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에 출간된 수전 손택의 <문학은 자유다>(이후, 2007)는 '1월의 읽을 만한 책' 목록에 올려놓기도 했고, 러시아 시인/작가들의 대한 비평도 여러 편 포함하고 있어서 개인적으로도 흥미를 갖고 있는 책이다. 아마도 몇 차례 페이퍼를 올리게 될 듯한데, 우선은 리뷰기사를 옮겨놓는 것 정도로 시작해둔다.

한겨레(08. 01. 05) 소설가이고 싶었던 비평가의 문학론

지난달 28일은 미국 비평가 수전 손택(1933~2004)이 타계한 지 만 3년 되는 날이었다. 손택은 평생 세 번 암의 침탈을 받았는데, 마지막 ‘골수성 백혈병’의 공격은 그의 끈질긴 삶의 열망을 사정없이 채가고 말았다. 〈문학은 자유다〉는 영롱한 스타일리스트의 3주기에 맞춰 번역·출간된 책이다. 병상에서 마지막 숨을 쉬기 직전까지 고쳐쓰던 원고를 비롯해 2000년 이후 그가 쓴 에세이와 연설문·대담글을 엮었다. 손택의 마지막 저작이자 유고집인 셈이다.

뉴욕의 유대인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난 손택은 1966년 평론집 〈해석에 반대한다〉를 내놓으며 미국 비평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는 이 책에서 “해석이란 지식인이 예술 작품에 가하는 복수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제시했다. 해석이란 이름의 비평 행위에 대한 불신을 신랄하게 표명한 것인데, 이 말은 그 자체로 ‘자기언급적 열성’을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손택 자신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먼저 비평가로 알려졌고, 비평행위로 명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다만 손택은 스스로 작가 또는 소설가, 바꿔 말해, 창조하는 사람으로 자임함으로써 이 역설을 피해가려 했다.

실제로도 손택은 여러 권의 소설을 썼다. 그러나 사람들은 손택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를 비평가로 인식했다. ‘문학은 자유다’라는 글의 제목을 이 책 자체의 제목으로 삼은 것은 손택이 한사코 소설가로 기억되기를 바란 데 대한 한국어판 편집자의 공감의 결과다. 이 글에서 손택은 문학을 두고 “더 큰 삶, 다시 말해 자유의 영역에 들어가게 해주는 여권”이라고 말한다. “문학은 자유입니다. 독서와 내성(자기 성찰)의 가치가 끈질기게 위협받는 요즈음, 더더욱 문학은 자유입니다.” 어떤 외적 강압과 불운 속에서도 인간은 문학을 통해 자기 내면의 진실을 지키고 가꿀 수 있다. 문학이 자유인 이유다.

손택은 이 책의 글들에서 잘 알려지지 않는 몇몇 작가들의 생애와 작품을 소개한다. 그럴 때 그의 자세는 ‘비평가’의 자세가 아니라 ‘숭배자’의 자세다. 그렇게 해서 그는 예의 ‘자기언급적 역설’을 에둘러 간다.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찬미’하는 것이다. 그가 마지막까지 매달렸던 글이 빅토르 세르주(1890~1947)에 관한 글인데, 알다시피 세르주는 아나키스트로 출발해 공산당원이 됐다가 스탈린 치하 소련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와 세계를 떠돌다 비참하게 죽은 혁명가다. 그러나 손택은 세르주를 혁명가이기 이전에 소설가로 주목한다. 혁명가는 때때로 ‘정의’라는 이름으로 ‘진실’을 포기하지만, 세르주는 정의와 진실이 다툴 때 거의 언제나 진실 편을 들었다. 그것이 그의 고난을 키웠음은 물론이다. 세르주가 추구한 진실이 문학의 영원한 주제인 진실과 동일한 것임을 손택은 강조한다. 그것은 그대로 손택의 진실이기도 하다.

손택에게 예술은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형식이지만 그 아름다움은 필연적으로 윤리성을 포함한다. 진실로 아름답다면 윤리적이지 않을 수 없다고 손택은 믿는다. 아름다움은 지극한 경지에 이르면 지혜를 불러들인다. “아름다움에 평생 깊이 헌신함으로써 얻게 되는 지혜는 다른 어떤 진지함으로도 흉내낼 수 없다고 나는 감히 말한다.” 이 아름다움이야말로 생의 종착점에 이른 손택을 의연하게 견디게 해준 열망의 핵심이었다. “아름다움에 압도되는 능력은 놀라울 정도로 억센 것이어서 아무리 무자비하게 정신을 흩뜨리는 것이 있다고 해도 이겨낸다. 전쟁이나 예견된 죽음 같은 것도 그걸 말살하지는 못한다.” (고명섭 기자)

08. 0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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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1-05 10:36   좋아요 0 | URL
문학은 자유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여권이라는 말을 듣고 저는 울컥했었습니다.
[타인의 고통]의 말미에 수록된 [문학은 자유다]가 단행본으로 나온건가요?

로쟈 2008-01-05 10:39   좋아요 0 | URL
당장 확인은 못했지만, 그런 거 같습니다. 유고집이라 말년의 쓴 글과 강연들을 모두 모아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