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식의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창비, 2006)을 잠깐 읽었다(이하에서는 그냥 <프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적는다).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돌베개, 2007)와 <주기율표>(돌베개, 2007)가 한달쯤 후에 나오니까 레비에 관한 책으로는 최초였을 테다. <이것이 인간인가>의 말미에도 서경식의 '작품해설'이 포함돼 있다. 그의 개인사의 곡절까지 포함해서 이래저래 두 사람의 이름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아무려나 <이것이 인간인가>와 <프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같이 읽게 된 셈인데, 잠깐 읽으면서 받은 인상을 몇 자 적는다. 먼저 판권 표시로 보아 <프리모 레비를 찾아서>의 일본어판은 1999년에 출간됐는데, 국역본 책갈피에는 이 책으로 "2002년에 일본 이딸리아 문화원에서 시상하는 마로꼬뽈로상을 받았다"고 돼 있다. 몇 년이 지나서 상을 주는 법도 있나 싶었지만, 역시나 그건 아닌 듯하다. <시대를 건너는 법>(한겨레출판, 2007)의 책갈피에는 "2000년에 <프리모 레비로의 여행>으로 이탈리아문학원이 주는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고 돼 있는 걸 보면(이탈리아문학원?).

'마르꼬뽈로상'이나 '마르코폴로상'이나 어차피 같은 상일 테니까 서로 다른 연도에 다른 곳에서 상을 받았다는 건 말이 안된다. 짐작컨대, 2000년이탈리아 문화원이 주는 마르코폴로상을 받았을 것이다. 참고로 얼마전에 나온 이마미치 도모노부의 <단테 '신곡' 강의>(안티쿠스, 2008)도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그 해의 '마르코 폴로 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책이다(일어본 초판은 2002년에 나왔다).   

 

 

 

 

'프리모 레비로의 여행'은 1996년 1월 1일 밀라노에서 토리노로 향하는 보통열차 안에서 시작된다. 그리고는 예의 미술관 이야기다. "이딸리아에 도착하고 10일이 지났다. 피렌쩨는 따뜻했지만 밀라노에는 눈이 내렸다. 그저께에는, 여행할 때면 언제나 그랬듯이, 서둘러 미술관을 돌아보았다. 밀라노에는 이번이 세번째지만, 근대미술관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다. 마리노 마리니의 컬렉션이 충실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예상 밖의 수확이었다."(14쪽)

사실 서경식이란 이름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도 <나의 서양미술 순례>(창비, 1992/2002)였다. 그래서 내게도 '디아스포라의 지식인'이라기보다는 '미술 에세이스트'로서 먼저 각인되었다. 이게 보통의 미술평론들과는 좀 다른 종류의 에세이들이긴 하지만. 그런 사정과 무관하게 인용한 대목에 눈길이 간 것은 '마리노 마리니'라는 이탈리아 조각가의 이름 때문이다. 기마상 조각으로 유명한 조각가 말이다. 

현대조각에 조예가 있는 것이 아님에도 '마리노 마리니'란 이름을 기억하는 건  바로 작년 이맘때 국내에서 대규모 전시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비록 초대권까지 받아놓고 가보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서경식은 밀라노의 '브레라(Brera) 미술관'에도 찾아가 마리니의 작품들을 관람한다. 그곳에도 "머리와 네 다리를 쭉 편 말의 등에서 기수가 극한까지 뒤로 몸을 젖히고 있"는 마리니의 대작이 있다고 한다(마리니의 기마상은 말년으로 갈수록 기수가 말을 제어할 수 없어서 점점 더 몸을 뒤로 젖히며 그만큼 '고뇌'가 깊어간 것을 뜻한다고).

"하지만 그날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기마상이 아니었다. 자칫하면 지나칠 뻔한 작은 남성 조각상이었다. 'Il miracolo'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기적이라는 의미일까. 삐에로인 듯하지만 가슴에 십자가를 건 것을 보면 성직자일지도 모른다. 작은 머리. 비스듬하게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 가냘프고 기다란 목선. 조금 익살맞은 그 모습은 애달프고 간절한 평화 그 자체였다. 나는 이제까지 여러 곳에서 마리니의 작품을 봤지만, 이 작품에 담긴 것과 같은 고요함과 깊은 정신성을 발견한 적은 없다."(14-15쪽)

