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저널 담비에서 고대대학원신문 창간 20주년 기념인터뷰를 옮겨온다. 고대 명예교수인 김우창 교수와의 인터뷰이다(http://www.dambee.net/news/read.php?section=MAIN&rsec=MAIN&idxno=6763). 주된 화제는 '한국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 최근에 출간된 <백낙청 회화록>(창비, 2007) 중의 일부를 읽으면서 생각해본 화두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 그리고 '한국어로 학문을 한다는 것', 한국의 인문학도들이라면 내내 끌어안고 씨름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김우창 교수의 대답은 좀 '낙관적'이다...

고대대학원신문(143호) "학문은 선입견 없이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다"

2007년 10월로 ‘고려대학교 대학원 신문’은 창간 2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1987년 10월 20일 고려대학교 대학원 총학생회 산하 편집부에서 창간을 하게 된 본지는 민주화 항쟁 이후 급박하게 전개돼 온 한국사회의 변동에 대학원생들이 스스로의 학문적인 연구와 분석을 통해 능동적으로 참여해 나아가려는 의지를 결집해 만들어진 자치활동의 산물이다.

본지는 창간 20주년을 맞아 기획한 ‘창간 20주년 기념 특별인터뷰’에서 '한국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이라는 주제로 ‘한국인문학의 거장’이자 본교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인 김우창 교수를 만났다. 교수신문의 지적처럼(2002년 10월호) 김우창 교수는 우리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가운데 한명이다. 그의 첫 저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민음사 刊)이 출간된 1978년 이후, 김우창이라는 텍스트는 수많은 지식인들의 내면에 사유의 자양분으로 쌓여왔다. ‘심미적 이성’으로 대표되는 그의 사상은 개성적이기보다는 보편적이며, 그 보편적 결론으로 다가가는 과정이 개성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기자는 먼저 '한국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이라는 커다란 주제 중에서 '한국'이라는 공간적 특수성에 주목했다. 현재 한국에서 '학문의 장'은 어떠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을까? 평상시 원우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나 그간 대학원 생활을 하며 느낀 점들을 생각해보았다. 대략 3가지 정도가 떠올랐다. 첫째, 협애한 이데올로기 지형, 둘째, 시장가치 물신화, 셋째, 학문의 미국화가 그것이다. 말하자면 '한국'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협애한 이데올로기 지형과 시장가치의 물신화, 미국적 시각 및 사고방식의 내면화 문제와 직접 대면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문은 선입견 없이 진리를 탐구하는 것
기자는 먼저 김우창 교수에게 한국에서 학문을 하는데 있어서의 협애한 이데올로기 지형에 관한 견해를 물었다. 김 교수는 대학원생정도 되는 사람들은 흔히 들을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수사에 의해서 사고가 좁아지면 안 된다며 더 이상 냉전반공주의는 지배적인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또한 기자의 질문이 학문의 범위를 좁힌 것이라 지적했다.

"반공이든, 친공이든 이것에 영향을 받는 것은 사회, 인문과학입니다. 자연과학과 의학은 그렇지가 않지요. 자연과학이나, 공학, 의학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사회, 인문과학도 마찬가지지만 바로 경제논리에 학문이 지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학문은 기본적으로 선입견 없이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데올로기나 맹목적으로 시장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열린 형태의 학문 수행에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논의는 자연스럽게 시장가치 추구에 대한 것으로 넘어갔다.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물결이 한국사회 특히나 학문의 장에도 스며들고 있는 현실을 새삼 떠올려 보았다. 한국의 많은 학자들이 수입을 올릴 수 있거나, 단기적인 연구성과를 올릴 수 있는 연구프로젝트에 집착하여 대학원생들을 동원하고 있다. 대학원이 점점 국가나 기업의 '프로젝트 하청공장'으로 전락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연구자는 당연히 자신의, 현실의 삶, 생활 속에서 문제의식을 제기, 발전시키고 그에 대한 엄밀한 고찰을 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돈이나 상징자본의 획득을 위해 대부분 현실과 괴리되어, 자신의 문제의식과는 상관이 없는 방향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자의든, 타의든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할까? 한국에서 '죽은 학문', '화석화된 문제의식'등이 득세하는 것도 이런 경향들과 따로 떼어서 생각하면  안 된다.

