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들'을 둘러보다가 요아힘 바우어의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원칙>(에코리브르, 2007)이란 책에 눈길이 갔다. "경쟁과 도태를 기본으로 하는 다윈주의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에 반하여 '협력'을 인간의 본성으로 바라보고 있는 책. 인간을 움직이는 모든 동기의 핵심이 이기심이 아닌 다양한 관계 속에서 인정, 존중, 배려, 애정을 발견하고 주고받는 '협력'임을 주장하고 있다."는 소개를 보면 웬 뒷북인가 싶은 책인데, 의외로 원서는 작년에 나왔고 저자는 국내에 다른 책들까지 소개돼 있다. 말하자면 외양은 '멀쩡한' 책인 것이다.

호기심에 독일 아마존에까지 들어가서 원서를 확인해보니까 몇몇 독자평의 별점이 넷이다. 다행히(?) 한 독자는 별점을 하나 주었다. 내가 읽을 수 있는 독어는 인칭대명사 정도여서 내용까지는 모르겠지만 나라면 이 독자의 편을 들고 싶다.

알라딘에 덧붙은 소개는 "지은이는 신경학적 자료들을 바탕으로 협력이 불러오는 '인간성'의 원칙에 대하여 논증하고 있으며, 생물학적인 관점에 있어서도 유전자가 전혀 이기적이지 않음을 설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인간을 가장 내부에서 움직이게 하는 동인이 다윈의 '자연의 투쟁' 이 아닌 협력, 거울현상과 공감이라는 것을 논증한다."인데, 엉터리 같은 소리이거나 하나마나한 소리이다.

<다윈주의 좌파>에 대한 리뷰(http://blog.aladin.co.kr/mramor/1486776)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협력의 진화'라는 건 이미 진화생물학에서는 상식적인 것이고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의 재판부터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다. 거기에 저자가 몇 마디 더 보태는 줄 알았더니 소개상으로는, 그리고 이어서 찾아본 리뷰기사상으로는 도킨스와 '협력'하려는 게 아니라 '경쟁'하기 위한 의도에서 씌어진 듯하다. 저자의 인간 본성론에 기대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반칙' 아닐까?



저자인 요아힘 바우어는 이렇게 적어놓았다. "인간의 내면에 사랑하고 협동하려는 성향이 있다면 공격성의 비중은 얼마나 될까? 최근의 학문적 성과에 따라 인간 존재가 지닌 위협적인 특성인 공격성의 위상은 새롭게 설정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원칙, 이른바 '인간성의 원칙'이 경제, 직장 생활, 교육, 교양, 의학 등 사회의 각 영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앞으로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와 같은 질문까지 관심을 갖고 다루려 한다." 그런 방대한 질문을 260쪽 분량에 갈무리해놓은 건 저자의 역량인 듯 보이지만, 나로선 신뢰할 수 없는 역량이다(공격성에 대해서라면 콘라트 로렌츠와 에드워드 윌슨의 책을 참조해볼 수 있다). 내친 김에 리뷰까지 찾아 읽었다(동아일보의 기사만 뜬다).

동아일보(07. 08. 25)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원칙

“생명체는 유전자의 최대 증식을 위해 고안된 유전자의 생존 기계다.”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에 발표해 인간 본성의 문제로 확대된 ‘이기적 유전자’론이다. 유전자는 근본적으로 이기적이며, 생존을 위해 무한 투쟁을 한다는 게 그 주장의 요체이다. 달리 말해 투쟁과 경쟁, 그에 따른 도태를 내세운 다윈주의가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이나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론으로 부활한 것이다. 신경생물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이기적 유전자론에 맞선다. ‘이기적 유전자’는 과학이 아니라 공상이었으며 유전자는 투쟁이 아니라 협력하는 존재라는 것이다.(*아무래도 저자가 윌슨이나 도킨스를 잘못 읽은 게 아닌가 싶다. 기자는 안 읽은 듯하고).  



저자는 ‘이기적 유전자’의 초판 서문에 도킨스가 ‘이 책은 사이언스 픽션으로 읽혀야 한다. 이 책은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쓰였기 때문이다’라고 했다가 10년 뒤 2판 서문에는 ‘이 책의 핵심적인 내용은 이미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볼 수 있다’로 고쳐 쓰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됐다고 지적했다.

