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대해 강의할 기회가 있었다. '강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략적인 요지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좀 특이한 점이라면 마이클 티어노의 <스토리텔링의 비밀>(아우라, 2008)을 같이 읽었다는 것(이 책에 대해서는 http://blog.aladin.co.kr/mramor/2369587 참조). 책의 부제가 '아리스토텔레스와 영화'라는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지만, 시나리오 입문서이자 <시학>에 대한 대중적인 입문서로도 활용할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책의 취지를 이렇게 적어놓았다. 

  

"이 책은 학술적인 연구서가 아니다. 이 책은 시나리오를 잘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시학> 입문서이며, 찬란하게 빛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수많은 개념을 분석하여 극적인 이야기 구조에 관한 그의 테크닉이 현대 영화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할 뿐이다."(17쪽)   

이 점이 국내에 이미 소개돼 있는 몇 권의 시나리오 작법 책들과의 변별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오이디푸스 왕> 분석에서 발견해내고 있는 이야기구조를 오늘날의 영화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착안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오이디푸스왕>과 같은 연극을 면밀하게 살펴 극적인 스토리텔링에 관한 불변의 진리를 밝혀냈다. 나는 <록키>나 <아메리칸 뷰티>와 같은 좋은 영화들을 분석하면서, 이 영화들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밝힌 이야기 구조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18쪽)   

그러니 시나리오를 쓰려거든 먼저 <시학>을 면밀하게 읽어보아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리고 그 <시학>의 핵심으로 그가 지적하는 것은 '플롯'이고 플롯을 끌고 가는 '액션 아이디어'다. 무릇 "훌륭한 작가는 이야기를 위해 일하고, 시원찮은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기 위해 일한다"는 지적에서도 강조되는 것이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사람이 아니라 행동(액션)이며, 이 행동이야말로 이야기의 '아이디어'다. 그에 따르면 시나리오 작가의 작업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잘 구축된 이야기는 하나의 '액션 아이디어'로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의 단순한 '액션 아이디어'를 갖지고, 그 아이디어의 고유한 본질을 버리지 않으면서 한 편의 온전한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것이다."(27쪽)   

이어지는 내용 자체는 평이하기 때문에(이 책 자체가 드라마틱한 구성을 갖고 있지는 않다) 책은 영화에 좀 안면이 있는 독자라면 두어 시간 이내로 독파할 수 있다. 해서 따로 요지를 간추릴 필요는 느끼지 않는데, 그럼에도 페이퍼를 올려두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말하는 모방론에 대해 한 가지 주석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서다. 모방의 대상에 관한 주석이다.   

이번에 <시학>을 다시 읽으면서 교재로 사용한 것은 영문학자 이상섭 교수의 번역본 <시학>(문학과지성사, 2005)이다. 문고본으로 나온 이상섭본은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도 있고, 한편으론 천병희 교수의 원전 번역 <시학>(문예출판사, 1999)은 수년 전 강의 때 한번 교재로 사용한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다른 번역본으로 읽어보자는 계산이었다.    

 

참고로, 국내에서 제일 처음 나온 <시학> 번역본은 손명현 교수의 박영사판(1960)이다. 최근에 <니코마코스 윤리학/정치학/시학>(동서문화사, 2007)으로 다시 나왔기 때문에 아직도 시중에서 구해볼 수 있다. 천병희 교수의 번역은 문예출판사판이 1972년에 처음 나온 듯싶고, 이후에 몇 차례 개정판이 나왔다(옮긴이 서문에 별다른 언급이 없어서 번역상에 변화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삼성출판사의 세계사상선집에 들어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시학>에서도 <시학> 부분은 천교수의 번역이다. 그리고 국문학자인 김재홍 교수 번역의 <시학>(고려대출판부, 1998)도 아직 절판되지 않은 책이다.  

