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제4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로 소설가 편혜영씨가 선정되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수상소식이라 덩달아 반갑다. 작가와 사소한 안면이라도 터둔 것이 반가움의 크기를 조금 더 키워주는지도 모르겠다(딱 한번 만나본 인연이지만, 자랑하자면 나는 작가가 보내준 사인본을 갖고 있다). 몇 차례 관련 페이퍼를 올려두었기에 따로 군말은 적지 않고 관련 인터뷰기사와 선정이유서를 옮겨둔다.

한국일보(07. 11. 16) 제4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 '편혜영'

#엽기적 소설을 썼구나 했는데 그게 아니야. 계산적이고 치밀하고 정확해. 자기 몸 하나가 있고 그 반(半)만 갖고 소설을 쓰는 것 같아. 그 반으로 자기를 넘어서려는 거야.(김윤식 본심위원)

12일 오후 서울 인사동 한 음식점에 모인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위원(김윤식 임철우 황종연)들은 계간 <문학동네> 가을호에서 소설가 김애란씨가 편혜영씨에 대해 쓴 글을 화제에 올렸다. 글엔 이런 전언이 있었다. 편씨가 스무살 때 모친상을 치른 직후 밥을 지으려 쌀통을 열었는데 기다랗고 하얀 애벌레가 꿈틀대고 있었단다. 겨우 쌀을 씻어 아버지께 상을 차려 드렸지만 자기는 며칠간 집 밥을 먹지 못했다고.

황종연 위원이 말을 이었다. “첫 소설집 <아오이가든> 때 편혜영 소설은 잔혹동화 같은 느낌이었다. <사육장 쪽으로>에선 사무원의 세계가 등장한다. 실제 작가 자신이 애써 진입한 세계이자 공인된 세계다. 그런 세계를 금 가게 하고, 연신 독자를 허방짚게 만든다. 사무원인 동시에 소시민인 자로서의 양가감정이 독하다. 이 사람, 작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잔혹의 미학이 영롱한 편혜영의 ‘하드고어 원더 랜드’(평론가 이광호)가 구별짓기의 제스처가 아닌, 진정성 있는 한국문학의 신천지임을 확인한 이상 본심위원들에게 수상작 결정을 늦출 이유는 남아있지 않았다.

#조심스럽고 나지막히, 알아보았다는 듯이, 그러나 들킨 것은 아니니 안심하라는 듯이, 자기도 함부로는 질색이라는 듯이,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주었더랬다.(소설가 이신조)

13일 오후 수상자 인터뷰를 위해 편씨를 만났다. 그가 6년째 근무 중인 서울 광화문의 직장 맞은편 커피숍에서였다. 단정한 검은색 정장 차림에 ‘파버카스텔’ 브랜드의 샤프펜슬을 가늘고 긴 손가락에 쥐고 마주앉은 편씨와의 대화는 편안하면서도 낭비가 없었다. 그는 듣고 이해하는 일에 능숙했고, 간결하고 요령있게 답할 줄 알았다. 그의 소설에서 감지한, 오감을 집요하게 자극하는 예민함과 밀도 있는 건조체 문장을 고집하는 단단함에 비춰 자연인 편혜영을 예단한 일은 (앞의) 반은 틀리고, (뒤의) 반은 얼추 맞았다. 스스로는 “약간의 무대 공포가 있고, 좌중 속에서 있는 듯 없는 듯 하는 게 편하다”고 말했다.

편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어떤 형태로든 계속 노동을 해왔다”고 말했다. 2년간 회사원으로 일하다가 ‘소설이든 뭐든 쓰고 싶다’는 욕구를 좇아 뒤늦게 서울예대, 한양대 대학원에 진학한 후에도 꾸준히 부업을 했다. 석사학위를 받은 해 현재의 직장에 입사, 이젠 팀원 여럿을 거느린 팀장이다. 4남매의 막내임에도 ‘막내티’가 전혀 나지 않는다. “부모님이 일하시느라 늘 바빴다. 어리광을 피우는 걸 잘 못한다. 부탁했다간 거절 당할 것 같다는 심리가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턴 출가한 언니들을 대신해 집안 살림을 도맡았다.

