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마땅한 리뷰가 없어서 올려놓지 못한 책은 엘리자베트 루디네스코의 <악의 쾌락 변태에 대하여>(에코의서재, 2008)이다. 루디네스코는 전기 <자크 라캉>(새물결, 2000)의 저자이며 저명한 정신분석학자. 저자 소개란에는 "프랑스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정신분석학자로 평가받는다"라고 돼 있는데(파리 7대학이라면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동료인 것 아닌가?), 헤겔과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최고'는 '최고'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 있다. 그럼에도 이 책에 대한 관심은 주제보다는 저자에게 이끌린 것이다('악의 쾌락'이란 제목도 유혹적이긴 하지만). 주말 북리뷰들에 예상했던 것보다 자세한 기사가 올라왔기에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8. 09. 27) ‘비천’한 것인가, ‘숭고’한 것인가 도착(倒錯)

사디즘·마조히즘·소아성애증·페티시즘·관음증·노출증·의상도착증·분변음욕증…. 도착(倒錯)은 때로는 ‘비천’하고 때로는 ‘숭고’하다. 퇴폐, 악마성, 인간성 상실, 잔인성 등을 특징으로 하지만 한편으로는 창조적이고 복종을 거부해 숭고함을 보이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도착증이 ‘인류만의 소행’이라는 사실이다. 15세기 프랑스의 질 드 레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인간만이 쾌락을 위해 300명의 아이들을 성폭행하고 잔인하게 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도착증은 일부 ‘사악한’ 인간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게 아니다. 인간 사회 어디에나 존재하는 구조적인 현상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감추려고 하는 우리 자신의 어두운 일면을 보란 듯이 내보이는, 우리의 일부이자 인류의 일부분이다.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정신분석학자로 평가받고 있는 엘리자베트 루디네스코 파리 7대학 역사학과 교수가 한 번도 정식으로 다뤄진 적이 없는 ‘도착의 역사’를 추적하는 이유다.

도착증은 어디서 비롯되었으며 도착자들은 누구인가. 저자가 정의하는 도착자는 악행을 저지를 뿐만 아니라 악에서 쾌락을 느끼고 스스로 그 사실을 의식하는 사람이다. 책은 중세를 시발점으로 도착증과 도착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천사를 조명하면서 도착에 대한 사회의 ‘도착적’인 강박관념을 허무는 작업을 진행한다. 아울러 우리 내면의 감춰진 어두운 부분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성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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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따라 ‘도착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만만치 않다. 온갖 변태적이고 잔악한 행위들을 실천한 도착자들이 잇따라 등장하기 때문이다. 중세 시대 신비주의 성직자들은 배설물을 먹거나 스스로를 학대하는 행위를 통해 비천함을 숭고함으로 바꾸고자 했다. 질 드 레는 아이들을 잡아다가 사지를 자르고 죽어가는 아이들 앞에서 사정을 했다. 18세기의 저주받은 작가 사드는 수음, 펠라티오, 항문성교를 조장한 사상 최악의 패륜아로 일생의 3분의 1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도착을 자유를 향한 해방과 혁명으로 묘사한 위대한 성애문학 작가로 칭송받기도 한다.

책은 특히 19세기 도착자들을 정의하고 통제하기 위해 다듬어진 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계몽주의가 도래하면서 도착증은 ‘공포의 대상’에서 ‘연구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 ‘저주받은 종족’과 치료가능성이 있는 이들로 나눴다. 모든 비정상적인 행위들을 목록화해 단속했고 특히 자연을 거스르는, 즉 번식을 거부하는 자위하는 어린이, 동성애자, 히스테리 여성을 가장 도착적인 인간들로 규정했다. 저자는 이 같은 실증주의적 정신의학 담론들이야말로 강박적이고 나아가 도착적이라고 일갈한다. 아이들의 자위를 막기 위해 발기 방지 상자나 음경의 외과시술 등 기괴하기까지 한 각종 치료법이 유행했던 당시 모습이 또다른 도착이 아니냐는 것. 개개인의 욕망에 대한 사회와 권력, 그리고 과학의 억압도 도착이라는 주장이다.