 

보다 전문적인 교양이 필요한 독자라면 셰익스피어 전공자인 이경식 교수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신고전주의>(서울대출판부, 1997) 같은 연구서나  레온 골든의 주석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예림기획, 2002), 그리고 이상섭 교수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연구>(문학과지성사, 2002)를 참고할 수 있다. 대부분의 연구/주석서들은 원문 번역을 포함하고 있다. 그밖에도 물론 다수의 영역본을 참고할 수 있으며, 이 중에서 몇 종은 온라인에서도 읽어볼 수 있다. 내가 예전에 읽은 건 제임스 허튼(J. Hutton)의 노튼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1982)이었다. 얇고 저렴한 책이다.  

다시 모방의 문제로 돌아가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의 1장에서 단도직입적으로 예술을 '모방'(미메시스)의 양식으로 규정한다. 그 유명한 정의는 이렇다(따로 언급이 없으면 인용문의 쪽수는 이상섭본의 것이다).  

"서시사와 비국과 희극과 디튀람보스, 그리고 대부분의 피리나 현금을 위한 음악은 하나로 뭉뚱그려볼 때 모두 모방의 여러 형태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방의 수단, 대상, 방식 등 세 부분에서 서로 다르다."(15쪽)   

여기서 그리스어 '미메시스(mimesis)'를 '모방'으로 옮기는 것이 딱 적절하지는 않다는 지적을 역자는 주석에 달아놓고 있다(올해 출간될 새 원전 번역은 짐작에 다른 번역어를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 음악 또한 모방의 한 형태로 보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은 '재현'뿐만 아니라 '표현'의 의미도 갖는, 상당히 포괄적인 의미로 쓰인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여하튼 그가 보기에 (오늘날의 관점에서 통칭하여) 예술은 모방의 양식이며, 이 예술은 모방의 수단(무엇을 가지고 모방하느냐), 대상(무엇을 모방하느냐), 방식(어떻게 모방하느냐)에 따라 세분될 수 있다. 모방의 수단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1장의 나머지 절에서 설명하고 있으며 2장에서는 모방의 대상을 다룬다. 앞에서 '한 가지 주석'이 필요하다고 말한 대목이다.   

"모방 기술자(시인)는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모방하는데, 사람은 고상하거나 또는 저열하거나 둘 중 하나이므로(사람의 성품 차이는 잘나든가 못난 정도에 따라 달라져서 그 두 부류로 나뉘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보통보다 더 좋게 또는 더 나쁘게 또는 보통과 같게 모방하게 된다.(...) 희극은 사람들을 보통보다 못나게, 비극은 더 잘나게 나타낸다."(18-19쪽)  

이 대목은 다른 번역본들과 비교해서 읽을 때 그 차이를 확연하게 식별할 수 있다. 내가 나란히 펴놓고 있는 천병희본과 손명현본에서는 '잘난 사람'을 '선인', 그리고 '못난 사람'을 '악인'이라고 옮기고 있다. 두 번역본이 대동소이하므로 천병희본만 우선 옮기면 이렇다.

"모방자는 행동하는 인간을 모방하는데 행동하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선인이거나 악인이다. 인간의 성격이 거의 언제나 이 두 범주에 속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덕과 부덕에 의하여 그 성격이 구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방의 대상이 되는 행동하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우리들 이상의 선인이거나, 또는 우리들 이하의 악인이거나, 또는 우리와 동등한 인간이다.(...) 희극은 실제 이하의 악인을 모방하려 하고 비극은 실제 이상의 선인을 모방하려 하기 때문이다."(문예출판사, 2002, 31-33쪽)    

여기서 '선인'과 '악인'이란 번역은 좀 어색하다. 이건 다른 번역을 참조할 필요도 없이 천교수의 번역 내에서도 지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선인과 악인을 판별하는 근거로 인간의 성격은 '덕'과 '부덕'에 의해 나누어진다고 했는데, 이에 대한 각주에서 천교수는 덕과 부덕의 원어가 아레테(arete)와 카키아(kakia)이며 이것은 "원래 사물이 그 고유한 기능을 잘 발휘하는 상태와 그렇지 못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반드시 어떤 도덕적인 가치 기준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아레테와 카이아는 '잘하고 못함', '잘나고 못남'을 가리키는 범주이지 도덕적인 선악을 직접적으로 가리키지는 않는다(알다시피 이 그리스의 '잘남/못남'이란 범주가 기독교 도덕에 의해 '악/선'으로 뒤집혔다는 것이 <도덕의 계보>에서 니체가 주장하는 핵심이다).     