학문에 특정관점만을 강조하면 안 된다.
김우창 교수는 신자유주의는 경제를 운영, 지배하는 하나의 조류일 뿐이고 이보다 포괄적인 개념이 바로 경제논리, 시장논리인데 이것이 모든 영역을 지배하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 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김 교수는 경제적 관점은 매우 중요하고 그것 나름의 커다란 의미가 존재한다고 이야기했다. 문제는 그것이 전부가 되는 것이다. 지나치게 실용적인 경제관점에서 진리탐구를 재단하면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시장가치를 말하기에 앞서 목적에 대한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학문은 총괄적인 것이기 때문에 특정 관점만을 강조하면 안 된다고 김 교수는 여러 차례 역설했다. 하지만 그는 현실의 모든 문제를 신자유주의 탓으로 돌리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했다.

"신자유주의는 분명 우리사회, 사고를 좌우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학문세계까지 그것의 논리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한 공산주의, 전체주의와는 달리 민주주의, 자유주의는 강제력에 의해서 집행되는 체제가 아니죠. 신자유주의 자체에 직접적인 강제력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은 현실의 문제를 모두 신자유주의 탓으로 돌리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좋건 나쁘건 분명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합니다. 마치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받아들이면 그에 순응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김우창 교수는 수사적으로, 표피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무책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자신의 책임들, 우리가 실천적으로 할 수 있는 일에 관해서 생각해 봐야한다는 것이다.

연구기금을 위해 하는 연구
'시장가치의 확장'문제와 관련지어서 김 교수는 학문의 이니셔티브는 연구기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에서 나와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연구자는 자신이 중요시하는 연구를 해야 합니다. 국가는 주제를 정해놓고 그에 맞추어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좋은 연구를 하는 이들을 찾아서 지원을 해주어야 하는 거에요.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요? 모든 것이 전도되어 있습니다. 학술진흥원 같은 곳도 이미 프로젝트 주제를 정해놓고 입찰을 받는 식으로 일을 진행합니다. 그러다보니 연구에 연구기금이 따라야 하는데 연구기금에 연구가 따르고 있습니다. 잘못된 거죠."

그는 옛날 시골훈장의 사례를 들며 요즘의 세태를 비판했다. 훈장들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사명으로 했고, 경제적 수입이라는 것은 그 과정에서 얻는 부수적인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훈장이 돈을 버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아이들을 가르치면 어떻게 되겠는가?   

국가, 경제 제일주의에서 벗어나자.
위의 맥락에서 김 교수는 한국에서 모든 행동을 정당화라는 논리가 두 가지 있다며 그것이 ‘민족주의’와 ‘경제성장’이라고 지적했다. 여전히 '부국강병'의 논리가 여러 곳에서 지배적인 가치로 통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본교가 영국 타임지 선정 세계 150대 대학이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국가나 민족의 명예차원에서 사안을 볼 뿐 그것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황우석사건'은 이에 대한 가장 적나라한 사례이다. 국가의 명예나 기대되는 경제적 가치에만 주목한 채 어쩌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진리탐구라는 이슈는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학문은 인간과 진리에 대한 끝없는 탐구를 통해 이러한 국가, 경제제일주의를 뛰어넘어 이를 초월할 수 있는 여지를 갖아야 한다.

"민족주의와 경제성장의 논리로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심각한 사고의 왜곡을 가져옵니다. 학문의 엄정성이 손상되는 것은 물론이고요. 세상에 크게 해악을 끼칠 일도 민족과 국가, 경제성장의 논리에 의해 정당화되고 있어요. 학문을 하는 이들은 이러한 논리들을 넘어서야 합니다."