편씨는 문학을 일상으로 여기는 듯 보였다. 쓰는 일을 밥 먹고, 출퇴근하고, 청소하고, 잠자는 것과 공평하게 대하는 느낌이랄까. 그는 “주로 집에서 쓰지만 도서관, 카페 등 장소 안 가리고 어디서나 잘 쓴다”고 했고, “계간지 청탁을 받아 3개월에 단편 1편씩 쓰는 일은 직장 생활을 하지만 아주 벅차진 않다”고도 했다. 여기엔 문학에 자신의 전부를 투입해야 한다는 강박적 자세가 묻어나지 않았다. 대신 생활에 단련된 자의 여유와 기품이 있었고, 그래서 신뢰감이 들었다. 어떤 난관에도 일상은 계속되듯, 편혜영 소설도 앞으로 오랫동안 성실한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호흡하리란 믿음.

#한국일보문학상 하면 젊은 작가가 내지르는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맞장구쳐주는 상이란 느낌이 들어요. 바로 그 상을 젊은 시절에 받게 되다니, 너무 기뻐요.(편혜영)

등단 7년 만에 받는 첫 상이다. 수상작에 실린 개별 단편들은 작년부터 유수의 문학상에 유력 후보로 자주 거론돼 왔다. 한국일보문학상엔 2005년부터 이미 이름을 올려왔다. 그해엔 단편 ‘시체들’, 작년엔 단편 ‘사육장 쪽으로’가 본심 후보작으로 선정된 바 있다. 편씨는 소위 ‘2000년대 작가’로 분류되고, 스스로도 그 점을 불편해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동세대 작가들의 문학적 경향을 ‘개성’이라고 말했다. “선배 작가들에겐 전쟁, 이념, 부정해야 할 아버지와 같은 명확한 시대적 명령이 있었다. 요즘 젊은 작가에겐 그런 게 없다. 오직 세계를 보는 개성적인 눈으로 존재 증명을 해야 한다. 창작자로선 흥미로운 환경이다.”

편씨는 현재 장편을 구상하고 있다. 내년에 낼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등단 이후 줄곧 단편을 써왔던 그에겐 만만찮은 도전이다. 그는 “장편은 단편과 호흡이 다르다. 날마다 쓰지 않으면 쓸 수 없을 것 같다”며 긴장의 일단을 내비쳤다. 그 말을 들으면서 미안하게도, 전혀 걱정스럽지 않았다. 이러구러 생활에 충실하다보면 내년이 가기 전 서점 한복판에 놓인 편혜영의 멋진 첫 장편을 보게 되리란 생각만 들었다. 일상의 기시감은 강렬하고 그녀는 재능있고 성실하다.(이훈성기자)

■ 왜 편혜영인가(선정이유)

올해 한국일보문학상에는 예년과 달리 장편이나 단편 작품이 아니라 한 권의 장편소설을 포함한 여섯 권의 소설이 후보작으로 뽑혔다. 장편과 단편을 대등하게 간주하는 것은 무리이니 단편의 경우에는 한 편이 아니라 단편집을 후보작으로 내는 것이 좋겠다는 예심위원들의 합의에 따른 결과라는 해명이 있었다.

이렇게 단편집을 심사 대상으로 삼게 되면 저자의 전반적인 창작 기량의 수월성 또는 '문학 세계'가 특정 작품의 우수성 못지않게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된다. 따라서 본심의 부담은 상당히 커진 셈이지만 예심위원들의 안목 덕분에 우리는 후보작으로서 손색없는 소설들을 대상으로 검토를 시작할 수 있었다.

김훈의 <남한산성>, 윤성희의 <감기>, 이기호의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정이현의 <오늘의 거짓말>, 천명관의 <유쾌한 하녀 마리사>, 편혜영의 <사육장 쪽으로> 이상 여섯 권의 후보작은 각자 개성이 뚜렷하고 그 나름의 특장을 가지고 있어서 그 우열을 가늠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만 우리는 한국일보문학상이 경력, 연고, 평판 등 이런저런 이유에서 응분의 평가를 받지 못한 작가들에게 주의를 기울여왔으며 그것은 앞으로도 계승할 가치가 있는 전통이라는 점에 유념하기로 했다. 또한 단편집의 경우 수록된 작품들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균일하고 '문학적인 것'을 둘러싼 의식의 고투가 치열하다고 판단되는 것들에 주목하기로 했다.

본심은 우수하다고 생각되는 작품에 대해 각자 소견을 밝히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각자 의견을 내놓고 나니 어느 소설로 하자는 말은 굳이 꺼낼 필요도 없었다. 편혜영 씨의 단편집 <사육장 쪽으로>가 논란 없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편혜영 씨의 단편들은 경제적으로 제어된 서술, 정교한 디테일을 통한 암시, 통일된 인상의 창출 등과 같은 단편소설의 고전적 규범을 정확하게 습득한 바탕 위에 씌어진 것이다.

