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관련기사 두 편을 옮겨놓는다. 지난주에 옮겨놓으려고 한 것이 며칠 미뤄졌다. 최근 첫 산문집과 함께 장편소설을 펴낸 작가 김원우씨와의 인터뷰기사, 그리고 문단의 '칙릿' 바람에 관한 동향기사이다. '젊은 여성'이 아닌지라 내가 더 공감하게 되는 쪽은 물론 중년 작가의 '줏대'이다.

경향신문(08. 03. 19) 김원우 “중산층도 크게 보니 떠도는 난민의 삶이더라”

작가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6시면 도시락을 싸들고 연구실로 향한다. 샐러리맨처럼 꼬박 12시간을 앉아 글을 쓴다. 안식년을 맞은 지난해에도 1년 내내 하루 10장 이상 글을 썼다. 효율과 능률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첨단의 시대에, 그는 볼펜을 꾹꾹 눌러 400자 원고지에 글을 쓴다. 오후 6시가 되면 가방을 꾸려 연구실을 나와 맥주를 한 잔 하거나, 집에 돌아와 음악을 듣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휴대폰도 없고 컴퓨터도 사용할 줄 모르는 작가 김원우(61). 그러나 정치하고도 핍진한 언어로 가득 찬 그의 문학은 한국문학사에서 누구도 흉내내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자리에 서 있다. 지난 수년간 궁구하듯 써내려간 장편소설과 산문집을 들고 그가 연구실 밖으로 나왔다.

‘젊은 천사’ 이후 3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강)은 1990년대 이후 그의 문학의 핵심을 이루는 ‘난민의식’을 다루고 있다. 소설은 지방 국립대 의대교수이자 외과의로 평생을 보낸 뒤 미수를 넘기고 세상을 뜬 삼팔따라지, 박성득의 생애를 복원해나가는 이야기다. 추모집을 준비하던 제자 여박사와 최원장은 박교수의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마치 일부러 없애기라도 한 듯 그의 경력을 증빙하는 자료가 일절 남아있지 않고, 유족과 후학의 증언을 모아도 생애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자 망연자실한다. 겨우 그러모은 정보로 망자의 실루엣을 그려보지만, 해방 전후와 6·25 동란 당시의 행적은 오리무중이다. 자기 보신에 철두철미하고 믿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칼 실력뿐이었으며, 매우 과묵했고 반찬은 장아찌와 고추장이 다였고 빨랫감도 만들지 않을 정도로 온갖 것을 아껴 썼으며 외부에 대한 의존도가 지극히 낮은 인물.

생애를 온전히 복원할 수 없는 이 독특한 인물은 동시에 ‘어떤 세대의 슬픈 초상’의 보편적 실체이기도 하다. 월남 2세인 최원장이 복원해낸 박성득의 면면은 마찬가지로 삼팔따라지였던 부모와 외삼촌 등 기억이 숭덩숭덩 잘려나간 그 세대 일반의 모습이었던 것. 박성득은 근대 이후 전쟁을 비롯한 갖가지 이유로 고향을 떠나 부박하게 세상을 떠돈 한국 내 ‘이산자’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어차피 인생이라는 게 난민의 삶이고, 부평초 같은 것 아닌가요? 객지에서 떠돌아다니면서 사는 삶도 난민의식의 또 다른 행태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인생을 더 큰 눈으로 조명하게 됩디다. 그런 면에서 주제가 다른 쪽으로 전화되었다고나 할까. 10여 년 전에는 중산층 부르주아에 대한 자아비판, 자기투영 등을 다뤘지만 10년 전부터는 난민 쪽으로 기울었지요.”

박성득의 생애를 독자들이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세 편의 이야기로 구성된 소설은 이중액자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는 데다 각각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화자가 다르다. 독자에게 인내를 요하는 작가의 문장도 여전하다. 참을성 없는 젊은 독자라면 진저리내며 팽개칠 만큼 뜻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단어들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등장한다. 과거부터 사전을 뒤적이는 취미를 갖고 있는 작가는 고르고 고른 단어들로 문장을 채웠다.

요즘 독자들에게 너무 어려운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요즘의 문학이 너무 뒤틀려있고 왜곡돼 있는 게 분명하다”며 “전세계적으로 문학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강렬한 자극을 주는 극단적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문학은 사람으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게끔 정도를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작품이 비록 시대와 불화하고 있을지라도 별로 화해할 생각이 없다는 단호한 말투는 어쩐지 그의 문장과 닮았다.

