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의 <전체주의가 어쨌다구?>(새물결, 2008)를 지난주에 구입해서 며칠 동안 읽었다. 다른 일들에 매이지 않았다면 하루나 이틀 안에 통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속독이 가능한 건 국내에 소개된 그의 책들 가운데 비교적 쉬운 책 범주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번역의 가독성이 그만큼 좋기 때문이다. 몇몇 부주의한 오역들이 눈에 띄긴 하지만 교정해가며 읽을 수 있는 수준이다. 사실 이론서의 경우 이 정도 번역도 드물며 역자의 노고를 기억해둘 만하다. 

2001년에 나온 <전체주의가 어쨌다고?>는 국내에 번역된 지젝의 책들을 연도별로 펼쳐놓으면 중간쯤에 위치하는 책이다. 2000년대 이후의 저작들로 한정하자면 <무너지기 쉬운 절대성>(인간사랑, 2004)에 바로 이어지는 책이면서 <진짜 눈물의 공포>(울력, 2004), <믿음에 대하여>(동문선, 2003), <실재계 사막으로의 환대>(인간사랑, 2003), <혁명이 다가온다>(길, 2006), <신체 없는 기관>(도서출판b, 2006), <죽은 신을 위하여>(길, 2007), <이라크>(도서출판b, 2004), <HOW TO READ 라캉>(웅진지식하우스, 2007)에 앞서는 책이다. '신간'이긴 하지만 진작에 소개되었어야 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그래서 든다. 영어본을 기준으로 거슬러 올라가본다.

2006, How to Read Lacan, London: Granta Books (also New York: W.W. Norton & Company in 2007).

 

 

 

 

2004, Iraq: The Borrowed Kettle, London: Verso.

 

 

 

 

2003, The Puppet and the Dwarf, Cambridge, Massachusetts: MIT Press.

 

 

 

 

2003, Organs Without Bodies, London: Routledge.

 

 

 

 

2002, Revolution at the Gates: Žižek on Lenin, the 1917 Writings, London: Verso.


 

 

 

2002, Welcome to the Desert of the Real, London: Verso. 


 

 

 

2001, Opera's Second Death, London: Routledge.(*근간 예정으로 안다)

2001, On Belief, London: Routledge.

 

 

 

 

2001, The Fright of Real Tears: Krzysztof Kieślowski Between Theory and Post-Theory, London: British Film Institute (BFI).

 

 

 


2001, Did Somebody Say Totalitarianism?, London: Verso.

 

 

 

 

2000, The Fragile Absolute, London: Verso.

 

 

 

 

가장 읽기 쉬운 축에 속한다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만만한 건 아니어서 <전체주의가 어쨌다구?>의 경우에도 지젝에 대한 사전 숙지는 얼마간 필요하다. 라캉 정신분석의 용어들이 걸림돌이 될 수 있는데, 여차하면 그냥 넘어가도 좋겠다. 그럼에도 읽을 만한 대목들은 많이 있으니까. 여기서는 몇몇 오역과 역자와 의견을 달리하는 대목들만 나열해둔다(다섯 편의 에세이에 대한 '읽기'는 그 자체로 상당한 견적을 필요로 하며 여기서 다룰 수 없다). 지젝을 읽을 독자들에게 약간의 도움이 되면 좋겠지만 어디까지나 '약간'이다.  

먼저 고유명사와 관련된 대목들인데, 사실 이런 건 일반 독자들에게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겠다. 그럼에도 나로선 '교정의지'를 억누르지 못한다. 13쪽에서 한나 아렌트에 대한 재평가('아렌트 르네상스'란 말까지 쓰지 않는가!) 분위기에 대해서 지젝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고 언급하는 대목인데, 가령 1970년만 하더라도 학술 토론장에서 "당신의 논의 전개는 한나 아렌트와 비슷한 것 아닌가요?"란 말이 나왔다면 당사자가 꽤나 곤경에 빠져 있다는 신호가 됐지만 이젠 달라졌다는 것(90년대 이후겠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아렌트가 의당 경의를 표해야 할 인물로 여겨진다. 기본적 성향으로 보건대 당연히 아렌트에게 반기를 들어야 할 것처럼 생각되는 학자들조차도 자기 이론의 근본적 신조들을 아렌트와 화해시켜 보려는 불가능한 작업에 빠져 있다."

그러한 학자들로 지젝이 거명하고 있는 사람이 크리스테바와 리처드 번스타인이다. "해서 줄리아 크리스테바 같은 정신분석학자가 정신분석 이론을 묵살해버린 아렌트를 평가할 때나, 리하르트 베른슈타인 같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후계자들이 아도르노에 대한 아렌트의 극단적인 증오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처럼"이 인용문에는 삽입돼 있다. 

'정신분석가'인 크리스테바가 아렌트를 높이 평가하거나(크리스테바는 아렌트의 평전을 썼다) 프랑크푸르트학파 계열의 번스타인이 아도르노를 증오한 아렌트를 중요하게 다룬다는 게(번스타인은 <아렌트와 유태인 문제>란 책을 썼다) 지젝으로선 납득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여기서 'Richard Bernstein'을 역자는 '리하르트 베른슈타인'으로 읽었는데, 독일 학자라면 그렇게 읽겠지만 번스타인은 미국 학자이다(이름으로 미루어 독일계이긴 할 테지만). 때문에 나는 '베른슈타인'이라고 읽어줄 이유가 없다고 본다. 더구나 국내에 '번스타인'이란 이름으로 <존 듀이 철학 입문>(예전사, 1995), <객관주의와 상대주의를 넘어서>(보광재, 1996) 등이 소개돼 있기까지 하므로(후자는 절판된 게 유감이다. 좋은 책이다). 미국의 프래그머티즘과 하버마스, 가다머 등의 독일철학이 그의 주된 전공 분야다.   