저자가 보기에 이 같은 억압과 차단의 가장 극단적이고 도착적인 결말이 20세기의 아우슈비츠다. 그곳은 “한 국가가 어떻게 계몽주의의 이상과 정반대 방향으로 작업한 끝에 막다른 길에 다다르는지, 어떻게 과학을 도구로 삼아 인간성 자체를 말살하는지” 보여준다. 놀라운 것은 아우슈비츠의 살인마들이 “끔찍할 정도의 정상상태”였다는 점이다. 저자는 그들의 정상상태가 “도착증 전체를 포괄하는 도착적인 체계에 대한 집착의 증후”라고 지적한다. 때문에 그들은 대량학살을 자행하고도 합리화하거나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이었던 루돌프 헤스는 심지어 “희생자들 스스로가 자기 파괴를 갈망했다”고까지 이야기하는 도착증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면 21세기 우리 사회의 도착증은 어떨까. 소아성애자와 테러리스트가 도착증의 가장 극악한 형태로 지목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소아성애자에게 약물을 처방하려는 시도에서도 ‘도착적인 무언가’를 읽어낸다. 잠재적 범죄의 위험도가 높은 아기들을 식별하려는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근절시키겠다는 과학만능주의의 귀환이자 생체권력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다. 저자는 “유기적인 삶을 차분히 관리하기 위해 악·갈등·운명·무절제를 제거하는 것, 도착증을 해결하겠다는 계획이야말로 새로운 형태의 도착증이 아닐까”라고 묻는다.

결국 책이 ‘도착의 역사’를 통해 사유하고자 하는 것은 점차 도착적인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이 시대다. 저자는 “오늘날 산업기술사회는 때로 신체를 외설적으로 물신숭배함으로써, 때로는 도착증 개념을 폐지하는 청교도적인 의학담론을 통해서” 점점 도착적으로 변해가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특히 “현대의 새로운 안식처”인 양 인기를 모으고 있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문제삼으면서 “투명함과 감시를 예찬하고 자신의 저주받은 부분을 소멸시키는 일에 혈안이 된 사회야말로 도착적인 사회”라고 꼬집는다. 논쟁적인 주장들을 담은 이 책은 우리 내면의 도착적 욕망을 새롭게 호명하면서 우리가 맞서야 할 더 큰 문제는 개인적인 도착자가 아니라 도착적인 체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의 맺음말이 의미심장하다. “우리가 더 이상 도착증의 이름을 붙이지 못하게 된다고 가정하면 숨어 있는 그것의 변형과 마주치는 일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내면에 숨어 있는 어둠을.”(김진우기자)

08. 09. 27.

P.S. 북페이지의 저자 인터뷰도 참고할 만하다. 유튜브에는 인터뷰 동영상들도 올라와 있다(http://kr.youtube.com/watch?v=9D7DqI1U49w 참조). 말은 통하지 않지만 몇몇 자료 화면들을 참고가 될 수 있겠다.

이번 책의 목적은 선과 악에 대한 탐색이더군요. 그 질문 속에서 도착증이 차지하는 위치는 어떤 겁니까?
도착증의 특징은 그것이 악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즐긴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일부 범죄자들은 도착적이지 않습니다. 악을 즐기지 않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딱히 범죄자가 아니면서도 악을 즐기는 도착자들이 있습니다. 그 형상은 얼마든지 역전될 수 있습니다.

질 드 레의 사례에 대해서 오랫동안 언급하시더군요.
질 드 레는 그 역전 가능성의 증거입니다. 대단히 복잡한 인물이죠. 그는 진정한 반항인이었던 잔 다르크에게 매료되어 선을 향해 이끌립니다. 그러나 잔 다르크가 국가의 이상을 구현했음에도 마녀로 몰려 화형당하면서 그 영웅주의의 세계가 무너지자 질 드 레는 그때부터 악에 빠져듭니다. 그는 약 300명의 아이들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살인마로 여겨지고 있죠. 그의 재판을 계기로 사람들은 처음으로 악의 근원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됩니다. 악의 세력을 추궁받은 질 드 레는 자신이 받았던 교육이 원인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인류의 역사 위를 맴돌던 질문이 비로소 제기됩니다. 악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가?

그 질문은 요즘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악은 인간의 타고난 속성일까요?
우리가 속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속성이죠. 동물의 세계에는 악과 도착증이 배제되어 있습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자신의 파괴충동을 선에 대한 이상으로 탈바꿈시켜서 최악의 짓거리들을 저지를 수 있죠. 동물은 결코 나치주의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잔인한 동물이라 해도 악을 즐기지는 않으니까요. 악을 즐기려면 악에 대한 의식을 가져야만 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동물계에 속해 있다고는 해도 동물은 아니죠. 난 우리를 동물과 혼동하는 것이야말로 도착증의 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사드는 별도의 경우죠.
사드는 좀 특별합니다. 하지만 그가 만일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얼마든지 범죄에 빠져들었으리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죠. 사드는 성도착증의 목록을 최초로 확립했을 뿐만 아니라 최초로 도착증에 대한 질문을 이론으로 정립시킨 사람입니다. 그는 법칙을 완전히 전복시킵니다. 계몽시대 인간이었던 그에게 있어서 선이란 지옥에 내동댕이쳐져야 마땅한 것이죠. 사드는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세 가지 정치체제 속에서 살았습니다. 구체제, 혁명기 그리고 제정시대 말입니다. 그는 늘 자신이 살던 시대와 괴리되어 있었습니다. 구체제에서 그는 매춘부들에게 저지른 가혹한 행위에 대해서가 아니라 신성모독과 계간죄로 유죄판결을 받았죠. 그 두 가지 범죄는 혁명을 통해 폐지됩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그는 신에게 맞서다가 로베스피에르가 다시 신권을 확립시키면서 제정시대 체제에서는 정신병원에 갇히는 신세가 되죠. 하지만 사드가 미쳤던가요? 처음으로 사람들은 미치광이와 반미치광이를 구분하게 되죠. 사드와 함께 유럽 의학은 도착증을 점령하게 됩니다. 도착적 행동은 그때부터 악마의 화신으로서 악의 사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 정신건강에 속하게 되죠.

