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클래식이란 무엇인가

'우리에게 고전이란 무엇인가'는 얼마전에 출간된 <고전의 미래>(길, 2009)의 부제다. 저자는 이탈리아의 고고학자이자 고전학자인 살바토레 세티스. 200쪽 남짓하는 분량이 너무 짧아서 관심에서 제쳐놓고 있었는데, 책을 번역한 김운찬 교수의 소개글이 있기에 일단 스크랩해놓는다. 고전에 대한 나의 생각은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2009)에도 들어가 있는 '당신에게 클래식이란 무엇인가'를 참조하시길.    

교수신문(09. 05. 25) 古典은 우리 안에 있는 他者 … 고유 개념 정립 필요 

중학교 시절 ‘고전경시대회’라는 것이 있었다. 몇몇 친구와 함께 어쭙잖게 학교 대표로 선발됐고 선생님께서는 두툼한 책 몇 권을 읽으라고 나누어 주셨는데, 처음 몇 장을 넘기다가 재미없고 장황하고 지루해서 더 이상 읽지 못하고 내팽개친 기억이 난다. 그때 이후로 고전은 나에게 지루하다는 이미지와 연결됐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인문학을 공부하겠다고 덤벼든 지 적잖은 시간이 흘렀는데 지금도 고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없다.  



살바토레 세티스(Salvatore Settis, 1941~)의 짤막한 저술 『고전의 미래』를 번역하면서 나는 그런 문제에 대한 어떤 명쾌한 해결책을 은근히 기대했다. 그런데 그런 질문에는 전문가들도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고전의 총체적 역사를 더듬어보면서 고전이 우리의 현재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조망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논의를 뒤따르다 보면 고전이 너무 많은 것을 가리키고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그는 ‘고전’의 의미가 방대하다는 것을 강조하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따옴표 안에 넣어 사용한다), 따라서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느낌이다. 고전이라는 말이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르게 사용된 사례들과 의미들에 대한 설명도 고전의 의미를 확장시킬 뿐 개념의 단순화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히 고전은 너무나도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있다. 그것은 문학 작품뿐만 아니라 예술, 사상, 제도 등 모든 문화 현상을 포괄적으로 가리킨다. 그렇게 포괄적인 고전의 개념을 정의하려면 클라시쿠스(classicus)라는 용어의 어원과 원래 의미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용어는 고대 로마의 시민들 중에서 최고 부자 납세자들을 가리키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최고의 모범이 될 만한 것을 지칭했다고 한다. 이후의 용법에서 약간씩 상이한 함축 의미들이 덧붙여졌지만, 고전의 속성이 그러한 가치를 토대로 한다는 것은 변하지 아니했다. 무엇이든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고유의 영속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갖고 있으며, 그 가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소진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의 일정한 시기마다 반복되는 재탄생 과정을 통해 증명된다. 그런 의미에서 세티스는 ‘복귀’와 ‘재탄생’의 역사들에 대해 말하면서 고전의 현재성을 강조한다. 과거의 사실로서 시간 속에 파묻혀 있던 것이 현재 속에서 되살아나는 것이다.  

다만 현재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되거나 또는 활용되기 때문에 언제나 새로운 모습을 띠고 새로운 의미로 충만해질 수 있다. 세티스가 인용하는 여러 가지 역사적 사례들은 모두 고전이 마치 불사조처럼 죽었다가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르네상스가 그렇고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이 그렇다. 그런 과정을 통해 고전은 영원히 살아 있다.

세티스가 강조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고전의 문화적 상대성 관념이다. 그러니까 서양 문화 이외의 다른 문화권들에도 나름대로 고유의 고전이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자주 잊어버리는 사실이다. 지배적인 서양 문화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고전이라 하면 그리스 로마의 고대를 먼저 머릿속에 떠올릴 수도 있겠으나 문화의 가치는 상대적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산발적인 언급에 머무르고 있지만, 중국이나 아메리카 인디언 문화의 예들을 인용하고 상호 비교하는 것은 바로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암시하는 바가 많다. 그리고 각 문화권 고유의 고전을 확인하고 그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외부 관점이 아닌 내부적이고 토착적인 의미에서의 고전 개념을 정립할 필요도 있다. 서양 문화의 패러다임은 분명 훌륭하고 멋진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지만, 서양의 고전 개념이 다른 문화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것은 고전이란 바로 우리의 내부에 있는 ‘他者’라는 관념이다. 그것은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질화됐을 뿐만 아니라, 특히 서양의 고전 문화는 “고대에 이미 다른 문화들과의 접촉에 의해 강하게 혼혈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전은 동질성과 이질성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고전을 되살린다는 것은 바로 이질적인 것에서 동질적인 것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의 모습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세티스의 말에 의하면 “고전을 회상한다는 것은 우리 밖에 있는 다른 것들, 즉 다른 문화들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걸음이 될 수 있다.”

요즘처럼 서로 다른 문화들 사이의 충돌과 교류, 뒤섞임이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다문화에 대한 논의와 대비책이 필요한 시기에 우리와 ‘다른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은 공존의 삶을 위해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것은 고전이 시간의 차원에서 공간의 차원으로 확장되고,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윤리적 역할을 수행하는 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으로 보편적 가치로서의 고전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 특히 ‘글로벌화의 수사학이 지배하는 시대’에 고전의 의미와 역할을 새삼스럽게 되짚어 보아야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세티스는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리스 로마의 고대부터 시작해 중세와 르네상스,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시대를 넘나들고, 동양과 서양을 가로지르며, 건축과 예술에서 문학, 제도, 사상,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는 그의 논지를 따라가기 위해 관련 문헌을 찾아보고 부지런히 인터넷을 뒤졌다. 하지만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보기에는 여전히 용어 선택이나 맥락의 이해에서 부족해 보일지 모른다. 번역의 길에도 고전처럼 끝이 없는 모양이다.(김운찬 대구가톨릭대·이태리어) 

09. 0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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