그리고 15장에서 천교수는 "비극은 보통 이상의 인간의 모방이므로 우리는 훌륭한 초상화가들을 본보기로 삼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옮기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보통 이상의 인간=선인'이 된다. 우리가 '착한 사람' 혹은 '선량한 사람'을 '보통 이상의 인간'이란 뜻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등식은 부적절하며 좀 어색하다. 이 점은 손명현 교수의 번역도 마찬가지인데, 짐작엔 천교수가 선행 번역을 참조하면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다(일러두기에서 역자는 "현대어 번역 중에서는 Bywater의 영역과 Gigon의 독역과 손명현의 국역을 참고했다"고 했다). 각주에서 문제를 제기하고서도 번역어는 그대로 갖다쓰고 있는 것이다(손명현 교수는 일역본도 참고했을 개연성이 높아서, '선인'과 '악인'의 출처를 거슬러 올라가면 일역본일 가능성도 있다).  

참고로 손명현본에서 이 대목은 이렇게 옮겨졌다: "모방자는 행동하는 인간을 모방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런데 행동하는 인간은 때에 따라 선인, 아니면 악인이다. 인간의 성품이 거의 언제나 이 두 가지 범주에 속하는 것은, 모든 인간은 덕과 부덕으로 그 성품이 구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방의 대상으로서 행동하는 인간은, 반드시 선인이든지, 악인이든지, 혹은 그 중간인 우리처럼 보통 사람이다.(...) 이렇듯 비극과 희극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희극은 보통 사람보다 못한 악인을 모방하려 하고, 비극은 보통 사람보다 나은 선인을 모방하려 한다."(동서문화사, 548쪽) 

그리고 천교수가 참고했다고 하는 바이워터의 대역본(1909)에는 이렇게 옮겨졌다: "The objects the imitator represents are actions, with a agents who are necessarily either good man or bad - the diversities of human character being nearly always derivative from this primary distinction, since the line between virtue and vice is one dividing the whole mankind. It follows therefore, that the agents represented must be either above our own level of goodness, or beneath it, or just such as we are (...) represent men either as better than in real life, or as worse, or as they are.(...) The difference it is that distinguishes Tragedy and Comedy also; the one would make its personages worse, and the other better, than the men of the present day." 

같은 대목에 대해서 바이워터와 함께 예전에 명성을 날렸다는 부처(Butcher)의 번역은 이렇다: "Since the objects of imitation are men in action, and these men must be either of a higher or a lower type (for moral character mainly answers to these divisions, goodness and badness being the distinguishing marks of moral differences), it follows that we must represent men either as better than in real life, or as worse, or as they are.(...) for Comedy aims at representing men as worse, Tragedy as better than in actual life." 

그리고 이상섭 교수가 사용했다는 주요 번역본 중의 하나인 엘지(Else)본은 이렇게 옮긴다: "Since those who imitate man in action, and these must necessarily be either worthwhile or worthless people (for definite characters tend pretty much to develop in men of action), it follows that they imitate men either better or worse than average (...)  Finally, the difference between tragedy and comedy coincides exactly with the master-difference: namely the one tends to imitate people better, the other one people worse, than the average."  

