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피해가 다 집계되고 있지 않은 중국 쓰촨성의 대지진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말이 없다. 부실로 지어진 학교건물 때문에 학생들의 희생이 더 커졌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이번 참사는 자연의 대재앙을 미리 예견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와 관련되는 게 아닌가 싶다. 희생자들에게는 그저 애도의 뜻을 표할 따름이다. 이번 지진과 무관하게 중국에 대한, 그리고 중국소설에 관심을 점차 갖게 되는데, 최근에 눈길을 끄는 중국 현대소설들이 소개되어 오랜만에 소설에 대한 독서욕을 부추긴다.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으로 나온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와 <화장실에 관하여>가 그 책들인데, 한겨레21에서 읽은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참고로 말하자면, 줄거리도 소개되고 있다). 나는 칙릿 따위가 아니라 이런 소설들이 소설다운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한겨레21(08. 05. 15) 혁명보다 섹스

소설 시장이 시들하다. 몇 년째 상종가를 치던 일본 소설마저 매물이 줄어든 모양새다. 하루키와 류를 제치고 현해탄을 넘어오던 일본 신세대 작가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그래서인지 최근 중국 소설 출간이 늘어나는 추세는 출판사들의 고뇌를 떠올리게 한다.

섹스를 통해 깨달은 혁명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국에서 중국 소설은 문화혁명 이후의 작가들, 특히 위화, 쑤퉁, 모옌 등을 중심으로 소개돼왔다. 올해부터는 이들을 벗어나 ‘알려지지 않은’ 중국 현대작가들이 소개되고 있다. 웅진지식하우스는 5월부터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을 내놓기 시작했다(일반적으로 중국의 ‘당대문학’이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즉 사회주의 체제가 수립된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문학을 말한다). 일단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1만원)와 <화장실에 관하여>(예자오옌 지음, 조성웅 옮김, 1만1천원)가 나왔고 한동, 왕강, 판샤오칭, 마위웬, 류전원 등의 작품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출판사 쪽은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 위주로 선별했다고 밝혔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2005년 광저우의 문예지 <화청>에 발표된 직후 중국 당국에서 판금 조처를 당하며 유명해진 책이다. 중국 문단에 꽤 큰 충격을 몰고 왔는데, 문화혁명을 과장된 언어로 비꼬는 ‘괴탄문학’의 대표작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소설의 내용은 판금당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다. 마오쩌둥의 명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성애의 최음제 역할을 하는 아이러니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혁명기에 인민해방군의 모범 병사 우다왕은 사단장 사택에서 취사를 맡는 공무분대장으로 임명된다. 이 자리는 우다왕에겐 간부가 되는 출세의 사다리다. 그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신조를 철썩같이 받들고 마오 주석의 어록을 줄줄이 외우며 사단장을 위해 일하는 것이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길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 가지 방해물만 없었다면 우다왕은 계속 이 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그가 채소를 따거나 계란탕을 끓일 때 땀에 젖은 등을 은밀히 쳐다보는 사단장의 젊은 아내, 류렌만 없었다면.

류렌은 우다왕에게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글이 적힌 팻말이 식탁이 아닌 다른 곳에 놓여 있으면, 침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오라고 명령한다. 팻말이 계단 아래에 올려져 있던 날, 우다왕은 얇은 잠옷이 바람에 날릴 때마다 드러나는 눈부신 허벅지의 기습을 받는다. 이때부터 우다왕은 류렌에 끌리는 자신의 본능을 혁명 의지로 이겨보려는 승률 제로의 전쟁을 시작한다. 마침내 류렌이 자신을 사단장 막사에서 내치려는 날 밤, 우다왕은 류렌의 아름다운 몸을 끌어안는다. 용서받지 못할 두 연인은 사단장이 베이징에 가 있는 동안 모든 문을 잠그고 알몸으로 섹스를 거듭하며, 마오의 모든 ‘성물’을 때려부수는 기행을 벌이게 된다.

