 세번째이지 싶다. 그러고 보니 <서사철학>에서 다루고 있는 아이리스(무지개), 곧 신화, 대화, 진화, 동화, 혼화, 만화, 영화라는 일곱 장르에 하나가 더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신화만큼이나 오래된 이야기인 민담, 곧 민화(民話)가 그것이다. 물론 대개의 민화는 동화적 요소를 갖고 있기에 그렇게 포괄될 수도 있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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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krad 2009-11-02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사=내러티브라고 고민없이 생각해왔는데 tale이라니 좀 놀랍네요.
tale이라는 말에서는 이야기의 창조성이랄까 왠지 원초적인 느낌이 듭니다.^^

로쟈 2009-11-03 00:31   좋아요 0 | URL
제 느낌에는 narrative가 tale보다 더 포괄적인 듯싶어요...

놀이네트 2009-11-03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문사의 새 번역본은 두께가 두 배 값은 세 배가 되었네요. 다른 논문들을 좀 넣었을까요?
쁘로쁘 광팬이라...

로쟈 2009-11-03 20:26   좋아요 0 | URL
그런신가요? 먼저 보시고 제게도 알려주시길.^^

펠릭스 2009-11-03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차안에서 '서사철학' 서평을 읽으며 생각했죠.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시민에게서 이성주의(계몽)
에 대한 희망을 갖지 못한게 아닌가 싶어요.

로쟈 2009-11-03 20:27   좋아요 0 | URL
한겨레의 서평을 읽으셨나 보네요.^^

당근주스 2009-12-21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례사 서평처럼 보입니다. 웬지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청탁받고 쓰신 서평이라서 그런지 광고하시는 것 같습니다.

로쟈 2009-12-22 00:10   좋아요 0 | URL
전면광고로 나가는 서평이라고 미리 적었습니다. 그래도 KBS의 책읽는밤에서 '올해의 책'의 하나로 선정했구요, 책은 드물게 볼 수 있는 노작입니다.

당근주스 2009-12-22 12:53   좋아요 0 | URL
광고로 나가는 서평이니 주례사 서평일 가능성이 많아 보였습니다.또
'올해의 책' 선정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선정한 사람도 신뢰가
가지 않고요. 제 생각이 그렇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