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교양과학서를 언급할 일이 없어 적조하던 차에 모처럼 고대하던 책이 출간됐다. 저명한 인지과학자이자 철학자인 대니얼 데닛의 <자유는 진화한다>(동녘사이언스, 2009). 제목이 유혹적이어서 몇년 전에 하드카바 원서까지 구해놓고 번역되기만을 기다리던 책이다(이제 내가 더 기대하는 책 두 권은 <다윈의 위험한 생각>과 <마법 깨뜨리기>이다). 책의 부제는 '자유의지의 진화를 통해 본 인간 의식의 비밀'. 책의 '비밀'은 이제 읽어봐야겠지만, 고생물학자 리처드 포티의 추천사는 이렇다. "독창적인 철학 사상, 생생하고도 경이로운 문장,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료한 논증이 어우러진 이 책은 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자유의지와 결정론에 관한 새로운 무엇인가를 이야기한다." 뭔가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리뷰기사를 일단 챙겨놓는다.

한겨레 (09.10. 17) 다윈주의자 ‘자유의지’를 품다

내가 마음을 먹고 내 손가락을 한 번 까닥거렸다고 하자. “(그) 결정은 자발적일까? 아니면 우리에게 그저 일어나는 것일까?” 1980년대 벤저민 리벳이라는 신경과학자가 오래된 ‘자유의지 논쟁’에 다시 불을 지피는 실험 결과를 제시했다.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한테 의지에 따라 손가락을 까닥거리게 하고 그 순간에 그 사람들의 뇌에 일어나는 전기신호 반응을 관찰했더니, 까닥거림 결정을 내렸다고 의식하기 0.3~0.5초 전에 이미 뇌는 그 움직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후에 여러 다른 실험들에서 뇌의 이런 ‘사전 준비’는 결정의 순간보다 거의 1초가량 또는 그 이상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실험들은 우리가 믿는 자유의지라는 게 뭔지, 그것은 단지 뇌에서 그저 일어나는 무엇일 뿐 실체는 없는 게 아닌지 하는 심각한 논쟁을 일으켜왔다.  



인지과학·철학계의 석학으로 꼽히는 대니얼 데닛(67·미국 터프츠대학) 교수의 저서 <자유는 진화한다>는 이런 논쟁의 한복판에 서서, 난해한 물음에 진지하게 응하는 철학과 과학 탐구의 산물이다. 책의 목적은 지은이가 말했듯이, “비물질적인 영혼이라는 개념은 자연과학의 발전 덕택에 신빙성을 잃은 상태”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없다고 말하는) 그들의 생각이 왜 잘못되었는지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는 강한 결정론과 자유지상주의를 모두 비판한다. 물리 세계는 인과관계에 따라 결과가 정해져 있다는 강한 결정론의 논리 모형들을 꼼꼼히 따져보며 균열을 찾아내고, 또한 양자물리학의 비결정론에 기대는 자유지상주의의 순진함을 드러내고, 또한 자연과학의 성과를 두루 흡수하는 식으로, 복잡한 논증과 사색의 길을 걷고 나서 그가 내놓은 결론은 한마디로 ‘과학과 철학의 화해’이며, ‘결정론과 자유지상주의의 화해’다. 화해는 한쪽의 극적 승리가 아니라 싱겁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화해는 허약한 절충이 아니라 강건한 제3의 길이다. 

강한 결정론은 물리 세계에서 원인과 결과는 모두 분석되고 예측할 수 있으며 자유의지는 착각이거나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데닛이 파고든 결정론의 허점은 결정론에 늘 따라붙는 ‘불가피성’이 지나친 주장이라는 것이다. 물리 세계에 정해진 시스템이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그런 결정론적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하느냐는 또다른 문제이며, 설계자에 따라 어떤 결과는 ‘피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앎’과 ‘피할 수 있음’은 자유에서 중요한 개념이 된다. 

