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과 번역가' 카테고리에 딱 들어맞는 책이 출간됐다. 전문번역가 이희재씨의 '번역강의' <번역의 탄생>(교양인, 2009). 번역 현장에서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말 존중하는 주체적 번역론'을 편다. 책은 아직 들여다보지 못했지만, 저자 자신의 책소개가 올라왔기에 옮겨놓는다. 더불어 그가 번역한 <번역사 오디세이>(끌레마, 2008)의 한 대목에 대해 예전에 쓴 글도 일부 옮겨놓는다(<번역사 오디세이>는 <번역사 산책>이란 제목으로 먼저 출간됐었다).

서울신문(09. 02. 13) [내 책을 말한다] 우리 말 존중하는 주체적 번역론

원문을 존중하는 직역이 ‘낮은 포복’이고 자연스러운 한국어를 중시하는 의역이 ‘고공 비행’이라면, 나는 원문의 결을 드러내면서도 깔끔한 한국어를 지향하는 ‘저공 비행’을 하고 싶었다. 시간은 많이 들었지만 원문에 가까운 표현을 찾느라 궁리하다 보니 한국어의 구석구석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얇은 영어 원서 한 권 제대로 뗀 적이 없었고 습작조차 한 적이 없었지만 번역을 하면서 나는 한국어에 눈떴다. 작가가 되어 한국어만을 놓고 씨름했더라면 한국어의 개성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어, 일본어, 독일어 같은 외국어와 한국어를 넘나들다 보니 한국어의 남다른 점에 눈떴다. 처음에는 막연했던 ‘한국어답다.’는 개념이 차츰 구체적으로 머리에 들어 왔다. 그리고 한국어가 이미 영어와 일본어에 깊이 물들었음을 깨달았다. 나의 생각은 그때부터 바뀌었다. 이미 외국어에 많이 물든 한국어에 외국어 문체의 흔적을 남기려고 애쓰는 것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원문에서 멀어지는 고공 비행의 길로 날아 올랐다. 이 책은 잃어버린 한국어의 창공을 향해 한없이 날아 오르고 싶었던 내 마음의 비행일지다.  

물든다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아니, 바람직하다. 그러나 중심마저 녹아 없어져서는 곤란하다. 한국의 번역 풍토는 지나칠 정도로 원문을 숭상한다. 균형을 잡기 위해서라도 한국어를 존중하는 번역 문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20년 동안 번역을 하면서 깨우친 내 나름의 방법론을 책으로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단순히 번역론이 아니라 문화 비판서로서 읽혔으면 하는 주제넘은 바람도 있다. 하도 바깥 글을 섬기고 바깥 사람에게 조아리다 보니 한국은 이제 바깥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오늘의 한국은 없었을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활개를 치기에 이르렀다. 한국의 고질병은 좌든 우든 밖에서 들여온 이론에 자기 현실을 두드려 맞추는 사람이 더 권위자로 인정받고 득세한다는 것이다.  

선진국은 그렇지 않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은 물론이고 이제는 중국도 일본도 자기 눈으로 자기 현실을 본다. 바깥을 참조는 해도 결국 자기 현실로 돌아온다. 어떤 면에서는 그들은 모두 주사파다. 북한의 닫힌 주사파와 다른 것은 바깥과 소통하고 바깥 돌아가는 사정을 아는 열린 주사파라는 것이다. 자기 현실이 아니라 바깥 현실에서 나온 이론을 최종 심급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엘리트로 군림하는 나라는 독립국이 아니다. 한국이 독립국으로 되일어서는 데 먼지 한 톨이라도 기여하고픈 마음으로 ‘번역의 탄생’(교양인 펴냄)을 썼다.  

하지만 역시 이 책은 번역론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싫었던 사람은 자기만 아는 노하우인 양 별 것도 아닌 업무 지식을 안 가르쳐주면서 야단만 치는 상사였다. 나중에 그런 상사가 되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몸이 아파 직장을 일찍 그만두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책은 상상의 후배에게 드리는 나의 한국어 업무일지다.(이희재 번역문학가)   

09. 02. 13. 

P.S. 아래 인용문은<오늘의 문예비평>(2008년 가을호)에 실린 '"화(禍)를 보지 마오!”- 번역계의 풍토와 번역가의 윤리'란 글의 일부로 프랑스 번역사의 한 에피소드를 정리한 것이다. 목차를 보니 <번역의 탄생>에서도 첫장은 '들이밀까, 길들일까 - 직역과 의역의 딜레마'를 다루고 있는데, '부정한 미녀인가 정숙한 추녀인가'는 번역사의 유구한 고민거리다('주체적 번역론'은 굳이 가르자면 '부정한 미녀'를 더 강조하는 포지션일 듯하다). 역자인 이희재씨는 어떤 의도에서인지 '부정한 미녀'를 '부실한 미녀'라고 옮겼는데, 어쩌면 독특한 한국어 감각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번역의 탄생>에서 한번 찾아봐야겠다. 아래 스틸사진은 루이스 브뉘엘 감독의 영화 <세브린느>(1967)에서 소위 '부정한 미녀'를 연기한 카트린느 드뇌브. 지난 연말에 특별전이 열리기도 했다.    

