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의 작가 김은국씨가 지난 23일(현지시각)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마이클 잭슨의 예기찮은 죽음으로 이 부고는 묻혔는데, 여기서는 추모기사라도 스크랩해놓는다. 개인적으로는 작년 1학기에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한 강의안을 짜면서 <순교자>를 포함시켰다가 나중에 알베르 카뮈와 함께 다루기로 하고 뺀 적이 있다. 내년에는 기회를 마련하고 싶다. 아마도 카뮈의 <페스트>와 같이 읽게 될 듯하다. 이미지를 찾다보니 유현목 감독의 영화 <순교자>(1965)의 스틸컷도 있기에 옮겨놓았다. 작품이 발표되어 화제를 모은 게 1964년이니 막바로 영화화되었던 듯하다. 아래 기사의 필자인 김욱동 교수는 국내에서 유일한 김은국 연구서의 저자다.     

경향신문(09 06. 27) 유랑의 삶, 이산의 삶

재미소설가 김은국씨(미국명 리처드 E 김)가 지난 23일 미 매사추세츠주의 자택에서 향년 77세로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한국계 미국문학의 개척자인 그의 삶과 문학세계에 대한 김욱동 한국외국어대 교수의 기고를 싣는다.  

인간을 다른 짐승과 구별짓는 특성이 어디 한두 가지랴만은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만큼 절실하게 피부에 와 닿는 것도 없다. 한 조각 구름처럼 떠돌다 사라지는 것, 나그네처럼 정처없이 떠도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삶의 본질일지 모른다. 현대 작가 중에서 김은국만큼 구름처럼, 나그네처럼 살다간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그는 수원농고를 다녔던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는 바람에 어린 시절부터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다. 함흥에서 원산으로, 원산에서 두만강 근처 남양으로, 다시 두만강을 건너 만주 룽징(龍井)으로 이주한다. 다섯살 때 다시 아버지의 고향 황해도 황주로 이주하고 중·고등학교는 평양에서 다닌다.

해방과 더불어 혈혈단신 남하한 김은국은 목포로 내려가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상과대학에 입학하지만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군에 입대하여 연락장교와 통역장교로 근무한다. 휴전 후 미군 장군의 도움으로 미국에 건너간 그는 미들베리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 등에서 역사학과 정치학을 공부한다. 미국에서의 삶도 평탄치는 않아서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전역을 누벼야 했다. 



김은국은 한때 귀국해 직업군인의 길을 걸으려 했지만 작가에 뜻을 두고 아이오와대학 ‘작가 워크숍’에서 작가 수업을 받는다. 폴 엥글 교수 밑에서 엄격한 작가 수련을 쌓은 그는 마침내 첫 장편소설 <순교자>(1964)를 발표함으로써 미국 문단, 아니 세계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한다. 외국 태생의 작가로서는 보기 드물게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비평가들의 주목도 받았다. 그후 5·16 군사혁명을 소재로 한 <심판자>(1968), 일제강점기 창씨개명을 소재로 한 <잃어버린 이름>(1970)을 잇따라 발표해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그는 한국계 작가 중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작품에는 자신이 걸어온 이산과 유랑의 궤적이 짙게 배어 있다.

그동안 한국계 미국문학은 백인 중심의 주류 문학에 갇힌 ‘문학적 미아’와 다름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미국 문단에 적자로 입적된 작가가 바로 김은국이다. 1920년의 서재필, 1930년대의 강용흘에 이어 그는 한국계 미국문학을 굳건한 반열에 올려놓았다. 비록 그는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의 작품은 길이 남아 뭇 독자의 심금을 울릴 것이다.(김욱동 한국외국어대 교수·영문학) 

09. 0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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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2009-06-28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저는 '순교자'를 잊지 못한답니다. 이 작품을 읽다가 그만 애인이 될 뻔한 사람을 놓쳤거든요. 상상이 잘 안될 수 있는 스토린데, 하여간 그랬답니다. 김은국님의 명복을 빕니다.

로쟈 2009-06-28 16:46   좋아요 0 | URL
특이한 인연을 갖고 계시네요.^^;

사량 2009-06-28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교자>를 영화화한 유현목 감독이 세상을 뜨셨다는 부고기사가 조금 전 올라왔네요. 정말로 한 시대가 가는 걸까요. 김은국 작가와 더불어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로쟈 2009-06-28 17:36   좋아요 0 | URL
앗, 그렇네요. 묘한 우연의 일치입니다. 저도 고인들의 명복을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