중세에 신비주의자들은 악의 세력을 내세워 신에게 도전했습니다. 18세기에 자유사상가들은 기존의 도덕을 무시했고요.
신비주의자들은 완전히 도착적인 희생의식(채찍질, 오물 삼키기)을 치르며 전대미문의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신에게 자신들의 육체를 바쳤습니다. 반대로 자유사상가들은 쾌락의 도덕으로 질서에 맞섰습니다. 그들은 모든 형태의 자유를 요구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성의 자유를 포함해서 말이죠. 고대부터 도착증은 먼저 성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절대적인 도착증으로 평가되는 계간은 모든 세기를 관통하는 것이었고요. ('저자와의 인터뷰', <리베라시옹> 2007.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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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9-27 11:00   좋아요 0 | URL
저로서는 상당히 반가운(?) 주제로군요.^^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보사르(Bossard) 신부가 "정확히 잔 다르크의 반대"라고 평가했던 질 드 레(Gilles de Rais)의 재판에 관해서는 바타이유도 장문의 서론을 붙여 두툼한 책 한 권 분량의 분석을 남기고 있죠. 루디네스코가 저 책에서 바토리(Bathory) 또한 언급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리뷰를 읽으니까 사드에 대해서라면 저 정도의 평가와 분석은 사실 예전에도 이미 많이 나와 있던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루디네스코의 '새로운' 시각은 어떤 것인지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리베라시옹> 사이트에서 인터뷰를 검색해보니 '계간'으로 번역된 원어는 'sodomie'였군요... 보통 요즘은 '남색(男色)'이라고 옮기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계간(鷄姦)'이라는 용어를 선택하신 <리베라시옹> 인터뷰 번역자의 언어관이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또한 기사를 보니까 마지막 두 문장("고대부터 도착증은 먼저 성적인 영역에... 모든 세기를 관통하는 것이었고요.")은 루디네스코의 말이 아니라 인터뷰어의 언급이더군요(그리고 인터뷰 전체를 번역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요...).
궁금한 점: 사드의 초상 위에 있는 그림은 '푸른 수염'인가요...?

로쟈 2008-09-27 12:50   좋아요 0 | URL
네, '푸른 수염'입니다. 원기사에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인터뷰 번역에 대한 지적이 재미있네요. 저는 '계간'이 무슨 뜻인가 했습니다.^^

람혼 2008-09-27 16:35   좋아요 0 | URL
그림은 처음 보는데 아무래도 분위기가 '푸른 수염'일 것 같아 여쭤보았습니다. 이상하게도 저 그림이 매우 '정겹게' 느껴지네요... 갑자기 머릿속으로 '계간지(鷄姦紙...?)'라는 단어를 만들어보고는 저 혼자 또 '살짝 맛간 사람'처럼 즐겁게 웃었더랬습니다.^^

로쟈 2008-09-27 23:26   좋아요 0 | URL
혼자서도 심심하지 않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9-27 16:08   좋아요 0 | URL
계간,남색...다들 고색창연한 단어들이네요.요즘은 남색이란 단어도 잘 안 쓰던데...동성연애라는 단어보다 운치가 있죠?

람혼 2008-09-27 16:30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동성애"는 "homosexuality"의 번역어로 굳어진 경향이 있기도 하거니와, 또한 그보다 더 세밀히 보자면, 단어의 '의미'뿐만 아니라 그 단어가 지닌 '역사'와 '유래'를 고려했을 때, "sodomy"는 단순히 "동성애"라는 지극히 '현대적'이고 '중립적'인 단어로 옮기는 것보다는 '남색', '비역' 등의 단어로 옮기는 것이 보다 번역의 '층위'에 더 합당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그래도 "계간"은 참 '色다른' 번역어라는 생각은 듭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9-27 22:23   좋아요 0 | URL
맞아요.비역살이란 단어에서 나온 비역질도 있죠.엉덩이 살을 비역살이라고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