횡보 염상섭의 문체와 닮았다는 세간의 지적에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횡보의 문체하고는 많이 다를 겁니다. 횡보는 전통적인 서울 말씨를 발굴해내고 사전에 등재돼 있지만 사어화 돼가는 단어를 살려내 정확하게 썼는데, 그에 비해 나는 경상도 출신인 데다 횡보의 자연주의적 경향과는 차이가 나거든요. 만연체를 조립하는 데 성의를 다한다는 점은 비슷하겠지. 종결어미를 바꾸고 절대 똑같은 단어를 쓰지 않는 등 문장 축조력에서는 많이 따르려 하다보니 영향을 받았다면 받았을 겝니다. 언어라는 게, 문장이라는 게, 결국 유동성과 세속성이거든요. 당대 세속에 질펀하게 깔려 있는 걸 안 받아들이면 생동감이 없어지니까 진부해지지. 이건 어떤 작가라도 무시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일까? 등단 30여 년 만에 처음 펴낸 산문집으로 이번에 함께 출간된 ‘산책자의 눈길’(강)은 염상섭의 문학 연구를 다룬 글을 꽤 묵직한 분량으로 싣고 있다. 총 3부로 구성된 책에서 그는 ‘문단의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처럼 문장론과 문학상, 문예지와 원고료 등 오늘날 한국 문단의 현실에 대해 가감 없이 비판한다. 2부는 횡보 소설의 근대성과 함께 횡보를 중심으로 한국 소설의 성립 과정을 조명한 글들을 모았다. 3부는 각각 문학평론가 신수정씨와 시인 김정환씨의 대담 형식으로 자신의 문학뿐 아니라 결혼제도와 정치의식 등 당대 문학의 화두를 함께 다뤘다.

“서문에도 썼지만 처음으로 내 전공인 소설이 아닌 것을 내게 됐어요. 오히려 책을 내서 세상을 더 흐트러뜨리는 일이 아닌가 했는데 막상 나온 책을 보니 나름대로 꽤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소설? 당분간 못 쓰지요. 하루 12시간 이상 집중력을 요하는 건데. 방학이나 돼야 쓸까?”(윤민용기자)

경향신문(08. 03. 11) 소설, 젊은 여성에 눈돌리다…‘칙릿’ 잇따라 공모 당선

문단에 칙릿(chick-lit) 바람이 거세다. 거액의 고료를 내걸고 출판사와 문예계간지들이 공모한 장편소설상을 칙릿풍의 장편소설이 휩쓸었다. 최근 출간된 서유미씨의 ‘쿨하게 한 걸음’(창비)과 이달 안에 출간될 우영창씨의 ‘하늘다리’, 백영옥씨의 ‘스타일’이 바로 화제의 소설들이다. '쿨하게 한 걸음’은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이고, ‘하늘다리’는 계간 ‘문학의 문학’이 5000만원을 내걸고 공모한 제1회 장편소설 공모당선작이다. ‘스타일’은 세계일보가 1억원 고료를 내걸고 공모하는 ‘세계문학상’ 제4회 수상작이다.

이들 소설은 모두 30대 초반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들의 일과 사랑, 삶을 그려가고 있다. ‘쿨하게 한 걸음’은 요즘 30대 여성의 관심과 고민을 따라간다. 크리스마스를 목전에 두고 남자친구와 헤어진 30대 초반의 직장인 연수는 구조조정에 인수설까지 나돌자 회사를 그만둔다. 소설은 자신의 길을 고민하면서 새로이 영화공부를 시작한 연수와 은퇴 후 새 일자리를 찾는 아버지, 갱년기를 맞은 엄마, 30대가 돼서야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촌, 직장과 결혼 사이에서 고민하는 친구들 등 주변인물과의 소통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고민을 담담히 그려낸다.

'하늘다리’와 ‘스타일’은 좀더 감각적이고 트렌디하다. ‘하늘다리’는 31세의 증권사 대리 맹소해를 주인공으로, 숨가쁘게 돌아가는 증권사의 일상과 재테크 세태, 동성애와 유부남과의 사랑 등 좀더 자극적인 소재를 등장시킨다. 패션잡지에서 일하는 30대 초반 여기자의 좌충우돌 일상을 그린 ‘스타일’은 유행에 민감하고 가벼움과 재미를 쫓는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소설이다. 유명 배우의 인터뷰를 따내기 위해 골몰하고, 까다로운 음식비평가 ‘닥터 레스토랑’의 정체를 탐색한다는 얼개에 일과 사랑, 패션계의 치열한 경쟁, 사내 권력관계, 명품과 음식이야기 등을 감각적인 문체로 엮었다.