사회생물학이 적자생존이나 생존 투쟁 등 다윈의 모델과 시장경제원리를 무비판적으로 끌어들였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미국의 여성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는 “투쟁이나 적자생존은 경제학에서 파생돼 생물학에 적용된 인위적인 개념일 뿐이며 경제학의 지배적인 개념들은 생물학에서 성공하지 못한다”고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한다(*요즘 '투쟁과 적자생존'만을 강조하는 생물학자가 있는가? 국내에서도 로버트 어그로스 등의 <새로운 생물학>(범양사, 1994) 같은 책이 소개된 게 벌써 13년 전이다).

저자는 도킨스의 주장처럼 세포는 이기적 유전자의 투쟁의 결과가 아니라 유전자 간 협력으로 탄생했다고 말한다. 한때 박테리아였던 미토콘드리아도 세포 내 공생의 과정을 통해 원시 단세포 생물과 한 몸이 됐다는 것이다(*마굴리스의 '고전적인' 주장이다).

결국 저자의 주장은 인간 본성의 문제로 이어진다. 인간의 본성은 투쟁이 아니라 협력 공생이라는 특질이라는 것. 이를 입증하기 위해 저자는 동기부여체계(보상체계)나 사회적 뇌, 후성학(유전적 배열의 변화를 포함하지 않는 유전형질에 관한 연구를 하는 학문) 등 다양한 학문적 성과를 동원한다.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부여체계는 목표지향적인 행위를 유발한다. 이를 촉진하는 도파민 옥시토신 등 신경전달물질은 애착이나 신뢰에서 생성되는 행복전달물질. 러셀 퍼낼드가 주장한 ‘사회적 뇌’도 동기부여체계의 목표가 사회적 결속이며 성공적인 인간 관계, 나아가 모든 형태의 사회적 상호 작용이라는 점을 밝혔다. 최근 후성학은 유전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주변 환경에 반응하며 ‘타고난 범죄자’ 같은 유전자의 고정 타입은 환경에 의해 달라진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에 따르면 인생의 초기 단계에서 애정의 결핍은 동기부여체계의 기능을 현저히 저하시켜 공격성을 유발한다는 것이다.(*유일하게 흥미로운 대목이다. 저자는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만 환경에 의해서 타락됐다고 보는 듯하다.)



저자의 논증을 따라가다 보면 유전자의 동인이 투쟁이나 경쟁이 아니라는 점에 납득이 가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그럼에도 자연이나 사회 환경에서 생존 투쟁이 격렬하게 발생하는 현실을 거부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기적 유전자’와 ‘협력적 유전자’의 접점에 기대가 모아진다. 양자의 논쟁은 해묵은 것인데도 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이유도 그것이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인 듯하다.(허엽 기자)

07. 0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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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7-08-26 13:35   좋아요 0 | URL
그저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게 인간인가봅니다.

로쟈 2007-08-26 18:10   좋아요 0 | URL
네. 하지만 '과학'은 아니지요...

가을산 2007-08-27 00:04   좋아요 0 | URL
물론 믿고 싶은 것을 믿는것이 과학은 아닙니다.
과학이 아니지만 과학적인 방법을 (편향되게) 이용해서라도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고자 하는 것이 특히 지식틍일수록 강하게 나타나는 특성 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입장에 이로운 사실이나 정황만을 선택적으로 취하는 것, 이것은 객관적으로 인정된 사실이잖아요? (무슨 오류라고 하더라...)
단지 대체로 남들이 그러는 모습은 잘 보여도 자기가 그러고 있는 것은 도대체 인식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로쟈 2007-08-27 00:35   좋아요 0 | URL
저의 예단일 수도 있지만, 책소개나 리뷰를 참조하면 이런 책이 어떻게 나올 수 있었을까, 좀 의아합니다. 제가 보기엔 자기 주장의 합리화 이전에 상당히 '게으른' 책이어서요.--;

심술 2007-08-26 19:04   좋아요 0 | URL
잊은 생물학 용어를 찾고 있는데요 답은 무슨무슨 생물이었던 거 같고 정의는 주변 환경을 말해 주는 생물인가 뭐 그렇고 예를 들자면 어떤 물고기가 어느 강에 있으면 그 강은 아주 깨끗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거였거든요. 이 용어가 뭣인지 아시겠는 분 도움 좀 주세요.

심술 2007-08-26 20:12   좋아요 0 | URL
아, 맞다. 지표생물. 저기 한 가지만 더요. 땅 속 깊이 들어갈 때 공기가 모자라게 될 걸 알려고 카나리아를 갖고 들어가잖아요? 이런 경우 카나리아를 가리키는 생물학 용어가 있나요?

가을산 2007-08-27 00:01   좋아요 0 | URL
혹시 mine-shaft canary를 말씀하시는지요?