비결정론의 자유를 강조하는 자유지상주의에 대해선, 양자물리학의 비결정론이 어떻게 이 경이로운 자유의지를 낳는지 명확하고 일관된 그림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데닛은 비판한다. 결정론을 거부할 뿐 비결정론을 증명하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데닛은 자연과학의 유물론과 결정론을 부정하지 않지만, 인간의 의식과 자유의지를 물질의 결정물만으로 바라보지도 않는다. 이런 점에서 그가 전하는 제3의 논증은 상당히 섬세하게 읽혀야 한다. 그렇더라도 논증의 원동력을 찾아야 한다면 그것은 ‘다윈 진화론’이다. 책의 제목이 보여주듯이,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며 지상에서 일어난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얻어진 산물이라는 것이다.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얘기했던 문화 유전자 ‘밈’(meme)과 생물 유전자 ‘진’(gene)의 상호작용에 의해 획득됐으며, 자연 환경에 대응해 최선의 선택을 할 줄 알았던 ‘선택 기계’ 인간만의 능력인 것이다. 신경 반응 실험만으로 자유의지의 존재에 급진적 의문을 제기했던 벤저민 리벳 유의 실험들도 데닛의 강한 비판 대상이 된다.

번역서에 실린 해제에서 장대익 동덕여대 교수는 “많은 철학자, 인문주의자, 종교 사상가들은 일종의 자유론자들이라고 볼 수 있고, 강성 결정론자의 대부분은 과학자들”이라며, “(데닛은) 결정론과 운명론이 동의어가 아니고 결정론과 자유가 모순 관계가 아니며 자유의지는 환상이 아니라 실재라고 주장”하는 ‘약한 결정론’ 쪽에 서 있다고 소개했다. 철학자로서 데닛은 인지과학, 신경과학, 진화생물학의 새로운 발견이 심리와 자유의지, 윤리를 성찰하는 철학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오철우 기자)  

09. 10. 17. 

 

P.S. 데닛의 책과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은 물론 부케티츠의 <자유의지, 그 환상의 진화>(열음사, 2009)이다. 제목상으론 얼핏 강한 결정론을 떠올리게 하지만, 부케티츠 역시 '다윈 진화론'의 관점에서 자유의지를 이해한다. "이 책의 기본 테제는 자유의지란 환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환상은 전적으로 유용하다. 환상은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으며, 그것이 생존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5쪽)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오래전 방한 강연을 갖기도 했던 데닛에 대한 소개는 <다니얼 데넷>(몸과마음, 2002)를 참조할 수 있고, <마음의 진화>(동아사이언스북스, 2006)는 마땅한 입문서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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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간의식의 철학자 다니엘 데넷
    from 꿈.노.리 2009-10-17 13:20 
    [다윈은 미래다] 3부 4 인간의식의 철학자 다니엘 데넷 "사람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뇌와 기계적 하드웨어 결합, 인공지능의 형태로 발전 가속 뇌 신경세포간 경쟁서 이긴 세포가 영향력 행사하는 것이 의식작용 철학은 질문이 뭔지 모를때 역할, 생명체 결실의 통합이 진화론
 
 
starla 2009-10-17 13:18   좋아요 0 | URL
저도 <마법 깨뜨리기>가 정말 궁금한데요,
그래도 데넷이 나와줘서 참 좋네요.
명성에 답할 것인가... 두근두근해요.

로쟈 2009-10-17 19:42   좋아요 0 | URL
추천사들을 보면, 기대에는 부응할 거 같습니다...

게슴츠레 2009-10-17 20:59   좋아요 0 | URL
이 책인지는 모르겠지만 해당 주제와 관련하여 지젝이 다니엘 데넷을 다루는 부분들이 <신체없는 기관>이나 <시차적 관점>에 있지 않나요? 같이 참고하면 공부가 많이 될 거 같습니다.

로쟈 2009-10-17 21:03   좋아요 0 | URL
네, <시차적 관점>의 '헤겔, 마르크스, 데넷' 절 등에서도 다뤄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