기자는 한국에서의 '학문의 미국화'에 대한 그의 견해를 물었다. 미국학문에 종속되어 미국박사만이 숭상되며, 한국의 현실을 한국의 눈으로 설명하는 '자생적 이론의 부재'문제를 그간 여러 차례 느꼈기 때문이다. 김우창 교수는 기자의 질문 그 자체가 이데올로기적이라며 중요한 것은 구체적이고 엄격한 사고에 입각한 객관적인 태도라고 강조했다. 문제를 다른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학문 그 자체에 국가적인 편견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요한 것은 미국박사냐 한국박사냐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전체적인 균형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김 교수가 강조하는 것은 다름 아닌 논문의 질에 대한 엄정한 평가이다. 학문성과에 대한 선입견 없는 구체적인 판단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거대이론이 사라진 이유
논의의 범위를 '한국'이라는 공간적 특수성에 대한 강조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이라는 일반적인 것으로 넓혔다. 근래에 들어 학자 중에 '대가'라는 칭호를 들을 만한 이들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또한 더 이상의 '거대이론'역시 출현하지 않고 있다. 개별 학문 분과를 넘나들 수 있는 사고력과 철학적 깊이를 갖춘 사람이 있다손 치더라도, 학문 분과를 넘나드는 것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이 현실이다. 즉 학문의 분과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권력내지 지형으로 고착화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에 따라 과거와 같은 거대 이론도 출현하지 않는다. 인문학을 전공한 김우창 교수에게 '거대이론', '대가'의 부재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김 교수는 두 가지를 이야기 했다. 공산주의의 몰락과 자본주의발전에 따른 소비사회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먼저 공산주의의 몰락을 언급했다. 공산주의 유토피아의 몰락이후 사회를 고쳐야 한다는 말은 많지만 역사 그 자체를 설명하는 이론은 소멸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맑스를 비롯한 많은 혁명가들이 공유했던 '역사는 발전한다'는 개념자체에 대한 회의가 커져버렸다. 또 한편에서는 자본주의는 여전히 발전의 여지가 많아 보이고, 생태적인 문제와 연관지어서 지금 '서구의 선진사회가 과연 살만한 사회인가?'인가 하는 자각이 커졌다. 그렇기 때문에 거대 이론이나 새로운 역사적인 프로젝트는 이제 다시 나오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2차 대전이후 서구에서 자본주의발전에 따른 소비주의 사회가 등장했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소비의 유혹이 커지면서 생각은 흔들리고 사물을 크게 보고 움직이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 것입니다. 즉 창조적인 관점에서 자기 삶을 영위하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여러 가지 문제가 새로 발생하면서 사는 보람도 많이 떨어지는 것이고요. 어찌 보면 푸코나 알튀세르 같은 당대의 이론가들도 역사와 더불어 움직이지 않은, 소비주의에 맞춰 들어간, 소비주의에 충실한 사회이론가들이라 볼 수 있어요."



중요한 것은 작은 실천이다.
김 교수는 거대 이론은 사라졌지만 우리들이 살아가는데 정말 필요한 가르침들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삶을 충실히, 정직하게, 성실하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행복과 보람을 약속해주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이 중요한 것이죠.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이들도 매우 소비적이고, 또한 큰 자동차를 타고 다닙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작은 실천, 일상생활 속에서의 실천입니다. 비 온다고 비 탓만 하면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에요. 개인적인, 사회적인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대 담론에만 주목하면 안 되죠. 이론과 자신의 행동이 일치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소비주의, 판타지의 세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작지만 근원적인 인간의 가치를 추구해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근원적인 인간의 가치라는 큰 이론은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죠." 

기자는 다른 이도 아닌 평상시 다른 이들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검소한 생활로 유명한 김우창 교수의 지적이기에 그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주변의 이른바 '강단좌파'들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들의 실제 삶과 유리된 학문내지 사상이라는 것이 어떠한 위험성을 갖는지에 대해서도. 누구나 머리만 좀 좋고, 약간의 노력만 한다면, 좌파이론가들의 이름과 저작, 이론들을 줄줄 꿸 수 있고, 이는 실제로 그들에게 남들과 구별되는 일종의 상징자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자신의 실존적 삶 내지 현실역사와 유리된 앎이라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아니 오히려 모르니만 못한 것이다. 잘 모르는 이들은 적어도 어딘가에 가서 혹세무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학문을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
김우창 교수는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열려있어야 하고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며 무엇보다도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은 '학문은 무엇보다도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라 역설했다. 연구자는 항상 자기가 추구하는 분야에서 참된 것을 추구해야 한다. 시장가치나 민족주의와 같은 것이 현대를 지배하는 중심적인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에 자신의 학문이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학문의 기본은 진리를 탐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려면 헌신과 도덕적 성실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사회에서는 경제주의나 출세주의가 지나치게 만연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제가 굶어죽으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열심히 공부를 하다보면 이런 것은 다 따라오게 되어있습니다. 제가 아까 훈장이야기를 했었죠? 학문을 하는데 있어서 목적이 전도되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연애하다보니까 종족이 번성되는 것이지 종족 번성을 위해서 연애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무릇 대학원생들은
김우창 교수는 인터뷰 내내 학문의 기본은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열린 사고를 갖되, 엄격하고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랫동안 연구 활동을 해오고, 학생들을 지도해왔던 스승의 입장으로서 후학들인 대학원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3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공부를 하는 사람은 학문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한다. 무언가에 '빠져서' 끊임없이 정진해야 한다. 둘째, 대학원생들은 장래의 불안감을 극복해야 한다. 김 교수는 두 가지의 방안을 이야기했다. 하나는 학문에 몰두하면서, 끊임없이 정진하면서 불안감을 극복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국가정책을 통해 극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학문발전을 위해 일정부분 지원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연구자들이 직업을 잡는데도 신경을 써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학생-교수 비율의 문제를 생각해보죠. 교수의 숫자를 늘려서 교수들이 연구나 강의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건 제가 예전부터 계속 교육부에 건의를 했던 것인데요, 교육부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직접적인 간섭은 안하더라도 대학교원의 수급상황에 대한 통계는 발표를 해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자료가 있어야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대학원생의 수급을 적절히 조정할 수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대학이 학생들을 일단 많이 뽑으려 합니다. 경제논리를 따르는 거죠. 교육부에서 이런 통계를 발표해서 교원-학생 수급에 따라 학생 수를 조정하는데 일조를 해야 합니다. 우리 정부는 이런 일을 안 하고 있어요."

