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발견'이라고 해야 할 책은 단연 로버트 액설로드의 <협력의 진화>(시스테마, 2009)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개정판)를 읽어본 독자라면 저자가 누구이고 또 어떤 책인지 바로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알고 보니 1984년에 초판이 나오고, 2006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개정판 추천사는 또 도킨스가 쓰고. 어떤 추천사냐면, 이런 식이다.
"나는 책이 나오자마자 구입해 흥분에 휩싸여 읽었으며, 이 책의 전도사라도 된 듯 만나는 사람들마다 붙잡고 읽으라고 권하였다. 수년간 내가 가르친 옥스퍼드 대학교 학부생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액설로드의 책을 읽고 에세이를 써내야 했다. (...) 나는 지구 위 모든 사람이 이 책을 공부하고 이해한다면 이 행성이 더 살기 좋은 곳이 되리라고 굳게 믿는다. 세계의 지도자들을 모두 가두어 놓고 이 책을 준 다음 다 읽을 때 까지 풀어주지 말아햐 한다. 그것은 그들 개인에게 기쁨이 될 뿐 아니라 인류를 구원할 것이다."
구원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죄수의 딜레마와 게임이론의 아이디어는 여러 분야에서 원용되고 있다. 책은 바로 손에 넣으려고 했으나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아직 판매하지 않고 알라딘에서는 내주에나 배송이 가능하다. 관련서평이 있나 찾아보니 국방일보의 칼럼이 하나 있어서 옮겨놓는다. 국방일보를 읽는 건 제대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국방일보(05. 03. 17) 액슬로드의 협력의 진화
눈앞의 이득을 먼저 챙길 것인가, 아니면 맛을 아껴 두었다가 장래의 이득을 도모할 것이냐가 바둑의 딜레마다. 미국의 로버트 액슬로드(Robert Axelrod)는 이런 논리를 국제 정치에 응용, 배반의 전략으로 당장의 이익을 취하기보다 평화를 유지하면서 협력의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협력의 진화론을 제시했다. 기원전 5세기에 있었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그 좋은 예다. 아테네가 배반의 전략을 선택, 먼저 도발한 전쟁이었지만 결과는 스파르타가 승리했다. 그러나 두 도시 국가는 함께 멸망했다. 원인은 서로 배반의 전략을 악순환시켰기 때문이다.
‘죄수의 딜레마’도 예외가 아니다. 사연인 즉 두 죄수가 경범죄에 대한 증거만 있는 수사관과 벌이는 격리된 수사에서 하루라도 먼저 석방되고 싶은 나머지 서로 배반의 전략을 선택한다. 당시로서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교도소에서 상대방 죄수를 만나 확인해 본 결과 배반의 전략을 선택했기 때문에 더 복역하게 됐다는 사실을 알고 곧 후회한다는 내용이다. 교통이 복잡한 병목 지역에서 운전자가 서로 먼저 가겠다고 진입하면 정체 현상이 길어지고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배반의 악순환을 예방하기 위해 액슬로드는 협력의 진화에서 ‘보상과 보복의 전략’을 소개했다. 이 전략의 핵심 내용은 협상 과정에서 상대와 협조하는 것이 우선 바람직하고, 상대가 배반하면 반드시 응징하며, 상대가 배반하더라도 뉘우치고 화해를 구해 오면 용서하고 보상한다는 내용이다. 이유는 미래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상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준수해야 할 일이 있다. 첫째는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월요일에 하는 말과 수요일에 하는 말이 다르면 상대방도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는 신사적이어야 한다. 특히 초기 단계의 협상은 협력을 전제로 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호감을 줘 장차 협력의 가능성을 더 크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상대방이 협상 도중에 배반의 전략을 선택하면 그에 상응한 보복을 해야 한다. 그래야 상대가 배신을 반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론적으로는 관대해야 한다. 미래의 충분한 보상을 위해서는 협력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 이 이론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액슬로드의 협력의 전략을 실천한 미국은 소련을 공중 분해시키고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됐다. 병영생활하는 우리가 참고해야 할 것은 바로 액슬로드의 협력의 전략이 정보화 시대의 인간관계에 아주 유익한 사랑의 기술이라는 사실이다. 전우 상호 간에 불신의 벽을 깨고 협력의 전략을 생활화하면 성공과 행복이 균형을 이루는 보람차고 유익한 삶을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김창주 육군종합행정학교 교수)
09. 09. 29.
P.S. 오래전 기억이긴 하지만, 절판된 책 가운데 <딜레마 게임: 진화론으로 본 인간과 사회>(고려의학, 1991)에 '협동의 진화'란 글이 실려 있었다. 액설로드가 공저자의 한 명이었던 듯하다. 당장 확인은 되지 않지만, 지금 보니 'How Humans Adapt: A Biocultural Odyssey'란 책의 일부 논문을 발췌 번역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