홍보 카피처럼 <색, 계>보다 위험하고 <화양연화>보다 매혹적인지 판단하기는 어려우나, 이 소설은 무척 재미있다. 작가는 혁명의 구호를 성애의 구호로 타락시키면서 그것이 얼마나 텅 빈 기호인지를 폭로한다. 혁명은 시대의 가해 행위였다. 우다왕이 매일처럼 외우고 다닌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중국 민중의 빈곤과 계급 문제를 은폐하고 있다. 우다왕이 혁명을 믿는 이유는 숭고한 대의 때문이 아니라 밥과 출세 때문이었다. 그는 사랑을 통해 이 진실을 발견한다. 혁명의 시간은 지독한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옌롄커는 ‘한국 독자들께 보내는 편지’에서 “(이 소설은) 저의 창작에서 그렇게 돌출된 위치를 차지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운명 때문에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놓이고 말았습니다”라고 말한다. 인상적인 고백이다.

<화장실에 관하여>는 1980년대 중반에 등단한 예자오옌의 중·단편을 묶었다. 알려진 대로 1980년대는 중국 문학이 문화혁명의 잔해를 헤치고 도약하던 시대다. 문화혁명 이후의 소설은 혁명의 상처를 핥는 것부터 시작한다. ‘상흔 문학’과 ‘되돌아보기 문학’(반사문학)이 그것이다. 이어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 아래 과감한 형식 실험을 시도하는 ‘선봉문학’이 등장했다. 한국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위화와 쑤퉁의 출발점도 선봉문학이다. 선봉문학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주로 개인의 일상을 냉정하게 묘사하는 ‘신사실주의’도 나타났다. 예자오옌의 소설들을 통해 신사실주의 소설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표제작 ‘화장실에 관하여’는 블랙 유머가 돋보인다. 고등학교(중학)를 졸업하고 하방해 공장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화자. 같은 공장에 양하이링이라는 어여쁜 아가씨가 들어온다. 어느 날 그녀는 동료들과 상하이 연수에 나선다. 연수 마지막날 상하이 시내를 구경하던 어여쁜 양하이링은 심한 요의를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인심 나쁜 상하이에선 화장실을 찾기가 힘들다. 처음엔 말하기조차 부끄러워하던 그녀는 미친 듯 “화장실이 어딨어요, 어딨나구요!”라고 소리지르는 ‘수위’에까지 이르고 만다. 결국 그녀의 바지 한 부분에서 조금씩 물이 떨어진다.

이 사건은 양하이링에게 일생의 수치요 상처였다. 그때, 공농병 대학생(대학에 뽑힌 농민과 노동자 자녀들) 시대는 가고 대학 입시가 부활했다(1977년). 양하이링은 미친 듯 공부해 대학에 합격한다. 화자도 이 시기 그녀와 같이 공부해 대학에 들어간다. 양하이링이 대학에 간 이유가 촌뜨기에겐 소변마저 허락하지 않는 중국 대도시의 화장실 때문이었다면, 화자가 대학에 간 이유는 전혀 다른 화장실 때문이다.

중국 현대사와 화장실의 관계
문화혁명이 가장 치열했던 시절, 원래 지식인이던 화자의 부모는 우파로 몰렸다. 그들은 매일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자백서를 써야 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자신이 청소한 화장실 한 곳이 깨끗하지 못하다는 호통을 듣고 달려간다. 그런데 똥통에서 금빛 찬란하게 빛나는 달걀을 발견한다. 아버지가 막대기로 힘껏 밀자 달걀은 데굴데굴 굴러서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한 여성 간부가 일을 보다가 자신의 오줌이 달걀을 때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뛰쳐나왔다. 누군가 “해방 이전, 우리 빈민들은 배불리 먹지 못했다. 이는 계급투쟁의 새로운 방향이다!”라고 썼다. 계급의 적을 찾지는 못했으나 결국 사람들이 달걀을 조사하기 위해 맛을 보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화자가 기를 쓰고 대학에 입학한 것은 우파의 자식이었기 때문이다. 예자오옌은 화장실을 통해 문화혁명의 일상과 그 이후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이 소설집에 실린 ‘연가’는 어느 중산층 부부의 파경을 가만히 관찰하고 있고, ‘추월루’와 ‘대추나무 이야기’는 세계대전과 내전으로 점철된 역사를 개인의 삶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옌롄커의 소설 첫머리. “삶의 수많은 진실들은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 허구라는 교량을 통해 우리는 진실을 발견한다. 중국 소설은 다른 질감의 고통과 절망을 보여준다. 문화혁명의 상처, 톈안먼에서 목도한 이상의 붕괴, 자본주의와 빈곤, 애국주의로 결탁한 국가와 자본, 그리고 삶. 중국 소설은 우리가 거쳐 지나간, 혹은 한 번도 도달하지 않은 역사의 대지에서 자신의 향기를 뿜고 있다. 그것을 음미하는 건 침향을 맡는 것보다 행복한 일이다.(유현산기자)

08. 05. 20.