이 세 종류의 영역본만 보더라도 다양하게 번역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보통의 평균적인 사람(상태)보다 잘나고 못난 것을 그린다는 점이 비극과 희극의 차이로 제시된다. 설령 'good man or bad'이라 옮기더라도 여기서 'good man'은 '착한 놈'이라기보다는 '좋은 놈'의 뜻이다. 요컨대, 인간의 행동에서 모방의 대상이 되는 세 가지 유형은 좋은 놈, 나쁜 놈, 어중간한 놈 정도가 되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의 비밀>의 23장의 제목은 국역본에서 '선한 주인공, 악한 주인공, 그리고 그 중간에 놓인 주인공'이라고 돼 있는데, 원저에서의 제목은 'The Good, the Bad, and the Intermediate Hero'이다. 이건 물론 세르지오 레오네의 마카로니 웨스턴(스파게티 웨스턴?) <석양의 무법자>(1966)의 원제 '좋은 놈, 나쁜 놈, 어리석은 놈'(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을 패러디한 것이겠다(나는 다시 보지 못했는데, <석양의 무법자>는 일요일밤에 설연휴 특집으로 방영되었다고). 김지운 감독이 이 원제를 패러디하여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The Good, the Bad, and the Weird)이란 제목을 붙였으니 이왕이면 그런 재미를 살려주는 게 좋겠다. 이 페이퍼의 제목은 그래서 '좋은 놈, 나쁜 놈, 어중간한 놈'이라고 붙였다. <시학>의 취지에 더 맞는 제목이라면 '잘난 놈, 못난 놈, 어중간한 놈'이 될 테지만.   

이미 무엇이 문제인가는 드러난 셈이지만, 이 'the Good'은 중의적이어서 '좋은 놈'도 되지만 '착한 놈' '잘난 놈'이란 뜻도 된다. 그리스어나 영어에서는 이러한 의미가 미분화돼 있는 듯싶은데, 이걸 한국어로 옮기자면 일면만을 부각시키게 되는 난점이 있다. <시학>의 15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 구현에서 중요한 것은 "등장인물이 도덕적으로 선량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이상섭 교수가 'it must be good'을 '선량해야 한다'고 옮긴 대목에서도 이 '난점'을 확인할 수 있다. '도덕적으로'란 한정어가 붙긴 했지만, 같은 문단에서 "Even a woman may be good, and also a slave; though the woman may be said to be an inferior being, and the slave quite worthless"(Butcher)를 "일반적으로 여자는 남자보다 열등한 부류에 속하고 노예는 아주 못돼먹은 부류에 속하지만 좋은 여자, 좋은 노예가 있을 수도 있다."고 옮긴 것과는 잘 안 맞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선량하다(be good)'를 '열등하다'나 '못돼먹다'의 상대어로 쓰고 있기에 그렇다. 일관성을 유지해주자면, 이 경우에도 '잘나다'란 뜻으로 옮겨줘야 하지 않을까. 그리스식 어법으로 '선량하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났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듯싶어서다.  

<스토리텔링의 비밀>의 역자는 <시학>의 2장 서두의 인용을 "시인은 행동하는 인간을 모방하며, 행동하는 인간은 반드시 선하거나 악하다. 인간의 성격이 항상 이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 것은 모든 인간이 도덕과 부도덕에 따라 구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방의 대상인 인간은 우리보다 더 선하거나, 또는 우리보다 선하지 않거나, 또는 우리와 같다."(163쪽)라고 옮겼다. 하지만 이 번역은 천병희본과 마찬가지로, 15장 후반부를 옮긴 "비극은 보통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을 모방하므로, 우리는 나름대로 훌륭한 초상화가를 보기로 삼을 수 있다."(174쪽)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이상섭본은 이 대목을 "비극은 우리 자신보다 잘난 사람들의 모방이므로 유능한 초상화가들의 예를 따라야 할 것이다."(54쪽)라고 옮긴다.

어떤 예인가? "훌륭한 초상화가는 어떤 사람의 형상을 재현할 때 실물과 유사하게 그리되, 실물보다 더 아름답게 그린다. 마찬가지로 시인도 성미가 급한 사람이나 느린 사람, 또는 이와 유사한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그릴 때, 그들을 그러한 특징을 가진 사람으로 그리되, 그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그려야 한다."(<스토리텔링의 비밀>, 174쪽)  