 

 

 

 

그리고 29쪽 등에서 <순수의 시대>의 작가 '이디스 워튼(Wharton)'을 '훠튼'이라고 읽어주고 있는데 이미 국내에 <순수의 시대>(오리진, 1993)을 필두로 하여 여러 작품들이 소개된 작가를 다르게 읽어줄 필요는 없다고 본다. 마틴 스콜세지가 영화화하기도 한 <순수의 시대>는 지젝이 다른 책들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어서 나도 뒤늦게 번역본을 구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후에 '피터 셰퍼'와 '허버트 드레퓌스', '존 브록만'의 표기에 관한 지적들을 적다가 날려먹었다(임시저장도 안돼 있다). 유감스럽지만 그런 걸 포함하여 몇몇 오역들(대표적으론 83, 148, 288, 306, 312쪽 등에 나온다)과 불만들(나는 'act'를 상용되고 있는 '행위' 대신에 굳이 '행동'으로 옮긴 것 등에 대해서 동감하지 않는다)은 중국에 다녀와서 다루도록 하겠다...

08. 0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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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1-29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은 지름신의 사도요, 모든 탐욕의 샘이시옵나이다.......;ㅅ;
1.로쟈님 글을 읽고 지젝거리기 시작했다.
2.지젝은 굉장히 열심히, 계속해서 글을 쓴다.
3.역자들(과 출판사들)은 굉장히 빠르게, 계속해서 번역/출간한다.
4.나는 굉장히 허겁지겁, 무리하게 쟁여놓는다.
5.읽으며 머리를 쥐어뜯........거나 혹은 책값을 마련하러 일터로 간다.
라는 순환입니다. (웃음)

로쟈 2008-01-30 00:22   좋아요 0 | URL
사실 지젝은 그 정도의 '보상'은 하지요. 엉터리 번역들만 아니라면...

bongsun 2008-01-31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저는 이 책의 편집을 담당했던 사람입니다.
로쟈 님의 글은 항상 감탄스러운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사실 저희 같은 편집자에게 로쟈 님은 감사와 두려움의 대상이죠.^^
이번 글도 너무나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하고요.^^;)
그런데 한 가지 밝혀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로쟈 님께서 지적하신 인명 표기에 관한 것인데요,
책의 '일러두기'에 밝혀놓았듯이
인명은 원칙적으로 브리태니커 사전의 표기를 따르는 것이 출판사 방침이어서,
역자 선생님도 그 방침을 따라주시도록 설득했습니다.
따라서 인명 표기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편집자(인 저의) 책임입니다.

중국에 다녀오시는 모양이네요.
몸 건강히 잘 다녀오시고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로쟈 2008-02-03 11:47   좋아요 0 | URL
'브리태니커'에 '베른슈타인'이나 '훠튼'으로 표기돼 있나요? '한국어판 브리태니커'를 말씀하신다면 그 또한 음역인데요... 음, 어쨌거나 제 생각은 고유명사 표기의 '고유성'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발터 벤야민'과 '한나 아렌트'라고 굳어진 이름을 '원칙'을 이유로 '발터 베냐민'이나 '해나 아렌트'로 표기하는 건(한겨레 같은 경우가 그런데) 원칙의 남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성 표기에서도 '두음법칙'에는 위배되지민 '류'씨 성 같은 표기를 허용/인정하고 있는 것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은 제가 편집자들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bongsun 2008-02-04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 잘 다녀오셨는지요.
(한국어판) 브리태니커 사전에 책에 언급되는 모든 인물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경우 같은 철자의 다른 인물명 표기에서 따오거나,
다른 책이나 언론 등에서 쓰는 표기를 참조하거거나 했는데,
아무튼 문제점이 꽤 있는 것 같네요.
특히 베른슈타인은 명백히 제가 오해했거나 제대로 조사하지 못한 경우입니다.
인명 표기에 나름대로 신경을 쓴다고는 했는데,
허술한 부분이 상당히 있군요.
지적과 충고에 감사드립니다.
문제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로쟈 님과 모든 독자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앞으로는 더욱 신경을 곤두세워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로쟈 2008-02-04 14:06   좋아요 0 | URL
'번스타인'은 '번슈타인'이라고 옮긴 경우도 있습니다. 저로선 기간된 책의 경우 오류가 아니라면 고유명사들은 일치시켜주는 게 독자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죠. 처음 번역되는 고유명사라면 상관없는 일이라고요.^^;

bongsun 2008-02-04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아무튼 충고 감사드립니다.^^
(앗, '참조하거거나'(?) - 편집자의 자질이 의심된다는... ㅜㅜ)

로쟈 2008-02-04 15:13   좋아요 0 | URL
저도 덩달아 오타를 냈네요. '일이라고요'라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