셋째, 공부를 하는 이들은 학문을 하는 것에 대한 소명감이 있어야 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대학원생들은 공부를 단순한 직업(job)이 아닌 하나의 부름(calling)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는 기자에게 졸업가운의 의미를 아는지를 물어왔다. 어리둥절해 하는 기자에게 김우창 교수는 졸업가운은 과거 신부들의 수도승 복장과 유사한데 이는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는 '수신'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공부를 하려는 사람은 그럴 정도의 소명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막스 베버(Max Weber)의 '직업으로서의 학문'(사실은 '소명으로서의 학문'으로 번역되어야 할)을 인용하면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소명의식이 있어야 하고 너무 세속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앞서나가는 것을 참고 견디어야 하고, 어느 정도의 가난도 감내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빈곤을 참아내야 하고 연구비는 정말 필요한 곳에만 사용해야 한다.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봐야
마지막으로 본교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지도하고 대학원장을 역임한, 고려대학교의 스승이라는 입장에서 후학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물었다. 김 교수는 비록 전보다 유혹은 많아졌지만 열심히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없는 것은 아니라며, 학생들의 학문에 대한 정열이나 공부하는 마음은 과거와 크게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앞서 자신의 말들을 정리하며 다음과 같은 당부를 덧붙였다.

"학문을 하는 이들은 냉정하게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 현실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베버가 언급했듯이 공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소명의식을 가진 이들이 해야 합니다. 연구자들의 취직문제는 정부가 앞서 이야기한 일들을 하며 해결노력을 해야 하고요.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저는 외국유학을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에 눈을 돌려 직업시장을 넓힐 필요도 있습니다. 비록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유목민처럼 살 각오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학교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학교는 건물이나 외양에만 치중된 시설투자는 그만하고 공부를 하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설투자가 아닌 공부투자가 절실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한 시간 여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며 기자는 김우창 교수와의 대화들을 음미해 보았다. '인문학의 거장'이라는 그에 대한 찬사답게 그의 말과 주장들은 매우 부드럽고 유연한 것 같으면서 강한 메시지들을 내포하고 있었다. 또한 당연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그의 말은 잘 음미해 보면 많은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예를 들어 어찌 보면 누구나, 심지어 술자리에서도,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은 아는 것과 행동의 일치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도 기자는 매체나 주변을 통해 들은, 그가 묵묵히 실천하고 있다는 검소한 삶을 떠올리며 숙연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진정성에서 나오는 '말의 힘'을 느낀 것이다.

김우창 교수와 한 시간 여 동안 '한국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을 주제로 인터뷰를 한 후 기자는 마치 책에서나 읽었던 완숙기의 '막스 베버'를 만난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기자의 짧고 얕은 공부로는 막스 베버나 김우창 교수 사상의 정수나 인식론, 삶의 철학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학문은 무엇보다도 선입견 없이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라는 김 교수의 주장, 일체의 결정론이나 단정적 태도, 이데올로기를 배격하고 사물의 다차원성을 강조하는 것, 공부를 하는 이들은 반드시 소명의식을 가지고 엄격하면서도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는 그의 주문은 기자의 짧은 지식에도 불구하고 막스 베버의 풍모를 연상케 하기에 충분했다.

07. 10. 26.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늘빵 2007-10-27 09:34   좋아요 0 | URL
"첫째, 공부를 하는 사람은 학문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한다. 무언가에 '빠져서' 끊임없이 정진해야 한다. 둘째, 대학원생들은 장래의 불안감을 극복해야 한다. ... 셋째, 공부를 하는 이들은 학문을 하는 것에 대한 소명감이 있어야 한다."

학문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닌 저로서는, 학문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참 존경스러워집니다. '장래에 대한 불안감'은 수능점수 상위 몇개 학교를 제외하고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고, 이로 인해 첫번째 또한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고 - 자꾸만 딴 곳을 바라보게 되니깐요 - 세번째는 그래야하는 당위이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군요. -_-

로쟈 2007-10-27 10:39   좋아요 0 | URL
모든 당위가 그렇듯이 실천은 쉽지 않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