P.S. 더불어 귀갓길 전철에서 읽은 지진 관련기사 하나도 옮겨놓는다. 32년전 탕산의 대지진과 이번 지진을 비교하면서 중국 당국의 대응 방식 변화를 지적하고 있다. 자연의 재앙은 변한 게 없지만 그간에 중국은 많이 달라졌다. 특히 원자바오 총리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현장지휘는 무릇 정치가들의 귀감이 될 만하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 것이다.

경향신문(08. 05. 19) 탕산 대지진과 원촨 대지진

1976년 7월28일 새벽 3시42분. 중국 허베이성 탕산시 일대를 규모 7.8의 강진이 강타했다. 베이징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인구 70만명의 조그만 공업도시는 단숨에 폐허로 변했다. 중국은 당시 학교마저 문을 닫았던 문화대혁명 기간 중이었다. 실권을 잡고 있던 ‘4인방’은 지진 발생 사실조차 숨겼다. 외부에 진실이 알려진 것은 그로부터 3년 뒤인 79년이었다. 지진 발생 2개월 만에 마오쩌둥이 세상을 떠났고, 덩샤오핑이 마오의 뒤를 이어 제1인자가 된 화궈펑을 제치고 실권을 잡은 뒤였다. 중국은 24만2769명이 숨지고 16만4851명이 부상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탕산 대지진이 일어난 지 32년 만인 지난 5월12일, 이번에는 쓰촨성 원촨현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규모는 7.9로 탕산 대지진을 능가했다. 탕산 대지진과 다른 점은 대낮인 오후 2시28분에 발생한 것이다. 학교마다 오후수업이 한참 진행 중이어서 학생들의 피해가 컸다. 또 탕산은 평지였던 반면 원촨 일대는 히말라야 지진대 옆에 자리잡고 있는 고산지대여서 구조작업이 한층 힘들었다. 구조대원들이 피해지역에 진입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으니 희생자가 늘 수밖에 없었다.



탕산 대지진 때와 가장 다른 점은 중국 지도부의 적극적인 대응이다. 베이징 지질대학 출신의 원자바오 총리는 대지진 발생 1시간 만에 전용기를 타고 사고현장으로 달려갔다. 기자는 처음에는 산간지방에서 일어난 단순한 지진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원 총리가 현장에 갔다는 것을 보고 일이 심상찮음을 알았다. 원자바오 총리는 쓰촨성의 성도인 청두에서 지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원촨, 두장옌, 베이촨 등 재해 지역을 직접 찾아가 진두지휘했다.



지금은 수리공학과 출신의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중국 국영방송인 CCTV는 지진 발생 1시간 뒤부터 24시간 재해방송에 들어가 지진 발생 1주일째인 지금까지도 계속해 인명 구조 및 복구작업 소식을 생방송으로 전하고 있다.

중국의 적극적인 정보 공개로 중국 국내에서 온정의 손길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유언비어가 나도는 것도 막을 수 있었다. 2003년 4월 사스 발생 당시 사실 자체를 숨겼다가 유언비어가 난무하면서 결국 사람은 사람대로 죽고, 망신은 망신대로 당했던 교훈을 제대로 살린 셈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이제는 정보를 통제하는 것이 어려워진 측면도 있지만 말이다.

올해는 78년 시작된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이 30주년을 맞는 해이다. 난국을 맞아 중국 전체 국민이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아파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개혁·개방정책의 성과이다. 개혁·개방 결과 경제가 급성장했고, 국력 증강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이 과감하게 건국 이후 최대의 국난을 외부에 공개토록 한 것이다. 당장은 어렵지만 13억 중국 사람들은 ‘한 집안 식구’가 됐다. 닫고 감추는 것보다는 열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다.(홍인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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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05-20 11:52   좋아요 0 | URL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를 읽었기 때문에 참 반가운 페이퍼예요. 그런데 형광펜으로 칠하신 부분의 인용처럼 저는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던데요. 이레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옷을 벗은 채로 지내며 모든 성물을 때려부수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었지만 말입니다.

