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는 드물게도 국내서가 번역서보다 더 많이 눈에 띈다. 창비담론총서도 나오기 시작했고, 이준구 교수의 <쿠오바디스 한국경제>(푸른숲, 2009)는 '이주의 경제서', 이종필의 <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글항아리, 2009)는 '이주의 과학서'이다. 김태형의 <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역사의아침, 2009)까지 관련리뷰를 다 챙겨놓지는 못하지만 모두 화제가 될 만한 책들이다. 거기에 맞서는 번역서로는 자크 데리다 등의 <마르크스주의와 해체>(길, 2009), 사이토 준이치의 <민주적 공공성>(이음, 2009) 등이 내가 주목하는 책들이다. 개정 번역판으로는 조지 카치아피카스의 <신좌파의 상상력>(난장, 2009)도 새로 나왔다. 거기에 한권을 더 보태자면, 저명한 인지신경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의 <윤리적 뇌>(바다출판사, 2009). 관심을 끄는 저자이고 주제인지라 따로 리뷰를 스크랩놓는다. '신경윤리학'이란 분야를 소개하고 있는데, 나는 아무래도 공부에 자극을 주는 '의외의 책'에 점수를 많이 주는 편이다. 인지주의 철학자인 마크 존슨의 <도덕적 상상력>(서광사, 2008)과 같이 읽어볼 수도 있겠다. 국내서로는 이정모 교수의 <인지과학>(성균관대출판부, 2009) 등이 '교과서'이다.  

 

한국일보(09. 04. 18)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 '나'인가 나의 '뇌'인가  

현대 뇌과학은 살인범과 정상인의 뇌가 구조부터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밝혀낸 상태다. 살인범들의 뇌는 대게 심리 억제 메커니즘 기능이 있는 전두엽이 손상됐고, 공격성을 좌우하는 부분이 활성화되어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과거엔 고민 없이 살인범을 단죄했다. 하지만 뇌의 구조라는 물리적 요인이 범죄의 중요한 동인일 수 있다면 범죄자에게 물을 수 있는 윤리적 책임의 한계는 어디일까. 



<윤리적 뇌>는 이처럼 현대 뇌과학의 발전이 인류에게 던지고 있는 사회적, 윤리적, 철학적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뇌영상을 통해 마음의 행동 및 심리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인지신경과학' 분야를 개척한 세계적인 뇌과학자로, 뇌과학과 관련한 미국의 인문학적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저자가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몇몇 주장은 사회적 통념과 격렬히 마찰할 수 있다. 태아를 언제부터 인간으로 대우할 것인지에 대한 저자의 주장이 대표적인 경우다. 일반적으로는 수정체가 착상하고 세포분열을 끝낸 14일 된 '배반포'부터 생명의 시작점으로 삼는다. 하지만 뇌과학에 따르면 태아의 뇌는 최소 23주는 돼야 생각하는 인간으로 발달한다. 저자는 이런 시각에 따라 배아나 태아를 대상으로 한 의학실험 시한 같은 것도 조정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비친다. 

캐나다의 스프린터 벤 존슨이 썼던 스테로이드 계통의 약물처럼, 앞으로는 '뇌기능을 향상시키는 약'도 나올 것이다. 이 경우 어떤 윤리적 기준에 따라 이 약물을 사용할지도 문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 뇌전극을 이용해 수험생의 뇌기능을 높이는 처치까지 가능하게 된다면 두뇌의 우열에 관한 사회적 통념도 일대 변화가 불가피하다.

이밖에 이 책은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나'의 의지인지, 나의 '뇌'의 의지인지 하는, 자유의지 유무에 관한 철학적 논의와 뇌 안에 각인된 사회의 보편적 윤리 메커니즘에 관한 논의 등도 아울러 제기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류는 보편적 윤리감각에 따라 과학의 발전이 나쁜 길을 향해 가지 않도록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할 뿐이다.(장인철 기자) 

09. 04. 18. 

 

P.S. 마이클 가자니가의 책으론 <인간의 마음과 행동>(시그마프레스, 2000)이 소개된 바 있다. <심리과학>과 <인지신경과학> 같은 교재형 타이틀은 저자가 이 분야의 '스탠더드'라는 걸 시사해주는 듯하다. 그의 최신간은 <인간>이다. 관심을 끄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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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뇌신경학자가 본 인간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11-09 17:11 
    <윤리적 뇌>(바다출판사, 2009)로 처음 소개된 뇌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의 신간이 출간됐다. <왜 인간인가?>(추수밭, 2009). 지난번 <윤리적 뇌>가 나왔을 때 검색해보고 궁금해한 책인데, 의외로 빨리 번역됐다. 부피는 좀 있지만, 요즘 뇌과학자들의 발언권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일독해볼 만하다.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연합뉴스(09. 11. 09) 인간은 동물과 어떻게 다른
 
 
hnine 2009-04-18 13:38   좋아요 0 | URL
어느 시기부터 태아를 생명체로 보느냐 하는 것도 아직 통일이 안되어 있는 상황이지요. 이런 제반 문제들이 과연 인간의 수준에서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있는 문제인가 하는 생각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범죄인의 뇌 구조가 다르다는 것을 과연 우리 사회는 어떻게 이용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범죄인들 특유의 뇌 구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미리부터 어떤 '조치'가 취해지거나 '격리'되어야 한다는 것인지. 인간의 뇌에 관해 밝혀낸 빙산의 일각 같은 결과를 가지고 너무 큰 것에 적용시키려고 하는 경솔함이 가끔 두려워질 때가 있습니다.
'나의 뇌' 란 '나'와 별개가 아님에도 기자는 제목을 저렇게 붙여놓았군요.

로쟈 2009-04-19 11:57   좋아요 0 | URL
'나의 뇌'와 '나' 사이에는 그래도 '시차'가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