작년 한국일보문학상의 유력한 후보작이었던 표제작은 물론 그 밖의 단편 모두 현대의 삶에 대한 은유를 이루는 여러 가지 상황을 박진감 있게 제시하고 있다. 그 상황의 핵심은 겉으로는 정연한 듯한 인간 세계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는, 어느 순간 인간 현실을 현실이 아니게 만드는 불확실성의 출현에 있다.

편혜영 씨는 한 작품에서 잡초와 들쥐가 침입하지 못하는 단단한 집을 원하던 부부를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습지에 빠져죽게 만들었듯이 일상생활의 조건을 이루는 현실의 범주들이 어떤 원초적인 미혹에 먹혀버리는 광경을 기괴한 방식으로 포착한다. 그리고 모든 의미와 상징의 질서를 헛것으로 만드는 집합적 무의식의 심층을 냉혹하게 파고든다. 인간의 내부, 그 암흑의 핵심을 향해 이토록 깊이 시추를 내린 작가는 우리 문단에 흔치 않다. 한국일보문학상이 편혜영 씨의 외로운 탐구에 격려가 되길 바란다.(본심위원 김윤식 임철우 황종연)

07. 11. 15.

P.S. 작년 겨울인가 문단의 한 송년회 자리에서 편혜영, 김애란 두 작가와 잠시 합석을 한 적이 있다(김애란씨는 이미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터이므로 안 그래도 절친한 두 작가는 이제 한국일보문학상 '가족'이 되었다). 마침 하반기에 두 작가가 쓴 작품들에 강한 인상을 받았던 터라 나대로의 상찬을 늘어놓았던 듯하다. 올해 두 사람은 나란히 작품집을 냈고 또 내게도 나란한 책을 보내주었다. 덕분에 <사육장쪽으로>(문학동네, 2007)와 <침이 고인다>(문학과지성사 2007)를 나는 두 권씩 갖고 있다(딸아이에게 가보로 물려주어야겠다). 따로 인사를 전하지 않았었는데, 이 자리를 빌어 두 작가의 후의에 감사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웽스북스 2007-11-15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혜영의 작품은 이효석 문학상 수상집에서 읽어본 '분실물'이 전부인데, 참 촘촘하면서도 깊숙히 파고드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인상적인 작품이었답니다. 사육장쪽으로,에도 관심이 가네요- 근데 편혜영작가, 예쁜데요? ㅎㅎ

로쟈 2007-11-16 08:58   좋아요 0 | URL
실물이 더 낫습니다.^^

송연 2007-11-19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전 분실물을 읽고는, 다시한번 책에서 그녀의 이름을 확인케 되더군요.
문체는 단순하지만, 그러한 필치가 내용을 이끌어가는데 더 이점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또한 작가마다 여러 글쓰기의 방식들이 있겠지만 편혜영씨는 상황에 따른 내면의 정확하고 세심한 묘사를 통해 독자를 흡입할줄 아는 스킬을 지닌 작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뜻 카프카의 느낌도 들었었구요.
그런데 로쟈님, 궁금한것이 한가지가 있어요,
많은 이들이 김애란을 칭송하더군요, 하지만 그의 대표작 두권을 읽고난 후에 들은 저의 생각은, 작가로서의 상상력이 뛰어나다기보다는, 그녀의 사적 경험들을 글 속에 많이 투입시켰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네요, 물론 그러지 말란 법도 없고 개인적 경험이 작품을 쓰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역시 사실이지만, 그녀같은 경우는 너무 티가 나는 것 같았네요... <침이 고인다>는 특히 더욱요.
그리고 <달려라 아비> 같은 경우는 신문 사설들을 꼼꼼히 읽은 작가지망생이 자신의 문장력을 어법에 맞게 잘 구성하려고 분투한 듯한 느낌을 주었구요, 제가 '나이'에 대한 선입견같은것은 없지만,(게다가 그정도의 나이면 먹을만큼 먹은 나이이구요) 그녀의 작품들을 읽으면 왠지 설익은 단감을 먹고 있는듯한 착각이 듭니다. 저만 잘못 생각하고 있는걸까요?;;

로쟈 2007-11-19 12:27   좋아요 0 | URL
'잘못 생각'하실 리는 없지요. 저마다의 취향과 판단의 기준이 있는 것이니까요. 김애란 작가의 경우 많은 독자들에게 어필한다고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건 '가난'에 대한 그녀의 감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