쓰지 유미의 <번역사 산책>(궁리, 2001)에 따르면, 번역의 이 ‘행실’에 대한 논쟁은 프랑스의 경우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름답지만 원문에 충실하지 않은 번역’을 가리키는 말로 프랑스어 표현 ‘벨 앵피델(Belles Infidéles)’이 그때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 표현을 역자는 ‘부실한 미녀’라고 옮겼는데, 사실 ‘벨 앵피델’의 충실한 번역어라고는 하기 어렵다. 우리말에서 ‘부실한’은 주로 몸이 허약한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말이 당시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번역으로 유명했던 번역가 페로 다블랑쿠르에 대해서 대학자 메나쥐가 그의 번역이 “내가 투르에서 깊이 사랑한 여자를 연상시킨다. 아름답지만 부실한 여인이었다.”라고 평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기에 더욱 그렇다. 앵피델(Infidéle)은 ‘신앙이 없는’이란 뜻도 갖지만, 문맥상 여기서는 배우자에게 충실하지 못한, 그래서 신뢰할 수 없는 부정(不貞)한 여자를 가리킨다. 따라서 ‘벨 앵피델’은 ‘부정한 미녀’ 정도로 번역될 수 있다.    

<미녀냐 추녀냐>란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된 일본의 전문통역가 요네하라 마리의 책도 그 원제가 ‘부정한 미녀인가 정숙한 추녀인가’라고 하므로 ‘벨 앵피델’의 번역어로서 ‘부실한 미녀’는 그 자체로 ‘벨 앵피델’의 예가 된다. 흥미로운 것은 “사실 17세기의 프랑스는 부정한 미녀가 영화를 누리던 시대”였다는 점이다. “이 시대에 이루어진 번역의 대다수는 독자에게 잘 읽히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기 때문에 삭제도 예사로 알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덧붙이는 것도 예사로 알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지금은 거의 잊혀졌지만 부정한 미녀에게 심취한 이런 번역가들의 대다수는 당시의 유명한 문인들이었다. 실제로 17세기 중반까지 번역은 여전히 창작과 다를 바 없는 지위를 누렸고, 문학의 한 장르로서 인정받고 있었다. 번역만으로 이름을 날리는 것이 여전히 가능하던 시절이었다.”   

프랑스 번역사에서 17세기는 ‘벨 앵피델’이 영화를 누리던 시대였지만 동시에 몰락을 맞은 시대이기도 하다. 이 시기 번역활동을 자세하게 분석한 “쥐베르에 따르면 16세기중반부터 프랑스 문학의 한 기둥을 떠맡아온 번역이 문학의 세계에서 그 지위를 잃어버리는 것은 1650년대 말부터라고 한다. 그 무렵 번역의 권위는 갑자기 떨어진다. (...) 쥐베르는 부정한 미녀가 대두한 시대를 번역이 독창적 작업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시대로 넘어가기 직전에 잠깐 눈부시게 피어오른 찬란한 시대로 규정한다. 쥐베르의 생각으로는 부정한 미녀의 어원을 제공한 페로 다블랑쿠르가 뛰어난 작가적 재능을 번역에만 쏟아 부은 마지막 인물이었다.” 이후에는 “부실한 미녀에 경도되었던 17, 18세기에 대한 반동으로 19세기 초반에는 추세가 원문과 번역문의 단어를 일 대 일로 대응시키는 축어역으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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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비의 알림
    from seoulrain's me2DAY 2009-02-14 11:58 
    번역, 번역사 관련하여 읽어볼 만한 책들
 
 
비로그인 2009-02-13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기사를 보니 이희재 씨는 부정한 미녀를 품으시는 것으로 파악되는군요... 러시아 작가/번역가 중에서 생각해보면, 나보코프의 정숙한 추녀, 파스테르나크의 부정한 미녀, 이 중에서 이희재 씨는 부정한 미녀, 파스테르나크 쪽이겠네요. 흠... 양쪽 다 나름대로 경우에 따라 쓸모가 있겠어요... 이랬다 저랬다 하지만 않으면요... ^^

로쟈 2009-02-13 23:05   좋아요 0 | URL
오늘 신촌의 큰서점에 들렀는데도 책이 없더군요. 웬만한 서점들에 가도 요즘은 허탕치는 일이 잦습니다.--;

비로그인 2009-02-13 23:57   좋아요 0 | URL
찾으시는 책이 워낙 잘 팔려서 그런가요? 아니면 유통에 문제가 있는 건가요?

로쟈 2009-02-13 23:59   좋아요 0 | URL
<번역의 탄생>을 찾았는데, 아예 들어오지도 않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