호기심에 마리니의 작품을 찾아봤지만 'Il miracolo'란 제목이 붙은 그림만이 눈에 띈다. '애달프고 간절한 평화 그 자체'를 보기 위해선 밀라노에 가야 할 모양이다. 한편 저자가 그 밀라노에서 토리노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은 건 순전히 "만난 적이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인물의 무덤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물론 독자가 곧 알게 되지만 그 무덤의 주인이 바로 프리모 레비이다(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서경식은 2002년 봄에도 토리노와 아유슈비츠를 재차 방문한다. '프리모 레비의 자살'을 다룬 일본 NHK의 특집 다큐멘터리가 그의 책 <프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근거로 하여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간주곡으로 들어가 있는 이야기는 '무덤'과 관련한 저자의 기억들인데, "이 기억은 1992년 여름 중국 동북지방의 옌뻰(*연변) 조선족자치주를 여행하며 윤동주의 묘를 방문했던 때로도 이어진다."(17쪽) 이어지는 윤동주(1917-1945)의 삶과 죽음은 적어도 (일본 독자가 아닌) 한국 독자들에겐 익숙한 것이다. 1943년에 일경에 체포된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옥사했는데 알다시피 '생체실험'에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까지는 '상식'이지만 이어지는 사실은 내가 새롭게 안 것이다. 

 

 

 

 

예전에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세계사, 1998/ 푸른역사, 2004) 등을 들춰보긴 했지만 다루어지지 않았거나 내가 주의하지 않았던 듯한데, 그 새로운 사실이란 이런 것이다.

"후꾸오까 형무소로부터 '사체'를 가져가라'는 전보를 받은 윤동주의 늙은 아버지는 간도에서 한반도를 종단하고 현해탄을 건너가 유골을 가지고 돌아갔다. 유골을 묻을 때, 늙은 아버지는 생전 한 권의 시집도 간행할 수 없었던 아들을 위해 '시인 윤동주의 묘(詩人尹東柱之墓)'라는 묘비를 세워주었다."(20쪽)

<시대를 건너는 법>으로 묶인 '서경식의 심야통신'에서도 한번 다루어진 적이 있는데, 나는 윤동주의 유골을 간도의 '늙은 아버지'가 수습했는지도, 또 직접 묘비까지 세워주었는지도 몰랐다(묘비는 막연히 후대에 세워진 걸로 알았다). 그제서야 조금 떠오르는 사실은 이 묘비를 일본 학자가 발견했다는 점.

"사실 그의 묘를 ‘재발견’한 것은 와세다대학 오무라 마스오 교수다. 1980년대 연변대학에 체류했던 그는 윤동주의 묘를 찾아내 그곳을 일본의 독자에게 알리는 글을 썼다."(<시대를 건너는 법>, 319쪽)

이 오무라 마스오 교수의 책이 <윤동주와 한국문학>(소명출판, 2001)이다. 이왕이면 '조선 학자'들에게 발견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역사는 그마저도 허용하지 않은 듯싶다(모처럼 검색하다 알게 된 사실인데, 이상섭 교수의 <윤동주 자세히 읽기>(한국문화사, 2007)가 작년에 나왔다. 언제 읽어봐야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시 '별헤는 밤'에서 시인은 이렇게 적어놓았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이런 시구절을 적어내려가던 시인의 손길을 떠올리면 애달프고 먹먹하다...

이제 프리모 레비(1919-1987)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이자 문학자이며 화학자"('174517'은 아우슈비츠에서 왼팔에 새겨진 그의 수인번호다). "그는 1919년 또리노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나 또리노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복이딸리아가 독일군에 점령되자 반파시즘 저항운동에 가담하여 싸웠지만, 1943년 12월에 체포되었다. 그는 유대계였기 때문에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송치되었다. 그 아우슈비츠에서 가스실로 끌려가는 것은 모면했지만, 해방될 때까지 대략 1년의 세월을 노예보다 못한 생활을 하며 보내야 했다."(22쪽)

여기까지는 프리모 레비에 관한 '상식'이라 할 만하다. 한데 내가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아우슈비츠 체험 이후에 레비가 토리노의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이것이 인간인가>를 집필하기 시작했다는 점. 26살에 생환한 그가 자신의 체험기를 처음 출간한 게 1947년, 그러니까 28살 때이다. 나는 막연히 중년에, 적어도 30대에 쓴 것으로 생각했다. <이것이 인간인가> 국역본에 자세하게 실린 연보를 참조하면, "프랑코 안토니첼리의 소개로 책은 데실바 출판사에서 2,500부만 출판된다. 훌륭한 평가를 받았지만 판매 면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레비는 작가-증언자로서의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고 결론을 내리고 화학자로서의 일에 몰두한다."(314쪽) 그러나 초판 출판을 거절했던 에이나우디 출판사에서 1958년 재판을 간행하고 되고 이것이 초판때와는 달리 일약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리고 "이 책은 <안네의 일기>, 빅토르 프랭클(Victor Frankle)의 <밤과 안개>, 엘리 비젤(Elle Wiesel)의 3부작 <밤> <새벽> <낮>과 함께 나찌 독일이 저지른 만행의 진상을 전하는 증언문학의 대표작으로서 지금도 널리 읽힌다. 일본에서는 '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다 - 한 이딸리아인 생존자의 고찰'이라는 이름으로 1980년에 번역/간행되었다."(22-23쪽) 물론 우리는 작년에야 이 책을 접하게 됐지만 일역판도 생각보다는 늦게 출간됐다. <프리모 레비를 찾아서>가 <이것이 인간인가> 국역본보다 먼저 출간됐고 일역본을 참조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은 그에 따라 <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다>로 표기되고 있다. 영어본의 제목은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하지만 '생존자' 레비는 1987년에 자살했다. '프리모 레비로의 여행'은 그 이유를 찾아가는 여행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것이 인간인가>에 붙인 서경식의 해설에 따르면, "프리모 레비는 생애 총 14권의 소설, 시집, 평론을 발표했다." 그 가운데 서경식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책은 차례대로 다음의 다섯 권이다. <이것이 인간인가>(1947/1958), <휴전>(1963), <주기율표>(1975), <지금이 아니면 언제?>(1982),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1986). 아래는 그 영역본들의 표지인데, 나머지 세 권도 모두 국역되었으면 싶다.