류렌을 이겨내려고 할때, 류렌의 유혹을 이겨냈다고 믿었을 때의 우다왕에게 기다리고 있는건 류렌의 유혹에 굴복하는 것 뿐이더군요. 그 쓸쓸함과 좌절은 곧 모든 열정앞에 지워지고 말지만.

로쟈 2008-05-20 15:04   좋아요 0 | URL
벌써 읽어보셨군요.^^ 재미란 게 편차가 있으니까요. 저는 6월에나 읽어볼 참입니다...

소경 2008-05-20 23:02   좋아요 0 | URL
<인민을 위해 복무하거라>, <색계>, <화장실에 관하여> 그리고 <원자바오>도요. 다 읽고 싶네요. 얼른 레포트건 발표건 시험에서 잠시나마 해방되었으면..... 쪼금만 월급은 포틀래치처럼 책으로 불쌀라야 버려야 겠네요 ^^:

로쟈 2008-05-20 23:07   좋아요 0 | URL
우리의 가여운 월급들입니다.^^;

philocinema 2008-05-21 16:49   좋아요 0 | URL
성을 소재로 했지만 "왜설적"이기보단 "예술적" 감흥을 주는 소설 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성애"가 만인에게 강요되는 "혁명"의 당위를 뛰어넘어 버리는 바를
문학적으로 잘 표현해낸 것 같더군요.

여하튼 어제 반나절 읽는동안 오금이 저려와도 자리를 뜨지 못하게 하는 힘을 가진
꽤 괜찮은 소설이었습니다.

일독을 권할만 합니다.

로쟈 2008-05-21 17:03   좋아요 0 | URL
사실 제목만으로도 읽을 만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입니다.^^

섬나무 2008-05-21 22:06   좋아요 0 | URL
갑갑한 현재에서 로쟈님의 취향에 걸맞는 품격있는 위락도구로 보이네요.
모든 것을 책으로 해결하는 로쟈님!^^
출구가 아닌 것 같은 그 출구가 가장 안전한 출구 같습니다.
책에 의한 출구. 앎에 의한 출구.

로쟈 2008-05-22 00:49   좋아요 0 | URL
문을 살짝 열어보는 만큼의 '출구'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5-22 00:45   좋아요 0 | URL
<우상과 이성>에선 당산 지진 당시 현지 중국인들이 보여준 질서정연한 모습을 칭찬했는데 이젠 당산 지진도 이런 식으로 이번 지진과 비교하는 기사가 올라오는군요.당산에 대한 우리의<기억>역시 달라졌기 때문일까요?

로쟈 2008-05-22 00:47   좋아요 0 | URL
24만이 죽었는데, 질서정연했다는 건 넌센스 아닐까요? 그냥 망연자실 해서들 앉아있었겠지요...

노이에자이트 2008-05-22 01:08   좋아요 0 | URL
그런 대참사였는데도 이웃을 돕는 모습에 감명 받았다고 해서 리영희 선생이 그 뒤로도 많이 인용한 사건이었어요.리 선생은 중국이 개방정책을 취한 뒤로 그런 공동체 정신이 없어졌다는 글을 쓰기도 했지요.

로쟈 2008-05-22 01:14   좋아요 0 | URL
'당산 시민을 위한 애도사' 말씀이신가요? 그 공동체 정신의 이면이 지진의 발생 사실조차 비공개로 숨긴 거라면 무엇을 애석하게 여겨야 할지 모호해지는 듯하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5-22 01:32   좋아요 0 | URL
글쎄요.이제 그런 참사를 숨긴 사실에도 눈을 돌리자는 생각도 하게 되었으니 우리의 시각이 더 균형잡히게 되었다고 해야 되겠죠? 여하튼 당산 지진은 리선생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리 선생은 당산 지진 당시 언론 통제가 있었다는 사실은 지적하지 않았죠.

로쟈 2008-05-24 14:33   좋아요 0 | URL
균형을 잡기 위한 것이긴 했지만 좌편향(이상화)도 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