작가 서유미씨와 백영옥씨가 30대 초반의 여성으로 자기세대의 이야기를 다룬 것과 달리 그간 시인으로 활동해온 우영창씨가 50대 남성작가라는 점도 이색적이다. 이처럼 장르문학의 일종인 칙릿이 ‘문학상’이라는 이름을 달고 좀더 공격적으로 대중 앞에 나서고 있다. 칙릿이 대중성과 문학성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시선을 의식한 듯 백영옥씨는 당선 인터뷰에서 칙릿을 옹호했다. “내가 쓰고 싶은 건 번드르르한 트렌드가 아니라 현대 도시인들의 삶”이며 “칙릿이란 게 ‘된장녀’ 부류들만 나오는 가벼운 장르가 아니다. ‘오만과 편견’을 쓴 제인 오스틴도 당대 여성의 삶을 솔직하게 그렸다”고 설명했다.

우영창씨도 “사랑과 일, 이 두 가지는 도시의 미혼 여성에겐 현실의 굴레이자 삶의 추진력이기도 하다”며 “작금의 도시 직장 여성들의 삶은 칙릿 소설이 함부로 예단할 만큼 가볍지가 않고 그 내부엔 개인의 실존적 고뇌와 회의, 그리고 미래에 대한 지속적인 불안 등이 자리잡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심진경씨는 최근 문단의 이 같은 칙릿바람의 원인을 “자본에 의한 문학의 지배”로 요약했다. 외국 칙릿 소설이나 영화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20~30대 여성들이 일정한 독서소비층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이들을 겨냥해 쓰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이 있는 출판사, 언론사들이 고액의 상금을 내걸고 상을 만든 것도 아직까지는 소설 독자들이 있고, 문학이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상업적 이유가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심씨는 또 문학의 영향력 감소를 중요한 요인으로 들었다. 젊은 여성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소비문화를 잘 드러내주는 칙릿은 문학 내부에서 시작된 장르가 아니라 영화, 드라마, 광고 등의 영향을 받아 나타난 새로운 장르문학이라는 점에서 문학이 다른 예술장르의 영향을 받아 생성되는 현대의 경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독자를 잃은 한국문학이 계속 추구할 방향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칙릿
젊은 여성을 뜻하는 속어 ‘chick’에 문학을 뜻하는 ‘literature’를 결합한 신조어. 젊은 도시여성들의 일과 연애, 취향 등을 다루는 소설들을 일컫는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영미권 문학에서 하나의 흐름을 형성했으며, 국내에 본격 소개된 것은 소피 킨셀라의 소설 ‘쇼퍼홀릭’ 시리즈를 통해서다. 여기에 20~30대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와 미국 드라마가 함께 인기를 얻으면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 칙릿이 장기간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윤민용기자)

08. 0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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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03-27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다리]는 검색했는데 책이 안떠요. 혹시 아직 출간되지 않은 작품인건가요?

다락방 2008-03-27 15:29   좋아요 0 | URL
아, 다시 자세히 읽어보니 이달안에 '출간될' 이라고 써있었군요 --

로쟈 2008-03-28 00:11   좋아요 0 | URL
자문자답이시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4-07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자의 눈길 153쪽에 버나드 쇼가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는 김원우 씨의 말은 오류.카알라일의 영웅 숭배론에 나오는 말인데요.그리고 또 하나.토마스 만의 펠릭스 크룰의 고백을 읽었다면서(물론 고교시절에 읽었다니 오래되어 그럴수도 있지만)토마스 만의 섹스 묘사가 너무 간접적이라고 했는데 제가 읽은 바로는 엄청나게 노골적입니다.주인공 크룰도 난봉군이요,여자등장인물 들도 유럽의 옹녀들입니다.재밌긴 재밌어요.호텔 종업원인 청년의 연애 난봉기라고나 할까요.군대 면제받으려고 용을 쓰면서 끝내 성공하는 과정은 압권입니다.

로쟈 2008-04-07 21:37   좋아요 0 | URL
벌써 읽으셨군요! 오류는 저자에게 전달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