영역본의 표지들을 보다 보니 프리모 레비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이 떠오른다. 사실 많이 거슬러 올라가지도 않는데, 지난 2004년 모스크바 체류시에 모스크바대학 본관건물 구내서점에서(서너 평 될까 말까한 공간이다) 나는 처음 '프리모 레비'란 이름과 접했다. 러시아어본이 아니라 영어 중고본들이 서가에 꽂혀 있었고(가장 확실히 기억나는 표지는 <지금이 아니면 언제?>와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이다), 나는 여러 차례 망설이다가 구입하진 않았다(언제 읽으랴 싶었던 것인데 지금 생각하면 아쉽다). 저명한 '아우슈비츠 작가' 정도로만 알고 있었을 뿐 그가 이탈리아인이란 것도 당시엔 알지 못했다(북부 이탈리아에서 아우슈비츠까지 잡혀왔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검색해보니 러시아도 사정은 우리와 비슷해서 <이것이 인간인가>가 2001년에, 그리고 <주기율표>가 바로 올해 신간으로 출간됐다. 

Примо Леви Периодическая система Il sistema periodico

프리모 레비와 함께 서경식이 아우슈비츠 증언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더 꼽고 있는 '빅토르 프랭클(Victor Frankle)'과 '엘리 비젤(Elle Wiesel)'은 이미 국내에도 잘 알려진 저자들이다. 한데, '빅토르 프랭클'은 표기가 잘못됐다.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이 맞다(적어도 국내에서 그렇게 소개됐고, 영어 병기도 잘못됐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말이다(국내에는 여러 종의 번역본이 출간돼 있고 가장 많이 읽히는 건 청아출판사본이다).

 

 

 

 

내가 빅터 프랭클(1905-1997)이란 이름을 접한 건 책에서보다 신문의 칼럼들에서였다. '로고테라피'라는 정신요법을 제창한 것으로도 유명한 프랭클 박사의 지론은 국역된 책들의 제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의미를 찾는 인간'(<죽음의 수용소에서> 영어본의 원제. 독어본 제목은 <밤과 안개>이다) '삶의 의미를 찾아서' '의미를 향한 소리 없는 절규' 등이 말해주듯이 그것은 '의미의 발견'으로 수렴된다. 최악의 생존조건 속에서도 삶의 의미라는 끈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아우슈비츠 체험을 통해서 얻어낸 그의 통찰이다.

그런데, 그의 가장 유명한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서경식의 책에서는 <밤과 안개>라고 거명돼 있어서 잠시 알랭 레네의 원작이 혹 프랭클의 책인가 헷갈렸는데 찾아보니 그건 아니다. <밤과 안개>는 그냥 일역본의 제목인 모양이다. 그럼에도 물론 레네의 영화 <밤과 안개>(1955)와 무관하진 않겠다. 이 역시 아우슈비츠를 고통스럽게 증언하고 있는 영화이니까.   

사실 30분 정도 분량의 이 영화를 나는 아주 오래전 프랑스문화원에서 얼떨결에 봤다(내 기억에 남아있는 제목은 <밤 그리고 안개>이다. 국내에는 <밤안개>로 출시됐고, 보통은 <밤과 안개>로 표기되는 듯하다). 몇 번 드나든 문화원 프로그램에 '알랭 레네'라는 아는 이름이 눈에 띄었고 나는 제목에서 <히로시마 내 사랑> 같은 영화를 떠올렸다. 하지만 웬걸! 영화는 아우슈비츠 생존자의 나레이션과 다큐멘터리 형식을 통해서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끔찍하게 재현하고 있었다.

