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턴의 <실낙원>을 읽기 위한 첫강의가 있었다. 밀턴의 생애뿐만 아니라 그가 살았던 17세기 영국의 정치-사회사에 대한 조감도 필요했지만 아직은 입에 설었다. 아무려나 시간은 흘러갈 것이고, 한달 후에는 <실낙원>을 완독한 소감도 적을 수 있을 것이다. 고전에 대한 강의를 하려니까 떠올리게 된 글은 '클래식'을 주제로 한 사보에 실은 것이다. 지면에는 약간 축약된 글이 실릴 터인데, 여기에는 초고를 옮겨놓는다. 글의 일부는 예전에 적은 '클래식이란 무엇인가'(http://blog.aladin.co.kr/mramor/1985806)에서 가져왔다.   

클래식(Classic)이란 무엇인가? 서양의 말이나 개념이 국내에 수용되면서 의미의 변형과 굴절이 일어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데, ‘클래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한국어에서 ‘클래식’이란 말은 이중적이다. 영어사전에서 ‘Classic’은 명사일 분야를 막론하고 ‘일류 작가’나 ‘걸작’을 가리키는 것이 첫 번째 뜻이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작가와 작품을 가리키는 것이 두 번째 뜻이다. 사실은 첫 번째 뜻이 두 번째 뜻에서 파생되어 나왔을 것이다. 서양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는 문화사의 전범이 되는 시기이자 가장 빼어난 시대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똑같이 ‘클래식’으로 옮기지만 복수형 어미를 취한(하지만 단수로 취급하는) ‘Classics’는 보다 한정적으로 그리스․ 로마의 ‘고전’과 이를 연구하는 ‘고전학’을 뜻한다.  

 

한편, 이런 ‘본래적’ 의미와는 다르게 국어사전에서 ‘클래식’은 ‘서양의 고전음악’으로 정의된다. ‘Classic’이 ‘클래식’으로 음역(音譯)되면서 의미의 축소가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언어 현실을 인정하자면 우리말에서 ‘클래식’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고 해야겠다. 즉, 좁은 의미에서의 클래식은 고전음악을 가리키며, 넓은 의미의 클래식은 ‘고전(古典)’ 일반을 가리킨다. 이 넓은 의미에서의 클래식이 이 글의 테마다. 그래서 ‘클래식이란 무엇인가’는, 다시 ‘고전이란 무엇인가’라고 바꿔 물어도 좋겠다.   

이탈리아의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는 ‘왜 고전을 읽는가(Why read the classics?)’란 질문을 던지면서 고전을 이렇게 정의했다(여기서 칼비노가 말하는 고전은 ‘고전 문학작품’을 뜻한다).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나는 ……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지, ‘나는 지금 ……를 읽고 있어.’라고는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 책이다.” 이 정의에 덧붙여 칼비노는 “동사 ‘읽다’ 앞에 붙은 ‘다시’라는 말은 유명 저작을 아직 읽지 않았음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의 궁색한 위선을 드러낸다.”고 꼬집었다. 그가 말하는 ‘위선’은 흔히 고전을 “너무도 유명하지만 아무도 안 읽은 책”이라고 부르는 것과도 상응하는 것이겠다. 모두들 읽었을 거라고 생각하기에 감히 ‘안 읽었다’고 말할 수 없는 책, 그래서 ‘지금 읽고 있어’가 아니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는 책이 소위 고전이다. 하지만 칼비노의 정의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합당한 정의다. 고전은 한번 읽고 마는 책이 아니라 다시 읽는 책이고 반복해서 읽는 책이기에 그렇다. 왜 그런가?  

런던에 있는 대영박물관에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유물 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선사 시대의 그리스에서부터 기원전 5세기경의 그리스, 바세이 신전, 파르테논 신전 조각,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 로마 미술품 등이 15개의 전시실이 나뉘어 배치돼 있으며 요즘은 온라인 투어도 가능하다. 박물관 관람이 대개 그렇듯이 이런 유물들을 들여다보자면 자연스레 이 고대인들과 현재 우리 자신들 사이의 ‘간격’을 생각해보게 된다. 즉, 박물관에서 접할 수 있는 고대 세계의 문학․언어․문화․사고방식이 현재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며, 우리는 이것을 어떤 식으로 읽어낼 수 있을까란 물음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한 ‘클래식’ 입문서의 저자들은 이러한 물음 앞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물․조각․도기․그림 등은 “물질적인 유물 이상의 것”이 된다고 말한다. 옛것(古)이지만 현재를 되새김해보도록 해주는 것, 그것이 클래식이고 고전(古典)이다. 따라서 고전을 읽는 것은 ‘그들의 문화’를 읽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 간격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문화’에 ‘우리의 문화’를 견주는 것이며, ‘우리의 문화’ 속에 아직 숨 쉬고 있는 그들의 ‘살아있는 유산’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클래식 속에는 어떤 의미가 무엇이 새겨져 있으며 무엇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일까? 다시 클래식이란 말의 어원으로 돌아가 보도록 한다. 일본의 인문학자 이마미치 도모노부 교수는 ‘클래식을 공부한다’는 의미가 결국은 ‘클래식에서 배운다’는 뜻이라면서 이 말의 라틴어 어원을 이렇게 풀어준다. 곧 ‘클래식’은 라틴어 ‘클라시쿠스(classicus)’에서 유래했는데 이 말은 형용사이며 처음부터 ‘고전적’이라는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다. 클라시쿠스는 사실 ‘함대(艦隊)’라는 의미를 가진 ‘클라시스(classis)’라는 명사에서 파생된 형용사이다. 함대라는 말은 군함이 적어도 두세 척 이상은 있다는 뜻이다. 클라시스는 ‘군함의 집합체’라는 의미였다. ‘클라시쿠스’라는 형용사는 로마가 국가적 위기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국가를 위해 군함을 그것도 한 척이 아니라 함대(클라시스)를 기부할 수 있는 부호(富豪)를 뜻하는 말로 국가에 도움을 주는 사람을 가리켰다. 다시 말해서 전쟁과 같은 긴급한 어려움에 처한 국가에 큰 도움을 주는 재력가를 가리키는 말이겠다.   

