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문학서'를 꼽는 걸로 새로 나온 책들에 대한 '눈팅'을 마무리할까 한다. 샨사나 조이스 캐롤 오츠 같은 저명한 작가들의 신작들이 출간됐지만 한 권만 고르라고 한다면 아라빈드 아디가의 <화이트 타이거>(베가북스, 2009)다. 작년 부커상 수상작이라고 하니까 작품성은 이미 공인받은 터이고(인도 출신 작가로는 살만 루시디, 아룬다티 로이, 키란 데사이에 이은 네 번째 수상자라 한다), 요즘 관심의 한 축이 인도쪽으로 쏠리고 있는 탓에 눈길이 안 갈 수 없다. 게다가 '날 것 그대로의 인도'를 보여준다고 하는 점도 마음에 든다(비카스 스와루프의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바로 연상케 한다). 일단은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09. 03. 28) 부조리와 비극, 날 것 그대로의 인도 

“절대로 갠지스강에 들어가면 안됩니다. 똥이며, 지푸라기며, 물에 잠긴 시체의 일부며, 썩은 물소 고기며, 일곱 가지 산업폐기물 따위를 입안 가득히 담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

인도에 대한 낭만과 환상을 싹 걷어낸 인도 작가 아라빈드 아디가(35)의 장편소설이다. 가난과 차별, 악취와 오물, 살인과 부패로 가득한 소설은 ‘진짜 인도’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은 비천한 계급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기업가가 된 주인공 발람이 인도를 방문하는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통해 인도사회의 위선과 부조리를 거침없는 입담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뼈마디가 앙상하고 온몸에 가난이 새긴 흉터가 가득했던 발람의 아버지는 아들만이라도 다른 삶을 살게 하기 위해 학교를 보내지만 결국 발람은 학교에서 끌려나와 미래라고는 없는 노예의 삶을 강요받는다. 우여곡절 끝에 델리의 부잣집에 운전기사 겸 하인으로 들어간 발람은 주인 아쇽을 존경하고 충성하지만 주인은 결국 아내가 저지른 자동차 사고를 하인인 그에게 덮어씌우려 한다.

주인에 대한 애증 속에 갈등하던 발람은 결국 주인을 죽임으로써 종살이로부터 탈출을 기도한다. 그리고 ‘기술 및 아웃소싱의 세계적 중심지’ 방갈로르로 숨어들어 반짝이는 샹들리에가 달린 사무실과 은색 랩톱을 가진 기업가가 된다. 발람이 털어놓는 ‘살인의 추억’은 속죄를 위해서가 아니다. 발람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옹호하거나 방어하지 않지만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위해 단 한 번의 살인이 필요했다”고 또렷이 말한다.

“저는 그날 밤 델리에서 주인의 목을 따버린 것이 실수였노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절대로. 저는 말할 것입니다. 단 하루라도, 단 한 시간이라도, 아니, 단 일 분이라도, 하인으로 살지 않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 것은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불편한 진실로 가득한 소설이 무겁지 않은 것은 걸쭉한 입담과 블랙유머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작가의 필력과 작가가 전하려는 희망적 메시지 때문이다. 소설은 인간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노력의 소중함을 역설하며 현재진행형인 인도사회의 부조리와 비극을 끊어내려 한다. “인도의 젊은이들이여, 그대 혁명의 책은 바로 그대들의 뱃속에 들어 있도다. 그것을 배출해내서 읽으라!” 2008년 부커상 수상작이다.(이영경기자) 

09. 03. 28. 

 

P.S. 이번주 신간 중에는 샤시 타루르의 <네루 평전>(탐구사, 2009)도 포함돼 있다. 한겨레의 짧은 책 소개는 이렇다  

인도. 한국인들에게는 ‘종교·명상·카스트의 나라’다. 하지만 국제정치의 영역에서 인도는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로 불린다. 두 인식 사이의 골은 깊고 넓다. 이를 메우려면 인도의 첫 총리를 지낸 자와할랄 네루에 대한 이해가 절실하다. 그는 간디와 함께 ‘현대 인도’를 빚어낸 두 창조자이기 때문이다. <네루 평전>(원제 Nehru-The Invention of India)의 지은이는 말한다. “네루가 인도에 끼친 영향은 너무 커서 주기적으로 재점검해 봐야 할 정도다. 오늘의 인도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두 네루라는 한 사람에게 크게 빚지고 있다.”

왜 그런가? 인도라는 거대한 집을 오래도록 떠받쳐온 네 개의 기둥, 곧 ‘민주주의 제도+세속주의+사회주의 경제+비동맹 외교’를 세운 이가 바로 네루라는 게 지은이의 평가다. ‘카스트의 나라’ 인도가 오늘날 국제정치 무대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면서도 ‘다원적 민주 국가’로 불릴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는 것이다. 네루는 최상층 힌두 브라만 계급 출신이었지만 농민과 일체감을 느꼈고, 종교를 중시하는 종파주의는 극단적으로 멀리했다. 영국의 식민지배에 맞서다 9번 체포되고 10년을 감옥에서 지냈다. 격정적이고 급진적인 성품이었지만, 인종과 언어가 복잡한 인도의 통합을 위해 필요한 중도적 리더십을 지향했다. 네루는 이렇게 ‘자기’를 눅이며 무엇을 꿈꿨을까? “바라건대,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4억의 인민입니다.” 네루의 꿈은 아직 현실이 아니다. 네루 사후 인도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그래도 인도의 지식인들은 ‘네루’를 쉼 없이 재검토한다.(이제훈기자) 

한데, 얼마전에 읽은 <거꾸로 가는 나라들>(난장이, 2009)에서 저자 판카즈 미시라의 네루에 대한 평가는 박한 편이었다. 첫 여성 총리를 지낸 그의 딸 인디라 간디에 대한 평가는 더욱 신랄했고. 네루에 대한 상반된 역사적 평가가 있다는 점 정도는 알아두어야겠다. 여하튼 이 복잡한, 복잡해보이는 나라를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로 몇 권의 책을 꼽아둔다. 저자가 모두 인도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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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3-28 23:20   좋아요 0 | URL
소설과 함께 인도인이 보는 인도는 흥미롭네요. 특히 네루 평전요

로쟈 2009-03-29 08:28   좋아요 0 | URL
네루나 간디에 대해선 세계위인전으로만 읽는 터라 우리가 약간의 환상도 갖고 있는 듯해요...

노이에자이트 2009-03-29 17:14   좋아요 0 | URL
인도가 티벳 분쟁때 달라이라마에 동조하고 중국과 국경분쟁도 하는 등 중국과 사이가 안 좋은 시절엔 중국 공산당에서 네루를 완전히 악질로 취급하더군요.

로쟈 2009-03-29 23:26   좋아요 0 | URL
언젠가 둘이 전쟁도 했지요. 러시아까지 포함해서 참, 이해하기 어려운 대국 트리오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3-30 23:12   좋아요 0 | URL
예.그때 소련이 인도 편들었는데 인도가 참패했지요.중소 분쟁이 한참 심할 때였지요.제3세계의 맹주는 누구냐를 두고 인도,중국,인도네시아가 3파전을 벌였던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