 

 

 

 

이러한 참상 속에서 살아 남은 또 다른 증언자, '엘리 비젤'은 국내에 '엘리 위젤'(1928- )로 소개돼 있다. 루마니아 태생의 위젤은 작가이지만 특이하게도 1986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맘때 그의 대표작들이 번역돼 나왔다(<엘리제르의 고백>이란 제목으로 3부작이 번역되었다).

 

 

 

 

물론 균형있는 독서를 위해서는 몇 권의 책을 이 모든 증언들과 같이 읽어두어야겠다. 유대인에 대한 '고정관념'들을 다룬 빅토르 퀘페르맹크의 <유대인>(웅진지식하우스, 2008), 볼프강 벤츠의 <홀로코스트>(지식의풍경, 2002), 러버트 위스트리치의 <히틀러와 홀로코스트>(을유문화사, 2004), 그리고 노르만 핀겔슈타인의 <홀로코스트 산업>(한겨레출판, 2004) 등이 그 책들이다.

다시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의 첫장은 '여행'이다. 아우슈비츠로의 여행. 열두 량의 기차에 나눠타고 레비와 함께 수송된 유대인들은 650명(혹은 615명)인데 살아돌아온 사람은 그를 포함해 단 세 명이었다.

"그렇게 해서 세 살바기 에밀리아가 죽었다. 독일인들에게는 유대인 아이들을 죽이는 일의 역사적 필연성이 아주 자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밀라노 출신 엔지니어 알도 레비의 딸 에밀리아는 호기심이 많고 대담하며 활발하고 똑똑한 아이였다. 여행하는 동안 그 애의 엄마와 아빠는 사람이 꽉 찬 객차 안에서도 함석통에 담긴 미지근한 물로 그 애를 목욕시킬 수 있었다. 우리를 죽음으로 이끌고 있는 그 기관차의 엔진에서 물을 받아쓰도록 어느 부패한 독일인 기관사가 허락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순식간에 우리의 여인들, 부모들, 자식들이 사라져버렸다. 아무도 작별인사를 할 수 없었다. 우리는 다른 쪽 플랫폼 끝에 있는 거무스름한 덩어리 같은 그들을 잠깐 보았다. 그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23-24쪽)

곧장 가스실과 소각장에서 '절멸'될 대다수의 다른 남자들, 여자들, 아이들, 노인들과 달리 '튼튼한 남자들'로 분류된 레비는 다른 서른 명과 함께 트럭을 타고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운명은 '노동을 통한 절멸'이었다. 곧 지옥이었다("이 저주받을 망령들아, 비통할지어다!")...

08. 03. 02.

P.S. 새학기의 시작은 '바닥에서'부터이다('바닥에서'는 <이것이 인간인가>의 두번째 장제목이기도 하다). 다른 할일들을 잠시 제쳐놓고 따로 몇 자 적어놓은 것은 그래야만 먹먹한 마음의 숨통이 좀 트일 듯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읽다가 눈물이 돌았던 대목은 이런 것이다. 임시수용소에서 아우슈비츠로 이송되기 전날밤의 풍경.

"모두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 삶과 작별했다.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일부러 곤드레만드레 취하는 사람, 잔인한 마지막 욕정에 취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여행 중 먹을 음식을 밤새워 정성스레 준비했고 아이들을 씻기고 짐을 꾸렸다. 새벽이 되자 바람에 말리려고 널어둔 아이들의 속옷이 철조망을 온통 뒤덮었다. 기저귀, 장난감, 쿠션, 그리고 그밖에 그녀들이 기억해낸 물건들, 아기들이 늘 필요로 하는 수백 가지 자잘한 물건들도 빠지지 않았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지 않았겠는가? 내일 여러분이 자식들과 함께 사형을 당한다고 오늘 자식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을 것인가?"(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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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8-03-03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자님 페이퍼 보고, 오전 내내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읽었어요. 읽으며 레비의 다른 책들이 몹시 궁금해졌는데 이 페이퍼를 보니 같이 보고싶은 다른 책들이 많아졌어요! 읽는 속도는 따라주지 않는데 늘 이렇게 욕심만 앞서니 ^^

로쟈 2008-03-03 17:46   좋아요 0 | URL
다른 책들이라고 해야 현재로선 세 권이 전부인데요.^^;

소경 2008-03-04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수강한 과목의 계획표에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추천 되어 있어 읽어 볼 명분이 생겼네요. 물론 로쟈님의 페이퍼에 깊은 감명을 받아서가 주 동기지만. 새학기 긴 방학을 끝에 맞이한 붕뜬 개학의 기분을 내어버리기에 아쉽지만 페이퍼를 읽을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 드는게 꼭 읽어 보아야 할 책 같네요. 서경식씨의 책과 함께.

로쟈 2008-03-05 22:25   좋아요 0 | URL
새학기라지만 저는 목소리도 가라앉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