이 ‘클라시쿠스’와 ‘클래식’은 어떤 관계인가? 이건 유비적 관계다. 국가적 위기에 함대를 기부할 수 있는 상황을 개인의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인생의 위기에 당면했을 때 정신적인 힘을 주는 책이나 회화, 음악, 연극 등을 통칭하여 ‘클래식’'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고, 이마미치 교수에 따르면 중세의 비교적 이른 시대, 즉 교부시대부터 그러한 의미로 클래식이란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비유컨대, 위대한 고전은 거대한 ‘항모 선단’쯤 되는 것이다. 더불어 ‘위기’에 직면하고 있지 않다면 ‘고전’은 ‘쇳덩이’나 ‘종이더미’ 이상의 적극적인 의미를 갖기 어렵겠다. 이 클래식이란 말을 동아시아문화권에서는 ‘고전(古典)’이라 옮긴 것인데, 이것은 ‘오래 전부터 소중하게 여겨온 서적’이란 뜻이다. 여기서 ‘典’이란 글자는 상형문자로 다리가 달린 책상 위에 옛 책의 형태인 두루마리를 소중히 올려놓은 모양새를 의미하며, 읽지 않고 쌓아두기만 하는 것이 늘 열심히 읽는다는 뜻이라 한다.  

물론 이 ‘고전’이란 말에는 ‘위기적 상황에서 힘이 되어 준다’는 클래식의 적극적인 어원적 의미는 가미돼 있지 않다. 그리고 ‘고전음악’을 뜻하면서 아울러 ‘고급’이나 ‘걸작’ ‘명품’을 뜻하는 우리말 ‘클래식’에도 그러한 어원적 의미는 결여돼 있다. 지금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와 불황에 처하여 한갓 ‘고전 나부랭이’를 들먹이는 것은 매우 한가한 노릇이 아닌가라고 혹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클래식이 갖는 본래적 의미를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거나 망각한 것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이러한 위기적 상황에서 막강한 정신적 힘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클래식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클래식이 ‘나’에게는 아무런 용기도 지혜도 주지 못하며 오히려 힘만 빠지게 한다면 그것은 ‘클래식’이 아니다. 적어도 ‘나’에겐 클래식으로서 자격 미달이다. 그러니 억지로 클래식을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클래식이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준 작품들을 뜻한다면, 그런 맥락에서 ‘나의 클래식’, ‘나만의 클래식’ 목록도 만들어질 수 있다. ‘나’에게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나만의 클래식’이다.    

물론 클래식이 불어넣어주는 삶의 희망이 단지 ‘생존’만을 의미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우리가 고전을 읽으며 고전에서 배워야 하는 삶은 당당한 삶이고 기품 있는 삶이다. 삶의 기품은 부유한 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다시 라틴어의 어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국가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자기 자식(프롤레스)밖에는 내놓을 게 없는 사람 ‘프롤레타리우스(proletarius)’라고 불렀다 한다. 즉 ‘클라시쿠스’가 재산이 있어서 국가를 위해 함대를 기부할 수 있는 부유층을 가리킨데 반해, ‘프롤레타리우스’는 오직 자기 자식을 내놓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을 의미했다. 한국어의 말장난을 갖다 쓰자면 ‘클라시쿠스’는 ‘맨션계급’이고 ‘프롤레타리우스’는 ‘맨손계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클래식의 가치와 효용이 이 두 계급에 모두 가 닿는다는 점이다. 즉 클래식은 ‘고귀한 자’도 읽어야 하고 ‘나약한 자’도 읽어야 한다. ‘고귀한 자’는 고전을 통해서 자신의 의무를 상기할 필요가 있고 ‘나약한 자’는 자신의 처지를 극복할 용기를 얻을 필요가 있다. ‘함대’를 기부할 정도가 못되는 ‘고귀한 자’는 ‘고귀한 척하는 자’일 따름이고, 형편 때문에 고전을 읽을 여유가 없다고 말하는 ‘나약한 자’는 ‘나약함에서 벗어나지 못할 자’이다. 이제 당신에게 클래식이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할 차례다. 

09. 03.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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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에게 고전이란 무엇인가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5-31 10:08 
    '우리에게 고전이란 무엇인가'는 얼마전에 출간된 <고전의 미래>(길, 2009)의 부제다. 저자는 이탈리아의 고고학자이자 고전학자인 살바토레 세티스. 200쪽 남짓하는 분량이 너무 짧아서 관심에서 제쳐놓고 있었는데, 책을 번역한 김운찬 교수의 소개글이 있기에 일단 스크랩해놓는다. 고전에 대한 나의 생각은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2009)에도 들어가 있는 '당신에게 클래식이란 무엇
 
 
2009-03-05 18: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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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5 23: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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