마이클 티어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러한 주문을 잘 구현하고 있는 사례로 <록키>와 <아메리칸 뷰티> 등의 주인공을 든다. "록키는 건달세계에서 벗어나겠다며 이웃에게 허풍을 떨지만, 여전히 정상적인 사람으로 비친다. 영화 <아메리칸 뷰티>에서 레스터 번햄은 중년의 위기를 맞이한 남자지만 안젤라와 잠을 자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본래 모습을 되찾는다. <대부>에서 아주 탁월한 마피아의 아들 마이클 꼴레오네도 기꺼이 가족을 보호하고 존중함으로써 가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고귀하게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이 세 인물은, 자신이 행한 극적 행동과 자신이 지니고 있는 속성을 통하여 비극적 드라마가 갖추어야 할 리얼리즘을 생생하게 보여준다."(174-5쪽)     

 

이 경우 '진지한 드라마'(serious drama)란 뜻의 비극은 잘난 인물의 모방이면서 어떤 인물의 잘난 면에 대한 모방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록키는 건달이고, 레스터 번햄은 무능력한 중년의 가장이며 마이클은 마피아 두목일 따름이지만 이들은 어느 순간 자신의 처지를 넘어서 고귀하게 행동한다. 현대판 비극은 그런 고귀한 행동에 대한 모방이자 묘사이고 재현이다. 물론 이 행동의 모방은 잘 구축된 플롯에 의해서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미 <시학>을 읽은 독자라면 <스토리텔링의 비밀>에서 특별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마치 원작소설을 각색한 시나리오를 읽을 때의 느낌이랄까. 다만 개인적으로 두 가지 정도의 지적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하나는 <아메리칸 뷰티>의 모든 이야기를 묶어주는 '단일한 이야기'가 '하나밖에 모르는 마음'(one-track mind)으로 수렴된다는 점. 그리고 <엔젤 하트>에서 주인공(해리 엔젤)의 시점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플래시백이 그리스 비극에서의 코러스(합창) 역할을 대신한다는 점.   

 

저자의 결론은 이런 것이다. "<시학>은 영원불멸의 시나리오 쓰기에 관한 비결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위한 하나의 출발점이라고 보아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원칙들을 가지고 당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분석해보고 그 원칙들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살펴보라."(227쪽) 그리고 "내 생각에 <시학>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것은 행동을 통하여 인간의 존재조건을 어떻게 그려낼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며, 그것은 지금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수사학을 내뱉는 것이 아닌, 삶의 진리를 '이야기하는' 강력한 방법에 관한 것이다."(230쪽)  

한갓 이야기를 통해서 혹은 드라마를 통해서 '삶의 진리'를 말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에 '노하우'가 있다는 것,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전해주는 비밀이자 놀라움이다. '수 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은 별로 궁금하지 않지만, 이 이야기(뮈토스; 플롯)의 비밀은 정녕 놀라운 것이다. 당신이 한 방 얻어맞은 듯이 잠시 멍해질 정도의 비밀이라고 해도 좋다(당신이 멍해지는 것이 아니라 멀쩡한 정신상태를 유지한다면 상당히 많은 책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시학> 등속의 책은 안 읽어도 되는 것이다). 공부는 그런 놀라움에서 또 시작된다... 

09. 0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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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1-27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영역판 중에서 전 펭귄의 영역판이 좋더군요.^^

로쟈 2009-01-27 10:10   좋아요 0 | URL
영역판을 비교까지 해본 건 아니고, 제 경우 노튼판은 대학 구내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책이었어요...

비로그인 2009-01-27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스트를 보니 티어노의 책이 어떤 책인 잘 알겠군요. 이것으로 그 책 읽는 것을 대신해도 되겠네요. ^^

로쟈 2009-01-27 23:20   좋아요 0 | URL
네, 실전적인 책이어서 시나리오 습작생들에겐 요긴할 듯해요. 교양서로서는 <시학>의 보조교재 정도...

노이에자이트 2009-01-28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만들고 얼마 안 있어서 저 세상 사람이 되었지요.석양의 무법자에서는 리 반 클립이 더 기억에 남아요.텔리비전에서 열번도 더 했을 거예요.

로쟈 2009-01-28 22:17   좋아요 0 | URL
네, 자주 했죠. <원스 어폰 어 타임>은 극장에서 본 때문에 더 인상에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